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임지는 그리스도인

누가22:54-62 / 책임지는 그리스도인

오늘은 영적 갱신을 위해 필요한 요소로 ‘책임지는 것’에 대해  말씀하겠습니다.  하나님의 은혜 아래서 예수님 말씀대로 살려고 힘쓰는 사람들도 잘못하고 실수합니다. 잘못하고 실수하는 걸 기독교용어로 표현하면 죄를 짓는다고 말합니다. 그럴 경우 회개하여 용서받는 것이 강조되지만, 그러기 위해 그냥 넘어갈 수 없는 게 있는데, 그게 잘못의 결과에 대해 책임을 지는 것입니다.

밀양이라는 영화를 보면  신애라는 여 주인공이 기독교신앙을 갖게 된 후  돈을 노리고 아들을 유괴해 살해하고 감옥에 있는 웅변학원원장을 용서한다는 말을 하려고 면회갔다가  하나님이 자기 죄를 다 용서해줬다고 아무렇지 않은 듯 말하는 범인의 무책임한 태도와 화가나서 도대체 어떤 신이 피해자에겐 한 마디 말도 없이 자기 맘대로 용서할 수 있느냐며 항의하는 내용이 나옵니다.  용서받았다고 피해준 사람에 대한 책임까지 면제되는 건 아닙니다. 삭개오는 4배로 갚겠다고 하지 않았습니까?(눅19:8).

오늘 본문은 베드로가 예수님을 모른다고 세번 부인한 내용입니다. 이런 일이 일어나기 전에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오늘 닭 울기 전에 세번 나를 모른다고 부인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34). 베드로에게 이런 일이 일어난 것은  사탄 때문이었습니다. 31절 보면 사탄이 밀까부르듯 하려고 너희를 청구했다는 말씀이 나옵니다. 사탄의 유혹이나 공격이 있었다고 해서  베드로에게 잘못이 없다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전에도 베드로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실 것을 말씀하시자 그러지 마시라 간청하다가 사탄아 물러가라는 말을 들었는데, 사탄은 가롯 유다 뿐 아니라 베드로를 통해서도 활동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마16:23). 그러니까 사탄이 나를 통해 하나님의 계획을 가로막지 못하게 늘 깨어 분별할 필요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사탄의 역사도 알고 베드로가 예수님 부인할 것도 아셨습니다.  아셨으니까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게 해주시는 게 더 낫지 않았겠습니까? 그런데 예수님은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게 막으시는 대신 부인했더라도 믿음에서 떨어지지 않고 다시 회복되어 형제들의 믿음을 세우는 사람이 될 수 있게 기도해주셨습니다(31,33절). 여기서 우리가 깨달아야 할 것은 주님은 우리가 넘어지더라도 다시 일어나 강해지고 성숙해져서주님을 잘 따르고 섬기는 그런 믿음의 사람이 되길 원하시는 겁니다.

베드로는 성급하고 충동적이고 감성적 성품의 소유자였습니다. 물위로 걸어오시는 주님을 보고는 자기에게 물위로 걸어오라고 명하시라고 간청하고  주님이 그렇게 말씀하시자 배에서 뛰어 내려 물위를 걷다가 풍랑에 겁을 먹고 물에 빠져 살려달라고 소리쳤습니다(눅14:22-32). 무덤에 다녀온 여인들이 예수님이 살아나셨다고 말하자  다른 제자들은 헛소리 취급했는데, 베드로는  곧바로 무덤으로 달려갔습니다(눅24:12). 예수님을 부인한 후엔 통곡하며 눈물을 흘리기도 했습니다(마26:75).

예수 믿고 거듭나 새 사람되고, 신앙생활하며 다듬어지고 그러지만, 타고난 성향 자체가 소멸되는 건 아닙니다. 사실 하나님은 부족한 면이 있다고 해서 전혀 다른 성향의 사람으로 바꾸려고 하시는 것 같지도 않습니다.  타고난 있는 그대로 받아주시고 주님 말씀에 순종하며 살 수 있게 성령을 보내 도와주십니다. 우리도 다른 사람의 성향을 바꾸려고 하지 말고 믿음을 세워주는데 힘써야 합니다.  부부도 서로 바꾸려고 하지 말고 부모도 자녀를 바꾸려고 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 용납하고 주님 잘 믿는 사람이 되게 도와주는 게 최선입니다.

요한복음21장 4절 이하엔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고 거듭 세번 물으신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세번 부인했는데, 세번 사랑하냐고 물으셨습다. 예수님께서 의도적으로 세번 물으신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베드로는 그 질문에 대답할 때 세번 부인한 것이 떠올랐을 것 같습니다.  어쩌면 예수님은 사랑 고백을 통해 예수님을 부인했던 과거에 대한 기억의 부담을 떨쳐내고 목자로 주님의 양을 돌볼 수 있게 세워주신 것 같습니다.

사도행전을 보면, 전반부는 주로 베드로의 활동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오순절 성령이 강림하신 직후 베드로는 유대인들을 대상으로 예수님의 대속의 죽으심과 부활을 증거하여 수천명의 유대인들이 예수 믿게 도왔고(행2:41), 가이사랴에 주둔하던 로마 백부장 고넬료의 집을 찾아가 전도해서 고넬료와 가족을 구원하여 이방인의 전도의 문을 열었습니다(행11:18). 요한복음21장 18절 보면,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젊어서는 네가 원하는 데로 다녔지만 늙어서는 남이 네게 띠 띠우고 원치 아니하는 곳으로 데려가리라고 하셨는데 이 말은  베드로가 맞이할 죽음에 대한 것이라고 19절에 설명해놨습니다. 전승에 따르면 베드로는 네로 황제의 기독교박해 때 로마 교회를 섬기다 십자가에 거꾸로 달려 순교했다고 합니다. 아마도 베드로는 예수님을 부인한 적이 있었기 때문에 더욱 힘써 자기에게 맡겨진 직무에 충실하다가 생명까지 주의 전에 바친 것 같습니다.

기독교신앙에서 성인으로 추앙받는 믿음의 사람 중에도 한 때 허랑방탕하게 살던 부도덕한 과거를 가진 사람들이 있습니다. 대표적인 인물 중에 하나가 성어거스틴(354-430)입니다. 그는 청년 때에 마니교 이단에 빠졌고, 17세 경에 어떤 여성과 동거하며 아들을 낳았는데, 정식 결혼하지 않고 15년을 동거하며 말하자면 사생아를 낳은 것에 대해 참회록엔 정욕에 빠져 방탕하게 지낸 것이라고 인정했습니다. 어거스틴은 방탕하게 지내면서도 한 편으로는 그런 자신을 한심하게 생각하며 고민했는데, 정원을 걷던 어느날 “집어서 읽으라”는 소리를 듣고 집에 들어와 펼쳐 읽은 것이 로마서 13장 13절이었다고 합니다. 공동번역을 보면, “진탕 먹고 마시고 취하거나 음행과 방종에 빠지거나 분쟁과 시기를 일삼지 말고 언제나 대낮으로 생각하고 단정하게 살아갑시다” 이런 말씀입니다. 어거스틴은 뒤통수를 맞은 것 같은 충격을 받고 개종을 결심하고 새 인생을 살았습니다. 이런 변화는 물론 하나님의 은혜와 성령이 역사하셨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믿습니다.

회심한 그리스도인은 그에 합당한 열매를 맺는 책임있는 사람이 되기를 힘써야 합니다. 근본적으로 회심이나 변화의 열매는 하나님의 은혜와 성령의 역사로 된다고 믿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사람이 아무런 노력을 안해도 되는 것은 아닙니다. 주도하시는 성령의 역사에 여러분이 믿음으로 순종하고 기도하며 과거의 잘못에 대해선 책임을 받아들이고 하나님 뜻에 합당한 자녀가 되기 위해 힘써야 합니다. ‘코는 자기 손으로 풀어야 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코푸는 수준의 일까지 하나님이 다 해주시길 바라며 가만 있는 건 옳지 않은 태도입니다. 잘못한 일은 책임지고 앞으로도 책임있는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힘쓰기 바랍니다. 그래야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