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자녀답게 삽시다 (김재범 목자)

(요 1:9-13)

안녕하세요 8월은 다들 아시다시피, 늘푸른교회 목자 사역 주간 입니다. 저희가 일년에 한번씩 한달을 정해서 목사님이 아닌 다른 성도들이 돌아가며 교회도 돌보고 말씀도 같이 나눌수 있는 기회인데요, 다른 교회에서는 생소한 일일지 몰라도 저희 교회에서는 5년째 행해지고 있는 일입니다. 저도 이렇게 여러분 앞에 선지가 4번째 되는것 같은데요, 사실 이런 자리가 부담도 많이 되고 어렵기는 하지만, 또한 한편으로는 주님앞에서 제 몸 가짐을 다시 한번 되살피고 말씀을 볼때도 더욱 심도있게 받아들이려고 하는 계기가 되어서 제 개인적인 신앙에 참 많이 도움이 되는것 같습니다.

그런 와중에, 하나님께 송구스런 마음 반, 또 간절하게 도움을 구하는 마음 반으로  기도를 하다가 문득 하나님께서 얼마나 자비로우신 아버지 이신가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루 이틀도 아니고, 매월, 매해 철 없는 아이같은 모습으로 실수와 회개를 반복하는 저를 언제나 기다려 주시고 위로해 주시는 하나님의 모습이 기억나서, 정말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 이시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다가 그런 자비로우신 아버지 밑에서 자라나는 자녀된 우리는 어떠한 모습으로 살아가는 것이 바람직 한지에 대해서 나누어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 보면, 영접하는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라고 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을 받아드리는 것. 믿는 것. 그 외에는 다른 어떠한 조건이 걸려있지 않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은연중에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아야 그 관계가 유지되는 것처럼 생각하는것 같습니다. 행여 실수 하거나 하나님께 부끄러운 일을 저질렀을때, 그 관계가 끊어져 버렸는지 불안해 하며 걱정합니다.

탕자의 비유를 보면 자기 마음대로 살다가 아버지가 준 재산을 탕진한 탕자가 이렇게 고백합니다.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하지 못하겠나이다. 나를 품꾼의 하나로 보소서 하리라”. 언듯 보면, 상당히 그래도 양심은 있네 라는 생각이 들게 만드는 구절입니다. 근데 제가 이 구절을 보면서, 만약에 엘리가 이런 마음으로 자신을 자책하고 있다고 하면, 전 엘리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면서 이렇게 얘기해 주겠습니다. “엘리야, 너가 이 세상의 어떤 잘못을 저지른다고 할 지라도, 엘리는 아빠의 딸이다. 그 사실은 무엇으로도 바꿀수 없는, 이미 일어나버린, 확정된 일이다. 그건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난다고 해도 절대 변하지 않는 거란다” 라구요. 그렇게 생각하고 나니, 아.. 하나님의 마음도 이와 똑같은 거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부모가 자식을 자식처럼 대하는데 이유가 있겠습니까? 조건이 있겠습니까? 있다면, 자식이니까 그런거죠. 그렇게 생각해 보니, 복잡하지 않더라구요.

물론 이것을 ‘무엇을 해도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으니까 나는 내 마음대로 살꺼야’ 라고 악용하면 안됩니다. 하나님과 우리의 자녀 사이가 끊어지지 않는다고 했지, 우리가 아무렇게나 살아도 행복한 부모와 자녀가 될꺼야 라는 말이 아니니까요. 마치 탕자가 집을 나가서 제 멋대로 살때 그 아버지가 매일을 노심초사 하며 아들을 걱정한것 처럼, 우리가 사는 모습에 따라서 우리 하나님 아버지도 근심하시기도 하시고 기뻐하시기도 하실 테니까요. 그렇다면, 하나님이 보시기에 만족스러워 하실 만한 자녀의 모습을 어떤 것일까요?

솔직하게 이야기 해서 사실 이 부분에 대해서 제가 성경적으로 아님 뭐 신학적으로 무엇을 풀이해 낼수 있는 능력이 없습니다. 그래서 고민을 참 많이 했는데 그냥 어렵게 생각하지 않고 제가 육적인 부모의 입장에서 만족스러운 자녀의 모습은 어떨까 하는 식으로 접근해 봐야겠다 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처음에는 아이들이 세상적인 복을 가졌으면 좋겠다 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당연히 제일 먼저 건강했으면 좋겠고, 재정적인 면으로 부족하지 않았으면 좋겠고, 여러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좋은 배우자 만나서 사랑받고 행복한 가정을 꾸리는 등등 이런것도 끝이 없더라구요. 하지만, 이런 것들이 떠올려 지면서도 왠지 성이 차질 않더라구요. 이런 것들이  아이들이 행복한 사람으로, 온전하게 살아가는데 뭔가 부족하다는 생각이 드는거에요. 그 ‘부족하다’라는 하는 것이 ‘내 자녀는 너무 특별해서 이런 것들로는 모자라’, 이런 뜻이 아니라, 너무 변수에 약하다 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예를 들어서 건강만 해도, 부모의 마음으로서 자식이 건강하지 않은 모습을 기뻐할 사람이 누가 있겠어요. 당연히 건강 했으면 좋겠죠. 하지만, 거기에는 너무 많은 변수가 있잖아요.  당장 우리는 다음 순간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 지 못하는데, 건강하지 않으면 행복한 사람으로서, 온전한 사람으로서 살아가기 어렵다? 뭔가 말이 되지 않았어요. 그래서 생각을 좀 더 하다 보니까, 뭔가 이런 것들보다 좀 더 근본적인, 많은 변수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그런 변수들을 이겨낼수 있는 힘이 되는 무엇인가가 아이들에게 더 필요하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그래서 제가 생각해 본게, 첫째로 자기 자신의 가치를 잘 깨닫는 자녀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엘리는 자기 자신에게 너그러운 편이 아닙니다. 그림을 그리거나 무엇을 만드는 크레프트를 할때도 보면, 자기 자신만의 기준이 있어요. 그 기준에 미치지 못하면 자기 자신에 대해서 너무 실망하는 거에요. 근데 제가 옆에서 지켜보고 있기에 좀 힘든 점은, 그 엘리의 기준이라는 것이, 엘리의 수준에서 도달할수 없는 기준을 잡아놓는데에 있어요. 예를 들자면, 색칠공부를 하는데, 엄마가 더 삐둘지 않고, 선이 빗나가지 않고 그렸다는 거죠. 6살 짜리 아이가 어른의 솜씨랑 비교해서 낙담하고 실망하고, 자기 자신을 비하하고.. 부모가 보기에 참 쉽지 않죠. 이 때는 옆에서 무슨 소리를 해도, 엘리 자신의 성에 차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부모가 무슨 말로 위로를 해도 들리지 않는거죠. 하나님 앞에 우리의 모습 같지 않나요?

자존감이 높은 사람들은 자신의 실수와 부족함을 인정할수 있다고 해요. 똑같이 실패하고 넘어졌을때, 자존감이 높은 사람들은 자신의 실수와 부족함을 인지하고, 인정하며 앞으로 더 나아갈수 있는 힘을 낼수 있다고 합니다. 반면에 자존감이 낮은 사람들은 실패를 했을때 그 현실과 마주치지 않으려고 애를 씁니다. 여러분도 혹시 저처럼, 시험에 빠지고 실수할때 하나님과 멀이지시나요? 기도가 나오지도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대하면 찬양을 하면 나에 대한 실망감이 더 커질까봐 말씀도 보지 못하시나요? 그렇다면 여러분도 저 처럼 영적인 자존감이 낮은 것입니다. 자존감의 가장 기초가 되는 힘은, ‘나 자신이 가치 있는 사람이야’ 라는 믿음으로 부터 시작한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사실 우리는 유리해야 한것 아닌가요? 그야말로 우리는 예수님 짜리 니까요. 하나님이 여러분들을 자녀로 부르실때 ‘예수님’ 이라는 값을 지불 하셨잖아요. 만약 우리 안에 그래도 자신을 정죄하려는 속삭임이 있다면, 그냥 하나님의 눈을 믿어보십시요. 하나님께서는 십자기를 통해 여러분들의 진정한 가치가 얼마나 큰지를 이미 보여 주셨어요.

우리가 실수하고 넘어질때 마다 도망친다면, 우리는 진정한 의미에서 우리의 full potential 을 이룰수 없습니다. 그건 하나님의 나라에서도 그렇고, 세상에서도 같은 원리인것 같습니다. 우리의 부족함을 똑바로 바라 보고, 하나님께 내려놓고 정직하게 도와달라고 기도할때 수많은 변수에도 굴하지 않고 한 걸음 더 나아갈수 있습니다. 저는 제 자녀들이 실수하고 넘어지는 것에 낙담하지 않고, 꿋꿋하게 자신을 믿고 매일 매일 성장할수 있는 자녀들이 되길 원해요. 여러분들도 하나님 앞에 그런 자녀가 되시길 바랍니다.

둘째로, 아버지를 의지하는 아이들이 되었으면 좋겠다 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제가 예전에 페북에서 이런 동영상을 봤습니다. 여러분들도 아마  보신적이 있을텐데, 아버지의 전성기라고 해서 아이의 시점에서 부모를 봤을때 얘기였어요. 처음에 아이들이 어리고 한창 도움이 필요할때는 엄마 아빠가 슈퍼맨 원더 우먼 처럼 보이다가, 차츰 차츰 아이들이 성장하고 자라자 엄마, 아빠는 그냥 어른, 좀 더 시간이 지나니까, 그냥 좀 무능력한, 시대를 따라오지 못하는 40대, 50대로 보이는 거에요. 그러다가 이제 아이가 결혼을 하죠. 그리고 얼마 후에 아이를 낳습니다. 그리고 나서 다시 엄마 아빠를 보니까, 엄마 아빠가 다시 슈퍼맨, 원더 우먼으로 보이는 동영상 이였어요. 물론 보는 관점에 따라 동영상의 포인트를 아이 들이 철 들게 할만큼 육아가 힘들구나 라는 교훈으로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저는 좀 다른 관점에서 이 동영상이 떠오르더라구요. 내가 만약 동영상에 나오는 부모라면, 어떠한 시기에 가장 내가 아이에게 많은 관심과 도움을 줄수 있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당연히 아이가 나를 수퍼 히어로 처럼 대하고 도움을 요청할때죠. 아이가 나의 도움을 요청하지 않거나, 내가 도움 주는것 자체를 바라지 않는다면, 부모로서 도움을 줄 수 있는 것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물론 저는 능력 부족한 사람일뿐인지라, 아이들이 저를 슈퍼 히어로 처럼 대해주고 도움을 요청한다고 해도, 제가 줄 수 있는 도움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 대상이 전지 전능하신 우리 하나님 아버지라면 어떨까요? 신명기 28 장 1절부터 6절의 말씀입니다:

네가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삼가 듣고 내가 오늘 네게 명령하는 그의 모든 명령을 지켜 행하면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실 것이라
네가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청종하면 모든 복이 네게 임하며 네게 이르리니
성읍에서도 복을 받고 들에서도 복을 받을 것이며
몸의 자녀와 토지의 소산과 짐승의 새끼와 소와 양의 새끼가 복을 받을 것이며
광주리와 반죽 그릇이 복을 받을 것이며 네가 들어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을 것이니라

뭐 그냥 복 잔치에요. 복 잔치. 전 처음에 왜 굳이 이 구절을 이렇게 풀어서 썼을까 생각이 들었어요. 그냥 어떤 일을 하던, 어디에 있던 뭐.. 이런 식으로 표현을 해도 되지 않았을까.. 하고 묵상을 하다가, 이 말씀이 삶의 많은 변수에서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 라는 말씀이구나 라고 깨달았습니다. 그야 말로, 내가 무엇을 하던, 무엇을 먹던, 어디를 가던, 누구와 함께 하던 하나님이 간섭하시고 함께 하시겠다는 약속인 거에요.

바로 이거야!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처음에 이 말씀을 읽었을때는 ‘복’ 그 자체에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반복해서 묵상할수록, 하나님과 우리 삶의 모든 부분을 함께 할수 있다는 것 자체가 복이자, 또 건강한 자녀의 모습이구나 하고 깨달았어요. 그리고 그렇게 내가 동행하는 삶을 산다면, 하나님 또한 얼마나 기뻐하실까 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부모된 입장에서 자녀의 삶을 가까이 지켜보고 함께 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기쁘고 보란된 일인지는 여기 계신 부모님들은 모두 이해하실 것이라고 생각이 듭니다.

자 이제 결론으로 한번만 더 본문을 보고 말씀을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보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라는 표현이 나옵니다. 권세라는 말은 힘 또는 능력이라는 표현인데요… 하나님 자녀가 된 사람들의 능력, 힘에 무엇이 있을까요? 제가 말씀을 정리하면서 곰곰히 생각해 보니까요 그 중 하나가 자기 자신을 가치있게 여길수 있는 이라고 믿습니다. 사단은 끊임없이 지금도 내가 지난 날의 실수와 상처로 주저앉기를 바랍니다. 쉬지 않고 나의 부족한 점, 죄성을 들쳐내며 내 영적 사람을 정죄합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나의 영적 ‘가치성’을 이미 증명해 내시면서, 나에게도 사단의 그런 공격을 압도할수 있는 견고한 피난처를 주셨습니다. 자기 자신을 가치있게 여길수 있는 힘은, 하나님의 자녀 된 우리의 identity를 확고하게 해 줄 뿐 아니라 나의 부족함과 연약함을 극복해 낼 수 있는 힘의 원동력이 도어 줄 것입니다.

하나님 자녀의 권세는 그 것 뿐이 아닙니다. 나의 죄성 때문에 하나님과 온전히 소통할 수 없었던 우리들이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고 의지할 있는 특권을 주셨습니다. 이 말은, 우리가 자녀로서 하나님을 의지하고 바라보는 만큼, 하나님이 우리 삶에 직접 간섭하시고 주관하실 것이라는 말입니다. 제가 아직 어리긴 하지만, (어리다는 표현이 좀 이상한가요?) 가끔은 저에게 지워진 무게 때문에 쉬어 가고 싶을때가 있습니다. 만약에 내가 아무에게도 의지 할 수 없이 저 혼자 해 내야 한다고 한다면 진즉에 포기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에게 쉴 곳이 있다는 건 참 중요한 이야기 인것 같습니다. 삶이 무겁고 힘겨워 질때, 아이된 우리들이 하나님의 등에 업혀 조금 쉴수 있다면, 그것이 그 우리의 삶을 훨씬 더 건강하고 여유롭게 지켜줄 것임을 믿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오늘의 가장 중요한 질문. 그렇다면 여러분들은 이러한 하나님 자녀된 권세를 누리시면서 살고 계시나요? 오늘 꼭 한번 여러분의 삶을 되돌아 보세요. 그리고 꼭 기억하세요.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답게 사는 것은, 우리를 자녀의 의무로 속박하고 갑갑하게 만드는 일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 반대죠. 그런 의무감과 무게로부터 우리가 자유로워 질 수 있게 해 주고 우리의 전부를 다 받아들일수 있게 해 주는 것. 그것이 하나님의 자녀로서 우리가 누리야할 특권이자 능력입니다.

여기 계신 늘푸른 가족들 모두가 다 하나님 자녀된 특권을 충분하게 사용하셔서 주님 안에서의 행복하고 보람찬 삶을 누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