욥의 하나님

욥기42:1-6,10-17 / 욥의 하나님

한 주간 평안했습니까? 반갑습니다. 서로 인사를 나눕시다. 지난 주일엔 삭개오를 통해 구원의 길을 찾는 구도자의 모습을 살펴봤습니다. 여러분 중에서 구원의 길을 찾는 분들은 삭개오처럼 예수님을 만나 구원얻고 천국 소망가지고 살게 되기를 바랍니다. 오늘은 욥을 통해 알려진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지 살펴보겠습니다.

하나님을 찾는 사람,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하나님은 누구신가? 관심을 갖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누구신가? 라는 질문과 하나님은 나에게 누구신가? 이 질문은 좀 다른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누구신가 질문은 다소 철학적입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던 헬라인들도 관심을 가졌던 질문입니다. 그에 반해 ‘하나님은 나에게 누구신가’ 이 질문은 구도자의 질문이며 신앙인의 질문입니다. 여러분도 하나님은 나에게 누구신가 그런 질문을 가지고 오늘 말씀을 듣기 바랍니다.

먼저 욥에 대해 살펴봅시다. 욥기1장 1절 이하에 욥은 책망할 게 없었고 정직하고 하나님을 경외하여 악에서 떠난 의로운 사람으로 소개됩니다. 그에겐 아들이 일곱, 딸이 셋이 있었고 많은 재산과 종들이 있었고 동방에서 가장 큰자로 인정받는 인물이었습니다. 서두에 이렇게 욥의 의로움이 강조된 것은 욥이 무슨 죄나 잘못으로 고난 당하는 게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려는 것 같습니다.

어느날 천상 회의가 열렸습니다. 하나님께서 사탄에게 “욥을 보았느냐 그와 같이 정직하고 순전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사람은 세상에 없느니라”(1:8)고 칭찬하시자 사탄이 재물의 복을 많이 주니까 욥이 그런 것이지 재산을 다 잃게 되면 대면해서 주를 욕할 거라고 비방했습니다. 하나님은 욥의 진정성을 보여주려고 욥에게서 재산을 거두도록 사단에게 허락했습니다.

갑자기 욥에게 난리가 나기 시작했습니다. 스바 사람이 공격해 욥의 종들을 죽였습니다.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 양과 종을 살라 버렸습니다.  또 갈대아 사람들이 쳐들어와 약대를 빼앗고 돌보던 종들을 죽였습니다. 순식간에 욥의 재산이 다 날라가버린 겁니다. 그것도 부족해서 맏형의 집에 모여 식사하던 자식들이 대풍이 불어 무너진 집에 깔려 죽었습니다.

많은 재산과 자식들까지 다 잃고도 욥은 엎드려 경배하며 “내가 모태에서 적신으로 나왔사온 즉 또한 그리로 돌아가올찌라 주신 자도 여호와시요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찌니이다”(1:21) 라고 했습니다. 욥은 말로 범죄하지 않고 원망도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부자들은 가난한 사람보다 돈을 더 의지하고 살아왔기 때문에 부도가 났을 때 더 힘들어합니다. IMF때 목동의 어느 교회를 다녔는데, 그 때 외환 위기로 이자율이 높아지면서 교인 중에도 사업하던 사람들이 부도위기에 몰려 아파트도 팔고 그러면서 힘들어하는 걸 지켜봤습니다. 그들은 여전히 나보다 부자인데도 징징거리는 걸 봤습니다.

이것으로 안되자 사단은 욥에게 질병의 고통까지 가하자고 요구합니다.  하나님은 거기까지도 허락했습니다. 욥에 대한 하나님의 신임도 참 대단했습니다. 욥은 발바닥에서부터 정수리까지 악창이 생겨 심한 통증과 가려움에 견디기 힘들었습니다. 여러분도 경험이 있겠지만, 심한 가려움은 정말 참기 힘듭니다. 얼마나 가려웠으면 욥이 재 가운데 앉아서 기와 조각으로 온 몸을 긁었겠습니까? 그 모습을 보고 욥의 아내는 “그래도 순전을 지키려느냐 하나님을 욕하고 죽으라”(2:9)고 악담을 퍼부었습니다. 그러자 욥은 “어리석은 말 하지 마라 우리가 하나님께 복을 받았으니 재앙도 받지 않겠느냐”고 입술로 범죄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한편 욥에겐 데만 사람 엘리바스와 수아 사람 발닷과 나아만 사람 소발이라는 세 친구가 있었습니다. 그들이 욥의 불행한 소식을 듣고 찾아가 위로하자고 약속하고 방문했습니다. 그들은 욥의 극단적 불행한 상황을 보고 누구도 쉽게 위로의 말을 건네지 못하고 그냥  7일 주야를 밖에서 함께 보냈습니다. 그러다 욥이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면서도 뉘우치는 말은 하지 않는 것을 보고서 친구들은 차례로 뭔가 잘못한 일이 있으니 이런 재앙을 당하는 게 아니냐면서 욥을 책망했습니다 . 욥과 세 친구의 대화는 4장부터 37장까지 계속되다가 드디어 38장에 하나님께서 침묵을 깨시고 폭풍가운데 등장하시어 욥에게 질문하시며 대답해 보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의 질문은 41장까지 계속됩니다.

하나님은 욥에게 창조활동과 관련된 질문을 합니다. 욥이 시험의 고통 속에서도 하나님께 순전한 믿음을 지켰지만,극한적 상황까지 몰려 견디기 힘든 고통을 당하자 왜 이런 고난을 당해야 하는지 하나님과 변론하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거듭된 질문앞에 욥은  억울하다고 창조주 하나님과 변론을 해보려고 한 자신이 얼마나 주제넘는 것인지를 깨닫게 됩니다. 욥은 “나는 미천하오니 무엇이라 주께 대답하리까 손으로 내 입을 가릴 뿐입니다”(40:4) 라고 말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은 거듭 질문하시며 대답을 요구했습니다. 욥은 마침내 무지한 말로 이치를 어둡게 하며 자신을 의롭다고 주장했던 것까지 반성하며 회개했습니다(42:6).

하나님이 욥에게 던진 질문 몇가지만 살펴보면 이런 것입니다. “내가 땅의 기초를 놓을 때에 네가 어디 있었느냐”(38:4), “광명의 처소는 어느 길로 가며 흑암의 처소는 어디냐”(38:9), “네가 하늘의 법도를 아느냐 하늘로 그 권능을 땅에 베풀게 하겠느냐”(33), “들소가 어찌 즐겨 내게 복종하며 네 외양간에 머물겠느냐”(39:9), “말의 힘을 네가 주었느냐 그 목에 흩날리는갈기를 네가 입혔느냐”(39:19), “소같이 풀을 먹는 하마를 봐라 내가 너를 지은 것같이 그것도 지었느니라”(40:15), 네가 능히 낚시로 악어를 낚을 수 있겠느냐…어찌 너와 계약하고 영영히 네 종이 되겠느냐”(41:1,4). 질문이 뭘 의미하는지 이해하겠습니까?

하나님은 욥에게 피조물인 인간의 한계를 깨닫게 해준 것입니다. 그걸 깨닫게 되자 욥은 억울해서 잠시라도 하나님께 따져보고 싶었던 태도를  회개했습니다. 욥을 통해 우리가 배워야 할 핵심적 교훈은 철저하게 굴복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아무 잘못한 것이 없이 고난을 당한다고 해도 하나님 나에게 왜 이러십니까 따질 수 있는 입장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창조주 하나님은 원하시면 여러분 인생을 가지고 뭐든 하실 수 있는 권한이 있다고 인정하는 단계까지 가야 Surrender입니다.

의로우냐, 착하냐 하는 것도 인간끼리 상대적인 것일 뿐입니다. 하나님은 세 친구들 앞에서 욥이 의롭고 세 친구들이 잘못했다고 판정하셨습니다. 욥이 정직하고 악에서 떠난 의인이라는 것도 그 시대 다른 사람들과 비교할 때 그렇다는 것이지 하나님 앞에서 절대적으로 의롭다는 건 아니었습니다. 노아도 “ 의인이요 당대에 완전한 자라 그가 하나님과 동행하였으며”(창6:9)라고 묘사되어 있습니다. 내용을 보면 노아와 욥은  거의 동일합니다.  선한 행실과 인간성이 강조되고 그 다음 하나님을 경외했다거나 동행했다는 식으로 나옵니다.

구약시대엔 율법 아래 행위의 의로움이 강조되던 때라 성품과 선행에 근거해서 인물이  평가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반면에 신약시대 이후부터 지금은 행위보다 하나님의 은혜와 믿음이 더 강조됩니다. 신약적  관점에선 인간은 모두 죄인이라 나쁜 짓을 하며 살다가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여 예수 믿고 성령으로 새롭게 변하여 하나님께 굴복하고 순종하면서 성도답게 바뀝니다. 그래서 교회에선 인품이나 선행보다 은혜와 믿음을 더 중시해야 합니다. 그러면 사람에 대해 좀더 인내하고 용납할 수 있게 됩니다.

욥을 통해 계시된 하나님의 특성  중엔 침묵하시는  모습도 있습니다. 욥이 시험을 당해 고통가운데 간구할 때 하나님은 한 동안 침묵하셨습니다. 욥이 극한적 고난 중에도 하나님께 원망하지 않고 믿음의 순전함을 드러내 보이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욥은 그런 깊은 뜻을 모르니까 간구에 침묵하시는 하나님에 대해 답답했을 겁니다.  물론 실망해서 침묵하실 때도 있을 겁니다. 말라기 선지자 이후 예수님이 오실 때까지 400여년 동안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침묵하셨다고 합니다.

여러분도 어려운 일을 해결해달라고 기도하는데 침묵하시는 하나님 때문에 답답하고 믿음이 흔들린 적이 있을지 모릅니다.그래서 하나님께서 침묵하실 때도 믿음에서 흔들리지 않게 하나님께 대한 신뢰의 믿음을 견고하게 해야 합니다. 부부 사이에 신뢰가 깊으면 배우자가 당장 이해 못할 행동이나 상황에 빠져 오해를 받을 때도 내 남편은 그럴리 없다고 끝까지 신뢰하며 견뎌낼 수 있습니다. 안그러면 짐싸가지고 집나가서 이혼하겠다고 하지 않겠습니까?

침묵하실 때도 하나님은 욥의 사정을 다 알고 계셨습니다. 여러분도 하나님이 침묵하시더라도 내 사정을 다 알고 계시며 때가 되면 말씀하시고 해결해주실 것이라고 믿기 바랍니다.  버림받은 기분, 하나님이 안계시는 것 같은 의심과 싸워 이겨내기 바랍니다. 사탄은 이런 감정들을 이용해 우리를 공격하는데 그 때는 다른 사람이 대신 싸워줄 수 없습니다. 자기 믿음이 자기를 구원한다는 걸 기억하고 여러분 자신을 믿음 위에 굳게 세워 혹 곤경에 처하더라도 입술로 범죄하지 않게 되길 바랍니다.

욥을 통해 계시된 하나님은 절대적 신뢰와 순종을 기뻐하시는 하나님입니다. 주님은 우리 연약함을 아시고 회개하면 언제나 다시 용서해주시는 긍휼이 풍성하신 분입니다. 그렇다고 그걸 믿고 쉽게 세상과 욕망과 타협하거나 방심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그리고 욥의 세 친구에게서 보는 것처럼 남의 고난을 죄 때문인 것처럼 쉽게 말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고난을 당하는 게 다 죄 때문은 아닙니다. 어려움에 처한 지체를 볼 때 원인분석하려고 하지 말고 무조건 힘껏 도와주기 바랍니다. 하나님께 불평하고 교회에 목사에 불만이 많은 교우들은 자신을 옳다고 생각하기 때문인데 이것까지도 하나님께 내려놓고 굴복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그러면 욥처럼 하나님께 복을 받아 늙고 기한이 찰 때 살면서 자녀까지 다 잘되는 보게 될 겁니다. 여러분 모두 그렇게 되길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