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림을 대비하며 삽시다(12/30/18)

벧후3:1-13 / 재림을 대비하며 삽시다.

오늘은 2018년 마지막 주일입니다. 잠언15장 23절에 보면 때에 맞는 말이 아름답다는 구절이 있고 잠언27장 14절엔 이른 아침에 큰 소리로 이웃을 축복하면 (축복하는 말인데도)도리어 저주같이 여기게 된다고 합니다. 적당한 시간이 아니라 그런 것 같습니다. 한 해를 보내는 마지막 주일이니 때에 맞게 주님의 재림을 주제로 은혜를 나누겠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처소를 예배하러 가신다며 처소를 예비하면  다시 오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요14:2,3). 예수님은 부활하신 후 40일을 세상에 더 머무시다 승천하셨습니다. 예수님이 하늘로 올리워 가실 때 함께 있던 제자들은 구름이 가려 보이지 않을 때까지 하늘을 처다보고 있었는데 그 때 곁에 있던 두 천사가 말하기를 어찌하여 하늘만 바라보고 있느냐 하늘로 올라가신 예수님은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실 것이라고 위로했습니다.

그로부터 지금 2천년 가까이 흘렀습니다. 아마도 예수님을 따르던 제자들은 그들이 살아 있을 때 곧 예수님이 다시 오실 줄로 생각했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세상 삶에 대한 욕심이나 미련을 내려놓고 그 어려운 시대상황에서도 낙심하지 않고 열심히 전도하며 믿음을 가지고 굿굿하게 살다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 때만해도 예상보다 조금 늦어질 수도 있지 그렇게 받아들였을 겁니다. 그런데 곧 올줄 알았던 예수님이 승천하신지 거의 2천년이나 흘러가는데도 오시지 않으니까 지금 그리스도인들은 주님이 곧 오실 것을 기대하며 사는 것 같지 않습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오늘 본문 말씀을 보면 베드로 사도께선 말세에 자기 욕망을 따라 살면 주의 재림을 부인하는 자들이 일어날 것이라고 미리 말했습니다. 3절에 언급된 말세는 상당히 긴 기간을 함축하는 단어입니다. 2018년 이라고 할 때는1월부터 12월까지 대략 365일이라는 한정된 기간입니다. 이제 이틀도 남지 않았습니다. 이틀후면 2018년은 끝나고 지나갑니다. 그런데 말세는 예수님 승천하신 후부터 재림하실 때까지 그 사이의 기간을 말합니다. 그러니까 현재의 시점에서 말세의 기간은 1986년인데, 앞으로도 얼마나 더 지속될 지 알 수 없습니다.

주님의 재림이 지체되어 말세가 이렇게 늘어지는 것에 대해 베드로께선 아무도 멸망하지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셔서 하나님께서 천년을 하루로 여기면서 기다리시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이런 이유로 주의 재림이 지체되는 것이지만, 육신의 묙망을 따라 살며 주를 부인하는 사람들은 만물이 처음 창조될 때와 같이 지금도 그냥 계속 지속되고 있다면서 예수의 재림 같은 것은 없다며 하나님의 말씀을 일부러 잊고 살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는 갈수록 세상 삶이 힘들다고 느껴져서 주님이 곧 오시면 좋겠습니다. 그런데 한편으론 주님이 내일이라도 오시면 기쁘게 맞이할 준비가 되었나 생각하면 아직 준비가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어 좀더 있다 오시는 게 더 낫겠다 싶기도 합니다. 개인적인 경건의 훈련을 통해 예수님을 닮고 구원을 이루는 것도 부족하고 늘푸른교회 세우는 일도 아직은 미진하고 내 가족들을 생각해도 그들도 주님을 맞이할 준비가 더 필요한 것 같고 그렇습니다. 그래서 올해 주님이 안 오실 것 같아 다행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안심하고 있을 수 많은 없는 것은 주의 날이 도적같이 올 거라고 하기 때문입니다.

10절 보면, 주의 날은 도적같이 온답니다. 도적같이 라는 구절이 함축하는 의미는 예상하지 못했을 때, 그래서 대비하지 못했을 때를 의미하는 것 같습니다. 도적이 언제 올줄 알면 온 식구가 야구 방망이라도 듣고 있다가 창문 넘을 때 달려들어 한 방 날려 케오시켜 붙잡에 경찰에 넘길 수 있을 겁니다. 그런데 도둑은 그렇게 오지 않죠. 식구들이 다 잠을 자든지, 집을 비우고 놀러갔을 때 와서 털어가잖습니까? 그래서 베드로께서 강조하는 말은 주님이 언제 올지 몰라도, 항상 준비하고 있어서 낭패를 보는 일이 없도독 하라는 겁니다.

예수님은 재림을 대비하는 마음 자세와 삶이 어떠해야 할 것인지 비유로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마태복음25장을 보면, 열처녀의 비유, 세명의 종의 비유가 나옵니다. 이 비유들은 주의 재림을 준비하며 살라는 메세지입니다. 예수님은 천국이 등을 들고 신랑을 맞으러 나간 열처녀와 같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열 처녀 중에 다섯은 등은 가지되 기름은 준비하지 않았고 다섯은 등에 기름을 넣어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신랑이 예상보다 늦어지자 처녀들이 졸다 막 잠이 들었는데, 그 때 신랑이 온다는 전갈을 받았습니다. 그 때야 기름을 준비하지 않은 걸 깨달은 다섯처녀는 기름 있는 처녀들에게 부탁했지만, 자기들 쓰기에 부족할지 모른다며 거절당해 불을 밝히지 못해 신랑을 맞이하지 못하고 미리 기름을 준비한 쳐녀들은 무사히 혼인잔치에 들어갈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 비유에서 처녀는 그리스도인들이고 신랑은 예수님이고 혼인잔치는 영생하는 천국입니다. 이 비유가 뭘 말하는 지 알겠죠?

그 다음 세 종의 비유는 이렇습니다. 어떤 사람이 타국으로 출장가면서 세명의 종에게 재산을 나눠주면서 그걸 잘 관리해 이익을 남기라고 당부했습니다. 주인은 세 종들의 능력에 따라 한 종에겐 금 다섯달란트,  다른 종에겐 두 달란트, 그리고 한 달란트를 각각 맡겨주었습니다. 종들은 재산을 맡겨준 주인의 의도를 잘 알았을 겁니다. 그래서 다섯달란트 맡은 종은 그걸로 장사해서 다섯달란트 이익을 남겼고, 두 달란트 받은 종도 두 달란트 이익을 남겼습니다. 그런데 한 달란트 받은 종은 잘못해서 본전을 잃게 되면 주인한테 책임을 추궁당할 게 겁나서 그걸 땅을 파고 감췄습니다. 오랜 후에 주인이 돌아와서 종들에게 결산하자고 불렀습니다. 주인은 다섯달란트 남긴 종과 두 달란트 남긴 종에게 똑같이 잘했다고 칭찬하며 착하고 충성된 종이고 인정하며 앞으로는 더 많이 맡겨주겠다며 잔치에 참여해 함께 즐기자고 말했습니다. 반면에 한 달란트 그대로 가져온 종에겐 악하고 개으른 종이라 책망하고 그 한 달란트를 빼앗아 열달란트 가진 자에게 넘겨주게 했다고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 능력을 아십니다. 능력에 맞게 작은 일에 충성을 다하는 것만으로도 주님은 기뻐하시고 잔치에 참여할 기회를 주십니다. 목회를 예로 들면 수천명의 교인을 모아 목회하는 목사만 칭찬듣는 게 아닙니다. 몇 백명, 아니 몇 십명, 단 몇 명이라도 그들을 구원에 이르도록 돌보고 많은 것 욕심내지 말고 자리를 지키며 1년에 한명, 아니 3년에 1명이라도 전도하면서 10년 단위로 배가시킨다고 해도 주님은 두 달란트 남긴 종에게 하신 것처럼 착하고 충성된 종으로 인정해주실 것이라 믿습니다. 그러다보면 주님은 더 맡겨주실 것이고 그러면 더 크게 성장하고 부흥하게 되지 않겠습니까? 그러니까 주님 오실 때까지 작은 일에 충성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베드로 사도는 주의 재림을 대비하는 것에 대해 11절에 “너희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뇨?”라고 자문했습니다. 주의 날은 심판과 구원의 날입니다. 심판을 통과해야 구원으로 갑니다. 10절 보면 그날은 불심판입니다. 우리 믿음도 불 심판을 받습니다. 이 불을 견딜 수 있을만큼 거룩한 행실과 경건한 삶이 요구됩니다. 여러분 모두 주님께 인정받는 그런 믿음의 사람들이 되길 바랍니다.  주님이 칭찬하는 그런 종이 됩시다. 믿음의 장사를 잘 해서 주님을 기쁘게 해드리는 교우들이 되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