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이기는 힘은 어디서 오는가?

고전15:50-58 / 세상을 이기는 힘은 어디서 오는가?

오늘은 예수님의 부활을 기념하는 주일입니다. 이 시간엔 예수님의 부활이 갖는 의미를 살펴보고 부활의 신앙을 가진 그리스도인은 이 세상을 어떤 마음으로 살아가야 하는지 말씀드리겠습니다. 먼저 예수님의 부활에 대한 역사적 증언부터 살펴보겠습니다.

오늘 본문 고린도전서 15장은 ‘부활장’이라고 불리기도합니다 바울 사도는 고린도교우들에게 전한 복음을 상기시키며 예수님의 부활을 다시 상기시켰습니다. 이것은 부활이 복음의 핵심이기 때문입니다. 바울 사도는 부활의 진정성을 강조하기 위해, 먼저 부활에 관한 성경의 예언을 언급하고 이어서 부활의 목격자들을 열거했습니다. 예수님은 부활하신 후 40일을 세상에 머무신 후 승천하셨는데, 이 40일 동안 제자들이 예수님의 부활을 믿을 수 있게 베드로와 12제자에게, 500여 형제에게,  도마와 바울에게 부활하신 모습을 보여주셨습니다.

바울께서 고린도교인들에게 예수님의 부활을 증거할 당시는 부활을 목격한 사람들 대부분이 아직 살아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니 고린도교회가 그들을 불러 증언을 직접 들어볼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실제로 그렇게 했을 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지금은 부활을 직접 본 사람은 아무도 살아있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우리가 예수님의 부활을 믿을 수 있는 것은 영감으로 된 거짓 없는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이 예수님의 부활을 역사적 사실로 증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죽은 사람이 다시 살아난다고 믿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닙니다. 제자들도 예수님이 말을 듣고 직접 확인해보지 않고는 믿을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습니다. 제자들은 나사로가 죽어 장사 지냈다가 예수님의 부름을 받고 다시 살아나는 것을 목도했음에도 불구하고(요11:44) 예수님의 부활을 받아들이는데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저는 눈으로 직접 보든 보지 못하든 믿음은 하나님의 은혜와 성령의 역사 때문에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기독교신앙에서 부활이 없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바울은 죽은 자의 부활이 없다면 예수님도 한 사람으로서 죽으신 것이니까 예수님도 다시 살 수 없었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랬다면 기독교신앙은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죽음으로 끝난 예수님을 믿음으로 구원 얻을 수 있다고 어떻게 확신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걱정하지 마세요. 성경대로 예수님은 3일만에 죽음에서 부활하셨고, 예수님의 부활은 죽은 자가 다시 살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해 보인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혈과 육은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니고데모에게 “사람이 거듭나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다”(요3:3)고 하신 말씀과 같은 뜻입니다. 예수 믿고 거듭난 성도들만 마지막 나팔 소리가 울릴 때 사망의 권세를 이기고 순식간 신령한 몸을 입고 생명으로 부활할 겁니다. 예수님의 부활로 사망의 권세는 깨졌습니다.  

대부분 종교는 이 세상에서 어떻게 사느냐, 주로 선행에 근거해 내세가 결정된다고 말합니다. 불교와 힌두교는 삶과 죽음이 끊임없이 반복되는 윤회를 주장합니다. 다음 생에 뭐로 다시 태어날지는 이번 생에 어떻게 사느냐에 따라 결정된다고 합니다. 이슬람교는 기독교처럼 천국과 지옥이 있다고 하는데 어디로 가느냐는 현세에서 삶의 결과에 따라 결정되고 지옥은 영원한 형벌이 아니고 정화의 과정으로 악한 자라도 지옥에서 철저한 영적 정화를 거치면 천국에 동참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고 합니다. 가톨릭도 선행에 의한 구원가능성을 인정합니다.

선행이 아닌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을 믿음으로 구원 얻어 천국에 갈 수 있다는 것은 기독교만의 독특한 신앙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믿고 구약성경을 경전으로 인정하는 면에선 유대교는 기독교는 같지만, 유대교는 예수를 구세주 메시야로 인정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는 믿음이 아니라 구약의 율법의 행위에 의해 구원받는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할례를 받고 안식일을 지키고 조상의 유전에 따라 종교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유대인이든 이방인이든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을 믿음으로써만 구원을 얻고 영생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율법의 행위로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 하심을 얻을 만큼 온전히 율법을 다 지킬 수 있는 의인이 세상엔 없기 때문입니다(롬3:10, 20). 현세에서 어떻게 사느냐에 따른 선행을 가지고 내세를 결정하면 천국 갈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인류에게 구원 얻을 수 있는 새로운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그것이 예수님의 대속을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얻어 천국 가는 것입니다(롬3:21).

바울은 57절에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이김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한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이김의 대상은 뭐겠습니까? 세상이고 세상의 욕심이고 세상의 힘든 인생입니다. 아담과 이브가 범죄했을 때 하나님은 아담에게 수고하고 땀을 흘려야 먹고 살 수 있을 것이라고 선언하시고 에뎀 동산에서 내 보냈습니다. 그 후부터 인생은 힘든 것이 돼버렸습니다. 예수 믿어도 이 세상에서 사는 동안은 먹고 사는 일은 힘들 겁니다. 하나님 나라에 들어간 후에야 수고로운 인생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입니다.

바울에게도 세상의 삶은 힘들었던 것 같습니다. 선교사로 살면서도 얼마나 힘들었는지 살 소망이 끊어지고 당장이라도 세상을 떠나 주님께 가는 게 더 좋겠다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저도 그냥 지금 세상 떠나 주님께 갈 수 있으면 좋겠다 싶을 때가 있습니다. 여러분이 직장을 그만 두고 싶은 충동을 받는 것처럼 저도 그만 두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그렇다고 그럴 수 없는 게 인생 아닙니까? 가족과 교회 생각하면 지금 떠날 때가 아니고 여기 더 남아서 수고해야 합니다.

58절 보면, 바울은 고린도 교우들에게 “부활의 소망을 가지고 견고하며 흔들리지 말며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가 되라”고 권했습니다. 우리도 이 말씀에 주목해서 지금 섬기는 일에 더욱 힘쓸 수 있기를 바랍니다. 구원은 믿음으로 얻는 것이지만, 칭찬과 상급은 주님을 위해 수고한 만큼 얻게 될 겁니다. 바울 자신도 부활의 소망을 가지고 상 받기 위해 열심히 전도하며 교회를 섬겼습니다. 주님을 위해 일할 수 있는 시간도 통장의 잔고처럼 제한되어 있습니다. 기회가 주어질 때 사양하지 말고 주의 일에 힘쓰기 바랍니다.

예수님은 나사로 무덤 앞에서 슬퍼하던 마르다에게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라”(요11:25,26)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주님 오시기 전에 죽어 육의 몸은 흙으로 돌아가더라도 재림 때 주님이 부르시면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살아날 것입니다. 우리가 살아 있는 동안 주님이 재림하시는 경우에는 죽지 않고 변하여 신령한 몸을 입고 주님과 영생의 복을 누리게 될 겁니다.

부활의 소망은 바울 사도에게는 세상을 이기는 힘이었습니다. 그는 고린도 교우들에게 “부활의 소망을 가지고 견고하며 흔들리지 말며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가 되라”고 권했습니다. 우리도 이 말씀에 주목해서 지금 섬기고 있는 자리에서 더욱 분발합시다. 지금의 수고가 주님을 뵈올 때 칭찬과 상을 받게 해줄 겁니다. 구원은 예수 믿는 사람에겐 누구나 공평하게 주어지지만, 칭찬과 상급은 주님을 위해 수고한 만큼 얻게 될 겁니다. 부활의 소망으로 세상을 이기고 주 안에서 승리하기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