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복의 통로(2/3/19)

신명기14:22-29 / 축복의 통로

오늘은 축복의 통로라는 제목으로 십일조를 주제로 하나님 말씀을 전하겠습니다. 그동안 신명기 본문으로 10번 정도 설교하면서 중복되는 내용이 많다고 느꼈습니다. 남은 부분은 중복을 피하기 위해 주제 중심으로 몇 번 더 말씀을 전하려고 합니다.  제가 선택한 주제들 중에 십일조가 먼저 나와 오늘은 십일조 설교를 하게 되었습니다. 오늘 설교는 질문에 답하는 방식으로 준비했습니다.

첫번째 질문, 십일조는 언제 왜 생겼습니까?

십분의 일을 하나님께 드린 최초의 사례는 아브라함이 사로잡혀갔던 조카 롯을 구하고 돌아올 때 마중 나온 하나님의 제사장 멜기세덱에게 그가 얻은 것 가운데서 10분의 1을 드린 것입니다(창14:20). 또 야곱이 형 에서를 피해 밧단 아람의 외삼촌 집으로 피신가면서 벧엘에서 “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셔서 내가 가는 이 길에서 지켜주시고 먹을 양식과 입을 옷을 주시고 평안히 아버지 집으로 돌아오게 해주시면 여호와를 나의 하나님으로 섬길 것이며 내게 주신 모든 것에서 십분 일을 반드시 하나님께 드리겠습니다”라고 서원하고,  20년이 지나 고향으로 돌아온 후 벧엘에 가서 그 때 서원기도를 이행했습니다(행28:22).

그러나 율법의 규례로서 십일조가 처음 언급된 것은 민수기 18장 21절입니다. 민수기18장은 하나님께서 제사장과 레위인의 직무와 모든 예물과 제물에서 그들에게 식량으로 줄 몫을 규정하고 이어서 21절 이하에는 십일조를 레위자손에게 기업으로 준다는 말씀이 나옵니다.  오늘 본문 22절의 토지 소산의 십일조를 드리라는 말씀은 40년 전의 민수기18장 말씀을  모세가 새로운 세대들에게 다시 가르친 것이었습니다.

두번째 질문,  십일조는 어디에 어떻게 사용되었습니까?

구약시대에 십일조는 우선 땅을 분배 받지 아니하고 회막에서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 배정된 레위인에게 식량(기업)으로 제공되는데 사용되었습니다. 십일조를 처음 언급한 민수기18장 21절과 24절 보면, 하나님은 십일조를 회막에서 봉사하는 레위인에게 기업으로 준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본문 27절 말씀처럼 가나안에 들어간 후 레위인은 땅을 분배 받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나머지 지파들이 내는 십일조를 레위인들의 기업으로 삼아 생활하게 하셨습니다.

십일조의 용도는 레위인을 지원하는 외에도 나그네와 고와와 과부를 돕는 목적으로도 사용되었습니다. 본문 28절 보면, 그 해 소산의 십분의 일을 내어 성읍에 저축하여 네 성중에 거하는 객과 고아와 과부로 와서 먹어 배부르게 하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22절에는 십일조를 매년 드리라고 나오고, 28절에는 매 3년 끝에 내라고 되어 있습니다. 매년 드리는 십일조는 성전에 가져다 드리면 레위인의 기업으로 주어졌고, 3년마다 내는 십일조는 성읍에 저축했다가 가난한자들을 돕는데 쓰게 했습니다. 3년 마다 십일조를 두번 드렸습니다.

세번째 질문, 십일조는 구약시대의 규례였는데 지금도 교회에 십일조를 계속 드려야 합니까? 안 해도 되는 게 아닐까요?

십일조가 단지 구약시대 레위인을 지원하기 위한 것이 전부였다면, 지금은 십일조를 드릴 필요가 없다고 말 할 수 있을 겁니다. 실제로 그런 관점에서 십일조를 드릴 필요가 없다고 주장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십일조를 드리기 싫어서 그런 게 아니라면 십일조는 레위인을 지원하는 것 외에 더 많은 의미를 담고 있는 신앙고백이라는 것도 생각해봐야 합니다.

레위기 27장 30절 보면, 하나님은 “땅의 십분 일 곧 땅의 곡식이나 나무의 과실이나 그 십분 일은 여호와의 것이니 여호와께 성물이니라” 말씀하셨습니다. 성물은 구별해서 하나님께 드리는 예물입니다. 저는 이 구절이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이면 구약시대든 신약시대 이후든 십분의 일을 하나님께 드리는 근거가 된다고 생각합니다.

십일조에 대해 예수님은 어떻게 생각하셨는지 알아볼 수 있는 성경기록은 별로 없습니다. 마태복은 23장 23절에서 예수님은 서기관과 바리새인이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를 드리면서 율법의 더 중한 정의와 긍휼과 믿음은 버렸다고 책망하시면서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 말씀하셨습니다. 또 예수님은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마22:21)고 말씀하신 적도 있습니다. 이런 말씀에 근거해 보면, 예수님께서 십일조를 부정하시지는 않으셨습니다.

초대 예루살렘교회부터 가난한 자들을 구제하는 일은 교회의 중요한 사역이었습니다(행2,4장). 사역자를 후원하고 어려운 교우들을 도와주려면 어디선가 재원이 나와야 합니다. 일부 여유가 있는 교인들이 재산을 팔아서 헌금하기도 했지만, 몇 사람이 계속 부담하기는 어렵습니다. 믿음 있는 교인들이 교회 사역을 후원하고 가난한 교우들을 돕는 일에 동참해야 합니다. 그래서 신약시대 이후에도 교회는 십일조를 드리도록 가르치고 있습니다.

끝으로 네번째 질문, 십일조 하면 복을 받는다는게 사실입니까?

29절 보면, 모세는 십일조를 드려 레위인과 가난한 자들을 도우면 여호와께서 너의 손으로 하는 범사에 네게 복을 주시리라고 말했습니다. 말라기 때 백성들이 소용없다고 십일조를 제대로 드리지 않아서 먹을 게 없는 레위인들이 성전을 떠나는 일도 있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말라기 선지자는 십일조를 드려 주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면 하나님이 복을 주신다며 시험해보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말3:10). 시험은 확인해보라는 의미입니다.

이런 말씀에 근거해서 십일조는 축복의 통로 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저도 목사님들로부터 십일조를 드리면 복을 받는다는 말을 듣고 자랐습니다. 모세와 말라기 선지자가 십일조를 드려 하나님을 섬기면 복을 주신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에 십일조 하면 복을 받는다고 말하는 게 틀린 말은 아닙니다. 그래서 복받을 기대를 가지고 십일조해도 잘못이라 할 수 없습니다. 신명기26장에도 십일조와 관련된 말씀이 나오는데, 14,15절을 보면, 모세는 백성들에게 십일조를 드려 가난한 자들을 도우라는 말씀에 순종해서 다 행하였사오니 주는 하늘에서 살펴보시고 복을 내려 주옵소서 간구하라고 가르쳤습니다.

십일조를 철저하게 드려도 목사님들이 목회하는 일로 부자가 되기는 어렵습니다. 십일조를 드리면 복을 받는다는 말은 십일조를 드려서 복을 받은 교인들이 간증하는 게 더 좋을 것 같습니다. 지난 주 대의그룹 채 장로님 간증에 대해 언급했는데, 그 분 간증의 주된 내용 가운데 하나가 십일조를 철저하게 드려서 가난한 시골 소년이 엄청난 물질의 복을 받았다는 고백이었습니다. 그분은 어머니의 가르침에 따라 수입이 없을 때는 헌금시간에 십일조를 제일 많이 드릴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하고 취업해서 수입이 생긴 후엔 십의 2조, 3조까지 드렸답니다. 지금은 십일조만으로 살아도 충분해서 나머지는 교회당을 짓고 선교하는 일에 쓴다고 말했습니다. 10년 20년 후에 여러분 중에도 장로님같은 분들이 나올 수 있기를 바랍니다.

율법의 의무라는 생각에서 십일조를 드리는 분들이 있으면 오늘 이후로 복음에 합당하게 생각이 바뀌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십일조를 드리는 것은 율법의 의무로 하는 게 아니라 하나님의 것을 하나님께 드리고 교회 사역을 후원하기 위한 것입니다. 십일조는 주님이 나의 주인이시며 내가 가진 모든 재산이 다 주님의 것이고 매일 일용할 양식을 주님이 공급해주신다는 믿음의 고백이기도 합니다. 교우 여러분들도 십일조를 드리며 물질의 복을 받아 즐겁게 교회를 섬기며 어려운 이웃과 나누며 살 수 있기 바랍니다. 한 주 동안 기도하고 성령의 인도를 받으며 주 안에서 승리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