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서하고 잊자

마태18:21-35 / 용서하고 잊자

오늘은 나에게 상처준 사람을 용서하고 잊자는 주제로 하나님 말씀을 전하겠습니다. 누군가에 대해서 원한이나 분노의 감정을 가지고 사는 건 입안의 상처와 같이 고통스럽습니다. 입안에 반점이나 혓바늘이 생기면 말할 때나 음식을 먹을 때 참 고통스럽습니다. 상처받은 기억은 피해자인 나를 공격합니다. 영적 건강을 위해서도 잘못한 사람을 용서하고 상한 감정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습니다. 용서하고 잊고 떠나보내기 바랍니다.

마음의 상처는 주로 가까운 사람들로부터 받게 됩니다. 부모나 형제, 부부나 연인, 친구나 직장동료, 목사나 교인들이 상처를 줍니다. 치유과정 프로그램을 인도하다보면 부모로부터 상처받았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목사로부터 상처받아서 교회를 옮기는 교인들도 적잖고 교인들에게 상처받아 목회지를 떠나는 경우도 종종있습니다. 배우자에게 상처받은 사람들, 한 때 연인이었던 사람에게서 배신을 당한 사람들, 친구한테 이용당한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들 대부분은 사건은 지나갔어도 기억은 남아서 수시로 감정을 흔들어 놓기도 합니다.  상처받은 기억은 분노나 원한의 감정을 끌어올리기 때문에 은혜받는 데도 방해가 됩니다.  그래서 용서가 안돼 힘든 문제가 있는 분들은 오늘 마음 속의 리스트를 주님께 넘겨드리고 평안을 얻게 되기를 바랍니다.

용서와 관련해서 먼저 요셉을 살펴보겠습니다. 창세기 37장 이후에 요셉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데, 요셉은 형들의 시기로 애굽에 노예로 팔려갔고 누명쓰고 감옥에 들어가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되기까지 상당한 기간 동안 그가 당한 억울하고 참담한 일이 한 두가지가 아니었을 겁니다. 형들이 자기를 밧줄로 묵어 구렁텅이에 던져넣었다고 노예로 팔아버렸을 때 형들에 대한 감정이 어떠했겠습니까? 최선을 다해 섬긴 주인이 아내의 거짓말만 듣고 감옥에 넣었을 때 얼마나 억울했겠습니까?

요셉도 한 동안은 배신감, 억울함으로 원한과 분노의 감정에 고통을 받았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식량을 구하러 애굽에 온 형들이 자기들이 노예로 판 동생 요셉이 총리가 되어 있는 걸 보고 두려워할 때 요셉은 형들에게 아무 걱정하지 말라고 말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요셉이 첨부터 형들을 원망하지 않고 아무런 감정도 없었던 것은 아닐 겁니다. 그 역시 형들에게 원망하고 분노했을 겁니다. 다른 사람도 아닌 형들이 자기에게 그런 못쓸 짓을 했으니까 마음의 상처도 컸을 겁니다. 그런데도 요셉은 어떻게 상한 감정을 이겨내고 용서할 수 있었습니까? 하나님의 섭리를 깨닫은 믿음 때문이었습니다. 식량을 사러와서 자기에게 절하는 형들을 보고 전날의 꿈이 떠올랐고 어떻게 왔든 애굽에 온 것이 모두 하나님의 섭리로 된 것임을 깨달았습니다.

경우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누군가에 의해서 부당하게 대우받고 어려움에 처하게 되면 그것이 마음에 상처가 됩니다. 그럴 때 다양한 감정을 경험할 겁니다. 모멸감이 들고 증오와 원한이 생기고 분노하며 낙담하고 배신감에 복수심이 솟구칩니다. 요셉이 당한 일을 생각하면 이런 감정들을 다 한번씩은 느껴봤을 것 같습니다. 내가 잘못해서 당하는 경우라도 해도 마음에 상처를 받으면 이런 감정들이 생깁니다. 열악한 환경에서 험한 세월을 보낸 사람들은 더욱 그럴 겁니다.

치유사역에선 마음의 상처를 ‘쓴 뿌리’라고 표현합니다. 토양의 해로운 성분 때문에 뿌리가 상하면  그 나쁜 성분이 올라와 나무 잎을 상하게 만듭니다. 마음에 상처가 있는 사람들은 위축되어 있거나 과민반응을 보이는 경향이 있습니다. 남에게 자기 생각을 말하지 못하고 눈치를 본다거나 지나치게 방어적이거나 공격적인 태도를 보이며 감정의 기복도 심합니다. 마음의 상처는 대인관계도 해치고 신앙성장도 방해합니다. 그러니 억눌러 놓지만 말고 해소시켜 벗어나도록 해야 합니다.

마음의 상처에서 벗어나기 위해선 먼저 용서하는 게 중요합니다. 용서하면 나의 감정을 붙잡고 있는 그 기억의 고통에서도 벗어날 수 있습니다. 데이빗 스툽은 “용서는 과거의 고통을 해결하는 열쇠”라고 합니다. 그러면 대인관계도 좋아지고 영적으로도 새롭게 됩니다.  피해의식으로 자존감이 낮아지고 원한이나 분노의 감정이 있다면 사랑받는 하나님의 자녀라는 느낌이 안 생깁니다. 셀에서 나누는 것도 주저될 겁니다. 변명하고 이해받는 것보다 극복해서 벗어나는 게 더 좋습니다.

요셉이 총리 자리에 있을 때 형들이 식량을 사러 애굽에 왔습니다. 요셉은 형들에게 자신이 누군지 알렸습니다. 형들은 요셉을 알고 반가워하기보다 두려워했습니다. 그런 형들을 보고 요셉은  자신을 애굽에 판 것은  이런 기근에 대비해 살길을 예비하려고 하나님께서 미리 보내신 것이라고 말하며 형들을 안심시켰습니다. 그 순간 요셉에겐 어떤 원한도 분노도 없었습니다. 요셉은 형들이 먼저 잘못을 인정하고 용서를 구하기를 기다리지도 않았습니다.

부당한 대우를 받고 해를 입었을 때 분노, 원한, 복수심을 느끼고 마음이 상하는 것은 수양이 부족한 우리 같은 사람에겐 당연하지만, 주님은 하나님 자녀가 이런 감정에 지배당하며 불행해지길 원치 않습니다. 그래서 잘잘못을 떠나 용서하고 잊고 평안하게 살기 바라십니다. 마음이 상하고 나쁜 감정에 지배당할 때 누굴 용서하고 싶지 않을 겁니다. 요셉도  형들을 용서하기까지는 시간이 좀 걸렸을지 모릅니다. 요셉이 형들을 용서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섭리를 깨달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애굽에 온 형들이 총리가 된 자기 앞에 엎드려 절하는 걸 보면서 오래전 이삭단의 꿈이 생각났을 겁니다(창37:8).

지금 이 시간 상처준 사람이 있는지 생각해봅시다. 그 사람과 그 때 일을 떠올리면 화가 나거나 갚아주고 싶습니까? 아니면 보고 싶지 않습니까? 그런 사람이 가족이든 친구든 교인이든 누구든 있다면 용서할 필요가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아무리 정당하다고 생각해도 보복하는 순간 나로 인해 피해자가 생겨 가해자가 됩니다. 용서는 내가 갚아주는 대신 하나님께서 처리하시도록 맡기는 것입니다. 그러면 감정의 고통에서 벗어나게 될 겁니다.  

그러나 용서는 단지 마음 편하자고  하는 것만은 아닙니다.  용서받기 위한 조건이기도 합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너희가 사람의 과실을 용서하면 너희 천부께서도 너희 과실을 용서하시려니와 너희가 용서하지 않으면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과실을 용서하지 않으시리라”(마6:14, 15)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을 보면 예수님은 일곱번 뿐 아니라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용서해주라고 말씀하셨습니다(22절).

남을 용서하는 건 물론 자신을 용서하는 것도 필요합니다. 회개하고 하나님의 용서를 받았으면 자신도 자신을 용서해주는 게 심리적으로 평안을 느끼는데 도움이 됩니다. 신앙생활이 심리적 요소에 영향을 받기 때문에 용서한다는 말을 듣는 것도 도움이 됩니다. 간음하다 현장에서 잡혀온 여인에게 예수님은 “너를 정죄하지 않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용서한다는 말씀인데, 이 여인이 죄책감에서 벗어나 새롭게 되는데 큰 도움이 되었을 겁니다.

교우 여러분, 용서하고 잊고 평안을 누리기 바랍니다. 상처준 사람을 아직도 마음 속에 담아두고 있다면 지금 이 시간 용서하기로 결단하고 주님께서 처리하시도록 맡깁시다. 그래서 마음의 상처가 아물고 치유되기 바랍니다. 텍사스 휴스톤에서 클리닉을 운영하는 의학박사 체리는 기도는 치유하는 능력이 있다고 지금도 강조하고 있습니다(Cherry, Healing Prayer). 여러분 모두 영혼이 잘되고 범사가 형통하게 되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