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기 전에(11/25/18)

신명기1:34-45 / 늦기 전에

오늘은 신명기1장 34절부터 45절 말씀을 살펴보겠습니다. 여기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화를 내시고, 만류하는데도 뒤 늦게 가나안을 정복하겠다고 나섰다가 참패당한 사건, 도움을 요청하는 백성들의 간구를  듣지 않으시는 하나님에 관한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세가지 사건을 좀더 살펴보고 이 이야기가 주는 영적 교훈과 신앙생활에 적용할 점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34절에 “ 여호와께서 너희의 말소리를 들으시고 노하사”  이 구절부터 살펴봅시다. 하나님을 화나시게 만든 말소리는27절에  나오는 “장막 중에서 원망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우리를 미워하시는 고로 아모리 족속의 손에 붙여 멸하시려고 우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셨다”고 한 것입니다. 모든 사람이 동시에 이렇게 외친 것은 아닐 것이고 어떤 선동자가 이런 불경스런 말을 하자 두려움에 떨던 사람들이동조한 것 같습니다.

그 다음 35절은 하나님을 화나가 하신 결과가 언급되어 있습니다. 불평하고 원망한 자들 중에서는 하나님께서 주기로 맹세한 좋은 땅을 볼 자가 하나도 없을 것이라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왜곡하고 명예를 짓밟는 거짓말을 하는 자들을 그냥 가만 놔두면 공동체가 유지되겠습니까? 그러니 오래 참으시기로 명성이 높으신 하나님이시라도 화를 내지 않을 수 없으셨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화를 내시면 아무 일없이 넘어가진 않습니다. 수 백명에서 수 천명이 징계로 죽음을 당하기도 했고 40년 동안 광야에서 고생하다 끝나기도 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을 화나시게 하는 불경스런 말을 하지 않도록 조심합시다. 또 교회 공동체에 안좋은 영향을 줄 수 있는 말도 삼가해야 합니다.

여러분은 언제 화가 납니까?  불의를 보고 화가 나는 건 당연하지만  무시당한다고 느낄 때 화가 나는 건 잘 다스려야 합니다. 저도 인내의 깊이가 부족해서 들어주다가 화가날 때가 있습니다. 화가 나는 것과 화를 내는 건 차이가 있는데, 화가 나더라도 화를 터뜨리지 말고 잘 다스려 대인 관계를 손상시키지 않기바랍니다. 제 경험으로 볼 때 화를 내면 증폭되고 더 자주 화가 나는 경향이 있습니다. 화가 날 때 그게 느껴지는데, 그 때 화를 내지 말고 다른 생각을 하면 그 화가 좀 가라앉습니다. 이런 식으로 하다보면 화가 날만한 상황도 화가 나지 않습니다.

그 다음 36절과 38절에 나오는 갈렙과 여호수아를 살펴보겠습니다.  아모리 족속의 손에 붙여 죽게 하려고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셨다는 것이 말이 됩니까? 그런데도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두 동조하며 불평하고 원망했습니다. 그런 분위기에서도 갈렙과 여호수아는 믿음의 중심을 잃지 않고 동요하는 사람들을 진정시키려고 노력했습니다. 백성들의 불신앙을 돌리는데는 실패했지만, 하나님은 그들의 노력을 인정하여 가나안 땅에 들어가 그 후손들이 기업을 얻을 수 있게 해주셨습니다.

신앙생활은 하나님 말씀을 붙들고 주님만 바라보며 따라가는 것입니다. 내가 사는 세대에 다수의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고 뭐라고 말하든 믿음의 중심을 잃지 말아야 합니다. 안그러면 많은 사람들의 말에 영향을 받아 잘못 생각하게 되고 틀린 결정을 따라가기 쉽습니다. 저는 하나님이 허락하시면 한국으로 돌아가 여생을 마치고 싶은 마음도 있고 해서 한국의 안보상황이 걱정이 됩니다. 그동안 전력을 보면 민족 자주와 평화공세를 하는 김정은 말을 그대로 믿기 어려운데도 먼저 무장해제를 하는 현 정부를 지지하는 여론이 50%를 넘는다고 하니 이해가 안됩니다.

이념의 지배를 받는 세상 사람들은 그렇다고 해도 한국에서 제일 많은 교인들이 모인다는 교회 목사가  김정은이 방문하면 환영하자고 말했다는 것도 참 이해가 안갑니다. 김정은은 기독교를 정치에 이용하며 교인들을 박해하고 있는 건 우리가 다 아는 사실이고, 정적들을 잔인하게 처형하고 국민들은 기아에 허덕이는데도 방치하며 자신들의 정권안보차원에서 핵을 만들어 남한을 위협해온 인물인데 뭘 보고 환영을 하자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불평하고 원망하던 백성들은 그 불순종의 결과로 자기들이 처하게 될 미래가 얼마나 비극적인 것일지 뒤 늦게 깨달은 것 같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범죄했다고 자인하며 하나님께서 명하신대로 올라가 싸우겠다고 병기를 들고 산으로 올라가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때가 늦었습니다. 42절 보면, 하나님은 모세에게 올라가지 말고 싸우지도 말라고 지시하셨습니다. 모세는 하나님 지시대로 백성들을 만류하며 올라가 싸우더라도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않으니 적에게 패할까 걱정된다고 말했습니다.

처음부터 이렇게 나가 싸우겠다고 했으면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정탐하고 돌아온 사람들이 보고할 때 “백성 여러분, 우리가 가서 보니 가나안 땅은 정말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젖과 꿀이 흐르는 좋은 땅입니다. 일부 거민 중엔 우리보다 훨씬 크고 힘쎄게 보이는 자들도 있지만 그들이 아무리 강해도 하나님보다 더 강하겠습니까?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시며 도와주시니 얼마든지 그들을 이길 수 있을 겁니다. 그러니 지금 가서 하나님이 주신다고 약속하신 땅을 우리 기업으로 만듭시다” 그러고 가서 싸웠더라면  광야에서 인생을 낭비하지 않았을 겁니다.

열심히 일해서 정당하게 모은 재물로 좋은 집을 구해 살고 자녀들을 환경이 좋은 지역의 학교에 보내 공부시키고 인생을 행복하게 사는 것은 누구도 그걸 가지고 시비를 걸 수 없는 분복을 누리는 것입니다.   그렇긴 하지만 하나님을 믿으며 천국에 들어가기 원하는 사람은 세상에서 잘 살기 위해 노력하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습니다. 하나님 나라를 준비하는 일에도 힘쓰며 살기를 바랍니다. 하나님 나라에 우선순위를 둬야지만 최소한 동시에 둘다 준비하며 살기 바랍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것도 늦으면 기회가 없습니다.

백성들은 속죄라도 하려는 듯 산지로 올라가 아모리족속을 상대로 싸웠지만, 모세가 걱정한데로 결국 대패하여 호르마까지 도망쳐야 했습니다. 살아남은 자들이 돌아와 통곡하며 하나님께 부르짖었습니다. 그런데 45절에 보면, 하나님은 그들의 소리를 듣지 않으시고 귀도 기울이지도 않으셨다고 합니다. 평소에 하나님은 백성들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부르짖음에 응하여 구원해주셨습니다. 출애굽기2장 23절 보면,  고역으로 인해 부르짖던 이스라엘 백성들의 소리가 하나님께 상달되었다고 나오잖습니까. 상달되었다는 말은 하나님께서 들어주셨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간구를 듣고 애굽에서 구해내기 위해 광야에 있는 모세를 불러다 애굽에서 탈출시켰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지금까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요16:24)고 약속하셨습니다. 요한 사도는 주의 뜻대로 무엇을 구하면 들으시고 얻게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요일5:14,15). 그런데도 기도해도 소용없다면 주의 뜻과 다른 걸 구하거나 죄로 방해받기 때문일 겁니다. 기도를 안들어 주신다고 원망하지 말고 회개하며 불순종하는 삶을 바로 세웁시다. 여러분 모두 갈렙과 여호수아처럼 여호와를 온전히 순종하며 예수 안에서 받은 복을 누리며 살게 되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