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살로니가 교우를 향한 바울의 사랑(5/5/19)

데살로니가전서3:1-5 / 데살로니가 교우들을 향한 바울의 사랑

한 주간 평안했습니까? 반갑습니다. 오늘은 데살로니가전서 강해를 이어가겠습니다. 오늘 본문  데살로니가전서3장 1절에서 5절까지는 바울사도께서 먼저 디모데를 보내 데살로니가교인들이 믿음에 굳게 서도록 도우려는 것과 데살로니가에서 전도하며 수고한 사역이 실패로 끝나지 않도록 후속조치를 취하며 기도하고 있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데살로니가전서를 쓸 때 바울은 아덴에 있었습니다.

1절, “우리만 아덴에 머물기를 좋게 생각하고”,

바울은 데살로니가에 가서 3주 동안 전도활동을 했는데, 유대인들의 위협과 소동으로 더 머물 수 없어서 베뢰아로 떠났습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베뢰아까지 따라와서 소동을 일으켜 바울은 아덴으로 가서 전도하다가 고린도로 갔습니다(행17,18장). 바울은 유대인들의 위협과 소동으로 급하게 데살로니가를 떠났기 때문에 새로 예수 믿은 사람들을 제대로 돌볼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다시 데살로니가를 방문해 교회 세우는 일을 돕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빌립보에서부터 시작된 유대인들의 방해가 계속되고 있었기 때문에 데살로니가를 다시 방문하는 게 쉽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아덴에서 디모데만 데살로니가로 보내 교인들을 믿음에 굳게 서도록 위로하게 했습니다.

당시 데살로니가교인들은 예수 믿은지 1년도 안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는데,  막 예수 믿은 사람에게서 볼 수 있는 구원의 감격과 기쁨과 열정은 있지만,  믿음의 깊이는 아직 약해 박해와 고난을 당하면 믿음에서 떠날 위험도 큽니다. 바울도 이런 것을 염려한 것 같습니다.  마태복음13장에 씨뿌리는 비유가 나오는데, 돌밭은 환난과 핍박을 나타냅니다. 말씀을 듣고 즉시 기쁨으로 받은 사람이라도 그 말씀을 인하여 환난이나 핍박이 오면 넘어지는 자가 있다고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그 당시 데살로니가교인들도 유대인들의 위협을 받고 있었습니다.

2절, “복음을 전하는 하나님의 일꾼인 디모데를 보내노니”

급하게 데살로니가를 떠나야 했기 때문에 바울이 자신이 전도해서 예수 믿은 적잖은 헬라인과 귀부인들이 늘 신경쓰였을 겁니다. 특히 귀부인들의 경우 곱게 대접 받으며 살던 사람들이라 앞뒤 안가리고 달려드는 유대인들의 위협을 당하게 되었을 때  믿음을 포기할 가능성이 높았습니다.  바울은 힘들게 전도해  예수 믿게 만들었는데, 이 모든 사역이 실패로 돌아가게 놔 둘 수 없었습니다. 직접 가서 믿음에 굳게 서서 견디로독 격려하고 싶었지만 유대인들이 주목하고 있었기 때문에 직접 갈 수 없어서 대신 디모데를 보내 교인들을 위로하며 믿음에 굳게 서도록 했습니다.

디모데는 2차 전도여행 중 루스드라에서부터 바울의 전도팀에 합류했습니다(행16;1,2). 디모데 아버지는 헬라인이었지만 어머니는 유대인이었습니다. 디모데는 유대인이었던 할머니와 어머니의 신앙의 영향을 받고 자랐습니다.1차 전도여행 때 바울은 디모데가 살고 있던 루스드라를 방문해 전도했는데 그 때 디모데에게도 전도했을 거라고 합니다.  그로부터 3년 정도 지난 후 바울이 다시 디모데를 만났을 때 디모데는고향 루스드라에서 인정받는 그리스도인이 되었습니다. 그걸 보고 바울은 디모데를 전도팀에 합류시켜 지금 데살로니가 교회로 보내 교회를 섬기도록 한 것입니다. 디모데는 바울을 대신하여 파송된 최초의 사역자였습니다.

바울의 선교팀에는 함께 사역하는 일꾼들이 수십명이 있었습니다. 그 중에서도 바울은 디모데를 가장 아꼈습니다. 디모데를 복음으로 낳은 영적 아들이라고 불렀고 동역자로 대우했습니다. 바울은 예수님으로 부터 직접 소명을 받고 헌신한 사도였습니다. 디모데는 그와 달리 그리스도인의 한 사람으로 출발해서 바울의 인도를 받아 선교사역에 동참하고 교회를 섬기는 목사의 일도 했습니다. 대부분의 사역자들은 디모데의 경우와 같은 과정으로 사역자가 됩니다. 특별하게 부름받아 선교사나 목사가 되는 경우는 드뭅니다. 지금은 대부분 성령께서 마음에 감동을 주어 헌신하게 합니다. 여러분도 성령의 감동과 인도가 있을 때 순종할 수 있기 바랍니다.

3, 4절, “이 여러 환난 중에 흔들리지 않게 하려 함이라… 장차 받을 환난을 너희에게 미리 말하였는데…”

예수님이 부활하신 직후부터 로마당국과 유대인 사법기관이었던 공회는 예수님의 이름으로는 말하지도 못하게 하고 가르치지도 말라고 금했습니다(행4:17,18).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아 죽이는데 앞장섰는데 그런 예수가 부활했다는 게 사람들에게 전파되어 믿게 되면 자신들이 위태롭게 될 거라 생각해서 무조건 금지시킨 겁니다. 그런데도 예수를 전하는 사람은 잡아다 옥에 가두고 믿는 사람은 태형을 가하거나 위협을 했습니다. 바울이 데살로니가에서 복음을 전하던 AD51년 전후는 기독교 박해가 정점으로 치닫던 시기였습니다. 기독교 박해로 유명한 네로가 황제가 되기 직전이었습니다(AD54-68).

이런 박해의 시대엔 현대 교회처럼 예수 믿으면 만사형통하고 평안하고 잘 된다는 그런  설교는 듣기 어려웠을 겁니다. 오히려 예수 믿고 살면 고난을 당하게 될 거라고 말하며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견뎌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바울은 환란당하지 않게 해달라는 기도는 별로 하지도 않았습니다. 교회 다니며 주의 일을 하는 것이 좀 힘든 측면이 있다고 해도 예수 믿는다고 박해를 당하고 환란을 겪던 시절의 그리스도인에  비하면 편하게 신앙생활하고 있는 겁니다. 저도 개척교회하면서 불평에 가까운 기도를 한 적이  있지만, 전도하다 잡히면 감옥가고 추방당하는 곳에서 일하는 사역자들에 비하면 편하게 목회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나중에 3차 전도여행을 마치고 예루살렘에 돌아왔을 때 유대인들의 모함으로 국사범으로 몰려 결박되어 총독 베스도와 아그립바왕 앞에서 변론한 적이 있었습니다. 거기서 바울은 아그립바왕에게  자신이 결박되어 있는 외에는 모든 사람이 다 나와 같이 되기를 원한다고 말했습니다(행26:29). 여기서 나와 같이 되는 것은 예수 믿어 구원얻고 하나님 나라의 소망가운데 기쁘게 살면서 열심히 전도하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바울은 예수 믿고 구원얻어 천국 소망가지고 사는 것이 최고의 인생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고난을 당할 수 있는 일임에도 불구하고 당당하게 예수 믿으라고 말했습니다. 여러분도 바울과 같은 믿음으로 예수님을 증거할 수 있기 바랍니다.

바울 당시 데살로니가와 달리 미국같이 물질 중심의 세속화된 곳에선 박해보단 세상 욕심과 유혹이 믿음에서 떠나게 만들 수 있습니다. 세상의 재리와 염려가 가시떨기같이 믿음을 막아버려 자라지 못하게 할 수 있습니다. 신앙생활을 잘 하려면 돈 많이 벌고 부자가 되려는 생각을 내려 놔야 합니다. 돈을 따라가면 주님에게서 멀어지게 될 겁니다. 우리 환경에선 박해로 갑자기 믿음을 버리기 보다는 매일 조금씩 세상의 욕심을 따라가다가 어느날 방향이 바뀝니다. 갑작스럽게 보이지만, 실제로는 오래 전부터 조금씩 멀어지다가 어느날 결정을 내리는 것처럼 믿음을 잃게 되는 것도 그렇습니다. 따라서 믿음도 방치하면 위험해집니다. 매일 성경읽고 매일 기도하고 그렇게 살아야 합니다.

교회에서 제공하는 목회적 돌봄과 신앙훈련의 기회를 활용하여 여러분 믿음을 건강하고 굳건하게 세울 수 있기를 바랍니다. 주일을 잘 지키고 설교듣는 것도 힘쓰고 성경공부나 신앙훈련의 기회가 주어질 때 가능하면 참석해서 반원들과 은혜를 나누며 교제하고 많이 배워서 더 배울 욕구를 느끼지 못하는 분들은 가르치고 나눠주는 인도자로 자원해서 자기 은혜관리를 하기 바랍니다. 배우는 자리보다 가르치는 자리에서 부족함을 더 깨닫고 더  많이 배우기도 합니다. 전도해서 새 가족을 얻는 것 외에 교회 다니는 여러분들이 영적으로 건겅해서 믿음에 굳게 서서 서로 한 몸을 이루는 것이 곧 진정한 교회의 성장이고 성숙입니다.  한 주 동안 성령과 동행하며 은혜 안에서 승리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