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멀었다

빌립보서3:12-16 / 아직 멀었다 / 9-10-17

 

오늘 우리가 함께 살펴보며 은혜 받을 본문말씀은 빌립보서3장 12절부터 16절까지입니다. 내용상으로는 10절부터 연결해서 보는 게 더 적합할 것 같은데, 지난 주일에 11절까지 본문으로 말씀을 전했기 때문에 12절부터 살펴보겠습니다. 바울 사도는 12절에서 내가 이미 얻은 것도 아니고 온전히 이룬 것도 아니고 아직도 목표를 향해 달려가는 중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바울이 무엇에 대해 그런 표현을 사용했는가 생각해보니 옛님을 닮아가는 영적 성숙의 측면과 받은 사명을 완수하는 측면에서 자신을 평가할 때 나는 아직 멀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바울 사도는 빌립보서를 AD61년 전후 로마감옥에서 쓴 것으로 알려져있습니다. 그 때 바울은 60이 넘었고 그 때로부터 오래 잖아 순교 당하고 세상을 떠납니다. 바울의 죽음에 대해선 크게 두 가지 설이 있습니다. 바울이 감옥에서 석방된 직후인 AD 62년 말이나 63년에 순교당했다는 주장과 감옥에서 석방된 후 여기 저기 다니며 복음을 전하다가(4차전도여행) AD67년 경에 다시 체포되어 순교당했다는 주장이 있습니다. 어느 쪽이 맞든지 바울은 정말 복음의 전선에서 쉼 없이 치열하게 영적 전쟁을 하며 달려왔습니다. 그런데도 그는 "난 아직 갈 길이 멀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런 바울에 비하면 우리는 이제 달리기를 시작한 청년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니다.

여러분 중에는 20대 초반 대학생일 때 저와 함께 늘푸른교회를 섬기기 시작한 교우들이 있습니다. 아직 30대라도 목자나 찬양팀에서 10년 넘게 봉사해왔을 겁니다. 그 동안 많은 설교를 듣고 매년 두번씩 수양회를 하고 여러 신앙훈련과정에 참여했기 때문에 기독교의 기초적 지식은 거의 습득했을 것입니다. 어떤 분들은 이제 더 배울 게 없다고 느낄지도 모릅니다. 스스로도 이젠 초자를 뗐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댜. 여기까지 오는 과정 동안 약간의 피로감이 쌓였을 수도 있습니다. 그 동안 열심히 달려왔으니 좀 쉬고 싶다는 생각도 들겁니다. 그런 분들은 난 아직 달려갈 길이 멀었다고 말하는 바울을 한번 생각해보기 바랍니다.

바울은 그냥 자기 일에 충실하면서 별일 없으면 주일에 교회 나와 예배 드리고 봉사한 그런 정도가 아니었습니다. 30세 전후에 예수 믿은 후부터 지금 60이 될 때까지 바울은 소아시아와 유럽지역을 여러 차례 다니며 복음을 전하고 믿는 사람들을 모아 교회를 세우고 그 교회를 돌보는 일을 해왔습니다. 그 과정이 얼마나 힘들고 위험했는지 사도행전을 읽어보면 잘 알 수 있습니다. 그렇게 주님을 섬겨왔고, 지금도 복음을 전하다가 감옥에 갇혀있는 상황이니까 이젠 쉴 때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바울은 아직도 해야 할 일이 많다며 예수님이 자신을 붙드신 목적을 이루기 위해 달려가겠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2천년 정도 지난 기독교역사에서 바울은 그 어떤 사도나 선교사나 목사나 평신도 사역자보다 주님과 교회를 섬기는 일에 열심을 가진 분이었습니다. 사실 누가 복음사역에서 바울 사도보다 더 큰 족적을 남겼다고 하겠습니까?. 자신에게든 다른 사람에게든 왜 바울처럼 살지 못하느냐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솔직하게 말해 바울 외에 바울처럼 살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누구라도 바울처럼 살 수는 없겠지만,  생명이 남아 있는 한, 아직 시간이 남아 있는 한 부르심의 상을 얻기 위해 푯대, 즉 목적지를 향해 60이 넘은 나이라도 계속 달려가겠다는 그 마음가짐은 우리도 본받아야 하겠습니다. 

14절에서 바울이 말하는 “부름의 상”은 구원의 완성 곧 영광스런 부활과 영생을 의미하는 것으로 생각됩니다. 예수 믿고 주님을 섬겨서 우리가 얻게 되는 가장 큰 상이 뭐겠습니까? 구원 곧 영생입니다. 바울은 그것을 얻기 위해 생명이 다하는 날까지 달리고 또 달려가겠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도 누가 봐주든 말든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 누리게 될 영생의 복을 생각하며 낙담하지 말고 복음을 전하며 교회를 섬깁시다.

또한 바울은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푯대를 향해 달려간다고 말했습니다. 뒤에 있는 것은 지난 세월의 잘못과 미련 같은 것일 겁니다. 3,40대 청년 여러분들도 지난 세월을 돌아보면 잘못한 것에 대한 회한과 이루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 같은 것이 있을 것입니다. 바울에겐 예수님을 부정하고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했던 과거가 있었습니다. 과거는 시간 속에서는 지나간 것 같아도 기억 속에서는 살아서 앞으로 나가지 못하게 발목을 잡는 경우가 많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과거에 사로잡혀 앞으로 나가지 못합니다. 대표적인 것들이 과거의 상처와 실패입니다. 회개하고 용서 받고 용서해주면서 빨리 잊고 오늘과 내일을 위한 인생을 삽시다.

역사가 예수님의 탄생을 기준으로 그 이전(BC)과 그 이후(AD)로 나뉘는 것처럼 그리스도인은 예수님 영접을 기준으로 그 이전과 이후로 나뉩니다. 예수 믿기 이전의 인생은 세상 기준으로 잘했든 못했든 다 죄 가운데 살아온 세월입니다. 주 앞에선 자랑할 게 없다는 말입니다. 그러니 예수 믿고 용서받은 그리스도인은 과거에 집착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지나간 날들의 잘못은 옛 사람과 함께 무덤에 묻어버렸으니 잊어버립시다. 오늘이라는 시간에 우리가 할 일은 열심히 성경 읽고 기도하며 예배 시간을 귀히 여기고 성경 교훈대로 살기를 힘쓰는 것입니다. 물론 학업과 생업에도 충실하기 바랍니다.

15절의 “온전히 이룬 자들”은 문맥 속에서 볼 때 예수 믿고 구원을 성취한 그리스도인을 의미하는 것 같습니다. 온전히 이룬 자들에 해당하는 헬라어는 ‘텔레이오이’(teleioi)입니다. 이 단어는 성경 다른 곳에선 ‘온전한 자’(고전2:6), 또는 ‘완전한 자’(골1:28)로 번역되어 있습니다. 이 온전과 완전은 우리 인품이 실제로 그렇게 완전하게 거룩한 사람이 되었다는 뜻이 아니라 믿음으로 의롭다고 간주되는 그런 뜻에서 법적으로 선언된 의를 의미합니다.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얻어 완전한 사람으로 인정받았지만 실제로는 아직 많이 부족하다는 걸 알고 성화에 힘쓰라는 말씀입니다.

잠언 16장 18절 보면,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여러분이 교회에서 동료 친구보다 더 열심으로 신앙생활을 잘 하고 있더라도 “난 아직 멀었다’고 생각하며 주님 닮기를 힘쓰기 바랍니다. 우리는 누굴 판단하고 정죄할 입장이 아닙니다. 제 보다 내가 낫다고 생각하는 게 교만입니다. 늘푸른교회에서도 그랬고 그전에 다른 교회에서 사역할 때도, 칭찬하고 나면 그 사람이 얼마 후에 꼭 실망스런 모습을 보이는 걸 봤습니다. 그래서 요즘엔 칭찬하는 걸 조심합니다. 격려하는 것은 괜찮지만, 칭찬은 사단이 틈탈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지금 영적 수준이 어느 단계에 와 있습니까? 목적지까지 얼마나 남았습니까? 그 동안 달려온 정도에 따라서 조금씩 다른 위치에 있을 겁니다. 목적지에 가깝다고 느끼는 사람도 바울 사도의 마음 가짐으로 난 아직 멀었다고 생각하며 달려가기 바랍니다. 저도 아직 멀었다는 바울 사도의 말씀을 읽으며 반성했습니다. 주께서 부르신 그 부름의 상인 복되고 영광스런 부활에 참여할 수 있도록  지나간 일들은 이제 다 잊어버리고 주님만 바라보며 함께 달려갑시다. 우리는 이미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에 대한 믿음으로 완전한 의를 얻었고 거룩해졌습니다. 이제 그 믿음이 의롭고 거룩한 인품을 만들어내고 예수님을 기억나게 할 만큼 성화로 꽃피게 합시다. 여러분 모두 이 믿음의 경주를 완주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