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로부터 얻는 교훈(1/27/19)

신9:6-24 / 과거로부터 얻는 교훈

오늘은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에게 지난 광야 40년을 잊지 말고 기억하라고 당부한 말씀을 살펴보겠습니다. 지난 날의 잘못과 그로 인해 고난을 당하고도 시간이 흘러 상황이 좋아지면 잘못을 반복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성경 중에 사사기와 열왕기를 읽어보면 그런 과정이 고스란히 반복되어 있습니다. 실패한 과거로부터 교훈을 얻고 반복하지 않는 것이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어떤 경우는 잊고 사는 게 은혜가 될 수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실연의 아픔 같은 것은 세월과 함께 빨리 잊는 게 좋습니다. 배신당한 일이나 부당하게 비난을 받았다고 느끼는 것이나 바보짓 한 것도 빨리 잊는 게 좋습니다. 그런 것들을 기억하고 있어봐야 마음만 아프고 수치스럴 뿐입니다. 여러분도 안 좋은 기억이 있다면 잊기 바랍니다. 제 경험으로 기도가 힘들게 하는 기억을 잊는데 도움이 됩니다.

그러나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처럼 하나님을 거역하여 징계받은 일은 잘못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모세가 백성들에게 잊지 말고 기억하라고 한 것은 광야에서 하나님을 격노케 하던 일이었습니다. 본문에서 모세는두 가지 사건을 언급했습니다. 이것들을 회상하고 듣는 일이 모세나 백성에게 기분 좋은 일은 아니었겠지만, 가나안에 들어가 이런 죄를 다시 짓지 말자는 뜻에서 다시 입에 올린 것 같습니다.

모세가 잊지 말라고 언급한 사건 중에서 두 가지를 살펴보겠습니다. 첫째는 그가 시내산에 올라가 40일 머물고 있을 때 산 아래 있던 백성들이 금송아지를 만들어 하나님을 격노하게 만든 사건으로 출애굽기32장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둘째는 가나안을 정탐하고 돌아온 자들이 거기에 거인들이 살고 있어서 정복하러 갔다가 우리가 다 죽을지 모른다고 말하자 백성들이 죽음의 공포에 빠져 울면서 하나님을 원망한 사건인데 민수기14장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먼저 6절 보면,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의 면전에서 ‘너희는 목이 곧은 백성’이라고 말했습니다. 이 표현은 교만하고 거역하는 태도를 나타냅니다. 목이 곧은 백성이라는 말은 모세보다 먼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신 말씀이었습니다. 출애굽기33장 3절에 나오는데,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가나안 정복에 함께 가지 않겠다고 하시면서 “너희는 목이 곧은 백성인즉 내가 중로에서 너희를 진멸할까 염려함이니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가나안 땅을 줘 행복하게 살게 해서 이방 여러나라들에게도 하나님 섬기면 복받고 잘 살게 된다는 것을 보여주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애굽에서 탈출시켜 지금 가나안 코 앞까지 인도해왔는데, 철없는 백성들이 조금만 힘들면 불평하며 대들고 우상을 만들어 섬기고 그랬습니다. 그걸 보는 하나님은 또 화가 나시니까 이 백성들과 동행하다가 또 무슨 일로 화나셔서 백성들을 징벌하게 될까 염려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멀리서 지켜보며 도와주시겠다고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 중에 거하며 친밀하게 지내고 싶어하셨습니다. 그런데 아담 이후 사람들이 범죄하여 교만하고 거역하고 이기적이어서 힘들면 불평하고 대들고 그러니까 함께 지내기 어렵게 된 겁니다. 가까이 지내면 의도와 달리 화내고 책망하고 심하면 재앙까지 내리게 되는 겁니다. 이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가까이 지내는 것보다 좀 거리를 두는 게 낫다고 하셨습니다.

저는 목회자와 교인들이 친밀하게 지내는 게 좋다고 보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목회하는 세월이 흐르면서 어느 정도 거리를 유지하고 예의를 지키는 게 서로 부족한 인격에서 생기는 힘든 영향을 적게 받을 수도 있겠다 싶기도 합니다. 목회자들 사이에 ‘교인들과는 적당히 거리를 두는 게 좋다’는 말이 있는데,  그 말이 항상 맞는 것은 아니지만 그럴 필요도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목이 곧다는 말을 면전에서 듣는 것이 기분 좋은 일은 아닙니다. 모세 자기도 감정을 다스리지 못하고 화를 내서 가나안에 들어가지도 못하면서 누굴 보고 목이 곧다고 그런 말을 하느냐고 반발하는 사람들이 있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주 앞에서 목이 곧은 사람은 아닌지 돌아보며 사는 게 유익합니다. 예수 믿어 구원얻은 것만으로도 항상 감사하며 살아야 마땅하다고 생각하면서 실제는 불평불만이 생깁니다. 불편한 마음을 잘 다스리며 하나님과 화목하게 살아가기 바랍니다.

그 다음 모세가 언급한 하나님을 격노하게 만든 두번째 사건은 가데스바네아에서 가나안 땅을 탐지하고 돌아온 후 불평하고 원망한 것이었습니다. 23절 보면, 하나님께서 올라가 그 땅을 얻으라 하실 때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 명령을 거역하여 믿지 아니하고 그 말씀을 듣지 아니하고 항상 여호와를 거역했다고 모세는 지적하고 있습니다. 더 자세한 이야기는 민수기13,14장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는 과정에서 광야 40년은 원래 계획에 없었을 것입니다. 가데스바네아에서 가나안을 정탐한 후 곧바로 진격할 계획이었습니다. 그런데 거대한 적을 보고 두려움에 빠진 백성들이 믿음을 잃고 여기 장사지낼려고 데려왔느냐고 불평하다가 광야행이 되고 말았습니다. 우리 인생도 불순종과 죄로 인하여 원럐 계획에 없던 추가되는 부분이 있을 수 있습니다. 추가되는 부분은 대부분 고생이고 그 기간 만큼 제 인생을 살지 못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신명기8장 2절,16절 보면, 하나님은 광야 40년 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을 낮춰 순종하고 복받을 수 있도록 훈련기간으로 활용하셨다고 합니다. 가나안에 들어간 사람들에겐 광야 40년이 훈련기간이었겠지만, 그냥 광야에서 죽은 사람들에겐 가나안에 들어가 살아야 할 40년을 광야에서 허비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어디서 살았느냐가 중요하다는 말은 아닙니다. 하나님과 어떤 관계 속에서 무엇을 위해 살았느냐가 중요합니다. 훈련은 의로운 목적을 위해 싸우기 위한 것이지 평생 훈련만 받고 공부만 하는 것은 인생을 낭비하는 겁니다.

또한 광야의 삶은 하나님의 공급에 의존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백성들이 굴주릴 때 만나와 메추라기를 주어 먹게 하시면서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게 아니고 하나님 말씀으로 산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셨다고 합니다. 사탄이 금식하여 굶주린 예수님에게 돌로 떡을 만들어 먹으라고 유혹할 때 예수님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게 아니고 하나님 입에서 나오는 말씀으로 산다고 대응하신 그 유명한 말씀이 나온 배경이 바로 광야 40년이었습니다.

영적 차원에서 보면 그리스도인에겐 광야같은 시절이 있습니다. 하나님께 불순종하다가 인생이 꼬여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면서 하늘만 처다보고 살려달라고 기도하게 되는 그런 상황을 말합니다. 여러분도 예수 믿은 이후 하나님과 함께 지내온 세월을 잊지 말기 바랍니다. 특히 힘들었던 때를 잊지 말고 다시 그런 상황에 빠지지 않도록 마음을 잘 지키며 주께 순종하며 즐겁게 신앙생활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모두 기도하고 성령의 인도를 따라가며 승리하는 한 주가 되길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