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는 무엇과 같은가(6/23/19)

엡2:19-22 / 교회는 무엇과 같은가?

오늘은 교회가 무엇과 같은지 세가지 특성을 살펴보고  예배가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생각하는 시간을 갖겠습니다.

오래전 인물이 됐지만, 본회퍼는 개신교 교인들이 교회라는 말을 진부하고 불필요하고 마음에 아무런 감동이나 관심을 일으키지 못하는 따분한 것에 지나지 않는 것처럼 취급한다고 지적한 적이 있습니다. 이에 대해 여러분은 “난 그렇지 않다. 교회를 내가족처럼 대하며 살고 있다”고 말할 수 있기 바랍니다. 그렇습니까?

19절 보면, 바울은 에베소교인들에게 이제부터 너희는 남도 손님도 아니고  하나님의 권속(가족)이라고 했습니다.  가족은 사랑과 희생으로 만들어지는 운명공동체입니다. 가족은 허물을 덮어주고 용납하고 위로하며 지냅니다. 교회는 예수의 피로 맺어진 가족입니다. 교회를 가족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곧 예수 믿는 것입니다.

예루살렘교인들은 필요에 따라 물건을 나눠쓰고 자기 소유를 팔아서 어려운 사람을 도와주었습니다(행2:44,45).  바나바는 밭을 팔아서 어려운 교인들을 돕게 했습니다. 어떻게 저렇게 할 수 있었을까? 그런데 교인들이 서로 가족으로 받아들이면 그럴 수 있겠다 싶습니다. 우리도 가족을 위해선 그 정도 하지않습니까?

신앙생활에서 아는 것과 행하는 것은 전혀 다른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아는 것으로 본다면 바리새인들은 율법에 대해 많이 아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이 예수님께 책망을 들은 것은 무식했기 때문이 아닙니다. 알면서 행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교회가 하나님의 가족이라는 것은 제 생각이 아니라 성경의 가르치는 바이고 여러분도 이미 알고 있을 겁니다. 몰라서 가르치려고 설교하는 게 아니고 그 가르침을 따라 살도록 권면하기 위한 것입니다.  설교는 모르는 걸 가르치는 게 목적이 아니고 주님의 가르침대로 살도록 하려는 것이 목적입니다.

그 다음 본문 20절에는 예수님께서 교회의 모퉁이 돌, 초석이 되셨다는 말씀이 있고, 21-22절에는 우리 교인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성전이 되어가고 하나님이 거하시는 처소가 되기 위해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가고  있다고 말씀이 나옵니다.  이 구절들로 볼 때 교회는 예수님의 몸이고 우리는 그 몸의 지체라는 걸 알 수 있습니다.  바울은 골로새서에서 예수님을 몸 중에서도 머리라고 했습니다(골2:18).

겉으로 드러나 보이는 교회가 실망스럽더라도 교회를 가볍게 여길 수 없는 것은 교회는 주님의 몸이기 때문입니다. 교회를 주님의 몸이라고 할 때 필연적으로 따라오는 것이 우리는 그 몸의 지체라는 사실입니다. 여러분은 눈, 코, 귀 , 팔 다리,  이 중에 어느 하나로서 주님의 몸인 교회에 소속되어 있는 겁니다. 몸의 지체들은 머리의 지시에 따라 합목적적으로 협력합니다. 지체로서 우리도 주님께서 말씀과 성령을 통해 지시하실 때 협력하여 잘 섬깁시다. 기도하는 사람,  전도하는 사람,  헌금하는 사람,  위로하고 격려하며 믿음을 세워주는 사람이 교회에 다 필요합니다. 여러분 모두 이 중에 하나는 감당하기 바랍니다.

주님의 교회기 때문에 주님이 말씀과 성령으로 주도하시는 교회가 될 수 있게 우리가 협력해야 합니다. 주님의 교회라도 사람들이 모여 운영하는 특성 때문에  특정인이나 소수 사람에 의해 좌우될 수 있습니다. 목사나 장로, 집사나 교인들 누구든 교회를 섬기는 일에 있어서 주도권을 잡고 자기 맘대로 뭘 해보려고  하지 말아야 합니다. 중대형교회 중에는 이런 사람들이 있어서 뭘 하려면 그 사람 눈치를 봐야하고 그 사람 동의를 얻어야 되고 그 사람이 반대하면 일이 잘 안됩니다. 이렇게 되지 않도록 여러분이 서로 노력하기 바랍니다.

지체와 가족으로서 교회는 무엇보다 성령 안에서 연합을 유지하는 일에 힘써야 합니다. 주님 뜻을 분별하고 실행하는 과정에서 대화하고 토론하고 그럴 수는 있지만 의견이 갈려 견재하며 반대하고 그러면 관계가 깨져 분열될 수 있습니다. 교회에선 다수결로 결정하는 것도 신중할 필요가 있는데, 분쟁의 불씨를 남겨두기 때문입니다.   빨리 결론을 내리는 게 좋아보이지만, 소수자의 불만이 남게 되니까 의견이 모아지도록 기도하며 기다릴 수 있으면 그렇게 하는 게 좋습니다.

교회는 또한 땅위에 있는 하나님 나라와 같습니다. 교회를 논할 빼 놓을 수 없는 컨텍스트가 하나님 나라입니다. 예수님이 처음 선포한 말씀이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라는 것이었습니다(마4:17). 예수님이 귀신들러 눈멀고 벙어리된 자를 고쳐주셨을 때  바리새인들은 귀신의 왕 바알세불의 힘으로 귀신을 쫓아낸 것이라는 말했습니다. 이에 대해 예수님은 성령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낸 낸 것이고 이것은 하나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한 것이라고 말씀했습니다(마12:28).

하나님 나라는 무엇보다 하나님의 통치를 의미합니다. 성령의 능력으로 귀신이 쫓겨난 것은 하나님의 통치가 행사된 것입니다. 지금 이런 하나님의 통치가 어디서 이뤄지고 있습니까? 주님이 함께하시는 교회입니다. 그래서 교회는 땅위에 있는 하나님 나라와 같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같다고 말하는 것은 교회도 하나님 나라 그 자체는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 아버지의 자비와 사랑이 넘쳐나고 공의와 정의가 구현되고 고통과 슬픔이 없고 차등과 차별이 없는 평화로운 곳으로 성경에 나옵니다. 예수님 이후 지금까지 어떤 정치이념이나 체제도 하나님 나라의 이상을 실현하지 못했습니다. 한 때 공산주의자들이 노동자들의 천국을 만들어 줄 것처럼 했지만, 실제로는 권력을 잡은 소수의 공산당원들만 베불리다가 결국은 실패로 끝났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관점에서 교회의 예배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면 뭘 하면서 영생을 살게 되겠습니까?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에선 먹고 살기 위해 일할 필요도 없고, 결혼하고 자녀를 낳아 양육하는그런 일도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 아버지께 경배와 찬양을 드리는 것이 주된 일이 아니겠습니까? 그걸 생각하면 믿음으로 하나님 나라를 살고 있는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예배입니다.

이사야6장 보면, 주께서 높이 들린 보좌에 앉아 계시고 그 옷자락은 성전에 가득하며 스랍(천사같은 영적 존재)들이 모셔서서 날아다니며(천사같은 종류로 여섯날개를 가졌다고 합니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만군의 여호와여 그 영광이 온 땅에 충만하도다”  찬양소리가 울려퍼졌다고 합니다.  요한계시록4장에도 경배와 찬양을 드리는 장면이 나옵니다. 여섯 날개를 가진 네 생물이 밤낮 쉬지 않고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이여 외치며 보좌에 앉으신 이에게 영광과 존귀와 감사를 드리고 24장로들도 경배하며 자기들의 면류관을 벗어 던지며 하나님께 영광과 존귀와 능력을 받으시는 것이 합당하다고 외쳤습니다.

고린도전서14장 26절에는 “너희가 모일 때 각각 찬송시도 있고 가르치는 말씀도 있고 계시도 있고 방언도 있고 통역도 있지만 모든 것을 덕을 세우도록 해야 한다”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 구절은 고린도교인들이 모여서 뭘 했는지 보여줍니다. 찬송시는 지금 찬송가 가사 같은 것입니다.  하나님을 찬양했다는 말입니다. 가르치는 말씀은 성경공부했다는 것입니다. 계시,방언, 통역은  성령으로 감동받은 사람이 그 때 그 때 회중이나 개인에게 권면과 책망한 내용입니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의 목적은 덕을 세우는 것 곧 믿음을 세워주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이 교회가 해야 하는 일이었고 예배였습니다.

26절 보다 앞서25절은 더 흥미로운 이야기가 나옵니다. 어떤  잘못이나 죄를 숨기고 예배를 드릴 때 성령께서 예언하는 사람을 통해 그것을 드러내어 그 사람이  회개하게 하여 새롭게 해주셨다는 것입니다(25절). 우리 예배 중에도 성령의 감동으로  회개하고 새롭게 되는 역사가 일어나면 좋겠습니다.  교우 여러분, 내가 먼저 교우들을 하나님의 가족으로 대하면 그들도 나를 가족의 사랑으로 품어 줄 겁니다. 예배에 최선을 다하는 성도가 되길 바랍니다.  한 주 동안 주 안에서 말씀을 묵상하며 성령의 위로와 평안을 누리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