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발을 벗은 모세

 출애굽기3:1-12 / 신발을 벗은 모세

앞으로 당분간 신명기를 본문으로 하나님 말씀을 증거하겠습니다. 신명기에는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이 어떻게 살아야 할지 잘 설명되어 있습니다.여러분도 신명기를 통해 하나님을 섬기며 사는 삶을 배울 수 있기 바랍니다. 오늘은 신명기를 강해하기에 앞서 모세를 통해 깨닫게 되는 몇 가지 교훈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첫째 교훈은 하나님을 믿는 것과 하나님을 섬기는 것은 상당한 차이가 있다는 것입니다.모세는 출애굽의 인도자로 부름받기 전에도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떨기나무 불꽃가운데 나타나셔서 모세를 이스라엘 지도자로 부르실 때 모세는 그 직분을 감당할 수 없다고 여러번 거절했습니다.모세가 거절한 이유 중에는 바로왕에게 가는 것이 위험했기 때문입니다. 애굽 감독관을 죽인 죄를 물어 모세를 죽이려던 바로 왕에게 가는 건 죽음을 의미했습니다.

모세가  계속 광야에 있으면 하나님을 믿을 수는 있지만  하나님을 섬길 수는 없습니다. 누구를 섬긴다는 건 그 분의 지시를 받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모세보고 바로에게 가서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라고 하셨습니다(출3:10). 그러니 하나님을 섬기려면 모세는 생명의 위험에도 불구하고 바로에게 가야 합니다. 그런데 처음에 모세는 못가겠다고 버텼습니다.  그 순간 모세가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맞지만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주님이 맡겨주는 일을 힘들고 손해본다고 안하면 믿는다고 하면서도 섬기지 않는 사람이 된다는 걸 깨닫기 바랍니다.  고생스럽고 손해봐도 주님을 섬기면 섬기는 자가 받는 복을 받게 됩니다.  주님을 위해 손해보면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사는 동안 갚절로 갚아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씨앗이 아깝다고 아끼는 농부는 없습니다. 뿌려야 30배 100배의 이득을 얻을 게 아닙니까? 주님을 위해 손해보는 게 몇 배의 유익을 얻는 길입니다.  여러분도 주님을 믿을 뿐 아니라 섬기는 사람이 되기 바랍니다.

두번째 교훈은 먼저 종이 되어야 섬기는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5절)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당시 풍습에서 본다면 노예는 신발을 신지 못하고 맨발로 다녔습니다. 그래서 신을 벗는다는 건 종이 된다는 의미입니다. 모세가 그걸 이해했을까요? 그랬을 거라고 생각됩니다. 왜냐면 공주의 양자가 되어 왕자로 궁에서 자란 모세는 항상 신분에 걸맞는 신을 신고  살았고 그를 섬기는 종들은 언제나 맨발이었습니다. 왕자인 모세에게 신을 벗고 맨발로 다닌다는 건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었을 겁니다.

종이 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신을 벗는 건 모든 권리를 포기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섬기려는 사람은 모세 당시는 물론 지금도 당연하게 누릴 수 있는 권리라도 포기할 수 있어야 끝까지 주님의 따르며 섬길 수 있습니다. 안그러면 왜 나면 이렇게 고생하며 살아야 하는 생각이 저절로 들게 되고, 뒤로 물러나야겠다는 유혹을 받기 쉽습니다. 바울의 전도여행에 동참했던 마가 요한이 중도에서 그만 두고 돌아갔습니다.  마가 요한은 주님을 섬기려고 선교에 동참해지만  자신을 다 포기하지는 못해던 것 같습니다.

포기는 자신을 부인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아무든지 나를 따르려는 자는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져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막8:34-35). 실제로 대다수 교인들은 그냥 하나님을 믿는 수준에 머물고 일부가 주님을 섬기는 삶을 사는 것 같습니다. 누가 강요해서 이런 길을 가겠습니까? 은혜가 있어야 갈 수 있습니다. 믿는 수준을 넘어 섬기는 삶을 살려고 하면, 하나님 앞에서 신발을 먼저 벗어야 한다는 걸 기억하기 바랍니다.

초교파선교단체인 YWAM을 세우고 스위스와 하와이에 열방대학(U of All Nations)을 운영하는 로렌 커닝햄이 이야기입니다. 이분이 초교파선교단체를 세우라는 하나님의 뜻을 지시를 받고 교단 리더들과 상의했는데 이해를 얻지 못해 교단 성직자 자격을 포기하고 돌아오는 길에 교통사고가 났답니다. 고모가 수백만불의 사업에 동업하자는 제안도 있었고 교단 목사로 그냥 편하게 목회할 수도 있었지만 포기하고 순종해서 선교에 뛰어들었는데 아내가 운전 하던 차가 사고가 나서 아내는 호흡이 멈춘상태였습니다. 그 때 자기를 부르는 음성을 들었답니다. 거긴 거의 사막 한 가운데 있는 도로였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음성이라는 걸 알아차리고 “네 주님” 대답했답니다. 다시 음성이 들렸습니다.  “로렌, 이래도 여전히 나를 섬기겠니?”  …. “예 주님 그래도 당신을 섬기겠습니다. 이제 제 인생에 남은 것은 이 목숨밖에 없습니다”  잠시후 주님은 로렌에게 아내 달린을 위해 기도하라고 말씀하셨고 로렌의 기도 후에 호흡이 멈췄던 달린은 다시 의식이 돌아왔고 병원으로 옮겨진 후 수주에 걸쳐 회복되어 지금은 전세계를 상대로 예수님을 전파하고 있습니다.

세번째 교훈은 포기하면 더 좋은 것으로 채워주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알면 주님을 위해 포기하고 한 때 손해를 보더라도 결과적을 큰 이익입니다. 이익을 보자고 계산해서 포기하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주님을 사랑하고 은혜가 있으니 그렇게 헌신할 수 있는 것이지 이익인지 손해인지 따지는 수준이면 먼저 포기가 되겠습니까? 포기의 결과를 말하려는 것 뿐입니다. 아브라함의 경우 포기하고 고향을 떠난 결과 거부가 되고 아들을 얻고 가나안 땅의 주인이 되고 믿음의 조상이라는 명예도 얻었습니다.

야고보는 참고 주를 잘섬긴 자들에게 하나님 아버지께서 각양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을 주실 거라고 말하고 말했습니다(약1:17).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이 사실은 다 주님이 주신 것이니 뭘 포기하더라도 손해본다고 말할 수도 없지만, 그래도 주님은 그걸 알아주시고 배나 체워주신다는 것입니다. 욥을 봐도 그걸 알 수 있잖습니까? 욥이 재산의 손실과 자녀를 잃어버리는 상황에서도 끝까지 견디며 믿음을 지켰더니 하나님께서 욥에게 처음보다 배나 더 물질의 복도 주시고 자녀도 새로 얻게 해주셨습니다(욥42:10,12). 우리도 끝까지 주님을 섬기면  욥처럼 복을 받게 될 겁니다. 지금 미약해서 실망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여러분이 끝까지 자리를 지키고 교회를 섬기면 늘푸른교회도 복을 받아 창대하게 될 줄로 믿습니다.

끝으로 넷째 교훈은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의 능력으로 한다는 사실입니다. 모세를 찾아 죽이려던 바로가 면전에 있는 모세를 어쩌지 못한 것은 하나님의 능력 때문이었습니다. 모세가 행하는 이적들을 보면서 바로는 자기들이 섬기는 신보다 강한 신이 모세와 함께 한다는 것을 알았을 겁니다. 하나님은 모세를 바로에게 하나님처럼 만들어주셨습니다. 모세가 불평하며 거역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수 있었던 것도 이적의 힘이었습니다. 홍해를 가르고 바위가 터져 물이 나오게 하고 만나와 메추라기로 먹여 살렸습니다. 이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능력이었습니다.

우리가 교회를 섬기는 사역도  하나님의 능력으로 한다는 걸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시간으로 봉사하든, 헌금으로 섬기든, 내 것으로, 내 힘으로 한다고 생각하면 실망하고 넘어지기 쉽습니다. 내 것으로 한다고 생각하면 알아주기 바라고 때로 나만 손해본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그럴 겁니다. 우리가 무슨 능력이 있어 기도하면 다 고치고 해결합니까? 주님께서 기도를 들어주시고 역사해주시니까 문제가 해결될 수 있는 것 아닙니까? 설교듣고 은혜받는 것도 설교 잘해서 그런 게 아니고 성령께서 마음을 감동시켜주시기 때문이 아닙니까? 믿음도 믿게 해주셔야 결신자가 나옵니다. 그래서 말인데 이 시점에서 우리가 다시 한번 우리 부족한 걸 탓하기 전에 성령이 역사하고 하나님의 능력이 우리 늘푸른교회에 나타나기를 기도합시다.

모세가 하나님을 섬기지 않았다면 어떤 인생으로 끝났겠습니까? 미디안 광야에서 양치기로 떠돌며 세월만 한탄하다가 늙어 죽지 않았겠습니까? 사고나 병들어 더 일찍 세상을 떠날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께 굴복하고 출애굽의 소임을 맡아 하나님을 섬겼기 때문에 위대한 지도자 모세로 이름을 남길 수 있었습니다.  

교우 여러분, 주님을 섬기기 위해서 뭘 포기하고 손해보고 고생하고 그런 교우들은 복받은 사람들입니다. 예수 믿는다고 다 그렇게 살지 못합니다. 자기 삶을 바쳐 주를 섬기는 사람들은 성경에도 그렇게 많이 나오지 않습니다. 12제자와 바울의 선교팀과 몇몇 충성된 사람들이 전부였습니다. 지금도 그렇습니다.  나 처럼 주님을 섬기는 사람이 주변에 없다고 낙심하지 마세요. 모세처럼 충성하는 사람은 그 때도 많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숫자로 일하시지 않습니다.

기드온이  미디안과 싸울 때  하나님은 싸움에 나온 백성수가 많다며 두려워 떠는 자는 다 돌려보내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돌아간자가 2만 2천명, 남은 자가 만명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만명도 많다며 물가로 데리고 가서 손으로 물을 떠서 먹는 3백명만 데리고 가서 적을 놀라게 만들어 자기들끼리 싸워 자중지란으로 승리하게 만드셨습니다(삿6:6,22). 사람 수가 많다고 승리하는 게 아니고 하나님이 함께 하면 이깁니다.  모세가 무슨 힘이 있다고 바로를 상대로 이기겠습니까? 하나님께서 함께하시고 역사하시니 바로도 굴복한 게 아닙니까?  우리 개인의 삶도, 늘푸른교회 사역도 하나님의 능력으로 다시 일어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