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 가운데 살아가기

엡5:1-14 / 빛 가운데 살아가기

시편 135편을 보면 다윗이 어떻게 기도하며 노래했는지 나옵니다. 거기서 다윗은 하나님이 자기를 감찰하시며 모든 것을 다 알고 계신다고 말합니다. 다윗은 하나님께서  자기가 앉고 일어서는 것부터 모든 행동들, 심지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도 다 알고 계신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생각하고 믿었으니까 다윗은 무슨 생각을 하든 어떤 행동을 하든 하나님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뭘 숨길 수 있다고는 상상도 하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오늘은 빛 가운데 삶을 주제로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지난 몇 번에 걸쳐서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과 동행하며 살려면 굴복해야 한다는 주제로 말씀드렸는데, 오늘은 하나님과 동행하기 위해선 영적으로 어둠 속에서 사는 걸 멈추고 빛 가운데 나와야 한다는 것을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집에서 화장실 청소를 주로 제가 하는데  깨끗하게 청소했다고 생각해도 맑은 날 아침 창문으로 잠깐 햇빛이 들올 때가 있는데 그럴 때 보면 미세 먼지 투성이입니다. 평소엔 화장실 내부까지는 햇빛이 들어오지 않으니까 깨끗하다고 생각하고 사는데 실제로는 그렇지 못했던 겁니다. 영적 차원에서도 어둠 가운데선 죄 의식이 약합니다. 얼마나 나쁜 짓인지, 얼마나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죄인지, 그 결과 어떤 벌을 받게 될 것인지 생각없이 탐욕만 체우느라 정신 없이 삽니다.

본문 8절 말씀에 따르면, 예수 믿고 하나님 자녀가 된 여러분은 주 안에서 빛이고 빛의 자녀입니다. 그래서 어둠 속에 있는 세상 사람들보다 여러분의 말과 행실은 더 잘 드러납니다. 또 빛 가운데 있기 때문에 숨겨지지도 않습니다. 빛이 먼지를 드러나게 하는 것처럼 주님 말씀이 나쁜 행실을 더 잘 드러나게 만듭니다. 여러분이 전에 어둠에 있을 때는 적당히 육신의 욕망을 따라 살았더라도 자기들도 그렇게 사니까 적당히 봐주고 넘어갈 수 있었지만 주 안에서 살 때는 그냥 넘어가지지 않습니다. 왜냐면 교회는 죄를 회개하고 용서받는 곳이긴 해도 은폐하고 눈감아줘선 안되기 때문입니다.

골로새서1장 12절과 13절을 보면, 사탄이 지배하는 흑암의 권세와 그리스도의 나라 두 왕국이 나옵니다. 이 두 왕국은 어둠과 빛으로 구분되어 있습니다. 물론 어둠과 빛은 물리적인 것보다 영적인 의미를 나타내는 상징어이고 왕국은 통치력과 지배력을 의미하는데 다스림을 받는 우리에겐 지배력으로 볼 필요가 있습니다. 지금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누구의 지배를 받고 있느냐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교회를 다니면서도 어둠 가운데 살면 어둠의 권세인 사탄에게 지배당합니다.

어둠 가운데 사는 것이 어떤 것인지는 여러분도 아마 경험을 통해 잘 알고 있을 겁니다. 예수 믿고 빛으로 나오기 전에는 우리도 모두 어둠가운데 살았기 때문입니다. 어둠 가운데 사는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는 3절부터 5절까지 열거되어 있습니다. 음행, 추행, 탐욕, 추잡한 말, 어리석은 말, 희롱, 우상숭배, 이런 것들은 예수 믿는 사람에겐 합당치 못한 것이며 계속 그렇게 살다 죽으면 하나님 나라에서 기업을 얻지 못한다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어둠가운데 살면서 빛이신 주님과 동행하기는 어렵습니다. 에녹처럼 하나님과 동행하기 원하면, 바울처럼 성령으로 충만하기 원하면 먼저 어둠에서 벗어나 빛으로 나오는 게 필요합니다. 요한1서 1장 7절에는 빛 가운데 행하면 그 아들 예수님과 사귐이 있다고 말합니다. 또한 이미 어둠을 벗어나 빛가운데 있는 분들은 빛의 자녀처럼 살기를 힘쓰기 바랍니다. 죄의 유혹을 받아 어둠 속으로 밀려 들어가지 않게 늘 조심합시다.

어둠 속에서 빛으로 나오는 방법은 여러분이 이미 알고 있는 것처럼 죄를 회개하여 용서받고 그 어둠의 일을 멀리하는 것입니다. 예수 믿은 이후에도 연약하고 아직 육신의 욕망을 더 사랑해서 어둠 속에서 부끄러운 짓을 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다 죄를 깨닫게 되면 숨기지 말고 회개하고 말씀과 성령을 의지하면서 죄의 욕망과 유혹을 이겨내며 빛의 자녀답게 살기 바랍니다. 만일 연약하여 죄를 범했을 숨기며 부인하려고 하지 말고 인정하고 회개하며 용서를 구하기 바랍니다. 그것이 사는 길입니다.

삼하11,12장에는 다윗이 간음죄를 범한 후 죄를 숨기려다가 살인죄까지 범한 이야기와 그런 다윗이라도 하나님은 심판하고 벌을 내리기보다 구원얻게 해주려고 나단을 보내 다윗을 회개하게 만드신 이야기가 들어있습니다. 죄는 숨겨지는 게 아닌데, 죄를 지은 사람들은 대부분은 숨기고 부인합니다. 숨기기 위해서 또다른 죄를 범합니다. 다윗도 첨엔 그렇게 했잖습니까? 다윗은 나단의 말을 듣고 죄의식이 생기고 회개하였습니다. 여러분도 혹시 잘못하게 되었을 때는 설교자의 말씀을 들으면서 회개하여 살 수 있는 기회를 놓치는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교회는 죄인이 회개하여 용서받고 살 수 있게 모든 배려를 다할 필요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내가 의인을 찾으러 온 게 아니고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다”고 하신 말씀을 생각할 때 교회에 죄인이 오는 것은 당연합니다. 왜냐면 주님께서 지금도 성령으로 죄인들을 부르시기 때문에 어둠 속에 사는 죄인들이 교회를 찾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어둠이라고 당장 비난하고 내치면 회개하여 용서받을 기회를 우리가 막아버리는 것입니다.  교회가 할 일은 죄를 깨닫게 도와주고 회개할 수 있게 용기를 주고 용서에 대한 믿음을 갖도록 이끌어주는 것입니다. 교회라도 남의 죄를 다루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닙니다. 하나님 은혜로 당사자가 인정하고 회개하는 게 최선의 길입니다.

사람들이 어둠을 빛보다 더 사랑하는 이유는 어둠 가운데 행할 때 육신에 만족과 쾌락을 주기 때문입니다. 미혼 남녀의 음행은 물론 기혼자가 간통이나 간음에 빠지는 이유는 거기서 더 짜릴한 성적 쾌락을 맛보기 때문입니다. 훔치는 행위 또한 그것으로 부정한 이득을 얻기 때문입니다. 외설스런 영상물이나 게임에 빠지는 것도 쾌락을 느끼게 해주기 때문입니다. 모든 쾌락이 잘못이라는 이야기는 아니고 쾌락을 얻게 해주는 수단이나 통로가 부도덕한 어둠의 수단일 때 어둠 가운데 살게 만들기 때문에 거기서 벗어날 필요가 있는 겁니다.                    

어둠에서 벗어나기 위해선 세상 기준이 아니라 하나님이 보실 때 그게 죄라고 인정하는 게 필요합니다. 그런 다음 지금까지 어둠에서 행한 죄를 자백하고 용서를 받아 어둠의 지배력을 차단시켜야 합니다. 그리고 내 힘과 의지로 고치려는 시도를 하지 말고 그냥 성령을 따라 살기 시작하면 불가능한 것 같던 변화가 일어납니다. 성령을 따라살며 변화되는 역사는 다음 주에 이어서 말씀드리도록 하고 오늘은 여기서 마치겠습니다. 한 주 동안 어둠 속에 행하던 일을 살피며 회개하고 빛가운데 나오도록 힘쓰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