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안에서 기뻐하라"

빌립보서3:1-11

“주 안에서 기뻐하라”

한 주 동안 주 안에서 평안을 누렸습니까? 다시 만나 반갑습니다. 말씀 나누기 전에 옆 사람들과 먼저 인사합시다. 지난 한 달 동안은 목자들이 준비한 말씀을 들으며 많은 은혜와 도전을 받았습니다. 수고한 목자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오늘부터 다시 빌립보서 강해설교를 하겠습니다. 오늘 본문은 3장 1절부터 11절까지입니다. 내용은 대략 다섯 개의 문장으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주안에서 기뻐하라(1절),  종교적 의식이나 행위를 강조하는 율법주의자들을 조심하라(2절), 그리스도 안에서는 출신 가문, 학벌, 소속, 교단, 종파, 민족을 내세우지 말라(5-6), 예수님을 아는 것이 최고의 지식이다(8), 하나님 앞에서 의롭게 되는 길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다(9-11).

바울은 지금 감옥에 있습니다. 어떤 이유로든 감옥에 갇혀 신체의 자유를 제한당한 상태에 있게 되면 몸은 물론 마음도 힘들어질 겁니다. 복음과 교회를 위해 일하다가 어려움을 당하면 원망하는 마음이 생길 수도 있습니다. 디모데후서1장 15절을 참고하면, 바울이 감옥에 갇히자 아시아에 있는 모든 사람(바울의 영향으로 예수 믿은 그 당시 소아시아 지역 교인들)이 바울을 외면했다고 나옵니다. 이것은 분명 바울을 우울하게 만들었을 것입니다. 그 동안 자신의 수고가 헛된 게 아닌가 심란했을 것입니다. 그 당시 디모데는 바로 그 소아시아 에베소 교회에서 사역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런 분위기에 영향을 받았을 것입니다.

예수 믿고 구원 얻어 하나님 나라의 상속자가 되어 천국의 소망을 가지고 살게 된 사람은 매일 기쁘게 사는 게 당연한 일입니다. 그러나 아직은 우리가 이 세상에서 종종 어려움에 처하기 때문에 매일 기쁜 것만은 아닙니다. 지난 한 주간 감정의 기상도는 어떠했습니까? 저는 주 초반엔 근심, 걱정, 불안, 초초가 지배적이었는, 주 중반엔 하나님께서 큰 근심거리를 어느 정도 해소시켜 주셔서 지금은 감사와 기쁨으로 회복되었습니다. 지금 힘든 분들은 하나님 아버지의 선하심을 믿고 기도하며 조금만 더 참기 바랍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어려운 문제들 해소시켜 주시든지 피할 길을 주시든지 하실 겁니다.

바울 사도는 2절에서 삼가하라고 세번이나 강조하고 있습니다. 삼가하라는 대상은 종교적 의식이나 행위를 강조하는 율법주의자들이었습니다. 이들이 침투해서 교인들을 미혹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바울 사도께서 소아시아와 마게도냐지역과 고린도지역에 가서 선교할 당시에 그 지역엔 예루살렘을 떠나 흩어진 유대인들이 살고 있습니다. 그들은 율법의 전통에 따라 할례를 받고 안식일을 지켜야 구원을 얻을 수 있다고 배운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래서 교회를 다니게 된 유대인들 중에는 이방인 교인들에게 할례를 받아야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그 말을 듣고 이방인 그리스도인 중엔 할례를 받는 사람이 생겼습니다. 2절의 몸을 상해하는 일은 할례를 두고 하는 말입니다.

오늘 우리에겐 할례 같은 의식이 문제가 되진 않습니다. 그러나 믿음보다 어떤 종교의식이나 행위를 강조하는 것에 대해서는 경계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을 상대로 “무엇, 무엇을 하면 복 받는다”, “기도응답을 받으려면 무엇을 하라” 이런 말은 삼가 하고 경계할 필요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믿음보다 선행이나 나의 공로를 더 강조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선행과 구제는 우리가 마땅히 해야 할 것이지만, 그것을 근거로 구원이나 은혜나 복을 받을 수 있는 것처럼 말하는 것은 믿음보다 행위를 강조하는 잘못된 것입니다.

사람은 뭐든 좀 자랑하고 싶어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자랑할 게 없으면 자기가 사는 곳의 날씨가 좋다고 자랑하기도 합니다. 아브라함은 믿음의 조상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의 후손이라고 해서 저절로 구원 얻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도 예수님 당시에 유대인들은 아브라함의 후손인 걸 자랑했습니다. 자기 교회가 좋다고 자랑하는 교인도 있고, 자기 교단이 최고라고 내세우는 목사들도 있는데, 모두 쓸데없는 일입니다. 그리스도인에겐 예수님과 은혜받은 것 밖엔 자랑할 게 없습니다..

세상 것을 가지고 자랑하는 것은 더욱 허망한 일입니다. 그런 자랑은 교만하게 만들고 은혜에서 멀어지게 할 뿐입니다. 사람들이 모이면 가문이나 학벌이나 좋은 직장, 자녀 잘 난 것 등을 자랑하는데, 이런 것들은 구원과 은혜와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자기 아버지가 유명한 목사라고 해도 자기가 신앙생활 제대로 하지 않으면 아무 소용없습니다. 바울께서는 디도에게도 족보이야기와 율법에 대한 다툼은 아무런 유익이 없으니 피하라고 권했습니다(디3:9).

바울은 그 시대에 상당한 수준의 지식인이었습니다. 당대 최고의 율법교사였던 가말리엘의 문하에 들어가 율법을 공부했고, 바울의 서신들을 보면, 그가 당대의 세속적 철학과 학문에도 상당한 수준의 지식을 갖춘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는 헬라 철학자들을 상대로 진리를 논했고, 총독과 황제 앞에서도 논리적으로 자신의 주장을 폈습니다. 그런 수준 높은 지식인이었지만 바울은 예수님을 아는 지식, 계시의 말씀과 비교할 때 구원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세상 지식을 배설물과 같은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이공계 박사학위를 가진 과학자 그룹에 불신자가 많은데, 아마도 그들이 가진 지식이 복음을 어리섞은 것으로 보게 하는 것 같습니다. 우리 중에도 대학은 물론 대학원을 나와서 석사, 박사 학위를 가진 교우들이 있는데  지식이 믿음에 방해가 되지 않게 바울 사도 같은 마음을 갖기 바랍니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포스트 모더니즘시대는 상대주의, 다원주의가 지배하고 있습니다. 상대주의는 하나의 절대적 진리를 부정하고 각 지역문화에 나름대로 진리가 있다며 서로 존중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원은 하나의 중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다원이라고 하면 중심이 여러 개가 있다는 말입니다. 이런 관점을 가진 사람들은 예수 믿어야만 구원 얻는 것도 아니고 기독교만 구원의 길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며 종교마다 진리를 가지고 있고 구원에 이르는 길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뭘 알아서 그런 주장을 하는 게 아니고 상대주의, 다원주의 관점에서 보면 그렇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주장은 9절에서 바울 사도께서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함을 얻는다는 말씀을 부정하는 것입니다.

현대 교회 목회자들 중에는, 그것도 공부를 좀 했다는 목사들 중에는 세속적 이념인 상대주의, 다원주의에 영향을 받아서 타 종교에도 구원의 길이 있다고 양보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기독교가 독선적이라는 비난을 피하고 포스트모더니즘 시대의 현대인들을 전도하기 위한 전략으로 그런 입장을 취한다면 이거야 말로 바보전략입니다. 왜냐면 타종교에도 구원의 길이 있고 예수 믿지 않아도 구원얻을 수 있다면 굳이 예수 믿고 교회 다닐 이유가 없지 않겠습니까? 예수님을 믿는 것 외엔 구원얻을 길이 없다고 선포해야 부담을 느끼며 결단할 게 아닙니까?

이념과 세속적 문화는 시대에 따라 변화해왔습니다. 수십 년 후엔 포스트모더니즘을 넘어 또 어떤 문화사조가 등장할 지 모릅니다. 세상 철학과 학문과 이념은 절대적 진리를 찾아가는 이성의 탐구과정이기 때문에 앞으로도 변할 겁니다.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변하지 않는 불변의 진리는 하나님 말씀, 곧 성경입니다. 성경에 필사자의 사소한 오류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구원에 이르는 길을 제시해주는 계시로서는 오류가 없는 진리의 말씀입니다.

신학을 공부한 목회자라고 해도 성경과 다른 말을 하면 경계할 필요가 있습니다. 최근에 어떤 자매와 점심을 나누며 들은 말입니다. 그 자매가 다니는 교회에 프린스턴 신학교에서 공부한 전도사가 있는데, 그 전도사가 고백하기를 자기는 성경의 진정성을 믿지 못한다고 했다는 것입니다. 신학교에서 역사비평, 문서비평 이런 방법으로 성경을 비판하며 공부해서 그렇게 됐을 겁니다. 성경을 믿지 못하니까 성경에서 말하는 구원의 진리도 의심하게 되고, 정말 예수님이 그렇게 말하신 게 맞는지 확신하지 못하는 겁니다. 믿음의 눈으로 성경을 읽지 않고 세상 지식과 학문적 방법을 가지고 성경을 분해한 결과 믿음을 잃고 만 것입니다.

제가 지난 주에 달라스 구약학 교수였던 Jack Deere의 Surprised by The Power of the Spirit 책을 읽었습니다. 이분은 성령의 초자연적 은사와 치유가 성경기록이 완성된 후 끝났다고 믿고 있다가 초자연적 은사와 치유사역을 경험하면서 지금도 성령께서 병을 고쳐주신다고 믿게 되어 치유사역에 동참한 분입니다. 지금은 초자연적 은사와 치유가 끝났다고 생각하는 것은 성경이 그렇게 가르치기 때문이 아니라 초자연적 역사를 부정하는 현대의 사조에 영향을 받은 그리스도인들이 치유에 대한 믿음을 잃어버리고 치유에 대한 경험을 하지 못해 더 이상 하나님은 예수님의 이름으로 병을 고치시지 않는다고 생각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사람들이 어떻게 성경의 가르침에서 떠나는지 보여줍니다. 

교우 여러분, 어려운 상황에 처했더라도 선하신 하나님의 도우심을 믿고 기도하며 기쁘게 한 주간을 사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믿음의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십니다. 주께서 기도하는 여러분의 문제와 질병과 곤경을 해결해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지금 우리가 처한 환경이 아무리 힘들더라도 감옥에 있는 바울보다는 낫지 않겠습니까? 하나님은 지금도 성령을 통해 초자연적으로 우리 삶 가운데 역사하신다는 믿음을 가지고 삽시다. 믿음은 역사하는 힘이 있습니다. 여러분이 대학에서 배운 하나님을 대적해서 높아진 지식에서 나오는 의심을 물리치고 걱정 대신 기도하며 평안을 누리기 바랍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늘 함께하시며 도와주시고 지켜주실 것입니다. 주 안에서 기쁜 한 주가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