택하심을 받은 나그네(9/1/19)

베드로전서1:1-2. 택하심을 받은 나그네

오늘부터 베드로서신을 본문으로 하나님 말씀을 전하도록 하겠습니다. 베드로서신은 네로 황제의 박해시기에 소아시아 지역에 흩어져 살던 성도들을 위로하기 위해 쓰여졌습니다. 그래서 ‘소망의 서신’, 또는 ‘위로의 서신’으로 불리기도합니다. 신앙 때문에 가정에서든 직장에서든 친구들로부터든 고난을 당하는 교우들은 베드로서 말씀을 듣는 동안 위로받고 소망을 가지고 견뎌낼 수 있기를 바랍니다.

베드로전서는 대략 65년 전후에기록된 것으로 봅니다. 그 때는 네로 황제가 기독교를 박해하기 시작한 때였습니다.  64년 여름 로마시에 대화재가 발생했다고 합니다. 그 전부터 네로 황제가 로마를 자신의 뜻대로 다시 건설하려고 불을  지를 거라는 소문이 돌았답니다. 불이 났을 때  시민들은 네로의 소행을 의심하며 분노했습니다. 그러자 네로는 예수 믿는 자들이 불질렀다며 기독교를 탄압하기 시작했는데, 소아시아에 사는 성도들도 고난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1절에 본도, 갈라디아, 갑바도기아, 아시아, 비두니아 지역이름이 나옵니다. 지금의 터키지역이 신악성서시대에는 소아시아로 불렸고 지도에서 보는 것처럼 북쪽 위에서부터 시계방향으로 본도, 갈라디아, 갑바도기아, 아시아, 그리고 비두니아까지 다섯 지방으로 구분되어 있었습니다. 베드로는 이 지역에 흩어져 살고 있던 그리스도인들에게 위로의  편지를 보냈는데, 이들은 유대인보다는 주로 예수 믿은 이방인으로 보입니다(벧전1:18, 2:10).

베드로서신의 저자는 1절에 언급된 것처럼 베드로 사도로 인정되고 있습니다. 내용과 문체가 바울 서신과 비슷하다고 해서 베드로가 저자가 아닐 것이라고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도 있었는데, 베드로가 비록 어부 출신이긴 해도 예수님과 3년을 동행하며 배웠기 때문에 베드로서신에 언급된 내용 말할 정도는 충분히된다고 보이고 문체가 바울 서신과 비슷한 것은 베드로가 직접 쓴 게 아니고 실루아노에게 대필을 시킨 것을 감안하면 이해됩니다(벧전5:12). 실루아노는 바울의 동역자로 바울의 영향을 많이 받은 사람이었습니다(행15:40).

베드로는 편지 서두에 자신을 사도로 소개했습니다. 위로하는 편지라고 해도 그럴만한 자격과 지위가 있어야 합니다. 사도라면 자신이 전도하고 세운 교회든 다른 사람이 전도하고 세운 교회든 권면할 자격이  있습니다. 사도는 복음을 전하고 양을 돌보는 일을 하도록 예수님이 직접 세워 파송한 목자였습니다. 그러기에 지역교회만 담당하는 목사와 달리 사도에겐 모든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에 목자의 권위와 역할이 주어진 것입니다. 특히 베드로는 요한복음21장 보면, 예수님께서 내 양을 치고 먹이라고 목자의 사역을 위임해주셨습니다. 그러니까 베드로 사도는 예수 믿는 그리스도인이면 어느 지역의 누구든 주의 말씀으로 권면할 위치에 있는 분이었습니다.

베드로는 소아시아에 흩어져 살던 성도들을 ‘나그네’(strangers in the world)라고 불렀습니다. 이들 중에 상당수가 박해를 피해 이리 저리 피신한 사람들도 있었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나그네라는 말이 그들의 처지를 잘 보여준다고 생각되지만, 베드로가 나그네라고 한 것은 고향에서 살든 타지에서 살든 이 세상은 잠시 지나가는 곳이고 영원히 정착해 살곳은 하나님 나라라고 믿고 살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도 그렇게 생각합니까?

최희준의 하숙생(1965)이라는대중가요를 여러분도 아는지 모르겠습니다. “인생은 나그네길 /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가 / 구름이 흘러가듯 떠돌다 가는길에 /정일랑 두지말자 미련일랑 두지말자/ 인생은 나그네길 /구름이 흘러가듯 / 정처없이 흘러서 간다/  어떤 느낌이 듭니까? 무상함을 느낍니까?

베드로께서 말하는 나그네는 목적지가 없어서 정처없이 떠돌다가 끝나는 그런 나그네가 아니고 천국이라는 목적지가 너무도 분명해서 이 세상에 미련을 두지 않는 순례자입니다. 베드로에게 나그네는 인생관을 표현하는 신앙고백 같은 것이었습니다. 살다보면 짐이 많아지는 걸 보면 우린 참 욕심이 많구나 싶습니다. 별로 쓸대 없는 것도 아깝다고 버리지 못하는 걸 보면, 돈이나 재산이나 귀중품 같은 것에는 얼마나 더 욕심을 내겠습니까?

박해와 고난이 없고 대신 세상 편한 때에 예수 믿고 사는 게 참 다행이다 싶지만, 이렇게 편할 때는 기복적인 신앙에 빠지는 경향이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신앙여정도 보면, 광야에서 살 때보다 가나안에 정착해서 보다 풍족한 환경에서 살면서 풍요를 추구하는 바알 우상에 빠지면서 하나님과 멀어졌습니다. 천국에 들어가기 소망하는 그리스도인들은 항상 물질적 탐욕을 조심해야 합니다. 물질적 탐욕이 내 신앙을 변질시킬 위험이 있습니다.

우리도 박해 아래 놓여 신앙생활하는 때가 올지 모릅니다. 그러나 지금은 한국이든 미국이든 박해보다 세상을 사랑하는 기복적 신앙이 교회를 위협하고 있습니다. 요한은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을 사랑하지 말라”고 말씀했습니다(요일2:15). 믿음으로 산다고 안심하는 동안에도 세상을 사랑하여 주님에게서 멀어질 수 있습니다. 나그네의 마음을 가지고 사는 것이 세상에 빠지지 않도록 도움이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 나라에 들어와 살도록 택함받은 나그네입니다. 은혜와 평강이 함께 여러분과 가정에 늘 함께하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