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언의 성취, 벨사살의 최후

다니엘5:17-31 / 예언의 성취, 벨사살의 최후

오늘은 벨사살왕의 최후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오늘 본문 내용을 보면, 벨사살왕이 귀족 천명을 불러다 궁중에서 연회를 베풀며  유흥을 즐기고 있는데, 바사와 메대 연합군이 쳐들어와 바벨론을 함락시키고 벨사살은 죽임을 당한 것으로 나옵니다. 먼저 벨사살의 역사성부터 살펴보겠습니다.

우리는 전에 느부갓네살왕의 금신상 꿈을 통해 때가 되면 바벨론제국이  무너지고 다른 왕의 나라가 일어날 것이라는 다니엘의 해석을 들었습니다.  이제 예언이 성취될 때가 것입니다.  본문엔 벨사살왕만 언급되어 있지만,  실제로는 벨사살의 아버지 나보니두스왕이 통치하고 있던 때였다고 합니다.

발굴된 설형문자 문서들의 내용에 따르면, 나보니두스는 집권하여 정국이 안정된 후 아들 벨사살에게 바벨론 행정권을 맡기고 자기는 엘람의 테마로 떠나 달의 신 숭배에 전념하며 오랫동안 바벨론을 찾지도 않았답니다. 이 때 바벨론을 실제로 통치한 것은 벨사살이었습니다. 다니엘5장 7절에서 벨사살이 손가락이 쓴 글자를 읽고 해석하는 자에게 셋째 통치자를 삼겠다고 했는데, 자신이 아버지 다음으로 서열 두번째 통치자였기 때문인 둘째가 아닌 셋째 통치자를 제안한 것 같습니다.

벨사살왕은 귀족 천명을 왕궁으로 불러다 잔치를 열었습니다(단5:1).  때는 BC539년 10월 경이었습니다. 그 잔치는 바벨론의 영화를 드러내고 벨사살 왕의 건재를 과시하기 위한 것으로 판단됩니다. 잔치가 열리고 있을 때 바사의 고레스와 그와 동맹한 메데의 다리오가 이끄는 군대가 바벨론으로 진격해 포위망을 구축하고 있었습니다. 헤로도투스에 따르면 그날 밤엔 왕궁 뿐 아니라 바벨론 도시 전체가 춤추고 즐기는 축제 분위기였다고 전합니다.

종말에 대해 예수님께서 경고하신 말씀이 생각납니다. 말세에 사람들이 육신의 욕망과 세상의 즐거움을 따라 방탕하게 살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노아의 때와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 홍수 전에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 들고 시집 가고 있으면서 홍수가 나서 저희를 다 멸하기까지 깨닫지 못하였으니 인자의 임함도 이와 같으리라.”( 마 24:37~39)“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그렇지 않으면 방탕함과 술취함과 생활의 염려로 마음이 둔하여지고 뜻밖에 그날이 덫과 같이 너희에게 임하리라 이 날은 온 지구상에 거하는 모든 사람에게 임하리라 이러므로 너희는 장차 올 이 모든 일을 능히 피하고 인자 앞에 서도록 항상 기도하며 깨어 있으라 하시니라.” (눅 21:34~36).

술에 취한 벨사살왕은 느부갓네살왕이 예루살렘성전에서 약탈해온 여호와께 드리는 제사에 사용되었던 금 은 그릇을 가져오라 명하여 귀족들과 왕후들과 후궁들과 함께 그 거룩한 그릇에 술을 따라 마시며 우상을 찬양했습니다. 바로 그 때 손가락이 나타나 왕궁 벽에 알수 없는 글씨를 쓰기 시작한 것입니다. 누군가 처음 그걸 본 사람이 놀라 비명을 질렀을 것이고, 장내는 겁을 먹고 숨을 죽이며 왕과 귀족들 모두 그걸 지켜봤을 것입니다.  

상상해보세요. 기절할 일이 아닙니까? 겁을 먹은 벨사살왕은 왕궁을 출입하며 참모 노릇하는 술사나 점쟁이들을 불러서 무슨 뜻인지 알아내면 자기 다음으로 세번째 통치자로 세우겠다고 제안했습니다. 하지만 아무도 그 뜻을 알아내지 못했습니다. 왕과 귀족들 모두 무슨 재앙이라도 닥치는 게 아닌가 겁을 먹고 있었습니다. 연회장에서 일어난 해프닝이 왕비의 귀에도 전해졌습니다. 왕비가 급하게 연회자리로 왕을 찾아왔습니다.

왕비는 왕에게 명철과 총명과 지혜가 신들의 지혜와 같은 자가 있다며 다니엘을 소개하고 그를 불러서 물어보라고 왕께 제안했습니다. 다급한 벨사살왕은 즉시 다니엘을 불러 손가락이 벽에 쓴 글자를 가리키며 이 글을 읽고 해석해주면 나라의 셋째 치리자로 삼겠다고 말했습니다. 다니엘은 왕이 내린 예물과 상급을 모두 사양한 후 그 글을 해석해 알렸습니다.

다니엘은 손가락이 벽에 쓴 글씨는 “메네 메네 데겔 우바르신”이라고 왕께 알려줬습니다(25절). 이것은 아람 방언을 히브리어로 쓴 것이랍니다. 아람방언이 히브리어로 써 있었기 때문에 갈대아 술사들이 무슨 뜻인지 모른게 아닌가 싶습니다. 한국어를 히브리어 음으로 써놓으면 히브리어를 모르는 사람은 무슨 뜻인지 알 수 없을 것입니다. 다니엘은 모국어인 히브리어는 물론 아람어도 알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메네 메네 데겔 우바르신”은 4개의 수동태형 단어들입니다. ‘메네’는 “수가 헤아려졌다”는 뜻입니다. 두번 반복된 것은 강조하기 위한 것입니다.  ‘데겔’은 “저울에 달렸다”는 뜻입니다. ‘우바르신’은 ‘우’는 아람어 접속사 “그리고”의 뜻이고 ‘바르신’은 “나누어졌다”는 뜻입니다. 28절에 ‘베레스’가 나오는데, 이것은 ‘바르신’의 단수형입니다.

단어의 뜻만 보면, 수가 헤아려지고, 저울에 달렸고, 그리고 나누어졌다는 것입니다. 언어에 대한 지식으로 알 수 있는 것은 여기까지입니다. 바벨론 술사들 중에도 여기까지는 짐작하는 자가 있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왕에게 이렇게 분명치 않은 뜻을 안다고 가서 말할 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술사 중엔 아무도 나서서 그 뜻이 뭐라고 말하는 자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다니엘은 그 단어들이 무엇을 말하려는 것인지 깨달았습니다. 다니엘에겐 하나님의 신이 함께 하셨기 때문입니다.

다니엘은 “수가 헤아려졌다”는 ‘메네’라는 단어에서 하나님께서 왕의 나라의 시대를 세어서 그것을 끝나게 하셨다는 뜻인 줄 깨달았습니다. 일찌기 예레미야는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가는 유다인들에게 70년이 차면 돌아오게 될 것이라고 예언한 적이 있습니다. 바로 70년이 돼서 바벨론이 시대가 끝나간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 다음 “저울에 달렸다”는 ‘데겔’이란 단어는 왕이 저울에 달려 부족함이 보였다는 뜻임을 다니엘은 알았습니다. 이것은 왕으로서 벨사살의 통치는 이제 끝났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나뉘어졌다”는 ‘바르신’은 벨사살의 나라가 둘로 나뉘어 메대와 바사의 지배를 받게 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다니엘은 자기가 깨달은 대로 벨사살에게 설명해주었습니다.

손가락이 벽에 쓴 말은 벨사살왕의 비극적 종말을 예고하는 것이었습니다. 벨사살이 다니엘의 말을 듣고 기분 좋을리는 없었을 것입니다. 그래도 벨사살은 약속대로 다니엘을 셋째 통치자로 삼았다고 합니다. 신하들 앞에서 공개적으로 한 약속이라 자신의 체면을 생각해 약속을 이행한 것 같습니다. 이 때 벨사살은 35세, 다니엘은 85세 정도였다고 합니다. 다니엘은 전에 느부갓네살왕의 꿈을 해석할 때 바벨론의 멸망을 예고했는데 정확하게 67년이 지난 지금 바벨론의 최후가 목전에 있었던 것입니다.

벨사살왕은 잔치날 그 밤을 넘기지 못하고 바사와 메데 연합군이 바벨론을 함락시켰을 때 죽음을 당했다고 나옵니다.  나보니두스 연대기에 의하면 그날 밤, 고레스 군대는 전투 한 번 없이 바빌론에 들어왔다고 하는데, 패망한 제국의 말로가 그러하듯 군사들은 싸울 의지가 없었고 적과 내통하는 세력도 있었을 것입니다. 벨사살왕이 죽임을 당한 후 그의 아버지 나보니두스왕은 좀더 저항하다 결국 고레스에게 항복하고 그것으로 신흥바벨론제국은 종말을 고하고 고레스의 바사제국 시대 패권을 잡았습니다.

벨사살왕이 이렇게 갑자기 비극적 종말을 맞이한 이유가 뭔지 22절과 23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벨사살왕은 선대 느부갓네살왕에게 일어난 일을 다 알면서도 아직도 마음을 낮추지 않고 자신을 하나님보다 높이고 우상을 찬양하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아니하였기 때문이라고 다니엘은 말했습니다. 느부갓네살왕에게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지난 시간에 말씀드렸기 때문에 교우 여러분이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22절엔 벨사살에 대해 “그의 아들이 되어서” 이렇게 표기되어 있는데, 실제로는 벨사살은 느부갓네살의 아들이라기 보다는 외손자였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벨사살의 아버지는 나보니두스왕이었습니다. 나보니두스는 느부갓네살의 사위였다는 설이 있습니다(Nabonidus and Belshazzar 이라는 책에서 R. P. 도허티 ). 이것이 사실이라면 벨사살의 어머니는 느부갓네살의 딸이 되기 때문에 벨사살은 어머니를 통해서 느부갓네살왕에게 일어난 일을 어려서부터 들어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권력은 사람을 교만하게 만드는 법입니다. 벨사살이 왕이 되기 전부터 교만한 성품의 소유자일 가능성도 없진 않겠지만, 왕이 된 후 그가 얼마나 교만한 자였는지는 23절에서 다니엘이 지적한 대로 잘 나타나있습니다. 우리는 벨사살의 비극적 최후를 보면서, 교만은 패망의 앞잡이라는 잠언의 말씀을 실감하게 됩니다. 그래서 말인데, 지금 대통령 행정명령으로 초래되는 혼란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국가 안보라는 가치를 내세우는 것이지만, 특정 국가 출신이라고 출입을 제한 당하는 것은 민주주의 가치를 훼손할 수 있습니다. 계속 이런 식으로 하면 하나님께서 실망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이 기뻐하는 대통령이 될 수 있도록 우리가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교우 어려분 어떤 자리에 있든, 하나님 앞에서 겸손합시다. 힘을 갖게 되면 자신을 낮추고 그것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자가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또한 인생을 좀더 길게 보고 삽시다. 바벨론이 천하를 호령하는 정점에 있을 때 하나님은 멸망을 예고하셨습니다. 그 때 누가 바벨론이 멸망한다고 생각할 수 있었겠습니까? 그런데 이제 때가 되니 정말 이렇게 갑자기 망합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손이 작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앞에 어떤 인생이 펼쳐질지 모릅니다. 성경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며 하나님 나라까지 바라보며 살 수 있기 바랍니다. 안 그러면 세상에서 삶은 성공해서 교만해지거나 실패하고 낙망하기 쉽습니다. 이 두 가지를 다 극복하는 길은 하나님이 다스리신다는 믿음으로 천국을 바라보며 하루 하루 살아가는 것입니다. 한 주 동안 주 안에서 승리하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