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결혼관

고전7:1-7 / 기독교 결혼관

한 주 동안 잘 지냈습니까? 성탄주일부터 수양회주일까지 네 번은 절기에 맞춰 주제별 설교를 하느라 고린도전서 강해를 중단했는데 오늘부터 다시 고린도전서 강해설교를 하겠습니다. 지난 번에 5장의 음행에 대한 가르침을 살펴봤습니다. 6장도 음행을 다루기 때문에 건너 뛰고 오늘은 7장 결혼을 주제로 하나님 말씀을 전하도록 하겠습니다.

7장은 다양한 경우의 결혼에 문제에 대해 고린도교회가 바울에게 질문한 것에 대한 대답형식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바울 사도는 음행을 피하기 위해 결혼이 필요하다는 것을 언급한 후 부부의 도리, 미혼자의 결혼, 과부의 재혼, 그리고 처녀의 결혼과 관련된 사항에 대해 주님의 명령과 자신의 견해를 권면형식으로 제시했습니다.

1절의 “너희 쓴 말에 대하여는” 이 구절은 결혼과 관련해서 고린도교회가 바울에게 자문을 구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세상 풍속에 따라 살아왔던 고린도교인들이 예수 믿고 난 후엔 결혼과 관련해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고 싶었을 것입니다. 이에 대해 바울은 남자가 여자를 가까이 아니함이 좋으나 음행을 피하기 위해서 결혼하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6절을 보면, 이 제안은 주님의 명령이 아니라 바울의 생각이었습니다. ‘가까이 하다’의 원어 합토마이는 ‘결혼하다, 육체적 관계를 가지다’는 뜻입니다.

제가 5장의 음행을 주제로 설교할 때 하나님은 인간은 성적 존재로 창조하셨기 때문에 성적 욕망 그 자체는 나쁜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정한 질서를 벗어나 욕망을 추구할 때 문제가 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독신으로 산 바울은 결혼에 대해 다소 소극적인 입장을 취한 것처럼 보이는 것도 사실인데, 그래서 결혼에 대한 바울의 견해가 기독교의 일반적 견해는 아닐 수 있습니다. 결혼은 음행을 피하기 위해 할 수 없이 하는 게 아니고 생육하고 번성하라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도 독신의 은사가 아니면 결혼하는 게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 다음 3절부터 5절 말씀은 남편과 아내의 도리에 대해 언급하고 있습니다. 결혼한 부부는 자기 몸을 자기 맘대로 하지 말고 배우자의 성적 요구에 맞춰 부부생활을 하라고 조언하고 있습니다. 배우자가 원할 때 피곤하다고 무드가 아니라고 거부하지 말고 성의를 다하라는 뜻입니다. 기도하기 위해 잠시 각방을 사용하는 것 외엔 부부는 싸우더라도 화해하고 한 방을 쓰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하기가 쉬운 것은 아닙니다.

이혼하는 부부들의 주된 이유가 성격차이라고 말은 하지만, 적잖은 부부가 성적 불만족 때문에 이혼한다는 설문조사결과도 있습니다. 배우자로부터 거절당해 자존심에 상처를 받고 관계가 멀어져 이혼하기도 하고, 배우자에게 성적 매력을 잃고 유혹을 받아 바람 피다가 이혼을 하기도 하고 그렇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가능하면 60대까지도 배우자에게 성적 매력을 느끼도록 자기 관리를 하는 게 좋습니다. 그렇게 해서 사단의 유혹과 시험을 이겨내기 바랍니다.

8절 이하엔 배우자가 먼저 세상을 떠나 홀로된 경우 아직 성적 필요를 느끼는 사람은 결혼하는 게 좋다는 권면이 나옵니다.  39절에도 비슷한 내용이 언급되어 있습니다. 개인차가 크기 때문에 나이로 기준을 삼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4,50대라도 혼자 사는 게 좋을 사람이 있고, 60이 넘었더라도 재혼하는 게 좋을 수 있습니다. 이 점에 대해 자녀들도 나중에 부모 중에 한 분이 먼저 세상을 떠나 남은 아버지나 어머니가 이성 친구를 갖게 될 때 그걸 이해하고 결혼을 원하면 그렇게 할 수 있도록 도와주기 바랍니다. 성적 필요를 느끼는 경우는 다른 사람 이목에 구애 받지 말고 가족들만 모여 간단하게라도 결혼식을 갖고 당당하게 부부로 사는 게 하나님의 질서를 따라가는 삶입니다.

10절에는 결혼한 사람에 대해 서로 갈라서지 말고 갈라섰다면 재혼하지 말고 그냥 지내든지 다시 합치든지 하는 것이 주님의 명령으로 제시되었습니다. 바울에 따르면 예수님은 배우자가 사망하지 않은 상태에선 재혼하지 말라고 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결혼한 교우들은 이혼은 꿈도 꾸지 말고 다투더라도 평생 함께 살아야 합니다. 그래서 미혼 청년들은 죽을 때까지 함께 살 각오를 하고 그 사람과 결혼을 결정하기 바랍니다.

지금은 이혼이 쉬운 시대고 흉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들도 쉽게 주님의 말씀을 어기는 것 중에 하나가 이혼과 재혼입니다. 교인들 중에도 성격차이나 경제적 이유로 이혼하고 또 다른 사람들을 만나 결혼하는 경우를 볼 수 있습니다. 이혼에 대해선 개신교보다 가톨릭교회가 더 엄격하게 주의 명령을 지키려고 노력하는 것 같습니다. 목회자들도 이 명령을 문자 그대로 교인들에게 요구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그럴 경우 교인들이 사생활 침해한다고 반발하고 교회를 떠나기도 하는데 가톨릭은 어디를 가든 하나의 교회라서 그게 어렵습니다.

12절 이하는 불신자 배우자를 둔 경우입니다. 성경은 원칙적으로 불신자와 결혼하지 말라고 가르치기 때문에 둘 다 불신자였다가 남편이든 아내가 예수 믿고 그리스도인이 된 경우라고 가정해봅시다. 계속 함께 살기 원하면 불신자 배우자라도 이혼하지 말라고 합니다. 예수 믿는 배우자는 불신자 배우자가 예수 믿을 수 있도록 더 잘 섬길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나 불신자 배우자가 예수 믿는 것을 반대하며 못 살겠다고 할 때는 이혼해도 된다고 허용했습니다.

25절 이하는 처녀 딸을 둔 부모에 대한 교훈인데, 이 문제도 고린도교회가 바울에게 자문을 구한 것 같습니다. 이에 대해 바울은 주께 받은 계명은 없지만 충성된 종의 입장에서 의견을 제시한다고 했습니다. 바울은 임박한 환난을 생각할 때 결혼하지 않고 그냥 처녀로 지내는 게 좋겠다고 말했습니다. 임박한 환난은 네로 황제의 기독교박해를 가리킵니다. 고린도전서가 AD 55년 전후에 기록되었는데 이 시기는 네로 황제의 기독교 박해가 시작된 때였습니다(AD54-68).

우리가 살펴본 것처럼 고린도전서 7장에 언급된 결혼의 지침은 바울 당시 고린도교회의 어떤 특정한 상황을 전제하고 제시된 말씀이라 우리가 문자 그대로 따라 하기엔 다소 거리감이 있는 부분도 있습니다. 그러나 결혼에 대한 주님의 명령은 시대를 초월해 지금도 그리스도인이 반드시 따라야 할 지침입니다. 남녀가 주 안에서 결혼하고 한 번 결혼한 부부는 배우자가 죽었거나 음행의 연고 외엔 이혼이 허용되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성격차이나 경제적 이유로 이혼할 생각은 하지 말기 바랍니다.

교제하는 커플들은 서로 확신이 있다면 교제를 시작하고 2,3년 사이에 결혼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더 오래 끌면 혼전관계의 유혹을 받거나 이성으로서 매력을 잃어 특별한 문제 없이 헤어지게 될 수도 있습니다. 결혼한 부부는 가능한 오래 동안 서로 연인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게 좋습니다. 안 그러면 사단의 시험에 빠질 수도 있습니다. 본문엔 정욕이 많이 강조되어 있는데, 특히 남성들이 그렇습니다. 결혼한 교우들은 배우자의 필요를 헤아리며 주 안에서 복된 삶을 살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