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을 만난 체험이 삶을 바꾼다.

다니엘4: 28~37 / 하나님을 만난 체험이 삶을 바꾼다(1/26/17,  늘푸른교회 김만식 목사)


  지난 주엔 느부갓네살왕의 신상에 관한 꿈을 살펴봤습니다. 그 신상은 금, 은, 동, 쇠와 흙 이렇게 네 부분으로 되어 있었는데, 그것들은 느부갓네살의 바벨론 제국을 시작으로 페르시아제국, 헬라제국, 로마제국들을 가리키는 것이었습니다. 이 시간엔 나무에 관한 꿈을 살펴보겠습니다.

꿈은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메세지를 전달하는 수단으로 사용됩니다. 예를 들어, 야곱과 요셉은 꿈으로 계시를 받았습니다. 야곱은 꿈에 천사가 하늘까지 닿은 사닥다리에 오르고 내리는 것을 보고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창28:12). 요셉은 자기 볕단을 향해 형들의 볕단이 엎드러지는 것과 해와 달과 열한 별이 자기에게 절하는 꿈을 꾸었는데 이것은 요셉이 형들의 주가 될 것을 보여주는 것이었습니다(창37:5,9). 요셉은 바로왕의 꿈을 해석해(창41:1) 총리의 자리에 오를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꿈을 통해 요셉에게 마리아의 성령으로 잉태된 것을 알려주셨고(마1:20), 동방박사에겐 헤롯에게 가지 말고 곧바로 돌아가라고 꿈에 지시하셨고(마2:12), 요셉에겐 애굽으로 피신하라는 것과 다시 돌아가라는 것 모두 꿈으로 지시했습니다(마2:13,19).

느부갓네살왕은 신상에 관한 꿈을 꾼 후 수년이 지난 후에 다시 큰 과일 나무 꿈을 꾸고 두려움에 빠졌습니다. 70인역 성경(히브리어구약-헬라어로번역) 느부갓네살이 왕위에 있은 1 8년에라는 기록이 덧붙여있습니다. 다른 사본이나 역본에는 구절이 없기 때문에 정확한 것인지는 알 수는 없습니다. 왕은 바벨론의 모든 지혜자들을 불러 꿈을 알려주고 뜻을 알고자 했지만, 아무도 알아내지 못했습니다(4~7). 왕은 없이 다니엘을 불러 물었습니다.

 바벨론 조정에서 다니엘은 박수장 벨드사살”(9절) 불렸습니다. 바벨론에선 박수, 점성술사, 이런 사람들이 왕의 정치 참모역할을 했습니다. 느부갓네살왕은 다니엘에게 거룩한 신들의 있는 알고 수석비서관으로 임명했던 것입니다. 벨드사살은 벨이 왕을 보호한다 뜻이랍니다. 벨은 바벨론의 마르둑의 호칭으로 라는 뜻입니다.

왕이 꿈에 본 것은 땅 중앙에 나무가 하나 있었는데 그 나무가 자라서 하늘까지 닿았습니다. 나무에 열매가 많이 열려 백성이 먹고도 남고 공중의 새도 가지에 깃들이고 들짐승은 그늘에 쉬며 사람이나 짐승이나 새나 모두 나무의 혜택을 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늘에서 한 거룩한자가 내려와 나무를 베고 가지를 자르고 열매는 떨어뜨려 흩어버리고 짐승과 새들도 쫓아버리라”, “잘라낸 나무의 그루터기와 뿌리는 죽지 않게 보호하라”, 마음이 변하여 짐승의 마음을 받아 일곱 때를 지내게 이라는 말을 했습니다(10~16).

  왕으로부터 꿈의 내용을 들으며 다니엘은 놀라 말문이 막혔습니다. 그 꿈은 앞으로 왕에게 닥칠 일을 보여주는 것인 줄 알았기 때문입니다. 다니엘이 주저하는 걸 눈치챈 왕은 다니엘에게 걱정하지 말고 말하도록 재촉했습니다. 주저하던 다니엘은 왕에게 꿈을 설명해주었습니다.

나무는 느부갓네살왕을 나타냅니. 나무가 하늘에 닿은 것은 왕의 권세가 견고해지고 창대해져 끝까지 미쳤다는 뜻입니다. 갑자가 나무가 잘리게 것은 왕이 갑자기 자리에서 쫓겨나게 된다는 뜻입니다. 짐승의 마음으로 일곱 때를 지낸다는 것은  왕위에서 밀려난 왕이  정신 이상한 사람이 되어 들짐승과 함께 거하며 소처럼 풀을 먹고 광야에서 방랑하며 7년을 지내다가 왕은 정신이 돌아와 왕위를 되찾습니다. 이런 과정을 겪으면서 느부갓네살왕은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께서 자기를 왕위에 오르게도 하시고 쫓겨나게도 하신 것을 깨닫고 하나님을 경외하게 된다는 것입니다(22~26).

다니엘이 신상에 관한 꿈을 해석해주자 다니엘이 섬기는 하나님을 “신들의 신, 모든 왕의 주재”(단2:47)라고 치켜 세운 적이 있지만, 느부갓네살왕은 뼈속까지 바벨론 국가의 신, 마르둑을 섬기는 자였습니다. 다니엘에게도 자기가 섬기는 신의 이름을 붙여 불렀습니다. 고고학자들이 발굴한 느부갓네살의 비문에는 “오 고귀한 므로닥이여 당신의 영광을 위해 내가 집을 하나 지었나이다. 그 집안으로 나라의 왕들과 모든 민족이 바친 많은 조공이 받아들여지기를!” 이런 문구가 남아 있답니다.

  다니엘의 해몽이 있은지 1년 동안은 별일 없이 지나갔습니다. 그런 어느날 느부갓네살왕은 왕궁 지붕 위를 거닐며 바벨론은 내가 능력과 권세로 건설하여 나의 도성을 삼고 이것으로 위엄과 영광을 나타낸 것이 아닌가 자만에 빠져 있었습니다. 하늘에서부터 느부갓네살왕아 나라의 위가 네게서 떠났느니라(31)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다니엘이 말한 “사람에게 쫓겨나서”(25절)는 왕궁에 반역이 일어나 것을 암시합니다. 그는 왕위에서 밀려나 광야에 숨어 소처럼 풀로 연명하며 정신나간 사람으로 7년을 보내야 했습니다.

  느부갓네살에게 이런 재앙이 일어난 이유는 17절에 언급된 것처럼, 자만심에 빠져있는 느부갓네살왕에게 인간 나라를 다스리도록 왕을 세우고 폐하는 권세가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께 있다는 것을 깨닫게해주려는 것이었습니다. 트럼프나 한국의 대권주자들도 이렇게 하나님을 알게 되는 일이 생기면 좋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징계 차원에서 허용한 것인데, 느부갓네살은 자기 힘으로 이스라엘을 멸망시켰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하나님은 바벨론 제국 느부갓네살왕에게 하나님의 존재를 알릴 필요가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얼마든지 바벨론을 무너뜨리고 이스라엘을 다시 회복시킬 수 있으시지만, 아직은 그럴 때가 아니었습니다.  이스라엘백성은 바벨론에서 고생하며 정신 차릴 필요가 있었습니다.

  예레미야는 여호야김왕과 다니엘 등이 바벨론에 사로잡혀가던 해에(BC605, 유다 여호야김 4) 사로잡혀가는 유다백성들에게 70년이 지난 후에야 고국으로 돌아오게 것이라고 했습니다(25:9-11). 예레미야는 사로잡혀가는 사람들에게 바벨론에 저항하지 말고 바벨론왕의 멍에를 메고 그를 섬기며 땅에서 순응하며 살라고 당부했습니다(27:11) 이건 모르는 백성의 입장에선 매국노의 발상이었습니다. 예언을 듣고 백성 중에는 예레미야를 돌로 죽이려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당시 거짓 선지자 하나냐는하나님께서 바벨론 왕의 멍에를 이미 꺽으셨고 2 안에 고국으로 돌아오게 이라고 예레미야 예언을 반박했습니다(28:2,3). 그러나 실상은 예레미야의 예언처럼 바벨론을 멸망시킨 바사 고레스왕이 BC539년에 포로 귀환령을 발표하여(역하36:22,23; 에스라1:1,2) 스룹바벨의 인솔아래 BC538년에 유다로 돌아올 때까지 거의 70 가까이 바벨론에 사로잡혀간 유다 사람들은 바벨론의 멍에를 살아야 했습니다.(1 포로 BC605 여호야김왕3, 다니엘 , 역하36:6, 2차포로-BC598 여호야긴 외에 1만명이상, 왕하24:14~16; 3차포로 BC586, 왕하25:6,11)


  앞서 70인역에 느부갓네살왕이 즉위 1 8년에 나무 꿈을 꿨다는 기록이 있다고 했습니다. 사실이라면 그 해는 BC587년입니다. 느부갓네살왕은 군사를 보내 예루살렘성을 포위하고 있었습니다. 예루살렘성을 포위하고 유다를 멸망직전으로 몰아가고 있었으니까, 느부갓네살왕은 천하에 자기 밖에 없다고 생각했고, 유다가 섬기는 하나님도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있었을 것입니다.


  예레미야259절을 보면, 하나님은 바벨론 느부갓네살을 불러다가 땅과 거민과 사방 모든 나라를 쳐서 멸한다 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죄악을 징계하고 정신차리도록 바벨론을 불러 들인 겁니다. 그러나 느부갓네살은 자기 힘과 성공에 취해 교만해졌습니다. 그러고 있을 하늘에서부터 느부갓네살왕아 나라의 위가 네게서 떠났느니라(31)이런 소리가 들려온 것입니다. 왕은 모반 세력에 밀려나 광야로 도망쳐 7년을 보내다 다시 복위된 것 같습니다. 발굴된 느브가넷살왕의 명각에는  왕이 제정신이 나간 사람처럼 행했던 그 공백기에 대한 기록이 있었는데, 그 내용과 시기가 성경과 일치한다고 합니다.

느부갓네살왕은 반역으로 쫓겨나 광야에서 7년 동안 방황하면서 천하를 다스리는 것이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신 것을 깨닫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는 백성들에게 조서를 내려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을 경외하도록 선포했습니다. 온 나라가 섬겨온 국가의 신을 버리고 포로들이 섬기는 하나님을 경외토록 이런 일은 전례가 없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을지극히 높으신 , 영생하시는 ,  하늘의 이라 말하며 영원한 권세와 찬양과 칭송과 존경을 돌렸습니다. 37절에서무릇 교만하게 행하는 자를 그가 능히 낮추심이라(37) 말은 자신의 간증처럼 들립니다.

느부갓네살은 반역으로 쫓겨나 7년간 미치광이처럼 살다 다시 왕위에 오르는 경험을 통해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으로 바뀌었습니다. 보통 사람이 잘 안 바뀌지만, 하나님을 정말 만난 사람들은 다 바뀝니다. 바뀌려고 노력해서 바뀌는 게 아니고 하나님의 능력으로 바뀌는 것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처음엔 하나님을 모르는 상태로 시작합니다. 살면서 여러 통로를 통해 하나님을 알아가다가 마침내 하나님을 개인적으로 만나는 체험을 하게 됩니다. 하나님을 알고 만나는 것을 은혜라고 말합니다.

성공한 왕과 같은 사람은 정말 바뀌기 어렵습니다. 성공한 왕이니 후회나 자책할 것도 없고, 그래서 바뀌고 싶은 마음도 없고 그럴 필요도 느끼지 않을 겁니다. 느부갓네살도 그런 자만심에 빠져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느부갓네살이 하나님을 만난 후 변하여 새 사람이 되었습니다. 자신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은 물론 모든 국민들에게 하나님을 경외하라고 조서를 내렸습니다. 예레미야의 예언에 따르면, 하나님은 느부갓네살을 “나의 종 바벨론왕”이라고 불렀습니다(렘25:9).

정도 차이는 있어도 예수 믿으면 변하는 게 정상입니다. 아직도 안 변하고 그대로라면 정말 믿는 것인지 반성하는 게 좋습니다. 말로만 믿는다고 해선 변화가 안 일어납니다. 예수 믿고 성령으로 거듭나면 예수님을 닮는 사람으로 변할 수 밖에 없습니다. 예수 믿는 여러분에게 하나님을 경외하는 좋은 변화의 열매가 나타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