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림을 대비하는 신앙생활합시다(9/15/19)

벧전1:13-25 / 재림을 대비하는 신앙생활을 합시다.

오늘은 베드로전서1장 13절부터 25절 말씀을 살펴보겠습니다. 여기엔 마음의 허리를 동이고 근신하며 재림을 대비하라는 것과 하나님은 사람을 외모로 보지 않고 중심을 보시고 각 사람의 행위대로 심판하신다는 것과 믿음과 소망을 하나님께 두고 형제를 사랑하라는 것과 세상의 부귀영화는 풀꽃 처럼 덧 없는 것이라는 권면과 교훈의 말씀이 들어 있습니다. 이것을 차례로 살펴보겠습니다.

13절 이하를 보면,  마음의 허리를 동이고 근신하여 그리스도 나타나실 때 가져올 은혜를 생각해서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세상 만사 마음 먹기 달렸다고 하는데, 신앙생활도 마음을 단단히 먹어야 합니다. 심성이 약해 쉽게 유혹받게 되면 끝까지 주님 말씀을 따라가기 쉽지 않습니다. 목사들은 먹고 사는 길도 교회라서 마음이 어떻든 자리를 지키며 가지만, 일반 교인들은 교회 다니는 것이 먹고 사는 것과 연결되어 있는 건 아니기 때문에 그만 두고 싶은 유혹에 더 약할 겁니다. 주님 재림 때 사람들이 어떻게 될지 생각하며 구별된 삶을 살기 바랍니다.

거룩의 기본 개념은 구별된다는 것입니다. 세상 풍속을 따라 살지 않고 주님 말씀을 따라 살면 세상 사람보기에 자기들과 다르게 보일 겁니다. 이방 사회인 안디옥에서 그리스도인이라는 말이 처음 사용되었습니다. 지금 시리아 지역인데, 안디옥 교인들이 뭔가 다르게 보이니까 사람들이 왜 그런가 보니까 예수 믿고 따르기 때문이라는 말을 들었을 것이고 그래서 주위 사람들이 안디옥교인들을 그리스도께 속한 사람들이라는 뜻으로 ‘Christian’이라고 불렀답니다.  보통 사람들은 일요일에 취미생활을 하며 놀러다니는데, 그리스도인들은 교회 나와 예배드립니다.  주일에 교회 나와 예배드리는 것이 구별되게 만들어줍니다.

지난 주중에 인터넷 신문에서 시애틀이 약물남용자들에 대해 경찰 단속이 느슨해서 중독의 문제가 점점 심각해지고 있다는 기사를 봤습니다. 마리화나의 경우는 중독의 후유증이 없다고 해서 허용하는 추세인데, 환각경험을 한 사람들은 다른 약물에도 유혹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문제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법적 규제나 처벌 없더라도 이런 것으로부터 몸과 마음을 지켜서 구별되게 살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성경에는 이방사회의 경우 음행이나 간음 등 방탕한 성문화가 문제가 된 걸 보여줍니다. 예를 들어, 고린도교회는 음행의 문제가 있어서 바울은 음행, 음란, 간음, 남색하는 이런 사람들은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거라고 경고해야 했습니다(고전6:9,10). 음주나 도박도 그리스도인이 거룩한 삶을 위해 삼가해야 할 것입니다. 친교나 오락으로 가볍게 시작했다가 중독자가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마태복음25장에 열처녀의 비유가 나옵니다. 열 처녀가 신랑을 맞이할 등불을 준비했는데, 그 중에 다섯은 기름을 준비했고 다섯은 아직 기름이 없었습니다. 신랑이 오기 전에 빨리 준비해야 하는데, 미루다 깜박 잠이 들었습니다. 시끄러워 깨보니 신랑이 온다는 겁니다. 기름이 없어 마중나가지 못해 통곡했다는 겁니다. 미리 준비하라는 메세지입니다.  거룩한 삶도 주님 재림하시기 전에 미리 준비해야 합니다. 버리고 고쳐야 할 게 있으면 오늘 결단하고 구별되게 살기 바랍니다.

오늘 본문 17절엔 하나님께서  사람을 외모로 보지 않고 그 마음 중심을 보시며 각 사람의 행위를 판단하고 심판하신다고 나옵니다. 우리가 완벽하지 못하고 세상에서 일등을 하지 못하더라도 정직하고 진실하면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성공한 인생으로 마칠 수 있을 겁니다. 사울왕은 외모와 신장에서 다윗보다 훨씬 잘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정직하지 못해서 하나님께 버림을 받았습니다(삼상16:7). 반면에 다윗은 외모는 그렇게 뛰어나지 못했지만, 정직하고 진실해서 하나님의 총애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남자들은 이쁜 여자에 대해 좀 관대한 면이 있지만 하나님은 외모보다 마음 중심을 보십니다.

베드로는 하나님의 일보다 사람의 일을 먼저 생각한 적도 있고, 두려운 마음에 예수님을 모른다고 세번이나 부인하기도 했지만, 정신차리고 잘못을 깨달았을 때 진심으로 뉘우쳐 용서받고 회복되었습니다. 그러나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밭 판값 일부를 속인 것은 다른 죄보다 더 죽음을 당한 나쁜 죄는 아니었는데, 정직하지 못하고 거짓말로 성령을 속였기 때문에 혼이 떠나는 변을 당했습니다.

아니라고 부인하고 권력으로 누르고 드러난 비리도 모르는 일이라고 뻔뻔하게 넘어갈 수 있더라도 하나님의 심판은 피할 수 없다는 걸 알아야 합니다. 최후 심판 때 주님은 양과 염소를 분별하는 것처럼 믿음으로 산 의인과 거짓과 위선과 탐욕속에 온갖 죄를 지은 악인을 구분하여 각 사람을 그 행위대로 심판하여 의인에겐 영생을 악인에겐 영벌을 주겠다고 하셨습니다(마25:31-46). 밧모섬에 유배되어 있던 요한은 환상으로 최후 심판이 벌어지는 걸 봤는데, 거기서 각 사람이 자기 행위대로 심판을 받아 생명책에 이름이 없는 사람은 불못에 던져지는 장면을 봤다고 합니다(계20:12,13).

끝으로 교우 사람에 대한 권면을 살펴보고 마치겠습니다. 22절 보면, 베드로는 성도들에게 거짓 없는 마음으로  깊게 피차 교우들을 사랑하라는 말씀을 살펴보겠습니다. 기독교신앙의 핵심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이웃이 누구냐고 물었을 때 주님은 강도를 만나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예로 들었습니다. 교회에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있다면 우리는 진실된 마음으로 깊게 그 사람에게 도움을 줘야 합니다. 그게 주님을 사랑하는 길이기도 합니다.

심판 때 양과 염소가 갈리는 기준 가운데 하나가 작은 소자에게 사랑을 베풀었느냐는 것이었습니다. 오른쪽에 있는 양들에게 예비된 나라를 상속하라고 하면서 주님이 주리고 목마를 때 마시고 나그네 되었을 때 영접하고 벗었을 때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 돌아와주고 갇혔을 때 와서 돌봐주었다고 칭찬하자 그들은 그런 적이 없는 것 같아 당황하며 언제 그랬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주님은 여기 내 형제중 작은 자 한 사람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형제를 사랑할 이유에 대해 이보다 더 분명한 것은 없을 겁니다. 어떻게 사랑할 것인가는 그 때 그 때 상황 속에서 필요를 따라 능력 껏 하면 될 겁니다. 교우 여러분 우선 교인들에게 더 관심과 사랑을 베풀며 지내기 바랍니다.

앞에서 베드로는 그리스도인의 삶을 나그네로 표현했습니다. 여기선 우리 인생을 풀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세상 모든 부귀영화가 풀의 꽃에 불과하답니다.  영생의 소망이 있는 사람은 세상에서 삶이 짧다고 한탄할 건 없습니다. 길게 살든 좀 짧게 살든 영생에 들어갈 수 있도록 준비하는 인생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길어봐야 2,30년 더 살고 짧더라도 그져 2,30년 덜 사는 겁니다. 2,30년이 영생에 비하면 한 순간도 안되는 거 아닙니까? 구별되게 살면서 주님의 재림을 대비하는 지혜로운 그리스도인이 되길 바랍니다. 이번 한 주 동안 주님 재림을 생각하며 자신을 돌아보고 준비하는 그런 시간을 갖을 수 있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