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비와 경외 (박정준 목자)

제목: 신비와 경외 (박정준 목자)

본문: 욥기 42장 1-3절

주께서는 못 하실 일이 없사오며 무슨 계획이든지 못 이루실 것이 없는 줄 아오니 무지한 말로 이치를 가리는 자가 누구니이까 나는 깨닫지도 못한 일을 말하였고 스스로 알 수도 없고 헤아리기도 어려운 일을 말하였나이다

오늘 이야기 하려고 하는 이야기는 모르는 것에 관한 것입니다. 조금 더 정확히 말하자면 모르는 것에 대한 자세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하루를 더 살수록 아는 것이 많아진다기 보다는 내가 모르는 것이 더 많다는 것을 조금씩 알게 되었습니다.

여러분들도 모르는 게 많지요. 우리는 아무것도 모르고 세상에 태어나요. 우선 나 자신도 모르는 거죠. 나를 모르기 때문에 내가 맞는 전공을 한건지 앞으로 무엇을 해야할지, 결혼은 해야 하는지 고민이 많죠. 물론 나를 모르는데 다른 사람은 더 모르죠. 평생 알아가는 거에요. 이성은 우리가 알 수 없기 때문에 참으로 신비한 대상이죠. 나를 알아가고 사랑하는 사람을 알아가고.

우리는 또 세상을 몰라요. 만물이 어떻게 창조 되었는지. 어떻게 생명이 생겼고 우주는 어떤 원리로 작동하고 있는지. 또 모르는 게 뭐가 있을까요? 내일을 알 수 없죠. 제가 아마존에서 일할때 마지막 있었던 부서가 데이터 분석 부서인데 데이터를 가지고 예측하는 거죠. 하지만 백미러를 보고 운전하는 것과 같아요.  주식 어날리스트, 데이터 사이언티스등 똑똑한 분들이 많이 들 착각하는데 우리는 미래를 확률적으로 예측하려고 노력하는 거지 절대로 알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하죠.

모르는 것들이 이렇게 많아서 어떻해요? 답이 좀 정해져 있으면 좋겠는데. 그런데 말이죠. 자신이 모른다는 것을 아는 것이 시작이에요. 우리는 크면서 이 마음을 잃어가죠. 모르기 때문에 신비하고 그렇기 때문에 호기심을 가질 수 있어요. 모르기 때문에 보호받고 있음을 감사할 수 있고, 무엇보다 모르기 때문에 감동할 수 있어요. 아이가 크리스마스 선물을 알고 받으면 감동하지 않잖아요.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하나님에 대하여 아는 것보다 오히려 그저 하나님에 대한 그리고 그분이 하신 일에 대한 경외다"

이게 제가 오늘 드리고 싶은 말의 핵심 중 하나에요. '하나님의 신비' 라는 말 속에는 우리는 모른다, 알 수 없다가 담겨있죠. 세 아이의 아빠가 되고 나서 가장 좋은 점 중에 하나는 부모의 관점이 생겼다는 점이에요. 이렇게 생긴 부모의 마음이 조금이라도 하나님의 마음과 닮아 있다는 가정하에 아이들을 향한 나의 마음을 통해서 아버지의 마음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는 것이죠.

아빠로서 아이들이 저에 대해 많은 것을 아는 척 하기를 바라기 보다는 그저 제가 해 준 것들을 고마워하고 기뻐하기를 바래요. 노아랑 요한이가 저를 다 안다고 생각하면서 서로 '아빠 뜻은 이런 거야. 그러니까 너가 잘못한거야' 이러면 사실 마음 아프죠. 그저 '와, 아빠는 어떻게 나에게 이렇게 해 주셨을 수가 있을까' 이런 마음.

우리가 모르는 것을 안다고 생각하는 건 스콧 백 박사의 말에 의하면 두려움과 게으름 때문이래요. 만약에 어떤 미로 속에 우리가 있다고 생각하면 불안하죠. 내가 출구를 알고 있다고 생각하면 덜 불안하잖아요. 또 내가 많이 모른다고 생각하면 더 무언가를 알아야 하는데 귀찮잖아요. 그렇지만 우리는 하나님의 신비를 온몸으로 느껴야 합니다. 하나님이 주신 우리의 이성과 감성, 오감으로요. 그리고 무엇보다 그것을 창조하신 분이 우리를 보호하고 계셔요. 우리의 삶도 그래요. 나 자신도 그렇고. 여러분이 혼란스럽다면 그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거에요. 우리는 다 알지 못합니다. 단 하나의 답이 있다면 좋겠지만 그렇지 못하죠.

본문의 욥기 이야기를 잠깐 할게요. 욥 이야기는 다들 아실 거에요. 욥은 지금으로부터 3-4천년전에 쓰인 문학작품이라고 해요. 저자는 욥, 모세, 솔로몬, 예레미야등이라는 다양한 견해가 있어요.  내용은 욥이라는 의인이 있었는데 하나님과 사탄이 내기를 해요. 고난을 주어서 욥이 하나님을 저주하는 지 안하는지 보기로 말이에요. 이 부분은 우리가 우리가 깜짝 놀라죠. 아니 하나님이 몰래카메라도 아니고 욥을 두고 사탄이랑 내기를 하셨다고? 그리고 우리에게 또 욥에게 이런 고민스러운 문제를 주고 딱히 대답해 주지 않아요.

욥기에서 세 친구는 논리적으로 욥을 공격해요. 마치 하나님의 대변인이 된 것 같이 하나님의 뜻과 세상의 이치를 다 아는 것 처럼.. 욥이 무엇인가 잘못을 했기 때문에 벌을 받은 것이라고 하죠. 사실 세 친구들이 하는 설교 중에 좋은 말이 참 많아요. 그렇지만 욥에게 아무 도움이 되지 못하고 다들 나중에 하나님 한테 무지 혼나요. 욥 앞에서 누가 더 의로운가, 지혜로운가, 하나님 뜻을 더 잘 아는가 웅변대회를 하죠. 마치 요즘 인터넷 댓글들 같아요. 우리도 그렇지는 않을까. 하나님의 뜻을 안다고 착각하며 살지는 않는 걸까. 생각해봐야하죠.

욥기에서의 설정은 욥이 잘못이 없는 의인이라는 것이에요. 그래서 욥은 계속해서 반박하죠. 계속된 반박됨에도 불구하고 욥에 대한 집단 공격은 끝이 나지 않을 듯 하다가, 하느님이 나타나 선한 사람 인증을 하고 인민재판을 펼친 자칭 친구들을 꾸짖는데, 그 요지만 정리하면, "지식은 진리가 아니기에 결국 '모름'이다. 너희들이 지식은 많다만 진리를 아는 것이 아니다. 그럼 결국 모르는 것이지 않느냐? 그럼, 대관절 무얼 안다고 욥을 공격하고 있는 거냐?"가 되요. 그리고 하나님께서 하신 신비한 일들을 말씀하시죠. 동물이야기 자연이야기 등등 창조주 밖에 할 수 없는 일들을요.

욥기 안에서 또 배우게 되는 것은 욥기 안에서 친구들이 나중에 하나님께 야단맞는 이유는 너희들이 의인이 아니면서도 의인 행세로 욥을 핍박했다는 것. 고난 받은 자를 핍박하는 게 가장 악인이라는 것이요. 고통 받는 자에겐 위로밖에 없는데 그걸 가지고 잘난 척하면서 설교하는 것은 절대 있을 수 없다고..

그런데 마지막에 갑툭튀 한 사람 엘리후가 와서 세 명과 달리 비교적 제일 나은 대답을 해요. 가장 어린 사람이고 이름의 뜻은 '그는 나의 하나님이시다'에요. 엘리후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대답도 해요. 나중에 하나님께서 너희들은 세 친구처럼 되지 말고 엘리후 같은 사람이 되라는 하시죠. 엘리후가 욥한테 한 이야기에요.

"욥이여 이것을 듣고 가만히 서서 하나님의 오묘한 일을 깨달으라. 하나님이 어런 것들에게 명령하셔서 그 구름의 번개로 번쩍거리게 하시는 것을 그대가 아느냐. 그대는 겹겹이 쌓인 구름과 완전한 지식의 경이로움을 아느냐."

욥기 37장 14-16절

엘리후가 말을 끝내니까 이번엔 하나님께서 직접 나오세요. 욥에게도 나중에 얼마나 멋지게 하나님께서 대답해주실까 기대해보면 사실 속시원한 대답은 커녕 야단만 치고 상관도 없이 '네가 내가 세상 만들때 거기 있었느냐?' '나는 이러 자연 만물을 만들었는데 넌 뭘 할 줄 알아?' 물으시죠.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것. 그건 바로 하나님이 하신 신비에 대한 경외라는 거죠. 자판기와 같이 딱 떨어지는 답과 문제해결이 아니라, 끊임 없는 질문의 과정, 그리고 모르는 것과 나 보다 크신 분에 대한 경이와 경외.  요즘 인공지능 이야기가 나오면서 컴퓨터가 사람을 다 대체할 것 같이 하지만 이 신비에 대한 경외심이야말로 컴퓨터가 할 수 없는 거죠.

욥은 하나님을 직접 뵈고 나서는 납작 엎드려요. 농구를 좋아하는 꼬마가 스테판 커리를 만난 것 처럼.. 겸손하게. 그리고 자신의 입을 닫고 하나님을 경외해요. 그 불만 많던 사람이 무지 억울하고 속시원한 답을 하나도 듣지 못했는데 하나님을 그냥 뵌것만으로 '저는 다 해결되었습니다' 이런다고요.

욥기에서와 같이 우리의 삶은 응답되지 않은 기도 속에서 살아가죠. 우리가 구하는 것을 매번 주시지도 않고 궁금한 것을 알려주시지도 않아요. 오히려 욥기는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을 받지 못한 곳. 네가 알고 싶은 것을 알지 못하는 그 장소가 바로 네가 하나님의 임재를 뵙는 장소'다 라고 말하는 것 같아요. 수많은 불만과 질문들을 뒤로하고.. 그저 하나님의 임재로 모든 것이 해결. 제가 전하고 싶은 두번째 말씀이에요.

우리가 구할 것은 '하나님 자신'이다.

세상의 모든 고민, 불만, 걱정 모두 하나님의 임재로 해결 되는 거에요. 우리가 구하는 것은 이렇게 해 주세요, 저렇게 해주세요 가 아닌 하나님 바로 그 분 그 자체죠. 우리가 모르는 것이 많죠. 그래서 어떻하나. 왜 이렇게 확실하게 답을 안주시나 그랬는데 괜찮아요. 우리는 아무리 해도 알 수 없는 것들이에요.

우리가 구해야 할 것은 '하나님 저에게 답을 주세요'가 아니라 '하나님 그 자체'에요. 우리가 결혼할 때 친구를 만날 때 그 사람에게 무언가를 요구하는 관계는 비지니스 잖아요. 그냥 그 사람 자체를 원하는 거죠. 그리고 그 사람을 극도로 존경할 때 드는 마음을 우리는 경외심이라고 해요. 경외 하는 대상에게는 다른 아무것도 바라지 않아요. 오직 그 분 자체을 바라죠.

결국 욥의 경외심을 보신 하나님께서는 욥을 칭찬하시고 세친구를 꾸짖으세요. 그리고 욥이 친구들을 위하여 기도할때 욥에게 갑절의 복을 더하시죠.

그래서 오늘 이후 여러분들이 삶을 사실 때 매일 사소하게 당연하게 생각했던 모든 것 또 우리가 알 수 없는 모든 것에 감동합시다. 모르는 것, 알 수 없는 것을 안다고 착각하지 말고 그저 그 신비에 온 몸으로 파묻히자고요. 그러면 감사와 경외가 따라 올 거에요. 욥기에 나온 것과 같이 이 땅에 모든 것에는 하나님의 손길이 담겨있어요.

이제 모든 짐승에게 물어보라 그들이 네게 가르치리라.공중의 새에게 물어보라.그것들이 또한 네게 고하리라.땅에게 말하라 네게 가르치리라 바다의 고기도 네게 설명하리라.이것들 중에 어느 것이 여호와의 손이 이를 행하신 줄을 알지 못하랴』(욥기 12장 7∼9절)

우리를 창조하시고 능력주시고 보호해 주시는 분 앞에서 미리 할 수 없다고 말하는 것만큼 큰 죄는 없다고 해요. 그것이야 말로 창조주에 대한 모욕인 거죠. "지금의 내가 다가 아니야. 더 할 수 있어."

오늘이야 말로 하나님의 신비로 가득찬 새로운 새창조의 날이에요. 감동하고 감사하는 하루를 삽시다. 하나님의 보호를 믿고 가보지 않은 미지의 길을 호기심과 기대로 매일 열정적으로 도전하자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