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 중심의 신앙생활(4/7/19)

살전2:13-20 / 말씀 중심의 신앙생활

오늘 우리가 공부할 하나님 말씀은 지난 주에 이어 데살로니가 전서 2장 13절부터 20절입니다. 이 본문에 언급된 내용 중에 저는 세 가지,  데살로니가 교인들이 바울이 전하는 말을 사람의 말이 아닌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은 것(13절)과 데살로니가 교인들이 당한 고난과(14절)  사단의 방해(18절)를 중심으로 하나님 말씀을 증거하겠습니다.

13절 보면, 데살로니가 교인들은 바울에게서 들은 말씀을 사람의 말이 아닌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았다고 했습니다. 바울이 데살로니가에 가서 전한 말은 사도행전17장  보면, 바울은 유대인 회당에서 성경을 가지고 그리스도의 고난과 죽음과 부활을 증명하며 예수께서 바로 그 고난받고 죽었다 부활하신 그리스도라고 한 것입니다. 그 다음 데살로니가전서3장 4절 보면, 바울은 예수 믿는 데살로니가 교인들에게는 앞으로 환난을 당하게 될 것이라고 미리 말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았다는 것은 비판이나 무시하지 않고  절대적인 진리로 인정하고 순종했다는 뜻일 겁니다

개신교 복음적 신앙생활은 무엇보다 기록된 성경을 절대적인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 순종하는 데서 출발합니다. 설교는 기록된 성경말씀을 오늘 우리 삶에 적용하며 살 수 있게  해석하여 선포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설교를 케뤼그마, 선포된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합니다. 성경을 해석할 때는 기록될 당시 수신자에게 전하려는 메세지를 먼저 찾고 그렇게 해서 발견한 교훈이나 책망이나 위로의 말씀을 우리 상황에서 적용할 수 있도록 전하는 것입니다. 설교자는 개인적 생각이나 감정을 빼고 하나님 말씀만 전하도록 노력하고 듣는 분들은 설교자 개인의 말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야 말씀의 능력이 나타납니다.

히브리서4장 12절 보면,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서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신다고 했습니다. 성경을 읽고 묵상하다보면 마음 속에 탐심과 정욕과 거짓과 불결한 것이 있다는 것을 깨닫고  반성하며 회개하게 해줍니다. 정도차이는 있겠지만, 하나님 없이 살 때 우리는 다 죄 가운데 살았고 예수 믿은 후에도 죄의 유혹을 받고 있습니다. 그래서 매일 말씀으로 인도받을 필요가 있습니다.

구약시대부터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죄를 자각하고 회개했습니다.   남왕국 유다  16대 요시야왕(BC640-609) 때에 성전을 수리하다가 그 동안 잃어버렸던 율법책을 발견했습니다. 요시야왕은 서기관 사반에게 그 율법책을 낭독하게 하여 듣다가 옷을 찢었다고 합니다(왕하22:11). 율법에 명한대로 살지 아니하여 하나님의 진노가 크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후에 요시야는 유다와 예루살렘의 모든 장로와 백성들을 모이게 하고 언약의 말씀을 읽어 그들의 귀에 들려주고 그 자리에 있는 모든 백성들이 그언약을 따르기로 결단하게 했습니다.

내 마음을 기쁘고 즐겁게 해주기를 바라는 마음보다 주께서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알려는 마음으로 설교를 듣는 것이 하나님 말씀으로 받는 것입니다.  말씀을 들으면서 뭘 제대로 하지 못했는지 깨닫게 되면  요시야왕처럼 회개하고 주의 말씀에 절대적으로 순종하며 살기로 결심하고 실천해야 복을 받습니다.

 

지금까지는 잘못했더라도 이제부터 잘 하면 하나님은 잘하는 것만 기억하시고 은혜와 복을 내려 주실 것입니다. 회개의 축복이 그런 것 아닙니까?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온 후 에스라는 수문 앞 광장에 모인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율법책을 낭독하고 그 뜻을 해석하여 백성으로 깨닫게 하자 백성들이 자신들의 잘못을 깨닫고 다 울었다고 합니다(느8:8,9). 하나님의 말씀이 무뎌진 심령을 일깨워 주었습니다. 우리도 주기적으로 심령이 소생될 필요가 있습니다.  교회에서 성경공부 하는 이유는 뭘 몰라서 배우려는 것보다 주님 말씀을 보고 듣는 기회를 만들어 무뎌진 심령을 일깨워 주님 말씀을 따라 살 수 있게 도우려는 것입니다.

그 다음 데살로니가교인들이 당한 고난에 대해 살펴봅시다. 14절에서 바울은 유대에 있는 예루살렘교인들이 동족 유대인들로부터 핍박과 박해를 받은 것처럼 데살로니가교우들도 동족으로부터  고난당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바울이 데살로니가에서 전도할 때 적잖은 헬라인들과 귀부인들이 예수 믿었다고 하니까(행17:4),  데살로니가 주된 멤버들은 헬라인과 귀부인들과 일부 유대인들이었을 겁니다. 데살로나가교우들의 동족은 헬라인이었을 겁니다.

사도행전8장 1절 보면, “그 날에 예루살렘에 있는 교회에 큰 핍박이 나서 사도 외에는 다 유대와 사마리아 모든 땅으로 흩어졌다”고 합니다. 그 날은 스데반이 예수님을 전하다가 돌에 맞아 죽은 날입니다. 그 사건을 계기로 유대인들이 대대적으로 교회를 핍박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배후엔 사단이 있었습니다. 순교를 각오한 사도들 외엔 견디지 못하고 예루살렘을 떠나 피신한 것입니다.  

종교를 갖는 이유는 재앙을 면하고  복받아 평안을 누리려는 것인데, 종교 때문에 고난을 당하고 박해를 받게 되면 교회다니는 걸 그만 두는 사람이 적잖을 것 같습니다. 박해와 고난을 당하면서도 예수 믿기를 포기하지 않고 견딘 데살로니가교우들은 믿은 지도 얼마 안되었으니 바울이 보기에 얼마나 대견했겠습니까? 오픈도어선교회가 제시한 자료에 따르면 기독교 박해 상위 50개 국가에서 신앙을 이유로 희생된 기독교인은 2018년에 4136명이라고 합니다.(출처 : 기독신문(http://www.kidok.com)

인도의 경우, 예수 믿고 교회 다니는 사람들이 힌두교 급진주의자들로부터 폭행과 살해 위협을 받고 있답니다(크리스천포스트2018년 9월 5일자). 인도의 마디야 프라데시 주에 있는 어느 교회의 경우(싱 목사담임) 200여명이 정기주일예배에 참석했는데 협박과 위협으로 5,60명으로 줄었다고 합니다.

여러분은 예수 믿는다고 가족의 핍박이나 직장에서 불이익을 받아본 적이 있습니까?  그런 때가 올지도 모르니 평안할 때 믿음을 굳건하게 해야 합니다. 성경엔 예수님이 다시 오시는 재림 직전에 교회가 세상으로부터 극심한 환란을 당하여 고난을 겪게 될 것이라고 예고하였습니다. 그 환란이 얼마나 견디기 힘든지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들을 위하여 감해주실 것이라고 합니다(마24:21,22). 안그러면 믿음있다는 사람도 견디지 못하고 배교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이 세상을 사는 동안 예수 믿기 때문에  겪는 고난은 가나안에 가기 위해 통과하는 광야같은 것입니다. 부활의 영광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고난에도 동참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바랍니다. 우리보다 먼저 신앙생활하다 세상을 떠난 성도들은 더  힘든 고난과 핍박을 감당했습니다.  그걸 생각하며 힘들더라도 목자도 하고 집사도 하고 풀타임 사역자로 헌신하여 복음을 위해 일하고 주를 위해 고난을 감당하면 주님 나라가 임했을 때 큰 상급을 받게 될 것입니다. 주님과 교회를 위해 좀 힘들게 살고 고난을 견딘 것이 정말 잘했다고 생각할 때가 올겁니다.  세상은 잠깐이고 하나님 나라는 영원하니까 고난도 잠깐이고 안식과 위로는 영원할 겁니다.

끝으로 사탄의 방해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18절에서 바울은 여러번 데살로니가를 방문하려고 애썼지만, 그 때마다 사단이 막아서 가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유대인들의 방해와 위협의 배후엔 사단이 있었습니다. 사단은 전도를 방해하고 예수 믿지 못하게 하려고 위협하고 고난을 줍니다. 하나님은 사단보다 강하시기 때문에 사단이 방해한다고 실패하실 하나님은 아니시지만, 하나님의 일을 하는 사람들은 사단 때문에 방해받고 위험에 처하기도 합니다.

바울이 처음 데살로니가를 방문해서 전도할 때도 사단은 유대인들을 동원해서 바울의 전도를 방해하고 소동을 일으켜 3주 만에 급하게 떠나야 했습니다(행17:.2,10). 그 후로 바울은 기회가 있으면 데살로니가를 다시 방문해서 전도하며 교우들과 교제하려고 했지만, 사단의 방해로 막혔다는 겁니다. 겉으로는 사람들의 방해지만 그 배후엔 사단이 있었던 것입니다.

베드로 사도는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와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너희는 믿음을 굳게 하여 저를 대적하라 이는 세상에 있는 너희 형제들도 동일한 고난을 당하는 줄을 앎이니라”(베전5:8-9)고 말했습니다. 마귀는 이브를 유혹해서 하나님 말씀을 어기고 자신의 욕망을 따라가게 만들었습니다. 그 결과 아담과 이브의 인생은 비참하게 되지 않았습니까? 마귀가 예수님을 유혹한 내용을 보면, 육신의 필요, 세상의 영광, 의심 이런 것을 이용했습니다(마4:1-11).  지금도 마귀는 사람들의 욕망을 부추기고 세상의 재물과 성공에 집착해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못하게 만듭니다. 혹시 여러분도 이런 유혹을 받을지 모르니 항상 조심하고 영적으로 깨어 있도록 항상 기도하기 바랍니다.

마귀가 주의 일을 방해할 때 믿던 사람을 이용해서 공격하거나 유혹하는 경우가 종종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삼일에 살아나야 할 것을” (마16:21) 말씀하셨을 때  베드로는  예수님을 붙들고 “주여 그리 마옵소서 이 일이 켤코 주에게 미치지 아니하리이다”(22절)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주님은 베드로에게 “사단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내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한다”(23절)고 책망하셨습니다.

예수님과 교회를 박해한 유대인들이나 예수님을 만류한 베드로나 예수님을 판 가롯 유다나 그들의 배후엔 모두 사단이 있었습니다. 사단의 하수인이 노릇한다고는 아무도 생각하지 않았을 겁니다. 우리는 나도 모르게 사단의 종 노릇하는 하는 건 아닌지 늘 살펴야 합니다.  지금도 법정 다툼을 벌이는 교회들이 있는데, 하나님의 영광을 생각한다면 손해보더라도 거기까지 가진 말아야 합니다. 그걸 보고 세상 사람들은 교회를 욕하고 하나님 믿어도 이권 앞에는 별수 없다고 하잖습니까? 여러분, 사단이 공격할 기회를 엿보고 있다는 걸 유념하여 자기 관리에 더 힘쓰고 방심하지 않도록 주의하며 살기를 바랍니다. 한 주 동안 주님 은혜로 평안을 누리며 세상을 이겨내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