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브라함이 보여주는 믿음은 어떤 것인가

창12:1-9 / 아브라함이 보여주는 믿음

오늘은 아브라함의 믿음을 주제로 말씀을 증거하겠습니다. 아브라함은 창세기12장부터 주인공으로 등장해서 25장에 세상 떠난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아브라함에 관해 14장이 되니까 살펴볼 내용이 많지만, 이 시간엔 고향을 떠난 부분과 이삭을 번제로 드린 부분을 중심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갈대아 우르를 떠나 가나안으로 들어가는 과정을 통해 하나님을 따라가기 위해 떠나 보내야 하는 것에 대해 말씀 드리겠습니다. 여러분이 기억할지 모르겠지만 전에도 몇번 아브라함에 관해 설교한 적이 있습니다. 제가 지금 10년 넘게 여기서 말씀을 전하고 있으니까 여러분은 반복해서 듣게 되는 경우가 있을 겁니다. 오늘은 아브라함이 새로운 출발을 위해 옛 삶에서 떠나는 부분에 대해서만 살펴보겠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믿음의 사람을 공부할 때 우리는 그 사람보다 먼저 하나님께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주목 받는 것도 먼저 하나님께서 그를 통해 뭔가 계획하시고 성취하시려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애초에 그런 하나님의 뜻과 계획이 그에게 없었다면 아브라함 또한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무명의 한 인생에 불과했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실 때 삶에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을 통한 하나님의 계획은 먼저 아브라함에게 복을 주시고 복 받은 아브라함을 통해 세상에 하나님을 보여주는 민족을 일으키시려는 것이었습니다. 본문 1절부터 3절에 그런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우상을 섬기던 갈대아 우르를 버리고 떠나 가나안으로 갔기 때문에 하나님께 복 받아 믿음의 조상이 될 수 있었습니다. 아브라함의 후손들은 하나님의 섭리 속에 큰 민족으로 성장했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그 후손들을 통해 여러 민족과 나라들이 하나님께 돌아오게 하려고 계획하셨습니다. 지금 여러 민족과 나라에서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이 아브라함의 믿음을 언급하며 하나님을 잘 믿자고 다짐하고 있잖습니까?

아브라함의 경우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받기 위해서는 먼저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야 했습니다. 그것은 아브라함이 살던 갈대아 우르는 다른 신 우상을 섬기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여호수아24장 2절 이하를 보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실 때 아브라함의 아버지 데라는 다른 신을 섬기며 살았다고 나옵니다. 고향 친척들과 아버지 곁을 떠나지 않고 함께 살면서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섬기는 것은 불가능했을 것 같습니다. 그들에게 여호와는 다른 신인데, 다른 신을 섬기도록 아브라함을 용납하겠습니까?

그 다음 하나님이 지시하신 가나안 땅으로 가려면 우르를 떠날 수 밖에 없습니다. 제사장 나라로서 이스라엘 백성을 일으켜 세우려는 하나님의 계획 속에 가나안 땅은 필수적 요소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가나안 땅을 미리 보여주고 먼 훗날 그의 후손들이 그 땅에 살며 하나님을 섬기도록 하려고 계획중이셨습니다. 창세기15장 13절을 보면, 아브라함이 가나안 땅으로 들어온 지 수년이 지났을 때인데, 하나님께서 환상 중에 아브라함에게 아브라함의 자손이 이방에서 객이 되어 그들을 섬기며 사백 년 동안 고통을 당하다가 4대 만에 이 땅 가나안으로 돌아오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7절, 8절 9절에 기록된 내용입니다.

하나님 없이 살던 사람이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을 섬기려고 하면 시작하기 전에 먼저 버려야 할 게 적잖습니다. 안 버리고 그 자리에 머물러 하나님을 따라가려고 하니까 내부의 욕심부터 외부의 간섭과 방해까지 신앙생활이 힘든 것입니다. 하나님 믿지 않을 때는 누구라도 하나님과 천국보다 나 자신과 가족, 돈과 세상 성공이 더 중요합니다. 이런 것들이 우상처럼 되어 있습니다. 예수 믿을 때 가치관이나 우선순위나 삶의 목적을 버리고 떠나야 하는데 이전 그대로 가지고 예수님을 따라가면 수시로 갈등에 빠지게 될 겁니다. 씨뿌리는 비유는 우리에게 세상의 염려와 재리의 유혹, 환난과 핍박, 마귀도 역사가 신앙생활을 방해한다는 것을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4절에서 5절을 보면, 아브라함은 마침내 하나님의 말씀을 의지하고 하란을 떠나 가나안 땅으로 들어갔습니다. 실제 아브라함의 여정은 갈대아 우르에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우르에서 하란까지는 아버지 데라도 동행했습니다. 데라는 신을 섬기는 자였다고 하니까(수24:2), 아들이 여호와라는 신의 부르심을 받은 걸 무시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데라와 아브라함은 한 동안 하란에 머문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아마도 아버지 데라가 가나안으로 가는 걸 주저했을 것 같습니다. 아브라함은 가나안으로 가기 위해 하란에서 아버지를 떠나는 결단을 한번 더 해야 했습니다. 여러분이 부모의 영향 아래 신앙생활을 시작했더라도 언젠가는 믿음의 홀로서기를 꼭 해야 합니다. 부모 믿음이 아닌 자기 믿음으로 천국 가는 것입니다.

성경을 믿지 못하는 역사학자들은 아브라함의 가족이 살았다는 ‘갈대아 우르’를 전설에 불과한 이야기로 취급했었습니다. 그러다 1800년대 후반에 이르러 지금의 이라크 땅 티그리스와 유프라테스가 만나는 지점에서 ‘갈대아 우르’라는 지방이 있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유물들이 발굴되었습니다. 그것이 수메르문명으로 알려진 것입니다. 발굴결과 우르 지역에 살던 수메르인들이 섬기던 가장 대표적인 신은 ‘이난나’ 여신이었답니다. 수메르인들은 머리에 초생달을 붙이고 있는 이 여신이 풍년을 가져다 준다고 믿고 섬겼답니다. 이 여신이 가나안 지역에선 ‘아스다롯’으로 불렸고, 그리스로 가선 ‘아프로디테’가 되었고 로마에서는 ‘비너스’가 되었다고 합니다.

하란 지역에서도 유적이 발굴되었는데, 발굴한 기록에 의하면 하란은 수메르보다 몇 백년 앞선 문명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 문명을 세웠던 나라 이름이 ‘에블라’라고 해서 ‘에블라 문명’이라고 불립니다. 발굴된 점토판 기록을 해석해보면, 에블라 문명을 세운 왕의 이름이 ‘에벨’이었고, 그들이 믿던 신의 이름은 ‘야’ 였다고 합니다. 사실이라면, “야훼”(여호와) 하나님 이름이 고고학적으로 발견된 것 중에 가장 오래된 기록이라고 합니다. 창세기 10장 21절에 "셈은 에벨 온 자손의 조상이라" 고 해서 에벨이 셈족의 대표자가 되어 있습니다. 그 이유는 에벨이 왕이 되어 장수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족보표에서 보는 것처럼 에벨은  6대손 아브라함보다도 62년을 더 살았습니다.

또한 창10장 25절에 에는 에벨과 관련해 관심을 끄는 구절이 있는데, 에벨이 벨렉을 낳았을 때 “그 때 세상이 나뉘었다”고 나옵니다. 족보연대표를 참고하면 ‘그 때’는 아담부터 1755년 경으로 노아 홍수 100년 정도 지났을 때였고, ‘세상이 나뉘었다’는 바벨탑 사건으로 언어가 달라져 서로 흩어진 사건을 가리키는 것 같습니다. 바벨탑 사건은 고대제국을 건설한 함 자손 니므롯의 주도로 건설되었다고 하는데(창10:10), 이 사건으로 인해 에벨이 셈족을 이끌고 하란지역으로 가서 에볼라를 세운 것 같습니다.

오늘날 '히브리'라는 말도 이 '에벨'에서 기원했다는 것이 정설입니다. 그런데 세월이 흘러 이 정통 셈족의 국가가 어떤 원인에 의해 강 저편의 수메르인에게 멸망당한 것같습니다. 성경의 이스라엘 역사를 볼 때 물질적으로 부유해지고 방탕해져 하나님을 떠나 타락하면 외적의 침입을 받는 경우가 허다했습니다. 강 아래쪽 수메르의 사르곤 왕이 에블라를 멸망시키고 하란에 살던 아브라함의 조상들을 갈대아 우르 지역으로 끌고 갔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의 조상들이 대를 이어 우르에서 그 땅의 신을 섬기며 살고 있을 때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찾아와 고향을 떠나라고 지시한 것 같습니다.

아브라함의 믿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준 사건은 무엇보다 이삭을 번제로 드리는 순종이었습니다. 아버지에게 아들을 번제로 바치라는 하나님은 우리가 알고 있는 하나님과는 전혀 다른 모습입니다. 이런 말도 안 되는 명령에도 순종한다면 말이 되는 의로운 명령엔 얼마나 잘 순종하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이 이해할 수 없고 따르기가 거의 불가능한 부도덕하기까지 한 지시를 내리신 것은 그가 어디까지 순종하는지 시험해보려고 하셨다는 것입니다(창22:1).

이삭의 결박사건은 후대 사람들에게 믿음이란 뭔가를 생각하게 해줬습니다. 유진 피터슨에 따르면 바울은 이 사건을 통해 믿음이 뭔가를 설명해주었는데, 믿음이란 “스스로 통제할 수 없는 일에 대해 순종하며 신뢰하는 것, 눈으로 볼 수 없는 그 분과 순종의 관계 속에서 사는 것, 전혀 알지 못하는 땅으로 과감하게 발을 내딛는 것, 우리의 통제권을 포기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그 길을 가다, P88).

아브라함에게서 믿음은 간단하게 말하면 하나님께서 뭐라고 말씀하시든 하나님을 신뢰하기 때문에 순종하며 사는 것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이 가나안에 들어온 지 여러 해가 지난 어느 날 이상 중에 여호와의 말씀이 아브라함에게 임했습니다. 그 때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네 몸에서 자식이 태어나 그가 후사가 될 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때 아브라함은 여호와를 믿었고 하나님은 이것을 그의 의로 여기셨다고 합니다(창15:6). 아브라함은 자기 몸에서 자식보는 건 나이 때문에라도 불가능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 같은데(3절), 하나님 말씀을 듣고는 믿었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에게서 믿음은 단순한 고백을 넘어 순종하고 행동하는 삶이었습니다. 그는 살던 자리를 고수하며 하나님 믿는다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고향을 떠났고 아버지 품을 떠났고 하나님의 복을 얻기 위해 아버지의 유업도 포기했습니다. 하나님을 믿고 떠난 길이라도 인생의 어려움은 계속되었습니다. 가나안 땅에 가뭄이 들어 애굽으로 내려가야 했고, 궁여지책으로 아내를 누이라고 했다가 아내를 빼앗길 뻔 했고 조카 롯과 갈등이 생겨 결별해야 했고 몸종에게서 아들을 얻은 게 가정불화의 원인이 되어 골머리가 아프기도 했습니다. 모든 면에서 완벽한 사람은 아니었지만 아브라함은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얻는 것을 보여준 첫 사람이었습니다.

교우 여러분, 주님을 따라가려면 버리고 떠나야 할 게 있습니다. 여러분에겐 그게 뭔지 이번 한 주간 동안 살펴보고 깨닫게 되면 버리고 떠나는 결단을 내리기 바랍니다. 그리고 주님을 신뢰하면 당장 다 이해 안되더라도 믿고 순종하기 바랍니다. 우리 수준에서 하나님의 속 뜻을 어찌 다 미리 알 수 있겠습니까? 순종하고 살다보면 깨닫게 되는 날도 올 겁니다. 어떤 것은 주님을 뵐 때야 명확해질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아들을 번제로 드리라는 하나님을 이해할 수 있었겠습니까? 그런데도 순종한 아브라함을 생각하며 주님을 따라가기를 바랍니다. 한 주간 평안하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