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순종의 결과

사무엘상15:17-23 / 불순종의 결과

한 주간 평안했습니까? 주변 분들과 인사를 나누고 편한 마음으로 말씀을 들읍시다. 뭐든 수고해서 세운 것이 무너지는 걸 보는 건 괴로운 일입니다. 사무엘은 사울을 왕으로 세우는 걸 첨엔 기뻐하지 않았지만, 왕으로 세운 후엔 최선을 다해 도와주었습니다. 사무엘은 진심으로 사울이 왕으로서 하나님과 백성 앞에서 성공하길 바랐습니다. 사울은 외모가 준수하고 마음은 겸손하고 하나님을 경외하며 백성을 의식하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거기에다 사무엘과 같이 휼륭한 정신적 후원자가 뒤를 받쳐주었습니다. 성공할 요소를 두루 갖추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사울의 왕위는 아들에게 계승되지 못하고 다윗에게 넘어가고 다윗의 후손이 왕위를 계승했습니다. 사울이 실패한 것은 자질이 부족하기 때문은 아니었습니다. 부족하다고 생각하고 계속 겸손한 마음으로 하나님 말씀에 순종했다면 그는 성공한 왕이 되고 그의 아들 요나단의 성품으로 봐서 사울의 아들은 성군이 되었을 겁니다. 그런데 왕위에 올라 적응기간을 거치면서 어느 사이에 왕의 교만에 빠져 하나님의 지시를 무시하고 자신의 생각과 판단에 따라 행동하다가 하나님 눈 밖에 나서 버림당했습니다. 그래서 힘을 가진 사람일수록 삼가하고 조심해야 합니다.

먼저 이스라엘 사회에서 왕이 등장한 배경에 대해 간단하게 살펴봅시다. 사무엘이 늙어 그의 아들 요엘과 아비야가 사사가 되어 백성들의 송사를 판단했습니다. 그런데 이 두 아들은 아버지 사무엘처럼 청렴결백하고 공평하게 판결하지 않고 뇌물을 받고 부당한 판결을 내려 백성들의 불만을 샀습니다. 어느날 이스라엘 장로들이 사무엘을 찾아와 아들들의 비리를 거론하며 왕을 세워달라고 요구했고 하나님도 허락하셔서 사울이 왕이 백성들을 통치하게 되었습니다.

제비뽑기로 사울이 왕이 되었지만, 그 전에 하나님은 사울을 택하여 사무엘에게 가서 기름붓게 하셨습니다. 많은 사람 중에서 하나님은 왜 사울을 왕으로 택하셨는지 분명치는 않습니다. 성경에 사울의 아버지 기스가 베냐민의 유려간 사람이었고 사울은 이스라엘 청년 중에 그 보다 준수한자가 없고 키는 모든 백성보다 어깨 위는 더했다고 외모와 신장이 뛰어났다고 합니다(삼상9:1,2). 집안 배경과 외모도 참고사항이 된 것 같긴 합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하나님께서 사울을 왕으로 택하시지는 않았을 겁니다.

하나님께서 미리 택하여 사무엘을 보내 기름붓게 하셨지만, 왕이 되는 절차는 제비뽑기였습니다. 사무엘이 백성을 미스바로 불러 여호와 앞에 모으고 지파대로 천명씩 여호와 앞에 나오게 한 결과 베냐민 지파가 뽑혔고 베냐민 지파를 그 가족대로 가까이 나오게 하여 마드리가족이 뽑혔고 그 중에선 기스의 아들 사울이 뽑혔는데, 이렇게 되게 하나님의 보이지 않는 손이 작동하셨습니다. 그런데 정작 사울은 보이지 않아 찾아보니 물건더미 사이에 숨어있었습니다.

사실 사울은 그 전에 기름부음을 받은 터라 이 제비뽑기에서 자신이 왕이 될 거라는 걸 알고 있었을 겁니다. 그래서 미리 자리를 피해 숨은 것 같습니다. 자신은 왕이 될 위인이 못 된다고 생각한 것 같습니다. 왕이 되는 게 꼭 좋은 일만은 아니라고 사울이 생각했을 수도 있습니다. 적이 침공했을 때 왕은 생사를 걸고 나가 싸워야 할 것이고, 약한 베냐민지파 출신이라고 무시당할 수도 있는 일이었습니다. 왕이 될 때만해도 사울이 하나님의 지시를 무시하고 자기 생각대로 하는 그런 교만한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사울은 왕이 되기 전 성령의 감동을 받아 마음이 변하여 새 사람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신이 임하여 선지자들 가운데서 예언을 하기도 했습니다. 이런 체험은 사울이 하나님을 더욱 의식하며 행동하게 만들었을 겁니다. 성령의 감동으로 마음이 변하여 새 사람이 되고 예언을 말하는 체험을 하고 그랬더라도 그것이 온전히 하나님을 믿고 따르는 보장을 해주지는 못했습니다. 성령으로 거듭나고 은사를 받고 그런 사람도 육신의 욕망과 재물의 유혹에 빠집니다.

사울은 성령의 감동과 예언의 체험에도 불구하고 왕이 된 후엔 자기 생각대로 행동하는 교만의 함정에 빠졌습니다. 성령의 감동과 마음의 변화는 말씀에 순종하며 살기 위한 필요조건이지 충분조건은 아닙니다. 어느 교회든 은혜 받고 성령체험하고도 믿음에서 멀어진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리 교회도 예외가 아닐 겁니다. 여러분이 그렇게 될지도 모릅니다. 그러니까 항상 깨어 말씀을 보고 기도하고 셀원들의 조언을 겸손하게 받아들이며 경건에 힘씁시다.

왕이 된 후 사울은 암몬, 블레셋, 아말렉을 상대로 전쟁을 치뤘습니다. 암몬의 나하스가 길르앗 야베스를 침공했습니다. 야베스 장로들은 암몬을 섬기겠다며 화친을 제안했으나, 나하스는 너희 눈을 다 뺀 후에 그리하겠다며 조롱했습니다. 이에 야베스 장로들은 기브아에 있는 사울왕에게 구원을 요청했습니다. 야베스의 무례함에 화가난 사울은 이스라엘 자손 30만과 유다 자손3만을 모아 새벽에 암몬 지지를 급습해서 물리쳤습니다. 전투에서 승리한 사울은 길갈에 모여 화목제를 드리며 승전을 자축했습니다. 하나님이 함께하신 승리였습니다.

얼마 후에 사울의 아들 요나단이 블레셋 수비대를 공격한 것이 계기가 되어 블레셋과 전면전이 벌어졌습니다. 블레셋은 병거가 3만, 마병이 6천, 백성은 해변의 모래와 같이 많았다고 합니다. 병거와 마병은 사울의 군대가 갖지 못한 막강한 군사력이었습니다. 전에 블레셋이 40년간 이스라엘을 지배할 때 블레셋은 이스라엘이 병거나 마병을 갖지 못하게 막았고 이스라엘은 농기구도 블레셋 사람에게 가서 구해야 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블레셋의 위세에 눌려 수풀과 바위틈과 웅덩이 같은 곳으로 도망쳐 숨었습니다.

사울은 전쟁에 나서기 전 여호와께 제사를 올려 전투에 참여하는 백성들의 사기를 높이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사무엘이 온다고 정한 이레를 기다려도 오지 않아 겁먹은 백성들이 흩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걸 보고 초조해진 사울이 직접 주도하여 번제를 드렸습니다. 그 직후 나타난 사무엘은 사울왕에게 하나님 여호와께서 왕에게 명하신 명령을 지키지 않고 망령된 행동을 하여 왕의 나라가 길지 못할 것이고 여호와께서 마음에 드는 사람을 구하여 백성의 지도자를 삼으셨다고 책망했습니다.

사무엘의 책망이 좀 심한 게 아닌가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습니다. 사무엘이 기한 내에 오지 않고 백성은 흩어지고 다급해서 직접 번제를 드린 것 뿐인데 그게 왕위에서 쫓겨날 일입니까? 여러분 생각은 어떻습니까? 그런데 사무엘의 반응은 하나님께 버림당할 만큼 잘못된 일이라는 것입니다. 사울 입장에선 생사가 걸린 전쟁이 더 긴급한 문제였지만, 사무엘에겐 하나님께서 정하신 제사법을 어기고 또한 기다리라는 자신의 말을 지키지 않은 것은 왕으로서 자격을 잃은 행동이었습니다. 사무엘이 하나님의 메시지가 없었는데도 여호와께서 그 마음에 맞는 사람을 구하여 백성의 지도자를 삼았다고 하지는 않았을 겁니다.

블레셋과 전투는 요나단의 용맹으로 전세를 바꿔 이스라엘이 승리했습니다. 요나단은 여호와께서 블레셋을 자기 손에 붙였다는 믿음으로 적진에 올라가서 단숨에 20여명을 죽였습니다. 그러자 블레셋 병사들이 겁을 먹고 이리 저리 흩어졌고 죽음의 공포에 질린 병사들이 마구잡이로 칼을 휘둘러 자기들끼리 싸웠습니다. 이런 모습을 보고 숨어 있던 이스라엘 사람들이 모두 나와 도망가는 블레셋 사람들을 추격해서 제압했습니다. 하나님은 사울은 버렸지만 이스라엘 백성을 위해 전쟁은 이기게 도와주셨습니다.

사울이 용서받을 기회를 스스로 차버린 것이 아말렉과 전투에서 하나님의 지시를 어긴 것이었습니다. 아말렉은 에서의 아들 엘리바스가 첩 딤나에게서 낳은 아들 이름으로 아말렉족속은 그의 후손으로 야곱의 후손인 이스라엘과는 사촌 형제의 후손이었습니다(창36장). 그런 아말렉이 출애굽하던 이스라엘을 르비딤에서 공격했습니다. 그 때 일을 기억하고 하나님은 아말렉을 쳐서 그들의 가축까지 남기지 말고 모두 멸하라고 사무엘을 통해 사울에게 지시했습니다.

사울은 20만이 넘는 대군을 소집해 아말렉 성으로 진격해서 아말렉을 제압하고 아각왕과 기름진 양과 소 등은 진멸하지 않고 살려 두었습니다. 사울은 모두 진멸하라는 하나님의 지시를 어기고 아깝다고 살려가지고 왔습니다. 하나님은 불순종하는 걸 보고 사울을 왕으로 세운 걸 후회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말을 듣고 사무엘은 사울이 걱정이 돼서 밤을 새워 기도했습니다. 다음날 사무엘이 길갈로 가서 사울을 만났습니다.

사무엘이 사울에게 내 귀에 들리는 이 양들의 소리는 어찌 된 것이냐고 묻자, 백성들이 하나님께 제사드리겠다고 해서 양과 소의 좋은 것을 남겨둔 것이라고 변명했습니다. 설사 백성 중에 그런 제안을 한 게 사실일 수도 있습니다. 그렇더라도 하나님이 다 진멸하라고 하셨다고 알리고 그대로 했어야 했습니다. 사무엘은 사울에게 여호와의 목소리를 청종하기보다 탈취하기에 급하여 여호와께 악을 범한 것이라고 지적하고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수양의 기름보다 낫다며 불순종은 우상의 죄와 같다고 말했습니다(삼상15:22,23).

사울은 용서를 구했지만, 너무 늦었습니다. 사울이 블레셋과 전투에 나가기 전에 번제드린 일로 책망과 버림받을 것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그 때 진심으로 용서를 구했더라면 어찌 되었을지 안타깝습니다. 사울이 버림받아 다윗 같은 성군이 나왔으니 결과적으로는 잘 된 일이긴 하지만 사울, 특히 그의 아들 요나단을 생각하면 참 안됐습니다. 요나단은 믿음과 인품이 다윗 못지 않았습니다. 요나단이 왕이 됐어도 성군이 되었을 겁니다. 아쉽게도 요나단은 아버지 사울이 하나님의 기대에 미치지 못해서 다윗에게 왕위가 넘어가고 말았습니다.

역설적으로 실패한 인물 사울은 하나님의 뜻을 받들고 순종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지를 보여줍니다. 사울이 버림당한 것은 왕으로서 자질이 부족하거나 정치를 못해서가 아니었습니다. 탈취물에 욕심이 생겨 하나님의 지시를 어겼기 때문이었습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에서 실패하는 것도 보면, 인품이나 능력이 부족하기 때문이 아니라 자기 생각을 주님 말씀 위에 놓고 살아가는 교만 때문입니다. 자신을 낮추고 어떤 이해관계 속에서도 주님 말씀대로 따라간다면 복받고 성공적인 삶을 살 수 있을 것입니다.

주일 한 두 시간의 예배보다 매일 성경말씀대로 사는 것이 하나님을 더 기쁘게 해드린다는 것도 기억합시다. 주일 예배가 소중하지 않다는 말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인이라면 최선을 다해 주일을 지키며 예배하는 삶을 살아야 마땅합니다. 주일 예배드릴 수 없는 직장은 시간을 두고 바꾸기 바랍니다. 예배하지 않는 심령은 메마를 수 밖에 없습니다. 예배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지만, 삶 속에 말씀대로 살지 않는 예배는 바리새인의 위선과 같아 하나님을 기쁘게 해드릴 수 없을 것입니다. 사람의 이목이나 재물의 욕심 때문에 주의 말씀을 거역하는 일이 없도록 삼가하기 바랍니다. 성령의 감동을 받아 말씀을 묵상하며 주님과 동행하는 한 주가 되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