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재림과 죽은 자의 부활(6/9/19)

데살로니가전서4:13-5:11 / 예수님의 재림과  죽은 자의 부활

오늘은 예수님의 재림과 주 안에서 죽은 사람들의 부활을 주제로 하나님 말씀을 전하겠습니다. 본문 13절 보면, 데살로니가교인 중에는  주님이 다시 오기 전에 죽은 가족이나 교우들 때문에 슬퍼했다고 합니다. 이에 대해 바울은  예수 안에서 자는 자들도 하나님이 저와 함께 데리고 오실 것이니 걱정하지 말라고 위로했습니다.

데살로니가전서 중심주제는 부활입니다.  1장부터 5장까지 모두 그리스도의 강림이 언급되어 있습니다(1:10; 2:19;3:13;4:15;5:23). 1장 10절 보면, 데살로니가교인들이 예수님이 하늘로부터 강림하시기를 기다리고 있었다고 나옵니다. 그냥 막연히 기대한 게 아니고 곧 오실 것으로 믿고 있었습니다. 그러면 주님과 함께 영생을 누리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을 겁니다. 그래서 주님이 오시기 전에 죽은 교우들에 대해 슬퍼했는데, 아마도 구원을 잃어버릴 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게 아닌가 싶습니다.

그 때는 아직 죽은 자의 부활이 일반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바울이 고린도교인들에게 주 안에서 죽은 사람들은 주님이 오실 때 살아나 주님과 함께 온다고 말하면서 비밀을 너희에게 알려준다고 했습니다(고전15:51). 고린도전서는 데살로니가전서보다 3,4년 후에 기록된 서신입니다. 생전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재림과 세상 끝날의 징조에 관해 말씀하신 적이 있지만, 그 때도 죽은 자의 부활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으셨습니다(마24장).

데살로니가전서보다 대략 45년 후에 기록된 요한계시록에는 죽은 자의 부활이 좀더 자세히 나옵니다. 20장에  순교당한 자들이 부활하여 주님과 천년 동안 왕노릇한다고 나오는데(계20:4), 이것을 첫번째 부활이라고 했습니다. 이 첫번째 부활에 참여하지 못한 자들은 천년이 찬 후에 살아나 생명책에 기록된 대로 자기 행위에 따라 심판을 받는다고 되어 있습니다. 이 때가 죽은자의 두번째 부활입니다.

첫번째 부활과 두번째 부활의 대상자가 누구냐에 대해서 이견이 있습니다. 첫번째 부활의 대상이 순교자만인가 모든 그리스도인인가에 따라서 두번째 부활의 대상도 달라집니다. 첫번째 부활이 순교자만이라면 두번째 부활은 그 외의 모든 그리스도인이 되고, 순교자를 포함한 모든 그리스도인이라면 두번째 부활의 대상은 불신자가 될 겁니다.  

고린도전서15장 23절에는 부활의 순서가 언급된 것처럼 보입니다. 먼저는 예수 그리스도시고, 그 다음은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 그리스도께 속한 사람이라고 나옵니다. 여기엔 그리스도께 속한 사람이 순교자만인지 일반 모든 성도인지 명확하지 않고 시기에 대한 언급도 없습니다.  이어 24은  “그 후에는 마지막이니 그가 모든 통치와 모든 권세와 능력을 멸하시고 나라를 아버지 하나님께 바칠 때”(24절) 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천년왕국 통치가 지나고 백보좌에서 심판 때 이뤄질 내용입니다. 따라서 데살로니가에서 말하는 죽은 자의 부활이 천년왕국이 시작되기 전 그리스도의 재림이라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데살로니가서 4장 16절 이하에 묘사된 예수님의 재림은 먼저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가 있고 하나님의 나팔소리가 울려퍼질 때 하늘로부터 예수님이 강림하시고 , 그 때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사람이 먼저 부활하고 그 다음 살아있는 그리스도인들이 끌어 올려져 공중에서 주님을 영접한다고 나오는데, 소위 말하는 공중재림, 휴거입니다. 그리하여 항상 주님과 함께 있게 된답니다. 본문 말씀에 따르면 예수님이 지상 재림하시기 전에 먼저 공중재림과 휴거가 일어납니다.  

휴거가 언제 있을 것인가에 대해서는 몇 가지 해석이 있습니다.  첫째는 7년 대환란이 시작되기 전에 성도들이 모두 휴거된다는 환난전 휴거설로 세대주의자들이 주장합니다. 그런데 이 견해는 앞서 고린도전서15장24절 내용 때문에 모순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둘째는 성도들이 모두 환란을 겪어야 하고 환란이 끝난 후 휴거된다는 환란후 휴거설이 있습니다.  세번째는 본문  17절의 “ 그 후에 우리 살아남은 자들도 그들과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이 구절을 상징적으로 해석하고 실제로 휴거는 없다는 입장입니다. 그 외에도 환란 중에 성도 각 자의 믿음의 성숙도에 따라 중도에 휴거된다고 믿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바울이 죽은자의 부활과 소위 공중재림, 또는 휴거에 대해 언급한  이유는 주님 오시기 전에 죽은 사랑하는 가족의 영혼이 어떻게 될 지 걱정하는 자들을 위로하기 위한 것이지  주님의 재림과 휴거가 어떤 방식으로 진행되는지에 대한 어떤 지식을 제공하려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주님이 제자들에게 휴거나 재림의 시기에 대해 자세하게 설명해주지 않으신 것은 신앙생활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도 아니었기 때문일 겁니다. 지금 우리가 부분적으로 안다고 해서 걱정할 건 없습니다.

바울도 때와 시기에 관해서는 쓸 것이 없다고 말했습니다(1절).  예수님도 제자들이 물을 때  때와 기한은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의 알 바가 아니고 너희는 오직 성령을 받고 전도에 힘쓰라고 당부하셨습니다(행1:7,8).  기독교사를 보면  어느 시대나 주님이 곧 오신다고 날짜까지 정해놓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결과는 모두 틀려 물의만 일으키고 자기들도 실망해서 실족하는 자들도 있었습니다. 주의 재림이 가까이 오고 있다는 긴장감을 갖는 것은 좋지만 미혹하는 영에 속아 생업을 포기하고 광신자처럼 되면 안됩니다.

바울은 밤에 도적이 드는 것처럼 주의 날이 임할 수 있다고 생각하라고 합니다. 이 말은 항상 대비하라는 뜻입니다. 열처녀 비유에서 기름없는 등잔만 들고 졸다가는 신랑을 맞이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야 합니다. 조만간 주님이 오신다면 여러분은 어떤 입장이 되겠습니까? 저도 주의 재림보다 교회 사역이나, 제 앞날과 가족에 더 신경쓸 때가 많은데, 이제부터는 항상 깨어 주의 재림을 대비하며 살아야 하겠습니다. 여러분도 공부든 일이든 자녀 키우는 일이든 힘들고 바쁘게 살더라도 주님의 재림도 대비하며 살도록 좀더 관심을 기울이기 바랍니다. 그래야 한 밤 중에 주님이 오시더라도 낭패보는 일이 없을 겁니다.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우들에게 자지 말고 깨어 근신하라고 말했습니다.  잔다는 말은 영적으로 의식이 없다는 표현입니다. 이것은 육신의 욕망을 따라 세상 일에 빠져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사는 것을 가리킵니다. 깨어 근신하라는 말씀은 공부하고 일하고 자식을 키우며 바쁘게 살더라도 성경도 읽고 기도도 하고 찬송도 부르면서 하나님 나라를 바라보며 믿음과 사랑과 구원의 확신을 가지고 살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독생자 예수님을 세상에 보내주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는 것이 아니고  예수 믿어 구원받아 영생을 얻게 해주려는 것입니다. 믿습니까? 10절에서 바울도 자든지 깨든지 주님과 함께 살게 하려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서로 권면하고 서로 덕을 세우라고 당부했습니다. 우리도 교회에 모일 때마다 개인적으로든 그룹으로든 친교모임을 할 때  주의 재림을 대비하며 하나님 나라의 소망을 가지고 살도록 서로 믿음을 세워주고 격려해줍시다. 사실 교회는 무슨 일이나 행사보다 서로 믿음을 세워주고 격려하고 그러다 돌아가면 됩니다. 일 때문에 다투고 마음이 상하고 불편해지는 일이 없도록 서로 조심합니다. 한 주 동안 주 안에서 평안을 누리며 승리하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