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 안에서 사람은 변한다(7-14-19)

고후5:17, 그리스도 안에서 사람은 변한다.

오늘부터 몇 번에 걸쳐서 그리스도 안에서 변하여 새 사람이 되는 것과 관련된 하나님 말씀을 나눌려고 합니다. 이런 말씀을 나누려는 목적은 예수 믿고 거듭난 사람이 되었는데도, 우리가 변하여 새 사람된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는 고민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사람이 바뀔 수 있는 것인지 부터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오늘 본문 말씀을 다시 읽어봅시다.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설교본문을 한 절만 뽑아서 정하는 건  컨텍스트를 무시하는 거라 좋은 방법이 아닌 줄 알지만 오늘은 주제 설교라서 그렇게 했습니다. 이 구절에서 제가 주목하는 것은 예수 믿고 구원얻었느냐는 것이 아니고 예수 믿어서 실제로  새로운 피조물답게 달라졌는가 하는 부분입니다.

여러분은 사람이 바뀔 수 있다고 생각합니까? 바뀌지 않는다고 생각합니까?  보통 사람은 잘 안바뀐다고 생각합니다. 저도 그런 느낌을 가질 때가 있습니다. 사람이 변하지 않을거라는편견을 보여주는 이야기를 하나 들려드리겠습니다. 어떤 목사님이 책에 쓴 말인데, 어떤 자매가 중매들어온 남자의 혈액형이 B형이라고 거절했다고 합니다.  그 자매는 “이기적이고 바람둥이가 많잖아요? “ 라고 말했습니다. 알고보니 B형은 여자가 기피하는 혈액형이라고 한답니다.  그렇습니까? 그런데 목사님도 ‘경상도 B형 남자’ 였답니다.

만일 사람이 안 바뀌는 것이라면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다는 말씀을 어떻게 이해해야 합니까?  영혼은 구원얻고 새롭게 변하지만 인격은 변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습니까? 그렇게 되면 새로운 피조물이라고 해도 드러나 보이는 언행은 예수 믿기 전이나 마찬기지로 달라진 게 없을 겁니다. 이게 말이 됩니까? 예수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란 영혼이 거듭나서 새롭게 되는 건 물론 인격도 주님을 닮아가며 변하여 새사람이 되는 게 정상입니다. 불신자는 몰라도 예수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된 사람은 당연히 변해야 합니다.

본문의 주어는 ‘누구든지’는 예수 안에 있는 사람은 예외 없이 모두 새로운 피조물이 된다는 말씀입니다. 경상도 B형 남자라도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오면 새로운 피조물로 바뀝니다. 예수 믿지 않는 B형 남자와 예수 믿는 B형 형제는 결코 같지 않다는 걸 알아야 합니다. 사람들은 근거없는 편견을 무슨 과학적 상식이나 되는 것처럼 생각하는 게 있는데, 혈액형과 성격을 연결짓는 것이 그렇습니다. 이 분야의 전문가들에 따르면 혈액형과 성격은 사실상 별로 상관이 없고 성격은 출생 순서와 가정환경의 영향을 더 받는다고 합니다.

 ‘그리스도 안’은 변화의 터닝포인트입니다. 태어난 그대로 산다면  안 바뀐다는 말이 맞을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간 사람은 변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생각해보세요. 그리스도 안에서는 사람이 죽었다가 다시 살아납니다.  거기서 육체와 함께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박아 옛 성품은 죽고 새 사람으로 다시 태어납니다. 말로만 예수 믿는 사람 말고 진짜로 예수 믿어 거듭난 그리스도인이라면 변하지 않을 수 없는 겁니다. 변하기 원하는 분들은 우선 그리스도 안에서 내가 변할 수 있다고 믿기 바랍니다.

지금 우리가 유용하게 사용하는 금속들은 자연상태에선 대부분 광석 속에 들어있는데 그걸 용광로 속에 넣고 녹여 분류해낸 것입니다. 사람도 태어난 성품 그대로 제 멋대로 살게 놔두면 변하지 않을 겁니다. 그러나 그리스도 안은 영적인 용광로같은 곳이라서 성령의 역사로 사람을 녹여서 새로운 사람으로 다시 만들어내는 곳입니다.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지 않고 그냥 노력하는 것들은 대부분 실패합니다. 성격이 노력해서 고쳐집니까? 말버릇이나 습관도 잘 안됩니다. 그래서 보통은 사람이 잘 안변하지만, 그리스도 안에 들어갔다가 나오면 변합니다.

왜 저는 변하지 않나요 질문하고 싶은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변하고 있는데, 그 변화의 속도가 기대에 못미쳐 변하지 않는 것처럼 느껴지는 경우가 있을 겁니다.  이런 분들은 변한 모습을 보는데 좀 시간이 필요합니다. 다른 경우는 그리스도 안에 들어간 게 아니고 주변만 멤돌고 있기 때문입니다. 용광로 밖에 있는 돌은 가까이 있어도 녹지 않습니다. 바울은 ‘교회 다니면’ 이라고 말하지 않고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이라고 말했습니다.  교회다닌다고 다 변하는 건 아닙니다. 변화는 그리스도 안에서만 일어납니다.

사람이  예수 안으로 들어가는 방법은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고 주로 시인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성령께서 그 사람을 변하여 새 사람이 되게 만들어주십니다. 도둑놈 취급받던 세리들도 예수 안에서 새 사람이 되었습니다. 몸을 팔며 살아가던 여인들도 예수 안에서 깨끗한 여인으로 거듭났습니다. 도망 노예로 죄를 짓고 감옥에 수감되어 있던 오네시모도 예수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로 바뀌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변화엔 차별이나 제한이 없습니다. 지난 날 어떤 잘못이나 죄를 지었든지 주님은 상관하지 않으십니다.

‘새로운 피조물’은 그리스도 안에서 옛 사람이 죽고 새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을 표현하는 말입니다. 새로운 피조물이라며 사람은 바뀌지 않는다고 할 수 있습니까? 예수 믿는 우리가  ‘사람은 바뀌지 않는다’는 세상 사람들이 하는 말을 생각없이 따라하면 안될 것입니다. 누군가 실망스런 모습을 보이면 참 안바뀐다고 포기하지 말고 변하여 새 사람되도록 기도합시다.  진짜로 예수 믿고 새로운 피조물이 되면 변하지 않을 사람이 어디있겠습니까?

어거스틴(354-430)은 서방 기독교의 신학적 토대를 닦은 인물로 평가받는 성인이었습니다. 그러나 어거스틴이 예수 안으로 들어오기 전 청년시절 행실이 좋지 못했습니다. 나쁜 친구들과 어울리며 훔치고 성적 쾌락을 추구하다  결혼하지 않고 여인과 동거하며 자녀를 낳았고  마니교라는 이단에 빠져 지내는 등 방탕하게 죄가운데 살았다고 합니다. 그러다 32세쯤 되었을 때 지금까지 자신이 죄악가운데 방탕하게 살았다는 것을 자각하고 괴로워하며 하나님을 찾다가 33세에 예수 믿고 새 사람이 되었다고 합니다.

스로스츠라는 사람은 40년 동안 교도소에 복역한 인물인데, 그는 도무지 통제가 되지 않는 포기한 사람이었답니다. 그가 출옥하기 전날 하루밤 구세군 숙소에서 보내게 되었는데 그 날밤 마침 전도집회가 있어 예수님의 십자가의 복음을 듣게 되었는데 예수님을 영접하고 성령을 체험했습니다. 그는 이렇게 간증했답니다. “나는 가죽 채찍으로 50대씩 8번,400대나 매를 심하게 맞고 40년 교도소 생활을 했어도 변화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만나는 순간 이렇게 변화되어 새 사람이 되었습니다”(유기성목사 설교중)

누가복음19장에 삭개오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는 예수님을 보려고 뽕나무 위에 올라갔습니다. 예수님은 뽕나무 위에 있는 삭개오를 불러 자청해서 그의 집에 가셨습니다. 예수님은 구원이 오늘 이 집에 임했다고 말씀했습니다. 수가성 우물가의 여인은 여러 남자와 산 과거 때문에 사람들이 멀리하는 여인이었습니다. 예수님은 그 여인의 과거를 다 알고 계셨지만 멀리하지 않고 먼저 말을 걸고 그 여인을 구원해주셨습니다. 누구든 예수 안으로 들어오려고 한다면 예수님은 기쁘게 받아주십니다. 우리도 현재 죄가운데 사는 사람이라도 관대하고 넉넉하게 품어줄 수 있어야 합니다.

예수 안에서 사람을 변화시켜 새로운 사람으로 만드시는 것은 성령이십니다. 죄를 부끄럽게 여기고 새 사람이 되고 싶은 마음과 의지도 필요하지만, 그것만으로 새 사람이 되지는 않습니다. 의존하며 살아가는 환경이나 나에 대해 권위를 가진 사람의 간섭도 나를 새 사람으로 만들어주지는 못합니다. 하나님은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으로 통해 새 사람으로 만들어 옷을 입는 것처럼 입혀주십니다(엡4:22-24).

변화에 도움이 된다고 해서 예수님과 동행하는 일기를 쓰는 분들도 있습니다. 주님과 함께 십자가에서 죽었고 지금 사는 것은 내가 아니고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갈2:20)  매일 고백하며 성령의 인도를 따라 살다보면 예수님을 닮아가며 성품이 다듬어지고 인격도 성숙해지면서 다른 사람처럼 변할 겁니다.  자신의 모습에 실망하기 이릅니다. 성장과 성숙은 시간이 걸립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새피조물이 되는 것은 믿음의 한 순간이지만, 변화의 열매를 맺는데는 순종과 인내가 필요합니다.

자녀는 부모를 닮습니다. 노력하지 않아도 닮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다시 태어난 사람이 하나님의 성품을 닮아가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실제로 여러분이 예수 믿기 전과 비교해보면 많이 변했다는 걸 알 수 있을 겁니다. 신앙훈련 중에 삶에서 교회가 차지하는 비중이 몇%나 되느냐고  물으니 어떤 형제가 자기는 주님의 몸이기 때문에 교회 그 자체라 몇 %라고 할 수 없고 전부라고 했다는 말을 듣고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런 고백을 하다니 얼마나 변한 겁니까? 여러분 모두 다 이렇게 고백할 수 있게 변화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