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선을 다한 요셉

창39:1-6 / 최선을 다한 요셉

오늘은 최선을 다한 요셉이란 제목으로 하나님 말씀을 증거하겠습니다. 요셉은 야곱의 열 한번째 아들이었습니다. 요셉이 족장의 지위를 계승한 건 아니었습니다. 이스라엘을 대표하는 지위는 요셉보다는 다윗 왕과 예수님이 나신 유다지파에게 돌아갔지만, 요셉 당시에 하나님께서 12아들 중에 요셉을 통해 야곱의 후손을 살리고 당시 최강국 애굽에 하나님의 존재를 알리셨습니다.

어느 시대나 하나님께 쓰임 받는 사람은 어딘가 다른 면이 있습니다. 요셉은 무엇보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으로 행동을 삼가한 사람이었습니다. 그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애굽의 시위대장 보디발의 집에 노예로 팔려갔을 때 안 주인 보디발의 아내가 요셉에게 동침하자고 거듭 유혹했을 때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득죄하리이까”(39:9) 라고 거절하고 도망친 사건입니다((창39:7-13).

요셉은 노년에 얻은 아들이므로 야곱이 여러 아들보다 그를 깊이 사랑했다고 합니다(37:3). 형들은 아버지 사랑을 독차지 하는 요셉이 미웠습니다. 그래서 요셉을 없애버릴 생각으로 방목지 도단까지 찾아온 요셉을 이스마엘 사람에게 팔아버리고 요셉의 겉옷에 수염소피를 묻혀 아버지에게 보이며 악한 짐승에게 먹힌 것처럼 꾸몄습니다(창37:31,32). 도단은 세겜보다 북서쪽에 위치한 곳으로 애굽으로 가는 미디안 상인의 통행로였습니다.

요셉을 산 미디안 상인들은 애굽으로 가서 바로의 시위대장 보다발에게 요셉을 팔았습니다. 그 당시엔 빚을 지고 갚지 못하는 사람이나 전쟁포로들은 노예가 되어 팔렸습니다. 형들은 동생 요셉을 그런 노예로 만들었습니다. 이 때 요셉의 나이는 18세 전후로 추정됩니다. 아무리 요셉이 성품이 좋았다 해도 노예로 팔려 다니던 그 순간엔 형들에게 원한을 갖지 않을 수 없었을 겁니다.

원통한 일을 당하면 신앙도 인격도 망가지기 쉽습니다. 노예로 팔려 낯선 땅 애굽에서 요셉은 절망감과 외로움으로 유혹에 흔들릴 수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간교한 사람이라면 좋은 기회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안 주인의 정부 노릇을 하면 노예 신분에서 벗어나 큰 재물을 손에 넣을 수 있을지 모른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보디발의 아내니까 남편의 위상에 걸 맞는 미인이었을 겁니다. 그런데도 요셉은 유혹에 흔들리지 않고 자신을 지켰습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최근 미투 운동으로 인하여 차세대 대통령이 될지도 모른다고 기대를 받던 정치인이 하루 아침에 몰락하고, 대중에게 잘 알려져 있는 현역 텔런트가 자살을 하고, 잘 나가던 중견 배우가 서둘러 지금까지 자기는 인생을 잘 못살았노라 실토하며 숨어버리고, 미국에서도 대표적으로 성공한 목회자가 서둘러 은퇴를 해야 했습니다. 우리도 살다 보면 유혹을 받고 죄에 빠질 위기에 처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성적 욕망과 유혹을 이겨내는데 도움이 될 겁니다.

요셉의 인생에서 두번째 특징은 항상 하나님께서 함께 하셨다는 것입니다. 본문 2절에,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하시므로 그가 형통한 자가 되어 그 주인 애굽 사람의 집에 있으니” 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구절만 놓고 해석하면 요셉이 보디발의 집에 노예로 팔려간 것이 하나님이 함께하셔서 형통하게 된 것이라는 말입니다. 보디발의 집에 팔려간 것 하나만 생각하면 누명 쓰고 감옥 갔으니 형통이 아니라 불통이라고 해야 맞겠지만, 그 다음 다음을 생각해보면 이것이 연결고리가 되어 마침내 총리의 자리까지 갈 수 있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 집에 팔려가지 않고 보디발의 집에 간 게 형통인 겁니다.

요셉은 하나님께서 함께하셔서 모든 일이 잘 이뤄졌습니다. 요셉이 애굽에 노예로 팔린 것도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한 섭리의 과정으로 된 것이었습니다. 요셉도 나중에 그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러니까 형들이 요셉을 노예로 팔 때 하나님께서 지켜주시지 않아서 그런 것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섭리 안에서 그렇게 된 일이었습니다. 요셉이 첨에 몰랐지만, 나중에 식량 사러 애굽에 온 형들을 만났을 때는 하나님께서 생명을 구하려고 자기를 먼저 애굽에 보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창45:5).

요셉이 가정 총무로서 보디발의 집과 모든 소유를 주관할 때부터 여호와께서 요셉을 위해 보디발의 집에 복을 내려주셨습니다. 보디발에게 요셉은 복덩이가 되어 신임을 얻었습니다. 보디발의 처가 겁탈하려고 했다고 누명을 쓰워 요셉이 감옥에 들어갔을 때에도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하시여 요셉을 형통하게 해주셨습니다. 요셉은 간수의 눈에 들어 교도소  사무를 보며 애굽의 행정을 배우고 인맥을 넓혔습니다. 모두 하나님이 함께하신 결과지만, 요셉 또한 성실하게 최선을 다했기 때문에 인정 받아 그런 기회를 얻은 것입니다.

요셉의 인생에서 세번째 특징은 살신성인입니다. 살신성인은 나를 죽여서 의를 이룬다는 뜻인데, 요셉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상당한 기간 동안 죽음직전까지 가는 고난을 당했습니다. 형들에게 노예로 팔려갈 때 배신감과 절망감이 얼마나 컸겠습니까? 요셉을 산 미디안 상인들이 요셉을 대접하며 데려갔겠습니까? 죽지 않을 만큼 험한 음식을 얻어 먹으며 끌려가다 걸어갔을 겁니다. 사갈 주인을 기다리며 노예들 틈에 서 있을 때얼마나 수치심을 느꼈겠습니까? 고된 일이라고 해 본적도 없던 요셉에게 노예로 사는 것은 육체적으로도 견디기 힘든 고통이었을 겁니다.

하나님께 순전함을 지키려고 필사적으로 노력했는데 돌아온 것은 겁탈자라는 치욕스런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가야 했습니다. 여기까지 요셉의 인정 역정을 놓고 보면, 요셉이 뭔가 잘못해서 벌받는 사람 같습니다. 아브라함의 후손, 족장의 아들이 어떻게 저렇게 될 수 있느냐며 누군가는 시험들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예수님께서 죄인이라고 조롱받고 십자가에 달려 죽으실 때 그 내막을 모르는 사람은 무슨 나쁜 죄를 지어 저렇게 험한 꼴을 당하느냐고 생각하지 않았겠습니까? 그런 사람도 있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아는 것처럼 예수님은 물론 요셉 또한 자기 잘못이 있어서 이런 나쁜 일이 생긴 게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한 도구로 요셉의 몸이 고난을 당하고 그의 인생이 잠시 망가지는 것처럼 보이는 상황으로 들어갔을 뿐입니다. 여러분 인생도 이런 상황에 직면할 때가 올지 모르겠습니다. 물론 요셉과 같은 그런 수준은 아닐 겁니다. 그건 요셉 한 사람에게만 해당되는 것이고 우리는 우리 몫이 따로 있을 겁니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과정에서 혹 고난과 역경을 만나거든 요셉을 생각하며 억울하다고 하지 말고 거기서도 성실하게 최선을 다하여 인정받는 사람이 됩시다. 하나님은 물론, 사람에게도 인정받아야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자리로 나갈 수 있습니다.

  교우 여러분, 요셉처럼 하나님을 경외하며 하나님이 함께 하는 삶을 살 수 있기 바랍니다. 하나님 잘 섬겨서 하나님이 함께하시면 손해 볼 게 없습니다. 가정이든 직장이든 사업이든 하나님께서 범사에 형통하는 은혜를 주실 줄로 믿습니다. 열심히 일하는 것보다 하나님이 함께하셔서 복받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열심히 일해도 빈 손으로 끝날 수 있습니다. 목회도 그렇습니다. 우리가 열심히 사역하는 것보다 먼저 하나님께서 함께하시고 복 주셔야 부흥합니다. 여러분 모두 하나님이 함께하시어 범사에 형통한 삶을 살 수 있도록 요셉처럼 신앙생활을 잘 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