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찌 믿음이 없느냐?(8/18/19)

막4:35-41 / 어찌 믿음이 없느냐?

오늘은 생활 속의 믿음을 주제로 하나님 말씀을 증거하겠습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을 믿고 사는 중에도 예상치 못한 어려움이 생기고 죽음의 공포를 느끼는 경우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그럴 때야말로 믿음이 힘을 발휘해야 할 때입니다. 이 시간엔 그런 믿음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그런 믿음을 가지고 살려면 어떻게 해야할 것인지 말씀드리겠습니다.

먼저 본문 말씀부터 살펴봅시다. 본문 말씀을 영화로 찍는 상상을 하면 내용이해에 도움이 될 겁니다. 예수님과 제자들이 작은 배를 타고 바다같이 큰 호수를 건너고 있습니다.  갑자기 거센 바람이 불어오고 큰 파도가 밀려와 뱃를 때리자 넘쳐든 물로 배안이 가득해집니다.  작은 배는 금방이라도 뒤집어질 것 처럼 요동치고 제자들에겐 죽음의 공포가 밀려옵니다. 그런 상황에도 예수님은  배뒷자리에서 잠을 자고 있습니다.

겁먹은 제자들이 예수님을 깨우며 소리칩니다.  “선생님!, 지금 우리가 다 물에 빠져 죽게 생겼는데 돌봐주시지 않고 주무시기만 합니까?” 자다 일어난 예수님은 바람을 꾸짖고(상상이 잘 안갑니다만) 바다더러 “잠잠하라, 고요하라”고 명령하십니다. 그러자 신기하게도 바람이 그치고 바다는 잔잔해집니다. 이 광경을 보고 안도하며 놀라는 제자들에게 예수님은 “어찌하여 이렇게 무서워하느냐, 너희가 어찌 믿음이 없느냐”고 말씀하십니다.

제자들이 우리보다 믿음 없는 그런 사람이었습니까? 그들은 예수님의 부르심에 순종해서 모든 것을 버리고 주님을 따르던 사람이었습니다. 갑자기 거센 바람이 불어 뒤집어질 것 같은 상황에서 의지하고 있는 선생님께 도와달라고 하는 건 당연하게 보입니다. 무서워한다고 믿음없는 사람 취급하신 예수님이 좀 심한 게 아닌가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그렇게 말씀하신 예수님의 의도를 좀더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 때 예수님이 말씀하신 믿음은 어떤 믿음입니까? 본문에서 예수님이 지적하신 믿음은 하나님이 계신 것을 믿고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 구세주로 믿는 그런 믿음과는 좀 다르다고 생각됩니다. 풍랑으로 배가 뒤집어져 죽을지도 모른다고 겁먹고 위급함을 돌봐주지 않는다고 원망하는 모습보다는 주님을 믿고 그 상황에서 각자가 해야 할을 하면서  위기를 헤쳐나가는 그런 제자들의 모습을 기대하신 것 같습니다.

믿음은 구원과 하나님 나라를 지향하는 차원 뿐아니라 하나님의 자녀로서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직면하는 모든 삶의 영역과 연결되어야 합니다. 안 그러면 믿음이란 게 세상 일에는 아무런 도움이 안되고 영혼구원얻어 천국가는 것에만 유용한 것이 될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그리스도인들은 믿음 따로 세상 따로 살아가는 이원론자가 되기 쉽습니다. 세상 일에 믿음을 적용하지 않으면 세상 방식으로 살 수 밖에 없지 않겠습니까? 실제로 그렇게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이 적잖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믿음이 세상 일에도 효력을 발휘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단지 희망사항이 아니라 주님의 말씀에 근거한 것입니다.예수님은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막9:23),  “이제부터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시행하리라”(요14:14)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 속엔 우리 일상생활의 문제와 필요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전도하는 영적 사역 뿐 아니라 학업, 직장, 건강, 가정문제 등 일상적인 생활에서 도움이 필요한 문제에도 믿음은 역사하는 힘을 발휘합니다.

생활 속에 믿음을 사용하는 데도 훈련이 필요합니다.  마태복음17장 보면, 귀신을 쫓아내는데 실패한 제자들에게 예수님은 실패한 이유가 우선 믿음이 적기 때문이라고 하셨지만, 이어서 믿음이 겨자씨만큼만 있어도 못할 것이 없을 거라고 말씀하셨습니다(20). 그래서 겨자씨만큼이라도 믿음이 있는 교우들은 믿음을 더 달라고 할 게 아니라 그 믿음을 사용하는 게 중요합니다. 씨가 싹이 나는 것은 농부가 능력이 있어서가 아니고 씨 속에 생명력이 들어있기 때문입니다.

현실의 삶 속에서 효과가 있는 믿음을 발전시키는 것을  고든 맥도날드는 ‘현실적인 믿음의 연마’라고 표현했습니다. 장인이 보검을 만들 때 담금질도 하고 철을 모루 위에 올려놓고 두드려 얇게 펴고 몇 겹으로 겹쳐서 다시 두드리는 것을 연마라고 합니다. 이런 과정을 거친 쇠는 탄소 함량이 높아져 강도가 높아진답니다. 그렇게 해서 바위도 자르는 보검이 나오는 겁니다.  

믿음도 삶 속에서 연마의 과정을 거치면 역사하는 힘이 있는 믿음이 될 수 있다고 합니다. 두드려 맞을 때 쇠가 강해집니다. 믿음도 그렇다는 것입니다. 무기력한 종교생활을 벗어나 역동적인 믿음의 사람이 되고 싶은 그리스도인은 망치를 들고 두드려야 한다고 조언합니다. 믿음을 연마하는 일은 누가 대신해줄 수 없기 때문에 자기가 해야 합니다.

현실적 믿음을 연마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성경을 읽는 것입니다. 성경 속에는 믿음으로 산 사람들을 통해서 만들어진 수 천년의 믿음의 세상이 들어있습니다. 성경을 읽는다는 것은 타임 머신을 타고 과거로 돌아가 믿음으로 산 사람들을 만나 그들이 믿음으로 살기 위해 어떤 고민을 하고 어떤 선택을 하며 믿음으로 세상을 이겨냈는지 배울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창세기를 읽을 때 우리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시고 세상은 어떻게 생겼는지 알게 됩니다. 아담과 이브를 통해서는 죄가 무엇이고 그 결과는 어떤 것인지도 알게 되고 아브라함을 통해서 믿음이 뭔지, 믿음으로 사는 사람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배울 수 있고, 세상 사람들이 푸념처럼 덧없이 세월만 흘러가는 게 아니라 하나님의 계획이 성취되어 가는 과정이라는 걸 깨우쳐줍니다.

히브리서 11장엔 믿음으로 산 사람들이 나오는데 , 그들은 믿음이 모두 현실의 삶과 연결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아벨의 믿음은 예물을 드리는 것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노아의 믿음은 수 십년 동안 배를 만들며 사는 것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아브라함의 믿음은 고향을 떠나는 결단과 알지 못하는 가나안으로  이주하는 것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모세의 믿음은 하나님 백성과 함께 고통받는 사역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그들의 삶을 보면, 하나님이 함께하셨고 위험할 때 도와주시고 필요할 때 능력을 행하게 하셨습니다. 그들은 모두 생활 속에서 역사하는 현실적 믿음의 사람들이었습니다. 성경을 읽게 되면 이런 믿음을 배워 삶에 적용할 수 있습니다.

성경은 어디를 읽어도 믿음을 연마하는데 도움이 됩니다. 성경은 모두 하나님의 감동으로 기록되었고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도록 하나님의 감동으로 기록되었습니다(딤후16,17). 성경을 읽는 것만으로 믿음이 세워지고 현실 속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지혜를 주십니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경건에 이르기를 연습하고 성경읽기를 힘쓰라고 당부했는데(딤전4:7, 13), 여러분이 당분간 디모데전서와 후서를 반복해서 읽기 바랍니다. 그러면 여러분이 처한 상황 속에서 어떻게 해야할지 지혜를 주시고 하나님도 여러분 편이 되어 능력을 베풀어주실 것입니다.

야고보는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고 했는데, 현실 삶 속에서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믿음 또한 죽은 믿음이 아닐까 싶습니다. 행함이 없는 믿음이나 실제 삶에 적용하지 않는 믿음이나 결과적으로 아무런 도움이 안되는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결과적으로 죽은 믿음가지고 신앙생활하는 것과 같습니다. 구원을 얻게하고 현실의 어려움을 해결하는 능력을 발휘해야 진짜 믿음입니다. 해결은 주의 뜻에 따라 다를 수 있습니다. 믿음으로 기적과 치유가 일어날 수도 있고 인내하게 할 수도 있습니다.  믿음을 활용해 문제를 해결한 간증이 여러분을 통해 풍성해지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