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약함 속의 능력

고후12:1-10 / 연약함 속의

오늘은 연약함 속의 능력이라는 제목으로 하나님 말씀을 증거하겠습니다. 오늘 본문 가운데는 바울 사도가 ‘육체의 가시’라고 표현한 어떤 고통을 제거해달라고 세번이나 기도했는데, 이에 대해 주님께서 바울에게 “내 은혜가 네가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데서 온전하여짐이라”고 말씀하시며 그냥 감당하고 살라고 하셨다는 것입니다.

지난 주일 3장에서 오늘은 본문은 12장인데 그 사이에 나오는 복음과 전도, 환난과 고난, 회개, 격려와 위로, 헌금과 성도를 섬기는 일, 이런 주제들은 고린도전서에서 말씀드렸기 때문에 건너뛰었습니다.

1절에서 바울은 할 수 없이 환상과 계시를 말하겠다고 했습니다. 바울이 14년 전에 있었던 체험이라고 밝혔는데, 고린도후서를 쓸 당시를 기준으로 14년 전이면 AD40년 전후였습니다. 그 때 바울은 고향 다소로 내려가 있었는데, 거기서 셋째 하늘에 이끌려 올라가 환상을 보고 낙원으로 인도되어 계시의 말씀을 듣는 영적 체험을 한 것 같습니다.

바울이 14년 전의 환상과 계시를 언급한 이유는 사도로서 뭔가 부족하다는 비난에 변호하려는 것이었습니다. 10장과 11장 말씀 중에는 바울이 편지에 쓴 말씀을 보면 힘이 있는데 실제로 대면해 보면 말도 잘 못하고 사도적 권위가 부족해보인다고 말하는 자들이 있었습니다. 고린도교회엔 바울 외에도 베드로와 아볼로를 따르는 교인들도 있었기 때문에 이런 말에 동조하는 사람들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선교활동과 교회에서 설교하며 가르치는 사역에 있어서 말을 잘하는 것이 장점인 것은 사실이지만, 말을 좀 못한다고 해서 그게 단점이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왜냐면 전도와 설교의 목적은 구원 얻는 믿음을 갖도록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것이라 예수님이 하신 일을 제대로 전달할 정도의 말 실력이면 충분합니다. 그리고 믿음은 말 잘해서 생기는 것도 아닙니다. 성령께서 깨닫고 믿어지게 해주셔야 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고린도교인들에게 “내 말과 전도함이 지혜의 권하는 말로 하지 아니하고 다만 성령의 나타남과 능력으로 하여 너희 믿음이 사람의 지혜에 있지 아니하고 다만 하나님의 능력에 있게 하려고 하였노라”(고전2:4,5)고 말한 적도 있습니다.

바울을 비난한 자들은 그전부터 바울을 대적한 유대인들이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들은 바울과 다른 복음을 전하기도 했습니다(고후11:4) 바울이 전한 복음은 지금 우리가 믿고 있는 오직 예수님을 믿음으로만 구원 얻는다는 것이었습니다. 믿음으로 구원얻는 것은 이방인은 물론 유대인에게도 구원얻는데 더 쉬운 은혜의 길이었지만, 율법 아래 익숙해져있는 그들에겐 못마땅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이 선교하는 지역에 거주하던 유대인들은 바울을 대적했고, 바울이 떠나면 교인인척 숨어 들어와서 예수 믿더라도 할례도 받고 안식일도 지켜야 한다고 교인들을 유혹했습니다.

지금도 목회자들은 안팎으로 리더쉽에 대한 도전을 받습니다. 설교를 잘못한다고 비판하는 교인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설교를 잘하는 기준이 뭐라고 생각합니까? 말 잘하고 재미있으면 설교 잘하는 걸까요? 또 능력 없다고 불평하는 교인도 있습니다. 어떤 목사라도 능력 받기 원하지만, 그거야 말로 원한다고 맘대로 되는 게 아니잖습니까? 고린도전서 12장 성령의 은사부분에서 이미 살펴본대로, 성령께서 그 뜻대로 각 교인들에게 나눠주시는 게 은사입니다. 목사 뿐 아니라 교인 여러분들이 전도하며 교회를 섬기기 위해 다양한 은사를 받는 게 맞습니다. 목회자는 가르치는 은사, 섬김의 은사, 행정의 은사 등이 일차적으로 필요합니다.

‘환상과 계시’, ‘셋째 하늘’, ‘몸 안에 있었는지 몸 밖에 있었는지’, ‘낙원에 이끌려’ 이런 표현들은 영적 차원을 보여줍니다. 우리는 바울의 환상과 계시를 통해서 셋째 하늘과 낙원이 존재한다고 믿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바울이 꾸며낸 이야기라고 반박하고 싶은 사람이 있을지 모르지만, 바울의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과 인품을 생각할 때 영적 권위를 내세우기 위해 지어냈다고는 상상할 수 없습니다. 저는 셋째 하늘과 낙원에 가본 적은 없지만 주님이 계시는 영적 세계가 있다는 것을 믿습니다.

지난 수요일인가 스티븐 호킹이 세상을 떠났다고 합니다. 그는 ‘만물법칙’이라는 이론을 만들고 불랙홀의 존재와 특성을 밝히는 등 뉴튼과 아인쉬타인의 계보를 잊는 최고의 물리학자로 평가 받았습니다. 그러나 제가 알기로 호킹은 기독교신앙을 갖진 못했습니다. 천재적 재능과 최고의 지식을 가졌지만 호킹도 자기 지식으로 영적 세계는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그에 비하면 우리는 세상 지식에는 초보수준도 안 되지만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 나라의 소망을 가지고 살고 있으니 감사한 일입니다.

그 다음 육체의 가시에 대해 살펴보고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바울은 육체의 가시가 없어지도록 세 번이나 주님께 기도했는데 주께서 이미 네가 받은 은혜가 충분하다며 그냥 육체의 가시를 가지고 살라고 하셨다고 합니다. 육체의 가시가 뭔가에 대해서는 눈병, 또는 등의 통증(신경통), 아니면 유대인들의 박해였을 거라고 말을 합니다. 설이 많은 건 확실히 모른다는 뜻입니다.

그게 뭐든 바울 입장에선 고통스러워서 없어지게 해달라고 기도한 건데 주님은 그것이 교만해지지 않게 도움이 될 거라며 그냥 놔두셨습니다. 바울이 육체의 가시를 사단의 메신저라고 말했는데, 만일 육체의 가시가 질병이었을 경우엔 남의 병은 고쳐주면서 자기는 정작 고치지 못하니까 사단이 너에게 문제가 있다는 식으로 공격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바울도 괴로웠을 겁니다. 그런데 주님은 바울에게 어떤 문제가 있어서 낫지 않는 게 아니고 그 연약함을 통해 한편으론 겸손하게 하고 다른 편으로는 능력의 근원되신 주님이 더 증거되게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혹시 여러분 중에서도 질병이든 어떤 문제나 아킬레스건이든 있어서 해소되도록 주님께 거듭 기도하고 있는데, 아직도 그대로 있다면 주님께서 해결해주실 때까지는 바울의 고백과 설명을 참고하여 믿음으로 감당하고 겸손하게 더욱 주를 의지하기 바랍니다. 믿음이 없거나 뭘 잘못한 게 있어서 주께서 기도를 안 들어주신다고 오해하지 말기 바랍니다. 그렇게 생각할 잘못이 있다면 당연히 회개하고 용서받기 바랍니다. 우리가 기도하고 결과는 주님 뜻대로 되는 것입니다. 혹시 질병이든 어떤 신체적 약점이든 이런 걸 가지고 있는 교우들은 바울에게서 교훈과 위로를 얻기 바랍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연약함이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고 주님의 능력을 드러내는 통로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우리에게 보여주었습니다. 그렇게 되려면 바울처럼 믿음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예수님은 바울에게 전하려는 메세지는 “넌 이미 받은 은혜가 크니 육체의 가시는 그냥 견디며 살아라. 그 때문에 힘들 때마다 너 자신을 돌아보며 이 가시도 어쩌지 못하는 연약한 존재라는 걸 깨닫고 더욱 겸손하라. 그래야 내 능력이 너와 함께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바울은 주님의 뜻을 잘 이해하고 주님을 위해 약한 것과 능욕과 궁핍과 핍박과 곤란을 기쁘게 받아들이며 살았다고 합니다. 우리도 이런 바울을 본받읍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