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에 합당하게 살자

빌2:27-30 / 복음에 합당하게 살자

 

신앙은 고백과 삶이 함께 가야 진짜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구세주와 주님으로 고백하는 믿음으로 구원을 얻었습니다. 주님이라고 고백하면서 예수님 말씀을 무시하고 자기 하고 싶은 대로 하면서 산다면 여러분도 그 믿음은 가짜라고 느낄 겁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아버지의 뜻대로 행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마7:21). 야고보 사도는 이웃 사랑을 말하는 사람은 배고픈 사람을 만났을 때는 먹을 것을 줄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약2:16).

오늘은 ‘복음에 합당하게 살자’는 제목으로 하나님 말씀을 전하겠습니다. 바울 사도는 27절에서 빌립보 교우들에게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고 말했습니다.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는 말은 ‘복음을 위해 살라’, ‘그리스도인 답게 살라’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기독교를 박해하는 권력 밑에서 예수 믿는 것을 숨기지 않고 그리스도인 답게 사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바울이 빌립보서를 썼던 AD62년 전후는 네로 황제(AD37-68)가 통치하던 시대였습니다. 네로는 AD54년부터 AD68년까지 황제의 자리를 지켰습니다. 그는 잔인하게 기독교인을 박해하여 그의 통치 기간 동안 수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순교 당했다고 합니다. 참고로 신약외경 베드로행전에 의하면, 베드로 사도와 바울 사도도 네로 통치 말기에 같은 날에 순교 당했다고 니다. 순교 당한 때는 AD65-67년 사이였을 것으로 추정합니다.

예수 믿는다고 박해 받는 시대에 복음에 합당하게 사는 사람들은 생명의 위험에 노출될 수 있었습니다. 안전만 생각하면 다른 사람은 모르게 숨어서 신앙생활 해야 할 때입니다. 그런데 바울은 복음의 신앙을 위하여 협력하는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협력하려면 예수 믿는 것을 드러내고 전도활동에도 참여해야 합니다. 이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고 특별한 각오가 필요합니다.

복음의 신앙을 위해 협력하는 것이 무엇을 말한 것인지 자세한 설명은 없지만, 개인전도하고, 새신자를 돌보고, 교회봉사하고, 복음 위해 일하는 사람들을 후원하는 일이었을 것입니다. 그런 활동은 기독교를 박해하는 자들에게 드러날 수 밖에 없습니다. 이런 상황인데도 빌립보 교인들은 복음의 신앙을 위해 협력했다는 것입니다.

교회가 세워지고 성장해 나가는 과정은 어디서나 같습니다. 전도하는 사람이 있고, 그 복음을 듣고 예수 믿는 사람이 생기고, 이제 막 예수 믿은 상태라서 사실 영적 베이비 수준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힘을 모아 교회로 모이고 나가서 전도해서 또 새로운 결신자를 얻어 교회가 커지고 시간이 흐르면서 좋은 일꾼들이 배출되어 자립할 수 있는 교회가 됩니다. 우리 늘푸른교회도 이런 과정을 밟으면 지금까지 왔습니다. 앞으로도 계속 이렇게 성장해가도록 교우 여러분들의 협력을 바랍니다.

28절 보면, 빌립보 교인들은 대적하는 자들을 인하여 두려워하지 않고 복음의 신앙에 협력했다고합니다. 빌립보 교인들이 참 대단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이런 담대함은 믿음에서 나온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빌립보교인들이 특별해서가 아니고 진짜로 예수 믿고 하나님 나라 소망을 가지고 살았기 때문에 생명의 위협을 받는 박해 속에서도 자기 믿음을 지킬 뿐 아니라 전도하고 교회를 세우는 일에 참여할 수 있었다고 생각됩니다.

박해와 위협에 굴복하지 않고 복음의 신앙에 협력한 빌립보교인들을 생각하면 힘들다는 이유로 신앙생활을 소홀히 하며 협력하는 사역을 회피하지 않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누구나 자기 수준에서 사는 게 힘듭니다. 아이들은 학교 가는 게 힘들다고 할 겁니다. 어른들도 직장 다니는 게 힘들 겁니다. 엄마 노릇하기도 힘듭니다. 목회도 힘들 때가 있습니다. 공부든, 일이든, 가정사든 힘들기 때문에 더욱 믿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28절에 “이것이 저희에게는 멸망의 빙거요 너희에게는 구원의 빙거” 라는 말이 있습니다. 복음전하는 자들을 위협하고 해를 끼치는 자들은 종말에 멸망을 당할 사람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그런 박해와 위협에도 불구하고 예수 믿고 복음을 위해 사는 사람은 구원 얻을 사람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사인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나 바울 자신이 대적하는 자였다가 예수님의 특별한 배려로 복음전파자가 되었으니까 대적자라고 해서 다 멸망하는 사람이라는 뜻으로 한 말은 아닐 것입니다.

끝으로 주님을 위해 고난 받는 것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바울은 예수 믿기 때문에 당하는 고난을 감당하는 것이 복음에 합당하게 사는 것 중에 하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님 때문에 우리가 받게 되는 고난에는 그 당시 빌립보교인들처럼 국가권력의 박해가 있고, 예수를 싫어하는 사람들로부터 받게 되는 부당한 위협이 있고, 세상에서 하고 싶은 것을 포기해야 하거나 주의 일을 하면서 가난하게 살아야 하는 것도 있습니다. 동시에 이 모든 것을 다 겪지 않더라도 한 두 가지는 해당될 수 있습니다.

고난을 당할 때 사람들의 반응은 다양합니다. 힘든 일이 생기면 도망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봉사 하던 일을 그만 두고 교회를 안 나옵니다. 한 때 마가 요한도 힘들다고 중간에 집으로 돌아간 적이 있었습니다. 계속 불평하면서 주변 사람을 힘들게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욥의 처는 남편보고 하나님을 원망하고 죽으라고 불평했습니다. 출애굽 직후 이스라엘 백성들도 광야에 도착했을 때 변변히 먹을 게 없다고 불평했습니다. 그러나 믿음으로 견뎌내는 사람도 있습니다. 박해받던 초대 교회 교인들이 여기에 해당합니다. 바울도 선교하면서 온갖 고난을 견뎌내야 했습니다..

예수 믿는다고 고난에서 면제되는 것은 아닙니다. 안 당해도 될 고난을 예수 믿기 때문에 당하는 수도 있습니다. 불의한 세상, 사탄이 역사하는 세상이라 예수 믿는 우리가 세상 사람보다 더 고난을 당하는 게 당연합니다,. 고난 당하는 것을 겁내면 예수 믿기는 해도 따라갈 수 없기 때문에 복음에 합당하게 살기 어렵습니다. 복음에 합당하게 살려면 고난을 겁내지 말고 믿음으로 받아내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받게 되는 고난은 세상의 욕심을 내려놓고 주님을 따라가게 만들어 줄 겁니다. 이런 고난은 많이 받을수록 유익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고난을 당할 때 감사하며 기뻐했다고 합니다. 여러분도 이런 바울 사도를 본받아 복음에 합당한 성도가 되길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