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한 환경에서 실패한 아담

창3:1-21 완벽한 환경에서 실패한 아담

오늘은 아담의 실패를 통해 환경과 신앙생활의 관계, 그리고 신앙생활에서 하나님 말씀의 중요성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환경 탓하고, 세상 탓하고, 교회 탓하고, 가정 탓하고, 부모 탓하고, 배우자 탓하면서 신앙생활 제대로 하지 않는 것이 합당한 것인지 돌아볼 수 있기 바랍니다.

오늘 말씀의 주인공인 아담은 인류 역사에서 가장 좋은 환경과 조건을 가지고 인생을 시작한 사람입니다. 아담이 살던 세상은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좋았다고 할 만큼 완벽하게 창조된 세상이었습니다. 아담과 이브 외엔 그들 주변에 아직 갈등을 일으킬 사람도 없었겠지만, 죄가 세상에 들어오기 전이라 지금 세상 처럼 죄인들의 온갖 탐욕과 유혹과 쟁탈전 같은 것은 없었습니다.

아담은 가정환경도 뭔가 부족하거나 상처를 주는 그런 것은 아니었습니다. 육신의 부모가 없고 성장과정 없이 성인으로 시작한 게 부족한 것처럼 느낄지 모르지만, 아담에겐 자기 삶과 비교되는 또래의 친구가 있었던 것도 아니라서 그냥 자연스럽게 받아들였을 겁니다. 완벽하신 하나님께서 직접 아버지의 역할을 하셨기 때문에 아담을 얼마나 사랑하셨겠습니까? 또한 하나님은 아담에게 최고의 미인을 준비해 아내로 삼게 해주셨습니다.

아담은 적어도 범죄하기 이전엔 먹고 사는 일에 아무 걱정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자연이 필요한 모든 걸 공급해주었습니다.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힘들게 직장을 구하고 일하며 스트레스받고 그렇게 살지 않아도 됐습니다. 동료들과 실적을 놓고 경쟁하지 않아도 됐고 보스에게 잘 보이려고 애쓰거나 실직걱정을 할 필요도 없었습니다. 먹고 사는 문제만 해결돼도 인생이 얼마나 가볍겠습니까? 저도 제일 힘든 게 언제나 돈입니다. 여러분도 그럴 겁니다.

아담에겐 외적 환경은 물론 인간성도 완벽했습니다. 아담이 처음 인생을 시작하고 하나님과 벗처럼 지낼 때는 아담이 범죄하기 이전이라 그의 심령은 죄로 오염되지 않은 순수한 하나님의 형상 그대로의 인성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는 악한 생각이나 정욕이나 탐욕이나 이런 것 때문에 힘들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대로 살고 싶은데 육신의 욕망에 져서 죄책감에 시달리고 자신에게 실망하는 것도 참 힘든 일입니다. 여러분도 경험이 있을 것입니다. 아담에겐 이런 악순환은 없었을 것입니다. 아담은 어떤 죄책감도 느끼지 않았을 것이고 그래서 어떤 압박감도 없었을 겁니다.

바울 사도께서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누가 이 사망의 몸에서 나를 건져내랴 라고 말할 때 그 마음이 얼마나 힘들었을지 짐작이 갑니까? 저는 제 이야기처럼 느껴집니다. 하나님 말씀대로 살고 더 주님께 가까이 나가고 주님을 닮고 싶은데 죄에 오염된 육신의 정욕과 탐심과 교만으로 또 넘어지고 실패하곤 합니다. 제가 믿음으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미 의롭다함을 얻은 걸 믿어 의심하지 않지만, 저는 지금도 죄의 욕망과 싸우느라 곤고함을 느낍니다. 범죄하기 전에 아담은 전혀 그럴 필요가 없었을 것입니다. 그는 항상 내적 평안을 누리고 하나님과 화평하게 살았습니다.

지금 몇 가지 살펴본 조건만으로도 아담은 어려운 환경 때문에 인생이 힘들다거나 신앙생활하기 어렵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아담에게 비하면 우리는 좀 환경이나 조건 탓을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아담처럼 물질적으로 풍요롭지 못해 먹고 살기 위해 돈벌어야 하고, 돈 벌기 위해선 세상에 나가 경쟁 속에 살면서 실직하지 않을까 실패하지 않을까 늘 노심초사합니다. 우린 죄에 오염되어 인간성도 못돼서 좋은 모습을 보이며 안 그런 척 사는 게 참 힘듭니다. 그러고 나면 위선자처럼 느껴져 맘도 안편합니다.

이렇게 좋은 여건 속에 살면서도 아담은 단 하나 금지령을 지키지 못해 죄를 짓고 인생을 망쳤습니다. 하나님은 아담에게 동산 중앙에 있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따 먹지 말라고 금하셨습니다. 그걸 따 먹으면 반드시 죽게 될 거라고 경고하셨습니다. 아담과 이브가 이 말씀을 생명처럼 지켰다면 아무리 사탄이 유혹했더라도 막아낼 수 있었을 것입니다.

인류를 대표하는 사람이라는 차원에서 바울은 예수님을 둘째 아담이라고 불렀습니다. 이 둘째 아담인 예수님은 사탄이 유혹했을 때 하나님 말씀으로 다 물리치셨습니다(마4:11). 사탄이 여러분도 유혹할 겁니다. 그 때마다 말씀을 가지고 방어하기 바랍니다. 그러기 위해 전신갑주로 무장하는 군인처럼 그리스도인은 말씀의 검과 믿음의 방패로 무장되어야 합니다.

사탄의 본업은 거짓말로 성도들을 넘어뜨리는 것입니다. 사탄을 탓하며 책임을 전가하려고 해서도 안됩니다. 아무 소용없습니다. 그런다고 하나님이 정상참작을 해주시지도 않습니다. 왜냐면 하나님께서 미리 사탄은 그런 짓을 할 거니까 대비하라고 미리 경고하셨기 때문입니다. 대비하지 않고 있다가 육신의 생각이 충만해서 시험에 들고 실족하고 그런 건 누굴 탓할 수 없고 죄다 자기 잘못입니다. 사탄의 공작에 넘어가 시험에 든 후에 목사를 탓하고 교회를 탓하고 그래봐야 아무런 유익이 없을 겁니다. 자기 영혼만 망합니다. 그러니 여러분도 정신 바짝 차리고 말씀을 무장하고 신앙생활 잘 하기 바랍니다.

사탄은 아담보다 이브를 공격하는 게 성공확률이 높다는 걸 안 것 같습니다. 이건 남녀의 문제가 아니고 아담과 이브의 차이였을 겁니다. 왜냐면 남편보다 신앙생활 더 잘하는 아내들이 많거든요. 제가 한국에서 장년 목회할 때 성경공부나 신앙훈련에 남편들보다 아내들이 더 많이 열심으로 참여하고 심방이나 전도에도 대부분 여전도회원들이 동참했습니다. 그래서 여자라서 이브가 쉽게 넘어간 건 아닙니다,.

이브가 선악과를 먹으라고 줄 때 아담이 그걸 먹으면 안 된다고 제지하고 선악과를 먹은 이브에게 잘못을 깨닫게 하고 하나님께 가서 용서를 구했더라면 결과는 달라졌을 것입니다. 왜냐면 인류를 대표하는 자는 아담이지 이브가 아니었기 때문에 아담이 범죄하지 않고 하나님 말씀을 굳게 지키며 아내를 회개의 길로 인도했다면 하나님께서 이브를 용서해주시고 먹고 살기 위해 수고하는 고통과 죽음의 형벌은 내리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부부는 동격입니다. 서로 존중하고 사랑하고 배려하며 사는 게 주님의 뜻입니다. 남편이 무슨 말을 할 때 가볍게 여기면 안되고 아내가 무슨 제안을 할 때 무시해도 안됩니다. 그것은 한 몸을 이루며 살게 하신 주님의 권위를 무시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의 말씀을 위반할 때는 남편은 아내를 바로 이끌어야 하고 아내도 남편이 주를 잘 섬기도록 도와주어야 할 것입니다. 아담은 이 점에서 실패했습니다. 아내가 아무리 사랑스러워도 하나님의 명령을 위반하는 행동을 방관하거나 따라가선 안됩니다. 그렇게 하면 둘 다 죽는 길입니다.

아담과 이브가 신앙생활에서 실패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가볍게 여긴 것입니다. 가볍게 여기진 않았다고 할지 모르나 결과는 그렇게 되었습니다. 먹으면 죽는다고 했는데, 정말 죽는다고 믿었다면 먹었겠습니까? 설마 그럴까 싶었을 것입니다. 사탄의 말을 듣고 죽는 게 아니고 지혜롭게 된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릅니다. 하나님 말씀은 안 믿고 사탄의 말을 믿는단 말입니까? 변명의 여지가 없습니다. 그런데도 이들은 서로 남 탓했습니다. 아내를 탓하고 사탄을 탓하고 그랬습니다. 그래야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거짓말로 이브를 속이고 범죄하게 만든 사탄을 가만 둘 수 없지만, 그 보다 하나님 말씀을 믿지 않고 다른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유혹을 받은 이브와 아담 자신의 잘못 아닙니까? 어떤 사람은 못 먹게 할 것 같으면 선악과 나무가 없었으면 더 낫지 않았겠느냐고 합니다. 우리가 다 이해 못해도 그게 거기 있어야 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이 놔두신 것 아니겠습니까? 설마 하나님께서 아담과 이브 시험들게 하려고 놔두셨겠습니까? 제 생각에 아무런 제한이 없으면 아담이 자기 분수를 잊어버릴 수도 있을 것같습니다. 뭔가 한 가지라도 맘대로 할 수 없는 게 있어야 피조물의 한계를 인식하지 않겠습니까?

인류 역사에서 오직 아담만 완벽한 조건에서 인생을 시작했던 유일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환경과 신앙생활의 관계를 좀 생각해봤습니다. 아담은 환경이 좋다고 신앙생활을 잘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해줍니다. 아무리 좋은 환경이라도 인간은 뭔가 부족하다고 유혹을 받을 겁니다. 사탄도 가만 놔두질 않을거고요. 믿음에서 멀어지고 시험에 들 때 사탄의 속삭임에  있습니다. 사탄의 활동자체를 우리가 막진 못합니다. 사탄이 유혹할 때 넘어가지 말고 막아내는 게 중요합니다. 하나님 말씀을 굳게 붙잡고 사는 것입니다. 사탄이 유혹할 때 예수님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게 아니고 하나님 말씀으로 산다는 성경구절로 방어하셨습니다,. 천하만국의 영광을 주겠다고 유혹할 때는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는 말씀으로 사탄을 물리치셨습니다.

교우 여러분, 완벽한 환경에서 신앙생활에 실패한 아담과 이브를 보면서 세속적 조건으로서 삶의환경이 좋다고 자만하지도 말고 안좋다고 불평하지도 말기 바랍니다. 사람의 생명의 소유의 넉넉함이 있는 게 아니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신앙생활의 성패가 환경에 달려 있는 건 아닙니다. 어렵기 때문에 더 믿음으로 살 수도 있습니다. 어려운 여건에서 하나님 잘 섬기고 복 받아 좋아지는 게 더 바람직한 것 아닙니까? 그리고 하나님 말씀을 맘대로 생각하며 살아선 안됩니다. 주께서 하지 말라는 건 아내가 하자고 해도 안 된다고 중심을 바로 잡고 가정을 이끌어가기 바랍니다. 아내가 잘못된 선택을 하더라도 남편이 그걸 바로 잡고 남편이 어긋나가면 아내가 주의 길로 가도록 돕고 그래야 복받는 가정을 세울 수 있다는 걸 기억하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