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의 형벌과 회개의 구원

사사기6:1-10 / 죄의 형벌과 회개의 구원

오늘은 사사기3장 7절부터 16장 31절까지 나오는 이스라엘을 억압한 여섯 나라와 12명의 사사들이 등장합니다. 여섯 나라는 메소보타미아, 모압, 가나안족, 미디안, 암몬, 블레셋이고 12명 사사 중에 지난 주 살펴본 옷니엘을 시작으로 드보라, 기드온, 삼손 같은 인물이 있습니다. 12명 사사를 개별적으로 살펴볼 필요는 없을 것 같아 한 묶음으로 공통적인 특징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지난 주 사사시대의 영적 사이클에 대해 설명했습니다. 태평한 시기가 방심하다 우상숭배에 빠지면 하나님께서 진노하셔서 주변 이방나라를 불러다 이스라엘을 징계하시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억압속에 고통받다가 잘못했다고 살려달라고 간청하면 하나님은 사사를 일으켜 대적을 물리쳐주시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다시 한 동안 태평한 시기를 보냈습니다. 사사기엔 이런 과정이 적어도 여섯번 기록되어 있습니다.

사사기의 주제는 죄와 형벌, 회개와 구원으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사사시대는 이스라엘 백성이 믿음에 실패한 역사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가나안에 들어간 후 하나님께서 모세와 여호수아에게 약속했던 복을 누리지 못했습니다. 그 이유는 살만하면 방심해서 우상숭배에 빠져 하나님을 화나게 만들어 주변 이방나라의 침공을 받아 그들의 지배를 받으며 고통 속에 살았습니다. 그 기간을 모두 합하면 사사시대 325년 중에 3분의 1이 넘는 130년이었습니다.

 사시기는 하나님의 백성가운데 죄가 어떻게 발전해나가는지 잘 보여줍니다. 죄에 빠진 이유는 부분적인 순종이었습니다. 하나님은 가나안에 들어가 살게 되면 분배받은 지경 안의 적을 모두 몰아내라고 당부하셨습니다. 그런데 대부분 지파는 자기 영내의 가나안 원주민들을 다 몰아내지 못했고 결국 그들과 타협하거나 노예로 부리며 그냥 함께 살았습니다. 인간적으로 보면 피흘려 전쟁하기보다 굴복하는 적을 일꾼으로 부리며 사는 게 유익하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우리들도 세상과 타협하고 싶은 유혹을 받는데, 타협이 안전과 이득을 가져다 주기 때문입니다. 정복전쟁이니까 이스라엘백성 중에도 사상자도 생겼을 겁니다. 전쟁인데 겁이 안 나겠습니까? 실제로 미디안이 침공했을 때 사사 기드온이 군사를 모아 싸우러 갔는데, 하나님은 기드온 군사가 너무 많다며 두려워 떠는 자는 집으로 돌려보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자 2만 2천명이 돌아가고 만 명이 남았다고 합니다(삿7:2,3). 하나님께서 승리를 약속한 싸움인데도 겁이 났던 겁니다. 그러니 죽기로 버티는 자들과 전쟁하는 거보다 타협해서 이득을 취하고 함께 살아가는 게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았을 겁니다. 그러나 이것은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는 것이었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기억할 것은 우상숭배하던 가나안 거주민들을 몰아내는 것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어진 사명이었다는 사실입니다.  가나안 사람들을 모두 몰아내는 것은 개인이나 지파의 안락한 삶의 환경을 만드는 것보다 하나님만 섬기는 백성들의 나라를 만들기 위해서는 반드시 수행되어야 할 과업이었습니다. 하나님은 가나안 땅을 접수한 이스라엘 백성을 통해 하나님만 섬기는 것이 복받고 평안하게 사는 길임을 보여줘 이방인들이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께 돌아오게 만들려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이 복 줘서 잘 살아도 우상숭배자들은 우상 때문이라고 생각하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우상숭배는 철저하게 배제될 필요가 있었던 것입니다.

전쟁의 위험을 피하고 이득도 취하고 그러자고 가나안원주민과 타협하고 공존한 건데, 결과는 반대로 고통과 죽음의 길이 되었습니다. 이스라엘이 강할 때는 항복하고 노예로 만족하며 살던 적들이 이스라엘이 약해지면 기회를 노리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거주하는 땅을 침공해서 억압하고

곡물을 빼앗아갔습니다. 사사기6장 1절 이하를 보면 미디안이 이스라엘을 지배할 때였는데, 이들이 토지 소산이나 식물이나 양과 소와 나귀도 남기지 않고 다 빼앗아갔습니다. 그래서 기드온은 미디안 사람에게 알리지 아니하려 하여 밀을 포도주 틀에서 타작했다고 합니다(삿6:11).

   자기 소견에 좋은 대로 살면 유익할 줄로 알고 세상과 타협하며 그런 자신의 처신을 지혜롭다고 생각하지 말기를 바랍니다. 그렇게 해서 한 두 가지는 유익한 게 있을 지 몰라도 계속 그러고 살면 하나님으로부터 오던 복이 끝어집니다. 그러면 그 유익하던 것도 결국은 사라지고 남는 건 고통과 두려움과 걱정 뿐입니다. 그런데 어리섞은 인간은 이걸 반복하며 삽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한 두 번 당해봤으면 다시는 안 그럴 법도 한데, 세대가 바뀌기 때문에 그랬던 것 같습니다. 겪어보고 뭔가 깨닫고 하나님을 잘 섬기려고 맘 먹은 사람들은 나이가 들어 세상을 떠나고 젊은이들은 특성상 남 말 안듣고 자기 소견대로 살고 그러니까 또 갈데까지 가다 망가지고 그렇게 반복한 것 같습니다.

   사사시대는 보기에 따라서는 소영웅들의 시대이기도 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우상숭배를 회개하며 살려달라고 부르짖을 때 하나님은 백성 중에 한 사람을 불러 지도자로 세우고 그가 앞장서서 나가 대적을 물리쳐 이스라엘이 다시 평안하게 해주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불러 쓰신 사람들의 면면을 보면 불완전한 인격의 소유자들이었습니다. 사사들은 대부분 성숙하고 완전한 사람과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그들 중에 에훗 같은 암살자도 있고, 입다 처럼 율법에 무지하여 경솔한 서원을 한 자도 있고, 삼손처럼 성적으로 오도된 인물도 있었습니다. 그런 약점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사용하신 것은 그들이 하나님께 철저하게 굴복했기(submissive to God) 때문이었습니다. 지금도 하나님께서 쓰시는 사람은 완전하기 때문이 아니고 순종하기 때문입니다.

사사시대에 사람들은 각자 소견에 좋은 데로 행동했다고 합니다. 모세나 여호수아처럼 하나님을 뜻을 받들어 백성을 인도하는 리더가 없었기 때문에 나타난 현상입니다. 개인주의와 사생활을 존중하는 민주사회에선 자기 소견에 좋은 데로 사는 게 좋은 것처럼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실제로 지금 많은 사람들이 그런 방식에 익숙해져 있습니다. 카운셀러들은 남 신경쓰지 말고 자기 좋은 데로 살라고 권장합니다. 그런데 하나님 섬기는 신앙생활을 그런 식으로 하려고 하면 결국엔 하나님 말씀을 무시하고 벗어나기 쉽습니다. 자기 소견에 좋은 데로 하던 습관을 버리고 하나님 말씀에 맞춰가며 사는 것이 신앙생활입니다.

사사시대는 다른 어떤 시기보다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를 보여줍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거듭되는 불순종과 우상숭배에도 불구하고 회개하고 돌아와 살려달라고 간구하면 그 때마다 사사를 세워서 적의 지배에서 벗어나 평안을 누리며 살도록 도와주셨습니다. 이런 과정이 사사기에 여섯번 반복되어 있는데, 실제로는 그 보다 더 많았고 지금도 이런 과정은 반복되고 있습니다. 어떤 죄인이라도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는 용서받고 구원얻을 수 있는 기회가 남아 있는데, 그것은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 때문에 가능합니다.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갈 수 있는 기회는 예수 믿는 우리에게도 필요합니다. 구원얻고 실족하지 않고 천국 가는 그리스도인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대부분 교인들이 예수 믿은 후에도 죄에 빠집니다. 그래서 우리에게도 거듭 용서하시고 구원해주시는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가 필요합니다. 교회 다니는 중에도 하나님보다 세상을 더 사랑하고 말씀보다 욕망의 지배를 받으며 산 것에 동의하는 분들은 지금 회개하고 하나님 잘 섬기며 살기를 결심하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신 것처럼 회개하고 간구할 때 용서하고 용납해주실 줄로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