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언과 방언

고전14:1-19 / 예언과 방언

오늘은 성령의 은사 중에 예언과 방언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바울께서 12장에서 성령의 여러 가지 은사를 열거했는데 그 때 예언과 방언도 언급했습니다(10절). 그런데 14장에서 다시 신령한 것을 사모하라고 하면서 예언과 방언을 비교하면서 좀더 자세히 설명했습니다. 예언과 방언이 무엇이고 어떻게 다르고 교회에서 어떤 목적으로 사용되어야 하는지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예언과 방언에 대해 바울 사도는 매우 긍정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습니다. 바울 사도는 고린도교회에 “특별히 예언을 하려고 하라”(1절), “(나는 너희가) 특별히 예언하기를 원하노라”(5절)고 말했습니다. 이 두 구절은 바울께서 일반 교인들도 예언의 은사를 받아 사역하는 것을 금하지 않고 권장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 다음 바울께서 권장한 은사로서 예언이 어떤 것이었는지 본문에 언급된 특징을 살펴보겠습니다. 바울 사도는 예언이 사람에게 말하여 덕을 세우고 권면하고 안위하는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3절). 이런 특성상 예언은 불신자보다는 하나님을 믿는 자들을 위한 은사입니다(22절).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에게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했다고 하는 게 무슨 권면과 안위가 되고 또 경고가 되겠습니까?

바울은 방언에 대해서도 강조했습니다. 5절 보면 나는 너희가 다 방언 말하기를 원한다고 했습니다. 18절에는 바울이 고린도교인들 누구보다 방언을 더 말하는 것에 대해 하나님께 감사한다고 했습니다. 39절엔 방언 말하기를 금하지 말라는 지시도 내렸습니다.

그 다음 방언이 뭔지 살펴봅시다. 2절 보면, 바울 사도는 방언을 말하는 사람의 영이 하나님께 비밀을 말하는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여기서 비밀은 신비를 의미합니다. 방언은 영으로 하나님께 말씀하는 것이기 때문에 방언하는 사람이 무슨 말인지 몰라도 자기에게 유익하지만, 다른 사람은 무슨 말인지 모르면 아무런 도움이 안됩니다. 그래서 바울사도는 교회에서 여러 사람이 모였을 때는 통역해줄 사람이 없다면 방언을 말하지 말라고 했습니다(28).

예언과 방언 모두 성령의 은사입니다. 그러니까 성령을 통해 나타나는 영적 현상입니다. 내 입과 성대를 울려 음성으로 나오지만, 내가 내 마음과 의지로 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이 시켜서 하게 되는 것입니다. 물론 당사자가 하고 싶은 마음으로 성령께서 감동할 때 순종해야 가능합니다. 32절에 예언하는 자들의 영이 예언하는 자들에게 제재를 받는다는 말씀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예언과 방언을 계속 말하거나 중지하는 것은 당사자의 의지에 따라 컨트롤이 됩니다.

예를 들어 사도행전2장 4절을 보면, 오순절에 성령이 강림하셨을 때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서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를 시작했다고 나옵니다. 이것은 성령을 기다리며 모여 기도하던 제자들이 처음 방언을 말하게 된 것을 묘사한 것인데, 그 때 제자들은 방언이라는 게 있는지도 몰랐을 때입니다. 방언을 말해보려고 무슨 말을 따라 하거나 아니면 자기 맘대로 아무 말이나 하거나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방언이 여러 은사 중에 하나이니까 주님의 뜻에 따라서 은사로 주어질 수도 있고 다른 은사를 받을 수도 있습니다.

예언도 마찬가지입니다. 성령의 감동으로 하나님의 말씀이 자기에게 임하고 그것을 전하는 것으로 예언자는 본질적으로 전달자의 역할입니다. 구약시대 선지자들에게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은 여호와의 말씀이 자기에게 임하셨다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예레미야의 경우, 반복해서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니라”(1:4,11, 2:1)고 말하고 있습니다. 참 선지자는 하나님의 말씀이 없으면 침묵했습니다. 반면에 거짓 예언자들은 여호와의 말씀이 없는데도 자기 맘대로 예언했습니다(렘14:14,15). 거짓 예언자 속에는 사단의 영이 활동하기도 합니다(요일4:1). 그래서 예언기도 받는 것을 조심해야 합니다.

신약성경에도 방언과 예언의 사례가 나옵니다. 오순절 날 제자들 외에도 백부장 고넬료와 함께 있던 사람들도 성령이 임하신 후 방언을 말했습니다.(행10:45,46). 예루살렘에서 올라온 선지자들 중에 아가보라는 사람이 안디옥교회에서 천하가 크게 흉년이 들리라고 말했는데 글라우디오 때에 그렇게 되었다고 합니다(행11:28).  3차 전도여행 중에 바울이 에베소에서 어떤 제자들을 만나 믿을 때 성령 받았느냐고 묻자 성령이 있다는 말도 들어보지 못했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래서 바울이 그들에게 안수하자 성령이 임하여 방언도 하고 예언도 했다고 합니다(행19:6).

바울은 은사를 성령의 나타남이라고 표현했습니다(고전12:7). 성령이 임하여 계시더라도 영이시기 때문에 우리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은사는 보이는 현상이기 때문에 은사를 성령의 나타남이라고 표현한 것입니다. 베드로가 앉은뱅이를 일으키는 것을 본 사람들은 성령께서 그곳에서 역사하고 계신 것을 볼 수 있었을 것입니다. 오순절 때부터 성령이 임하시고 방언을 말하는 일이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방언을 말하면 성령이 임하셨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유독 방언만 성령 받은 증거로 보는 것은 잘못입니다. 성령의 은사에 방언만 있는 것도 아니고 모든 그리스도인이 다 방언의 은사를 받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고전12:30), 성령 받고도 방언을 말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바울 사도는 방언보다 예언을 더 강조한 것처럼 보입니다. 그것은 예언이 방언보다 우월해서가 아니고 기능적 차이 때문입니다. 교회에서 여러 사람이 모여 교제하며 권면하고 위로하는데 혼자 남이 알아듣지도 못하는 방언을 하고 있으면 자기는 은혜가 충만할지라도 다른 사람들에겐 방해가 될 겁니다. 그러니까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28절). 반대로 기도할 때 혼자 예언하고 있으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혼자 하든 여럿이 모여 하든 기도할 때는 예언보다 방언이 더 유익합니다. 통역이 안돼도 방언 기도는 자기에게 덕을 세우니까 유익합니다. 중보기도 할 때는 일상 언어로 기도하는 게 좋지만, 방언을 말하며 마음 속 생각으로 중보기도 할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성령을 통해 꿈이나 환상이나 어떤 방법으로 여러분에게 임하여 누군가에게 전하라고 하셨다면 당연히 그렇게 해야 할 겁니다. 예언자의 역할은 전하는 것까지입니다. 예언을 미끼로 유혹하거나 협박해서 어떤 이득을 취하려고 하는 것은 다 거짓 예언자들입니다. 그 점을 조심하면 됩니다. 사도행전의 오순절 방언은 다른 언어로 복음을 증거하는 것이 목적이었습니다.행2:5-11). 그 후 고린도 방언과 지금 우리가 하는 방언은 주로 영으로 하나님께 말씀하며 자기의 덕을 세우는 것입니다(고전14:2,3). 그러나 선교현장에서 복음을 증거하기 위한 목적으로 성령께서 방언을 말하게 할 가능성은 열려있습니다.

성령의 초자연적 은사가 지금은 끝났다고 생각하는 그리스도인들도 있습니다. 그렇게 믿는 이유는 끝났다고 배웠고 아직 체험하지 못했기 때문일 겁니다. 없다고 주장하다가 초자연적 은사를 경험하고 적극적으로 주장하는 사람들이 다수 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방언을 말하고 당장 나에게 일어나지 않더라도 치유를 위해 믿음으로 기도합니다. 여러분도 그러길 바랍니다. 저는 예언도 부정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방언보다 예언은 더욱 분별력이 필요합니다. 그 특성상 자신과 다른 교우들에게 강한 영향을 주기 때문입니다. 특히 앞 일을 점치듯 예언기도 받고 하는 일은 없기 바랍니다. 그러다 예언을 이용하는 사단의 영에 속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