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 편입니까?

고전3:1-9 /  누구 편입니까?

한 주 동안 평안했습니까? 반갑습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바울 사도는 고린도 교인들이 “나는 바울에게, 나는 아볼로에게”(4절) 라고 말하며 나뉘어 다투는 것에 대해 육신에 속한자, 또는 그리스도 안에서 어린아이의 행태라고 책망하며 하나님을 섬기는 동역자의 마음을 가지고 모두 협력하여 주님을 섬길 것을 당부하고 있습니다. 이 분열과 다툼에 대해선 전에 이미 한 번 말씀을 드렸기 때문에 오늘은 다툼보다는 동역자의 팀웍에 초점을 맞춰 말씀 드리겠습니다.

1,3절의 바울 사도 말씀에 따르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다는 명분이든 교회 성장을 위한 실리로든 교회에서 다투는 것은 육신에 속한 일이고 어린이들이 자기 욕심을 위해 싸우는 것처럼 주 안에서도 유치한 일입니다. 예를 들어 집사회에서 교회 일을 논하다가 다투는 것은 누가 교회를 더 위하느냐 누가 옳고 그르냐와 상관없이 잘못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옳은 주장이라도 교회 일을 놓고 다투고 갈라서선 결과적으로 잘못입니다. 교회 일을 하게 될 경우, 이런 결과를 생각하며 분쟁의 소지를 만들지 않도록 조심하면 좋을 것입니다.

사람은 식성이 다른 것처럼 좋아하는 사람도 다릅니다. 교인들도 카리스마 있는 지도자들을 더 좋아하는 사람도 있고, 조용조용 논리적으로 설득력 있게 말하는 리더를 더 좋아하는 사람도 있고, 친구처럼 대하며 자상하게 들어주는 걸 더 좋아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래서 목회자가 여럿인 교회에선 담임목사 외에 다른 목사님을 더 따르는 교인들이 있습니다. 교회도 부족한 사람들이 모인 곳이라 거기까진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더 나가 파벌이 생기고 의사결정에서 다툼이 생기고 그래선 안됩니다. 이렇게 되지 않게 목회자도 교인들도 서로 조심할 필요가 있습니다.

고린도 교인들이 자기 목자로 내세운 사람들이 오늘 본문에는 바울과 아볼로만 등장합니다(4절). 그러나 1장 12절을 보면, 두 사람 외에도 베드로와 그리스도까지 언급되어 있습니다. 교인들이 자기 목자로 내세운 이유는 그 사람을 통해 복음을 듣거나 은혜를 받거나 그랬을 것입니다. 5절에 “너희로 믿게 한 사역자들” 이란 표현이 이것을 암시합니다. 예수 믿게 도와준 사역자를 목자나 멘토로 생각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러나 다른 사역자에 배타적인 태도를 취하며 리더쉽을 무시하는 것은 잘못이고 사역자들의 관계도 어렵게 만들기 때문에 삼가ㅠ해야 합니다.

바울 사도는 선교사로서 여러 지역을 다니며 전도하고 다수의 교회를 세웠지만 어느 한 교회에 머물러 담임목회를 한 것이 아니어서 동역자 관계에서 좀더 자유로운 입장에 있었습니다. 또한 바울 사도는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것 외엔 별로 관심이 없었기 때문에 교회 안에서 자신의 지위와 권한과 대우에 대해선 별로 신경 쓰지도 않았습니다. 그는 고린도 교인들 중에 일부가 자신을 지지한다고 좋아하지도 않았고, 자기보다 아볼로를 더 따른다고 기분 나쁘게 생각하지도 않았습니다. 바울의 마음 속엔 함께 주님을 섬기는 동역자일 뿐이었습니다.

본문에 언급된 분쟁은 사역자들이 주체가 된 것은 아닙니다. 바울과 아볼로는 고린도교회에 함께 사역한 적이 없었습니다. 바울은 고린도에 1년 6개월 정도 머물며 사역하다가 떠났습니다(행18:11,18). 그 때 결신자들이 모여 고린도교회가 생겼지만, 바울이 계속 머물며 사역한 것은 아닙니다. 바울이 떠난 후 아볼로가 와서 한 동안 고린도교회에서 사역했습니다(행19:1). 아볼로는 학문이 많고 성경에 능한 자였기 때문에 이제 막 예수 믿은 고린도교인이 그를 통해 은혜를 경험했을 것입니다. 특히 지적인 교인들은 바울보다 아볼로를 더 좋아했을 수도 있습니다

교회도 성장 통이 생깁니다. 성장하면서 교인수가 증가하면 그 중엔 자리를 탐하고 자기 생각대로 교회를 끌고 가고 싶어하는 사람도 있을 겁니다. 목회자들 중에서도 교인들의 인기에 매우 민감하게 반응하고 관리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목회자도 철저하게 자기 부인이 되어 있지 않으면, 서열을 따지고 위세를 부리고 자기 보다 교인들의 사랑을 받는 사역자를 시기하고 그럽니다. 이런 것들이 어떤 사건과 합쳐지면 다툼과 분쟁으로 발전해서 교회가 분열됩니다.

사역자든 교인이든 우리 각 사람은 주님을 섬기는 종의 마음을 가지고 교회 일을 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너희 중에 뉘게 밭을 갈거나 양을 치거나 하는 종이 있어 밭에서 돌아오면 저더러 곧 와 앉아서 먹으라 할 자가 있느냐… 내가 먹을 것을 예비하고 내가 먹는 동안 수종 들고 다 먹고 나면 그 후에 너도 먹으라 ”고 하지 않겠느냐고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눅17:7). 종은 주인이 시킨 일을 다 했다고 해서 사례 받을 기대를 할 수 없습니다. 종으로 산다는 게 그런 것이었습니다. 교회를 섬기는 교우들은 어떤 직임을 가지고 있든 그런 종의 마음을 가지고 일해야 즐겁게 일할 수 있습니다. 그래야 알아달라는 마음도 실망하는 마음도 이겨낼 수 있습니다.

또한 주님을 섬기는 일꾼들은 동역자의 마음으로 서로 같은 편이라는 의식을 가지고 협력해야 합니다. 바울은 복음을 위해 일하는 사람은 누구든지 동역자이고 자기 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심지어 바울이 감옥에 갇혀 있을 때 바울을 시기해서 바울 보다 명성을 얻고 인정받으려는 마음으로 전도에 힘쓴 사람에게 대해서도 그들이 무슨 생각으로 하든 결과적으로 주님을 위해 일하는 것이기 때문에 자기는 기뻐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바울의 목적은 오직 예수님을 증거하는 것인데, 예수님을 증거한다고 하니까 그들이 무슨 생각으로 그러든지 전파되는 것은 그리스도 예수이기 때문에 상관없다는 것입니다. 이런 마음으로 교회를 섬기면 다툴 일이 없을 것입니다. 저도 이런 바울을 본받도록 힘쓰겠습니다.

교회는 주님 편만 있어야 합니다. 교회를 섬기는 사역자들은 목사, 장로, 집사, 목자와 교사 모두 주님을 섬기는 종입니다. 종의 마인드, 종의 분수를 알아야 합니다. 겉으로 드러나진 않지만 마음 속엔 누굴 더 지지하고 따르는 마음이 있을지 모릅니다. 이 정도는 이해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더 나가 누굴 편들고 자기들끼리 자주 모이며 친소그룹이 생겨나고 그러면 교회가 파당이 생길 수 있습니다.

지금 우리 교회는 사역자가 저 한 사람 뿐이라서 “나는 바울에게, 나는 아볼에게” 이런 분쟁이 표면화되지는 않습니다. 제가 보기에 목자들이 다 함께 잘 지내려고 노력하고 있고, 교인수도 적기 때문에 교인들이 나뉘어 다투는 일이 지금까지는 없었습니다. 앞으로도 계속 주님 편만 있기 바랍니다. 또 교회가 성장해서 여러 사역자가 일하게 되더라도 누가 더 낫다거나 누굴 더 좋아한다거나 그러면서 분쟁이 생기지 않게 지금 여러분들이 중심을 잘 잡아주길 바랍니다.

바울은 개인적 관계가 없더라도 복음을 위해 일하는 사람을 모두 동역자로 생각하고 어려움과 필요를 돕고 협력하도록 교우들을 격려했습니다. 목자와 교우 여러분들 모두 서로 돌아보며 협력하며 살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부족하고 실수한 교우라도 소외되지 않도록 배려하기 바랍니다. 주를 위해 수고하는 일꾼들에 대해선 교회가 물심양면으로 지원하는 일에도 더 힘쓰도록 합시다. 양들은 우선적으로 자기 목자의 리더쉽을 따르고 목자들은 또한 담임목사의 리더쉽을 존중하며 최종적으로 주님의 말씀을 따라가는 늘푸른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한 주 동안 여러분 모두 성령의 인도아래 안전하게 보호되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