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은사

고전13:1-13 / 사랑의 은사

오늘은 사랑의 은사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바울 사도께서 12장에서 여러 가지 은사를 열거한 후 “더욱 큰 은사를 사모하라 내가 또한 제일 좋은 길을 보이리라”고 말한 후에 13장에서 사랑에 대해 설명했습니다. 더욱 큰 은사를 사모하라고 말한 후에 사랑을 제시했기 때문에 여기선 사랑도 은사로 나옵니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사랑을 추구합니다. 갓태어난 아기도 엄마의 따뜻한 사랑의 손길을 갈망합니다. 2, 3살 어린이가 동생이 태어나면 귀여워하다가 사람들이 자기보다 아기에게 더 관심을 보이기 시작하면 스트레스 받고 동생을 미워하기도 한다고 합니다. 2,3살 어린이도 사랑이 뭔지 아는 거죠.

보통 사랑엔 세가지 종류가 있다고 합니다. 사람들이 경험하는 순서대로 말하면, 부모의 사랑, 그 다음 이성간의 사랑, 그 다음 하나님의 사랑일 것 같습니다. 여러분들은 대부분 이 세가지를 모두 경험했을 것 같습니다. 아직 한 가지라도 경험하지 못한 게 있으면 올 해 안으로 다 맛보게 되길 바랍니다.

헬라어에는 사랑을 표현하는 단어가 그 특성에 따라 아가페, 스톨게, 필로스, 에피투미아와 에로스, 등이 있습니다. 아가페는 바라는 것 없이 무조건 주는 헌신적 사랑입니다. 하나님 사랑, 부모님 사랑을 이 단어로 표현할 수 있습니다. 스톨게는 가족 공동체간의 사랑을 나타내며 부모와 자녀간의 사랑, 사제간의 사랑에 이 단어가 사용됩니다. 에피투미아와 에로스는 이성간의 육체적 사랑을 표현할 때 사용하는 단어입니다.

바울 사도께서 강조한 1절에 나오는 사랑은 아가페 단어가 사용되었습니다. 그러니까 바울께서 말하려는 사랑은 친구나 연인간의 사랑보다는 하나님께서 은혜로 주시는 사랑, 부모가 자녀에게 베푸는 희생적 사랑에 가깝습니다. 바울 사도는 은사로서 사랑의 가치나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해 방언, 예언, 지식, 능력, 믿음, 구제, 섬김 등의 은사와 비교해서 사랑이 없으면 이 모든 은사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말했습니다.

이 말씀에 근거해서 생각해보면, 신앙생활에서 성경을 많이 알거나 교회에서 일을 많이 하거나 헌금을 많이 하는 게 최고가 아니고 사랑이 넘치는 사람이 되는 게 최고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여기서 최고라는 표현은 우리가 마땅히 그렇게 되기를 바라는 정점을 의미합니다. 다른 말로 하면 예수님을 닮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성경 많이 아는 것 자랑하지도 말고 봉사나 헌금을 많이 하는 걸 내세우지 말기 바랍니다. 자랑하고 내세워도 용납될 수 있는 건 넘치는 사랑이라는 사실입니다.

바울께선 우리가 오해하지 않도록 4절에서 7절까지 사도께서 강조하는 사랑이 뭔지 13가지를 열거하고 있는데, 이것은 특정한 상황에서 구체적으로 표현되는 사랑의 다양한 특성들입니다. 그 특성은 오래 참음, 온유함, 질투하지 않음, 자랑하지 않음, 교만하지 않음, 무례하지 않음, 자기 유익을 구하지 않음, 불의를 기뻐하지 않음, 진리를 기뻐함, 모든 것을 참음(보호), 모든 것을 믿음, 모든 것을 바람, 모든 것을 견딤(인내)입니다.

사람은 타고난 성격에 따라 장단점이 있습니다. 앞서 살펴본 13가지 특성을 놓고 볼 때 여러분은 어떤 면이 강점이고 어떤 면이 약점입니까? 이 13가지를 모두 다 잘 하는 사람은 아마 한 사람도 없을 것 같습니다. 우선 저는 부족한 면을 보면, 감정이 상해 화가 났을 때, 자존심이 상했을 때 잘 참지 못해 비판적이고 공격적인 특성을 보입니다. 2,30대에 비하면 지금은 많이 좋아졌지만 그래도 여전히 부족합니다.

사람에 따라서 시기심이나 질투심이 강한 사람도 있고, 자기 유익만 구하는 이기심이 강한 사람도 있고, 자랑하기 좋아하고 예의가 없고 정직하지 못하고 신용이 없는 사람도 있을 겁니다. 여러분 중에 저와 10년 넘게 함께 지낸 분들도 있으니까 어느 정도는 우리가 서로 어떤 특성을 가지고 있는지 알고 있을 것입니다. 어떤 면은 본인보다 다른 사람들이 더 잘 알기도 하잖습니까?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이고 복음의 일꾼이기 때문에 변하여 새 사람이 되고 영적으로 성숙해져야 합니다. 예수 믿는 사람이 성품이 안 좋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고 복음전파에도 방해가 됩니다. 나름 이유가 있고 사정이 있더라도 교회당에서 다투는 것은 사랑으로 행하는 게 아니고 육신의 욕망에 지배당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사랑이 부족하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바울께서 사랑을 더욱 큰 은사라고 말했습니다. 은사로서 사랑과 타고난 성품으로 사랑이 많은 것과는 다른 것입니다. 예수 믿지 않는 사람 중에도 그리스도인보다 더 사랑이 많고 긍휼과 자비와 자선을 더 많이 베푸는 사람이 있습니다. 유재석도 선행을 많이 한다고 들었는데, 크리스쳔이 아닌 걸로 알고 있습니다. 우리가 타고난 성품으로는 사람이 많은 사람이 아니었을지라도 예수 믿고 사랑의 은사를 받게 되면 앞서 말한 13가지의 특성 중에 몇 가지 이상 갖게 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도 서로 높은 자리를 차지하고 싶어서 시기하며 다투었다고 합니다. 마가복음10장 35절 이하를 보면,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요한이 예수님께 주의 영광 중에서 우리를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앉게 해달라고 간청했습니다. 열 제자가 이 이야기를 듣고 두 사람에게 분개했다고 합니다. 제자들은 모두 바울께서 강조한 사랑의 특성을 위반하는 행동을 했습니다. 그들은 자기 유익을 구하며 질투했습니다.

야고보와 요한은 예수님이 ‘보아너게’란 별명을 붙여준 제자였습니다(막3:1). 보아너게는 ‘우뢰의 아들’이란 뜻이라고 합니다. 아마도 그들이 급하고 과격한 성격을 지니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막9:38). 이런 성격이 좋을 때는 불 같은 열정으로 나타나기도 합니다. 그런데 나중에 요한은 ‘사랑의 사도’로 불릴 만큼 사랑과 정이 많은 사람이 되었습니다. 사랑의 은사가 요한을 사랑과 정이 넘치는 눈물의 사람으로 변화시켰습니다.

제자 중에 누구보다 요한은 하나님을 사랑으로 정의했습니다. 요한일서4장 7절 이하를 보면,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께로 나서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독생자 예수님을 우리들의 죄를 사하시려고 화목제로 세상에 보내 십자가에 죽게 하신 것이 곧 사랑이라고 요한은 말했습니다.

교우 여러분, 바울 사도의 가르침에 따라 가장 큰 은사, 제일 좋은 길인 사랑의 은사를 사모합시다. 사랑의 은사를 받아 요한처럼 사랑과 정이 많은 사람으로 변할 수 있도록 기도합시다. 복음을 위해 일하는데 모든 은사가 다 소중하지만, 사랑이 없으면 교만해지고 자기 유익을 구하며 교회에 거치는 돌이 되기 쉽습니다. 11절 말씀처럼 우리는 아직 어린아이 수준이고 깨닫고 생각하는 것이 부족합니다. 더 성장해야 합니다. 그 성장의 표징이 다름 아닌 사랑입니다. 여러분 모두 사랑이 넘치는 복음의 일꾼이 되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