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행을 바로잡는 일

고전5:1-13 / 음행을 바로잡는 일

오늘은 고린도전서 5장 말씀을 살펴보겠습니다. 여기엔 음행의 문제가 취급되고 있습니다. 바울 사도는 고린도교인 중에 누가 “그 아비의 아내를 취했다”는 말을 전해 듣고 어떻게 교회에서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가 탄식하면서 이 문제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에 대한 지침을 내렸습니다. 먼저 당시 상황 속에서 음행의 문제를 살펴보고 성적으로 개방적인 현대문화 속에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항상 조심할 필요가 있다는 말씀을 드리려고 합니다.

음행에 대해선 오늘 본문 외에도 고린도전서6장 9절과 18-19절, 그리고 갈라디아5장 19-21절에도 언급되어 있습니다. 음행이란 단어는 헬라어 포르네이아(πορνεια)를 번역한 것입니다. 그 뜻은 성경적 관점에서 말하면, ‘하나님이 정한 질서를 벗어난 성적 관계’를 말합니다. B F 웨스트 콧은 음행을 ‘불법적 성관계’로 정의했습니다. 그런데 동성애와 동성결혼 등은 이전엔 불법적인 것으로 간주되었는데 최근엔 합법화되는 추세입니다. 따라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법적 차원보다는 성경에 계시된 하나님의 질서에 근거해 음행을 규정해야 할 것입니다.

성에 관해 하나님이 정한 질서는 이렇습니다. 창세기 계시에 따르면, 하나님은 창조 여섯째 날에 남자와 여자를 만드셨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인간을 서로 다른 성적 존재로 만드셨다는 뜻입니다. 그런 다음 남녀가 연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루게 하셨습니다. 이것은 오늘날 결혼을 의미합니다. 결혼은 남녀의 성적 관계를 허용하는 의식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결혼으로 연합된 남녀 두 사람에게 생육하고 번성하는 복을 주셨습니다. 이것은 자녀의 출산을 의미합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결혼하고 부부가 된 두 남녀 사이에만 성적 관계를 허용해주셨습니다.

부부의 성적 관계는 두 가지 중요한 기능을 합니다. 그것은 한 몸이 되는 기쁨을 누리고 자녀를 얻는 것입니다. 만일 성적 관계가 공부나 일처럼 하기 싫고 힘들기만 하다면 누가 하겠습니까? 그래서 하나님은 성적 나눔에 쾌감을 느끼도록 해주셨습니다. 음식을 먹을 때 쾌감을 느끼는 것도 그렇습니다. 맛을 느끼지 못하면 먹는 게 지루하고 고통스런 일이 될 겁니다. 그러면 안 먹으려고 할 겁니다. 아이들이 채소를 잘 안 먹는데 아직 그 맛이 좋다고 느끼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크면서 맛을 알면 잘 먹게 되죠. 그래서 하나님은 남녀가 관계를 가질 때 쾌감을 느끼게 디자인하셨습니다.

그런데 인간이 범죄하고 타락하자 성적 관계에도 문제가 생겼습니다. 하나님은 일부일처의 부부만 성관계를 허용하셨는데, 타락한 인간이 이런 하나님의 질서를 무시하고 육신의 쾌감을 느끼는 수단으로 하나님이 정한 질서를 벗어난 성적 관계를 맺기 시작했습니다. 그것이 음행입니다. 예를 들면, 비 혼인관계에 있는 남녀의 성관계인 간음, 배우자가 있는 사람이 배우자 이외의 사람과 성관계인 간통, 돈을 주고 관계를 맺는 매춘, 여러 사람이 관계하는 혼음, 동성애, 스와핑 등 이런 게 모두 음행입니다.

범죄로 인간의 심성이 부패해진 후 남녀의 성관계는 가장 오용되고 오염된 것 중에 하나가 되었습니다. 최근에 펼쳐지고 있는 미투(metoo) 운동에서 드러나는 것처럼 그 동안 괜찮다고 존경받던 인사들인 유명 방송사의 메인 앵커, 국회의원, 주지사, 심지어는 대통령까지 성추문에 연루된 사람으로 논란이 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음욕을 품는 것도 간음이라고 하시긴 했지만, 우선 여기선 행동으로 옮긴 경우에 대해서 이야기 합시다.

오늘 본문 안에서 바울께서 지적한 음행은 어떤 고린도교인이 “그 아비의 아내를 취했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지 다음과 같은 상황을 가정해볼 수 있습니다. 나이든 아버지는 돌아가시고 젊은 계모만 남았습니다. 아들에게 친 어머니가 아니고 자기와 나이가 비슷하거나 적을 수도 있습니다. 옛날에 다윗 왕이 늙고 병들어 주로 침실에 누워있을 때 신하들이 왕의 침실 시중을 들라고 처녀 아비삭을 궁에 들였습니다(왕상1:2). 생전에 다윗왕은 아비삭과 동침을 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런데 다윗왕이 죽은 후, 넷째 아들 아도니야가 밧세바를 찾아가 아비삭을 자기 아내 삼고 싶다며 솔로몬에게 허락을 받아달라고 요청한 일이 있었습니다(왕상2:17).

아내로 번역된 헬라어 구나이카(γυναικα)는 여자, 아내의 뜻을 가진 말입니다, 성경엔 아내로 번역되어 있는데, 아비삭처럼 정식 부인이라기보다 그냥 아버지의 여자였을 수도 있습니다. 아들이 그 여자를 취한 걸 보면, 여자로서 매력 있는 미인이거나 혹시 돈 많은 과부일 가능성도 있습니다. 사람들의 이목이 부담스러운데도 아버지의 여자를 취할 때는 그만한 이유가 있지 않았겠습니까? 어쩌다 범했더라도 매력이 있었기 때문일 겁니다. 아들을 정당화하려는 게 아닙니다. 죄를 짓게 만드는 어떤 요인을 조심해야 한다는 말을 하려는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이런 일이 교인 중에 일어났는데 “어찌하여 한탄스럽게 생각하지 않고 그 일 행한 자를 너희 중에서 물리치지 아니하였느냐”고 책망했습니다. 바울이 이 소식을 전해 들은 걸 보면, 이 일은 교인 사이에도 이미 알려진 것 같습니다. 그런데 고린도교회 지도자들이 이 문제를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고 아무 일 없는 것처럼 침묵하고 있었습니다. 바울 사도께서 염려한 것은 이렇게 되면 다른 교인들까지 음행의 유혹에 빠져 교회가 문란하게 될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6절의 누룩 이야기는 바로 그 뜻입니다.

교회가 교인들의 죄를 다루는 목적은 교인들이 죄에 오염되는 것을 방지하고 그리스도의 피로 정결케 된 교회에 죄가 퍼져나가는 것을 막기 위한 것입니다. 바울이 물리치라고 한 것은 죄를 부인하며 은폐하지 말고 회개하고 용서받아 회복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하려는 것입니다. 우리도 이걸 알지만 서로 한 교인으로 지내며 교제하던 사람인데 죄를 지적하며 회개할 때까지 교제를 단절하겠다거나 교회에 나오는 걸 금하겠다고 하기가 쉬운 일은 아닙니다. 한국인들의 경우 피는 물보다 진하다고 자기 가족 중에 누가 잘못해서 교회의 징계를 받게 되면 다른 사람의 없는 죄까지 들추며 반발할 수도 있습니다. 잘못하면 교회가 분란이 생길 수도 있습니다. 교회에서 권징은 당사자나 교회 모두 유익하도록 기도와 지혜로 잘 시행해야 합니다.

저는 음행의 문제와 관련해서 오늘 본문의 말씀이 주는 몇 가지 교훈을 제시하는 것으로 결말을 짓고자 합니다. 첫째로 우리는 어느 시대보다 성적으로 개방된 문화 속에 하나님의 질서를 벗어난 성적 관계를 맺을 유혹 속에 살고 있다는 것을 자각하고 자만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둘째로 교회에서 죄를 방치해서 다른 교인까지 그래도 괜찮다고 오해하는 일이 없도록 그런 문제가 발행했을 때는 가능한 빨리 회개하고 회복되도록 조치를 취할 수 있게 모두 협력해야 합니다. 셋째로 음행은 신앙생활은 물론 인생을 망친다는 걸 유념합시다. 최근 미투 운동에서 보듯 어렵게 올라간 자리에서 수치를 당하며 내려와야 하고 가정도 깨질 위험이 있습니다. 넷째로 그러나 그리스도 안에서 음행도 용서받을 기회가 남아 있습니다. 다윗이 밧세바를 범하고 그걸 은폐하려고 남편 우리야를 전쟁터로 보내 죽게 한 죄를 범했지만 하나님은 나단을 보내 죄를 깨우치고 회개하여 용서받게 해주셨습니다 혹시 여러분 중에도 음행의 죄가 있으면 지금 당장, 아니면 이번 한 주 동안 진심으로 회개하며 용서받고 새 출발하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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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행에 대해선 오늘 본문 외에도 고린도전서6장 9절과 18-19절, 그리고 갈라디아5장 19-21절에도 언급되어 있습니다. 음행이란 단어는 헬라어 포르네이아(πορνεια)를 번역한 것입니다. 그 뜻은 성경적 관점에서 말하면, ‘하나님이 정한 질서를 벗어난 성적 관계’를 말합니다. B F 웨스트 콧은 음행을 ‘불법적 성관계’로 정의했습니다. 그런데 동성애와 동성결혼 등은 이전엔 불법적인 것으로 간주되었는데 최근엔 합법화되는 추세입니다. 따라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법적 차원보다는 성경에 계시된 하나님의 질서에 근거해 음행을 규정해야 할 것입니다.

성에 관해 하나님이 정한 질서는 이렇습니다. 창세기 계시에 따르면, 하나님은 창조 여섯째 날에 남자와 여자를 만드셨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인간을 서로 다른 성적 존재로 만드셨다는 뜻입니다. 그런 다음 남녀가 연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루게 하셨습니다. 이것은 오늘날 결혼을 의미합니다. 결혼은 남녀의 성적 관계를 허용하는 의식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결혼으로 연합된 남녀 두 사람에게 생육하고 번성하는 복을 주셨습니다. 이것은 자녀의 출산을 의미합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결혼하고 부부가 된 두 남녀 사이에만 성적 관계를 허용해주셨습니다.

부부의 성적 관계는 두 가지 중요한 기능을 합니다. 그것은 한 몸이 되는 기쁨을 누리고 자녀를 얻는 것입니다. 만일 성적 관계가 공부나 일처럼 하기 싫고 힘들기만 하다면 누가 하겠습니까? 그래서 하나님은 성적 나눔에 쾌감을 느끼도록 해주셨습니다. 음식을 먹을 때 쾌감을 느끼는 것도 그렇습니다. 맛을 느끼지 못하면 먹는 게 지루하고 고통스런 일이 될 겁니다. 그러면 안 먹으려고 할 겁니다. 아이들이 채소를 잘 안 먹는데 아직 그 맛이 좋다고 느끼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크면서 맛을 알면 잘 먹게 되죠. 그래서 하나님은 남녀가 관계를 가질 때 쾌감을 느끼게 디자인하셨습니다.

그런데 인간이 범죄하고 타락하자 성적 관계에도 문제가 생겼습니다. 하나님은 일부일처의 부부만 성관계를 허용하셨는데, 타락한 인간이 이런 하나님의 질서를 무시하고 육신의 쾌감을 느끼는 수단으로 하나님이 정한 질서를 벗어난 성적 관계를 맺기 시작했습니다. 그것이 음행입니다. 예를 들면, 비 혼인관계에 있는 남녀의 성관계인 간음, 배우자가 있는 사람이 배우자 이외의 사람과 성관계인 간통, 돈을 주고 관계를 맺는 매춘, 여러 사람이 관계하는 혼음, 동성애, 스와핑 등 이런 게 모두 음행입니다.

범죄로 인간의 심성이 부패해진 후 남녀의 성관계는 가장 오용되고 오염된 것 중에 하나가 되었습니다. 최근에 펼쳐지고 있는 미투(metoo) 운동에서 드러나는 것처럼 그 동안 괜찮다고 존경받던 인사들인 유명 방송사의 메인 앵커, 국회의원, 주지사, 심지어는 대통령까지 성추문에 연루된 사람으로 논란이 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음욕을 품는 것도 간음이라고 하시긴 했지만, 우선 여기선 행동으로 옮긴 경우에 대해서 이야기 합시다.

오늘 본문 안에서 바울께서 지적한 음행은 어떤 고린도교인이 “그 아비의 아내를 취했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지 다음과 같은 상황을 가정해볼 수 있습니다. 나이든 아버지는 돌아가시고 젊은 계모만 남았습니다. 아들에게 친 어머니가 아니고 자기와 나이가 비슷하거나 적을 수도 있습니다. 옛날에 다윗 왕이 늙고 병들어 주로 침실에 누워있을 때 신하들이 왕의 침실 시중을 들라고 처녀 아비삭을 궁에 들였습니다(왕상1:2). 생전에 다윗왕은 아비삭과 동침을 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런데 다윗왕이 죽은 후, 넷째 아들 아도니야가 밧세바를 찾아가 아비삭을 자기 아내 삼고 싶다며 솔로몬에게 허락을 받아달라고 요청한 일이 있었습니다(왕상2:17).

아내로 번역된 헬라어 구나이카(γυναικα)는 여자, 아내의 뜻을 가진 말입니다, 성경엔 아내로 번역되어 있는데, 아비삭처럼 정식 부인이라기보다 그냥 아버지의 여자였을 수도 있습니다. 아들이 그 여자를 취한 걸 보면, 여자로서 매력 있는 미인이거나 혹시 돈 많은 과부일 가능성도 있습니다. 사람들의 이목이 부담스러운데도 아버지의 여자를 취할 때는 그만한 이유가 있지 않았겠습니까? 어쩌다 범했더라도 매력이 있었기 때문일 겁니다. 아들을 정당화하려는 게 아닙니다. 죄를 짓게 만드는 어떤 요인을 조심해야 한다는 말을 하려는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이런 일이 교인 중에 일어났는데 “어찌하여 한탄스럽게 생각하지 않고 그 일 행한 자를 너희 중에서 물리치지 아니하였느냐”고 책망했습니다. 바울이 이 소식을 전해 들은 걸 보면, 이 일은 교인 사이에도 이미 알려진 것 같습니다. 그런데 고린도교회 지도자들이 이 문제를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고 아무 일 없는 것처럼 침묵하고 있었습니다. 바울 사도께서 염려한 것은 이렇게 되면 다른 교인들까지 음행의 유혹에 빠져 교회가 문란하게 될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6절의 누룩 이야기는 바로 그 뜻입니다.

교회가 교인들의 죄를 다루는 목적은 교인들이 죄에 오염되는 것을 방지하고 그리스도의 피로 정결케 된 교회에 죄가 퍼져나가는 것을 막기 위한 것입니다. 바울이 물리치라고 한 것은 죄를 부인하며 은폐하지 말고 회개하고 용서받아 회복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하려는 것입니다. 우리도 이걸 알지만 서로 한 교인으로 지내며 교제하던 사람인데 죄를 지적하며 회개할 때까지 교제를 단절하겠다거나 교회에 나오는 걸 금하겠다고 하기가 쉬운 일은 아닙니다. 한국인들의 경우 피는 물보다 진하다고 자기 가족 중에 누가 잘못해서 교회의 징계를 받게 되면 다른 사람의 없는 죄까지 들추며 반발할 수도 있습니다. 잘못하면 교회가 분란이 생길 수도 있습니다. 교회에서 권징은 당사자나 교회 모두 유익하도록 기도와 지혜로 잘 시행해야 합니다.

저는 음행의 문제와 관련해서 오늘 본문의 말씀이 주는 몇 가지 교훈을 제시하는 것으로 결말을 짓고자 합니다. 첫째로 우리는 어느 시대보다 성적으로 개방된 문화 속에 하나님의 질서를 벗어난 성적 관계를 맺을 유혹 속에 살고 있다는 것을 자각하고 경계심을 늦추지 말기 바랍니다.  둘째로 교회에서 죄를 방치해서 다른 교인까지 그래도 괜찮다고 오해하는 일이 없도록 그런 문제가 발행했을 때는 가능한 빨리 회개하고 회복되도록 도울 수 있게 정죄하지 말고 협력해야 합니다. 셋째로 음행은 신앙생활은 물론 인생을 망친다는 걸 유념합시다. 최근 미투 운동에서 보듯 어렵게 올라간 자리에서 수치를 당하며 내려와야 하고 가정도 깨질 위험이 있습니다. 넷째로 그리스도 안에서 음행도 용서받을 기회가 남아 있다는 걸 잊지 맙시다. 다윗이 밧세바를 범하고 그걸 은폐하려고 남편 우리야를 전쟁터로 보내 죽게 한 죄를 범했지만 하나님은 나단을 보내 죄를 깨우치고 회개하여 용서받게 해주셨습니다 혹시 여러분 중에도 음행의 문제가 있으면 진심으로 회개하고 용서받고 새 출발하기를 권합니다. 한 주 동안 하나님께서 가정과 교회를 보호해주시기를 기도하겠습니다. 주 안에서 평안하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