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만찬

고전11:28-34 / 주의 만찬(The Lord’s Supper)

오늘은 교회 절기상 Palm Sunday(종려주일)입니다. 종려주일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돌아가시기 한 주전 예루살렘성에 들어오실 때 사람들이 종려나무 가지를 가지고 나와 환영한 것에서 생겨난 말입니다(요12:13). 그리고 이번 주간은 고난주간이니 주님의 고난을 묵상하며 나름대로 주님의 고난에 동참하고 다음 주일에 주님의 부활의 기쁨을 누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먼저 주의 만찬과 관련된 고린도교회 상황부터 살펴봅시다. 고린도교회는 교인들사이에 분쟁이 있었기 때문에 주의 만찬을 먹을 때도 다 함께 먹지 않고 자기 편들끼리 어울려 먹고, 나중에 오는 교인들을 기다리지 않고 먼저 온 교인들이 준비한 음식을 배부를 때까지 취하도록 먹어서 나중에 참여한 사람은 먹을 게 부족했습니다. 주의 만찬에서 취하도록 먹는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은 상상이 잘 안됩니다.

오늘날 대부분 교회는 약식으로 성찬식을 하기 때문에 배불리 먹거나 취하는 일은 없습니다. 우리도 기념하는 차원에서 약식으로 성찬을 합니다. 그러나 바울 당시만 해도 예수님이 제자들과 유월절 식사로서 만찬을 드실 때처럼 많은 음식을 준비해서 한끼 식사로서 만찬을 나눈 것 같습니다. 예수님과 제자들의 만찬은 유월절 식사 자리였기에 당연히 포도주가 사용되었습니다. 고린도교회 역시 포도주를 사용한 것 같습니다. 지금 우리는 포도 음료를 사용하지만 포도주를 사용해도 됩니다.

유월절 만찬은 애굽에서 탈출한 것을 기념하는 식사였습니다. 마태복음26장 17절 이하를 보면, 무교절 첫날에 제자들이 예수님께 유월절 잡수실 것을 우리가 어디서 예배하길 원하십니까 물었습니다. 그 때 예수님은 베드로와 요한에게 성내로 들어가면 물동이를 이고 가는 사람을 만날 것이니 따라가면 예비된 큰 다락방으로 안내해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눅22장). 두 제자는 예수님이 일러주신대로 가서 유월절 식사를 준비하고 돌아왔습니다.

유월(踰越)이란 단어는 넘어가다(Passover)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내보내라고 애굽에 10가지 재앙을 내리셨는데, 그 마지막 10번째가 애굽의 모든 장자가 죽음을 당하는 재앙이었습니다.  재앙을 내리시기 직전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자손들에게는 어린양을 잡아 피를 문설주에 바르면 재앙의 천사가 그 집은 그냥 넘어가 재앙을 면할 수 있게 해주셨는데, 그걸 기념하는 것이 유월절이었습니다. 레위기23장 5절 이하에는 유월절과 무교절을 지키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저물 때 예수님과 제자들은 유월절을 기념하기 위해 다락방에 모였습니다. 그 식사자리에서 예수님은 떡을 가지고 축복하시고 제자들에게 떼어주면서 “받아 먹으라 이것이 내 몸이니라”(마26:26)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다음 또 잔을 가지고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신 후 제자들에게 주며 “너희가 다 이것을 마시라 이것은 죄사함을 얻게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마26:27)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예수님께서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피를 흘리신다고 말씀하신 부분입니다. 피를 흘린다는 말은 죽음을 가리키는 말인데, 예수님이 죽으시는 목적이 많은 사람들이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그런다고 밝히신 것입니다. 이 구절이 예수님께서 나의 죄를 담당하고 죽으셨고 예수님의 대속을 믿으면 구원 얻는다고 믿을 수 있는 근거가 됩니다. 언약의 피에서 언약은 구원의 약속으로 예수 믿으면 구원얻게 해준다고 약속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마지막 유월절 만찬의 자리에서 제자들에게 떡을 가지고 “내 몸이라”(눅22:19절),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20절) 라고 말씀하시고 너희가 이를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성찬식은 예수 믿는 그리스도인들이 떡과 잔을 가지고 예수님의 대속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예수님의 죽으심을 기념하는 의식입니다. 우리가 조금 후에 떡과 잔을 나눌 때 예수님께서 나의 죄를 담당하고 십자가에 달려 피흘려 죽으셨다고 믿는 마음으로 감사하며 떡과 잔을 나누기 바랍니다.

바울 사도는 성찬으로 주의 죽으심을 기념할 뿐만 아니라 “주의 죽으심을 오실 때까지 전하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죽으심을 전하라는 것은 세상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라는 말씀입니다. 여러분도 고난 주간에 가족이나 친구나 직장 동료 중에 전도할 사람이 보이면 예수님의 죽으심의 의미를 설명하며 전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바울이 오실 때까지라는 말을 사용할 당시엔 주님이 곧 오실 것으로 생각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예수님이 언제 오신다고 명시하신 것은 아니지만, 내가 가서 처소를 예비하면 너희를 내가 있는 곳으로 인도하겠다고 하시고 가셨기 때문에 제자들과 초대교회는 머잖아 주님이 다시 오실 것으로 기대했기 때문에 전도에 열심이 있었습니다. 지금도 임박한 재림신앙을 가진 사람들이 더 열심히 전도합니다. 교회사에서 첫 로마교황 그레고리1세가 즉위한 590년 이후부터 종교개혁이 일어난 1517년 사이를 중세라고 하는데, 그리스도의 재림을 고대하는 자들이 유럽에 열심히 전도하며 다니니까 로마 황제가 위협을 느끼고 불편하게 생각했답니다. 왜냐면 전도자들이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시어 세상 권세자들을 심판하시고 성도들이 주님과 함께 천 년 동안 세상을 다스릴 거라고 주장했기 때문입니다. 이게 소위 천년왕국에 대한 전천년설입니다.

전천년설은 천년왕국이 시작되기 전에 예수님이 지상 재림하신다는 주장인데, 세상 권세자들이 좋아할리가 없습니다. 그래서 전천년주의 사상을 가진 자들에게 박해가 가해지자 기독교지도자들은 전천년사상을 바꿀 필요를 느꼈고, 어거스틴 같은 사람은 무천년주의를 주장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주장의 요지는 이미 예수님이 AD30년 왕으로 오셔서 다스렸다는 것인데, 가톨릭교회가 종교개혁 때까지 이 무천년주의를 받아들였습니다. 이 기간 동안 전천년주의를 주장하는 자들은 광신도취급을 당하며 목베임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다가 종교개혁이후 상황이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루터와 칼빈 등 종교개혁자들도 당장 종말론을 바꾸기 어려워 무천년주의를 유지했는데, 1800년에서 1900년대  영적 각성기에 들어서 선교의 붐이 일어나기 시작했는데, 그 때 선교사들은 예수님의 재림이 가까웠다고 믿고 선교현장으로 나가 복음을 전하기 시작했습니다. 대표적인 분들이 첫 인도선교사 윌리엄 케리, 허드슨 테일러, 한국에서 활동한 언더우드/아펜셀레 등입니다. 이들은 대부분 전천년주의 종말신앙을 선교지에 전파했습니다. 이런 선교사의 영향으로 새워진 개신교회는 전천년설을 따르게 되었는데, 한국교회 목회자 중에도 전천년설을 지지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20세기 초에 생긴 오순절 교단도 전천년신앙을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18세기 중엽부터 세상이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산업혁명으로 경제가 발전해서 세상이 천국처럼 살기 좋아지니까 무천년을 주장하던 사람들 중에서 후천년주의를 주장하는 사람이 나왔습니다. 후천년주의는 세상이 점점 더 좋아질 때 주님이 오신다고 믿는 것으로 세상을 긍정적으로 보는 관점입니다. 그러다가 1914년 1차 대전과 1937년 2차 대전을 거치면서 후천년을 주장하던 사람들이 잘못생각했다면서 일부가 무천년주의로 다시 돌아왔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2차 대전이 끝난 후 세상이 다시 평안해지고 좋은 방향으로 발전하고 자유주의 신학이 일어나면서 다시 후천년주의를 주장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기 시작했습니다.

후천년 사고방식은 세상과 나라를 개혁하여 새롭게 만들자 우리가 잘하면 그렇게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의 사회활동, 사회적 책임, 등을 더 강조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이런 사상을 가진 사람을 좋아합니다. 반면에 전천년 사고방식은 세상은 점점 악해져 심판을 받고 멸망할 것이니 그 전에 열심히 전도해서 영혼을 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지금 소수이고 교회보다는 선교단체에 많습니다.

끝으로 합당치 않게 성찬에 참여할 때 주의 몸과 피를 범하는 죄를 짓게 된다는 것을 유념할 필요가 있습니다. 성찬에 참여하기 전엔 믿음에 있는지 여러분 자신을 살피고 혹시 회개하지 않은 죄나 양심의 거리낌이 있다면 회개하고 용서를 구하기 바랍니다. 마음이 불편하다고 성찬을 회피하는 사람도 있는데, 예수님의 대속을 깨닫고 믿는 교우들은 거리끼는 마음이 있으면 회개하고 은혜를 의지하여 믿음으로 성찬을 들기 바랍니다. 이제부터 성찬을 나누겠습니다. 먼저 떡을 돌리고 다 받은 후에 함께 들겠습니다. 그 다음 잔도 그렇게 나누겠습니다. 성찬을 나눌 때 신앙고백과 은혜가 충만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