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그리스도인은 제사장이다(9/22/19)

벧전2:1-12 / 모든 그리스도인은 제사장이다.

오늘은 베드로전서 2장 1절부터 12절 말씀을 본문으로 하나님 말씀을 전하겠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중심되는  긍정적 메세지는 2절의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5절의 거룩한 제사장이 되라, 11절의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는 말씀입니다. 지금부터 이 세가지에 대해 좀더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는 말씀부터살펴봅시다. 신령한 젖은 하나님 말씀을 비유로 표현한 것이고 이 말씀의 문맥은 1절부터 3절까지입니다.   1절의 그러므로는 앞의 내용이 뒤의 내용의 이유나 원인이나 근거가 될 때 쓰는 접속부사입니다. 앞의 내용은 1장 13절부터 25절까지입니다. 거기엔  하나님의 부름받은 사람답게 거룩하라, 행한대로 심판하실 하나님을 생각하며 두려운 마음으로 살아라, 거듭나는 것은 살아 있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된다는 내용이 들어 있습니다. 너희는 거룩한 하나님의 부름을 받은 사람이고 나중에 행한대로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될 것이니 모든 악의와 속임수와 위선과 시기와 비방을 버리고 거듭나 영생을 얻는 것은 살아 계신 하나님의 말씀으로 되는 것이니 말씀을 사모하라고 했습니다. 그 당시는 지금처럼 개인용 성경이 없었으니 주님 말씀을 사모하는 사람들은 더욱 갈망을 느꼈을 겁니다. 우린 너무 흔해서 귀한 줄 모릅니다.

중국에 간 미국 선교사가 글로 남긴 이야긴데, 중국 지하교인들이 말씀을 듣겠다고 여러날을 기차를 타고 와서 비밀리 모여 사경회를 가졌습니다. 기도시간에 중국 그리스도인들이 우리도 미국 그리스도인처럼 박해없이 자유롭게 신앙생활할 수 있게 기도해달라고 요청했답니다. 그러자  선교사는 그렇게 기도하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이유는 지금 미국 그리스도인들은 성경도 읽지 않고 말씀을 듣겠다고 이렇게 며칠씩 기차를 타고 달려오는 것은 커녕 그냥 집 앞 모임도 참석하려고 하지 않는다며 미국처럼 되면 안된다고 그랬다는 겁니다.

주님 말씀으로 은혜받고 살려면  악한 생각, 위선, 시기와 비방 , 이런 것 마음 속에서 다 내다버려야 합니다. 미워하는 마음을 품고 있으면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하기 어렵습니다. 겉과 속이 다르게 살면 사람은 속일 수 있어도  주님 앞에 나올 때 죄의식이 생겨서 마음이 편치 않을 겁니다. 시기하고 비방하는 것은 사랑하고 나눠주고 용서하라는 말씀과 반대로 가는 것이라 마귀의 올무에 빠질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항상 말씀을 묵상하며 살아야 하는 것은 말씀으로 구원얻고 확신을 얻어 세상을 이겨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 말씀은 우리가 어떻게 하면 구원을 얻고 하나님 자녀가 되는 지 알려줍니다. 에베소서2장8절은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다고 알려줍니다. 로마서10장9,10절은 입으로 시인하고 또 예수님은 나의 죄를 담당하고 죽으신 후 다시 살아나셨다고 마음으로 믿으면 의롭다함을 얻고 구원얻는다고 가르칩니다. 요한복음1장 12절에는 예수의 이름을 믿는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가 주어진다고 합니다. 우리는 이런 말씀에 근거해서  구원얻고 하나님 자녀가 되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런 말씀을 모르면 뭘 근거로 구원얻었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지난 주 한국에선 온 어떤 목사님을 만나 이야기 중에 들은 이야기입니다. 신천지에 사람들이 교회에 몰래 들어와서 연약한 교인들을 유혹해 데려가는데, 신천지 공격수들이 쓰는 전략이 구원받은 증거를 대라고 한답니다.  당황해서 멈칫거리면 봐라 증거를 대지 못하는 걸 보니 구원받지 못한 거다. 우리는 구원받은 증거가 있다. 그게 뭐냐면  우리 총재 말에 순종하는 거라고 말한답니다. 구원받았기 때문에 순종한다는 논리를 펴니까 거기 속한 사람들은 순종이 구원의 증표가 총재말이라면 시비를 가지지 않고 죽기 살기로 따른다는 것입니다. 이런 말에 넘어가는 어떻게 구원얻는지 성경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자기들이 추종하는 교주에게 순종하는 것이 구원의 증표가 아니고  

구원받은 증거를 대보라고 하면 어려분은 뭐라고 대응할 겁니까? 구원의 증거는 순종이 아니고 예수님을 구주로 믿는 믿음과 믿음으로 구원얻는다는 성경의 약속이 증거입니다.

혹시 누가 와서 여러분에게 구원받은 증거가 뭐냐고 물으면 뭘 제시해야 하겠습니까? 마음이 평안하다, 하늘나라의 소망이 있다, 성령이 내 안에 계신 것 같다, 목사님 말씀에 순종한다, 등등 이런 걸 말하기 전에 예수 믿으면 구원얻는다는 성경구절을 먼저 보여주며, 여기 예수 믿으면 구원얻는다고 나오지, 나는 지금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고 있어 그러니 이 성경구절이 내가 구원받았다는 증거야 이렇게 대답하면 될 일입니다.

그 다음 거룩한 제사장이 되라는 말씀을 살펴봅시다. 이 구절의 문맥은 4절부터 10절까지 입니다. 베드로는5절과 9절에서 성도들에게 거룩한 제사장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러분도 제사장이 어떤 사람인지 다 알겁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아론과 그 아들들을 제사장으로 세워 하나님께 속죄의 제사드리는 일을 담당하게 하셨습니다(민3:10). 구약 시대에 이스라엘 사람들은 일년에 한 번씩 죄를 용서받기 위해 동물로 희생제사를 드렸습니다. 일반 백성들은 하나님을 가까이 하면 죽으니까 제사장을 통해 하나님께 속죄제사를 드리고 용서받은 것입니다.

복음의 관점에서 보면 제사장은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베풀어주는 일을 한 겁니다. 베드로 사도께서 성도들에게 거룩한 제사장이 되라, 또는 너희는 거룩한 제사장이다 고 한 말의 뜻은 세상에 복음을 전하여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나눠주라는 뜻입니다. 유대인들은 하나님 백성인 줄 알고  성소로 하나님을 찾아왔지만 지금 사람들은 하나님을 몰라 찾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으로 사람들을 예수님을 믿으면 구원해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받게 도와줘야 합니다. 이것이 9절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는 것입니다.

세상에 나가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는 일은 목회자보다 평신도 여러분이 더 잘할 수 있는 사역입니다. 목회자는 주로 교회당에서 교인들을 대상으로 설교하고 성경공부하고 심방하고 상담하는 일을 합니다.  일부러 나가 전도해도 관계 없이 첨만나는 사람에게 전도하면 별 효과도 없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주된 활동 무대가 교회당 밖 세상입니다. 직장이나 일터에서 하루 종일 보내며 사람들을 만납니다. 생활 속에서 친분이 있는 사람들에게 전도하기가 쉽습니다.  제사장이라는 마음으로 아름다운 덕을 전하는 일에 관심을 갖기 바랍니다.

구약시대엔 제사장이 되고 싶어도 아무나 될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야곱의 12아들의 후손으로 이스라엘12지파를 세웠습니다. 야곱의 세번째 아들이 레위였는데, 하나님은 그  레위지파를 택하여 성막에서 일하게 하고, 레위 지파 중에 모세의 형 아론과 그 아들들에게 제사장의 직분을 주셨습니다. 다른 지파는 레위지파가 하는 일을 하고 싶어도 하지 못했고, 례위지파라고 해도 아론의 후손이 아니면 제사장은 될 수 없었습니다. 제사장은 하나님을 가까이 섬기며 좋은 대우를 받고 백성의 지도자역할을 하는 영광스런 직분이었습니다. 왕이리도 제사장직무는 대신할 수 없었습니다. 사울왕이 직접 제사를 드리려고 하다가 사무엘 선지자에게 크게 책망을 들은 걸 여러분도 알 겁니다.

끝으로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는 말씀을 살펴보겠습니다. 육체의 정욕이 뭔지 구체적으로 언급되지는 않았습니다. 제어하라는 것으로 봐 여기서 육체의 정욕은 정당한 욕구가 아닌 악한 욕망들을 가리킵니다. 욕망 그 자체가 모두 죄는 아닙니다.  허용된 범위를 벗어날 때 죄악이 될 수 있습니다. 범위를 규정하는 가이드라인은 그리스도인에겐  성경의 가르침과 양심입니다. 세상법이 허용해도 성경이 금하면 우리는 삼가해야 합니다.

육체의 정욕 중에 식욕과 성욕을 생각해봅시다.  이 두가지 욕망도 그 자체로는 정당한 것입니다. 배고플 때 누구나  음식을 먹습니다. 포도주도 허용된 범위에선 죄가 되지 않습니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자주 나는 위장병을 위해 포도주를 사용하라고 했습니다(딤전6:23). 유대사회에선 혼인집에서 하객에게 포도주를 대접했습니다. 물론 취하게 먹고 싸울 정도는 아니었을 겁니다.  가나의 혼인집에서 포도주가 떨어졌을 때 예수님은 물로 포도주를 만드는 기적으로 도와주었습니다(요2:1-11). 예수님 당시 유대인의 식생활문화를 고려할 때  최후 만찬에서도 포도주가 사용되었습니다(마26:27,29). 말하자면 이정도는 포도주 사용이 허용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방탕하게 육체의 즐거움을 추구하며 술파티를 벌이며 포도주를 마시는 것은 허용된 범위를 벗어나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에겐 그게 문제가 될 게 없다고 생각하더라도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육체의 욕망을 즐기기 위해 술파티를 벌이며 방탕해지는 건 삼가해야 할 일입니다. 삼가하라는 말은 그 자체는 죄가 아니더라도 유익하지 않고 덕이 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에 피하는 게 좋다는 권면입니다.  삼가하는 것은 내가 주체가 되어 내 의지로 그걸 피하는 노력입니다.

성적 욕망도 허용된 범위를 벗어나면 죄악이 됩니다. 성욕자체는 죄가 아닙니다. 성적 욕망이나 이성에 끌리는 마음이 없으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결혼해서 힘들게 살려고 하지 않을 거고 생육하고 번성하라는 하나님의 뜻도 이뤄지기 어려울 겁니다. 힘들어도 결혼해서 자녀를 낳아 기르는 일이 계속 이어지는 것은 남녀가 함께 하고 싶은 욕망이 커서 가능한 겁니다. 하나님은 성인이 된 남녀가 결혼해서 성적 나눔을 통해  즐겁게 살도록 하셨습니다. 그러나 결혼하지 않고 성적 욕망을 즐기는 것은 하나님의 허용범위를 벗어나는 것이라 죄가 되니 삼가해야 합니다.  

죄는 고통이라는 결과를 만들어냅니다. 아담과 이브는 먹으면 죽는다는 경고에도 불구하고 소위 선악과를 따 먹었습니다.  첨엔 그 열매를 볼 때 마다 죽게 된다는 말씀이 떠올랐을 겁니다. 그러나 죽지 않고 하나님처럼 지혜롭게 된다는 사단의 거짓말에 유혹을 받은 후엔 괜찬을 거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어느날 금지선을 넘어갔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과 관계가 끊어지고 부부 관계는 심하게 손상되고 한 평생 고통스럽게 살다 죽어야 했습니다(창3장). 아담과 이브가 선악과를 따먹은 후 그들의 삶이 어떻게 변했는가 보면 육체의 욕망을 삼가해야 하는 이유를 잘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회개하고 회복될 수 있는 기회를 주십니다. 그러나 회복의 과정은 고통스러운 것입니다.  밧세바를 범하고 그 남편을 죽게 만든 일로 선지자 나단의 책망을 들은 후 다윗은 침상을 눈물로 적시며 회개했다고 합니다(시51편). 다윗은 용서받았지만 인생은 고통스럽게 변했습니다. 아들이 반란을 일으켜 왕궁을 버리고 도망쳐야 했고, 반기를 든 아들이 살해당하는 걸 봐야 했습니다(삼하11장 이하). 신하들 앞에서 왕의 체면이 말이 아니게 되었습니다. 잠시 누리는 죄악 쾌락은 남은 인생을 오래 동안 고통스럽게 만들 수 있습니다. 그러니육체의 욕망을 잘 다스리기 바랍니다.

마음 속에 악한 욕망이 일어나면 그걸 잘 다스리기 바랍니다. 죄의 소원을 다스리는 건 각자의 책임입니다.  하나님께서 동생 아벨의 제사는 받으시면서 가인의 제사는 받지 않으셨습니다. 그 일로 가인은 몹시 화가나 얼굴빛이 달라졌습니다. 그 때 하나님은 가인에게 잘 한 게 없는데 왜 화를 내느냐 죄를 짓고 싶은 욕망이 있는데 그걸 잘 다스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창4:5-7). 그러나 가인은 분노한 마음을 다스리지 못하고 동생 아벨을 죽여 그 벌로 쫓겨나 떠돌이가 되었다고 합니다.

육체의 욕망은 허용된 범위를 벗어나면 대부분 죄악이 됩니다.  마음이 원하는대로 따라가지 말고 절제하며 살기 바랍니다. 안그러면 인생이 고통스럽게 될 수 있습니다. 오늘 말씀이 주님을 따라가는데 지침이 되고 참고가 되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