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의 도

고린도전서18-25 / 십자가의 도

교우 여러분, 반갑습니다. 한 주 동안 평안했습니까? 말씀을 나누기 전에 주변 사람들과 서로 인사를 나눕시다. 식사할 때 마음이 불편하면 체합니다. 말씀도 긴장하지 말고 편한 마음으로 듣기 바랍니다. 말씀을 듣는데 방해 되지 않게 부부들도 좀 불편한 점이 있었으면 지금 서로 용서하기 바랍니다.

오늘은 십자가의 도를 주제로 하나님 말씀을 증거하겠습니다. 18절 보면, 바울 사도는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으로 생각되겠지만, 구원을 얻는 믿음의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말했습니다.

십자가의 도는 십자가의 메시지를 의미합니다. 여기서 도는 헬라어 로고스(ο λογοs) 를 번역한 말인데, 성경에서 로고스 보통 말씀으로 번역되어 있습니다. 요한복음1장 1절,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이 구절에 나오는 말씀은 헬라어 성경엔 모두 로고스로 표기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십자가가 전달하는 메시지는 무엇입니까? 십자가는 원래 로마 당국이 반역과 같은 중죄를 지은 죄인을 처벌하는 형틀이었습니다. 실제로 예수님도 반역죄목이 씌워졌기 때문에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셨습니다. 유대인들은 떼로 몰려가 빌라도에게 유대인의 왕이라고 주장하는 예수는 황제의 통치권을 부정하는 반역자라고 주장하며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요구했습니다. 빌라도는 예수님께 십자가에 못 박아 처형해야 할 죄가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유대인들이 폭동을 일으켜 치안 문제로 총독의 자리가 위태롭게 될까 봐 모른척하고 예수를 십자가에 처형하도록 판결하고 말았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한 가지 더 알아야 할 것은 예수님의 죽으심의 배후엔 사탄의 역사가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요한은 성령의 계시를 통해 마귀가 가롯 유다의 마음 속에 예수를 팔 생각을 넣은 것을 간파했습니다(요13:2). 빌라도 법정에 몰려와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외쳐대던 유대인들의 역시 사단의 사악한 영들이 활동했을 것이라는 사실은 쉽게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사탄은 무고한 예수님을 죽이는데 앞장을 섰습니다. 그런데 마귀가 알지 못한 것은 예수님의 죽으심이 인류의 죄를 대신하게 될 것이라는 것이었습니다. 만일 마귀가 그 사실을 미리 알았다면 예수를 십자가에 죽게 하려는 유대인들을 만류했을 것입니다.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고 구원 얻는 우리에겐 하나님의 능력이라는 말은 무슨 뜻입니까? 생각해봅시다. 멸망하는 자, 곧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들의 보기에 예수는 단지 반역자로 죽었을 뿐입니다. 그런 예수를 믿는다고 어떻게 지은 죄가 없어지고 천국을 가겠습니까? 지금도 멸망하는 자들에겐 십자가의 도를 따라가는 교인들이 바보처럼 보인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구원 얻는 믿음의 사람에게 십자가의 도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입니다. 십자가의 도, 다시 말해 예수님의 대속의 죽음은 인류는 물론 마귀까지도 예상하지 못한 죄인을 구원하는 하나님의 놀라운 능력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의 죽음으로 죄로 죽어야 할 인류의 죽음을 대신한다고 선언하실 때 무고한 예수님을 십자가에 달려 죽게 한 책임이 있는 마귀는 아무런 이의를 제기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 다음 19절부터 21절에서 바울 사도는 대속의 죽음으로 마련된 구원이 전도라는 방법을 통해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지혜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앞서 살펴본 것처럼 십자가의 메시지가 하나님의 능력이라면, 십자가의 메시지인 예수님의 대속을 전해 듣고 믿는 자들을 구원얻게 하신 것은 하나님의 지혜라는 것입니다. 죄인이 구원 얻는 방법이 돈이나 지식이나 어떤 선행의 노력으로 되게 하셨다면 그 자체로 어떤 사람들은 구원얻을 기회가 없었을 것입니다. 구원얻는데, 100만불이 필요하다면 대부분 사람들이 구원얻지 못할 겁니다. 구원얻는데 예수님의 대속에 대한 믿음 외에 그 어떤 것도 필요 없게 하신 것은 부자든 가난한 자든. 대학나온 사람이든 일자 무식이든 아무 차별 없이 공평합니다.

전도에 대해 좀더 말씀 드리겠습니다. 알린다는 의미에서 전도는 광고나 선전과 같은 의미가 있습니다. 그러나 전도에는 어떤 사실을 단순히 알리고 전달하는 광고나 선전에는 없는 하나님의 능력이 작용합니다. 이것은 로마서에 잘 설명되어 있습니다. 로마서 1장 16,17절에서 바울은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라고 말했습니다. 여기서 복음은 십자가의 도와 같은 말입니다. 여러분이 이미 경험했겠지만, 십자가에 대한 복음의 설교를 들으면 죄가 뭔지, 내가 왜 죄인인지, 왜 예수를 믿어야 하는지 깨닫게 되고 믿고 싶은 마음도 생깁니다. 내 마음 속에 이런 변화를 만들어 내는 것이 복음인데, 그래서 십자가의 도는 죄인을 구원하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그 다음 22-25절의 부르심을 입은 자들의 구원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22절 보면,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는다고 나옵니다. 유대인은 이적과 표적을 구하는 종교적 성향이 강한 사람들,  헬라인은 논리와 합리성을 추구하는 지성인들을 대표합니다. 표적을 구하는 유대인 같은 종교인들은 표적이 없으면 잘 믿지 못합니다. 헬라인 같은 현대지식인들은 믿음의 근거로 논리와 합리성을 추구합니다. 그래서 이 두부류 모두 예수님이 우리 죄를 대신 담당하고 죽으셨으니 예수 믿으면 구원얻는다는 말이 듣기 거북하고 어리섞게 보인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전도할 때 믿지 못하겠다는 이유입니다.

이렇게 전도는 아무 소용없는 미련한 짓 같은데도 기독교 2천년 동안 수 많은 사람들이 이 전도를 통해 예수 믿고 구원어었고 지금도 그렇습니다. 지금 여기 있는 여러분도 그 증거 아닙니까? 그래서 바울이 볼 때 전도라는 방법은 세상 사람이 보기엔 미련하게 보일지 모르지만, 이것으로 구원 얻는 사람들이 생겨나는 것을 볼 때 전도라는 방법으로 사람을 구원하시는 것은 하나님의 지혜요 하나님의 능력이라 깨닫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어떤 종교적 성향을 가진 사람이든 또는 얼마나 합리적 이성의 소유자든 상관없이 구원을 얻을 사람에겐 예수님의 대속을 믿게 만드십니다.

전도자는 말 그대로 전달하는 역할만 하는 것입니다. 믿고 구원하는 것은 하나님이 하실 일입니다. 성경이 증거하는 것처럼 구원 얻을 사람이 거기 있을 때 누가 전도하든 예수 믿는 역사가 일어날 것입니다. 전도하기 전에는 구원 얻을 사람이 누군지 미리 알 수 없습니다. 특별히 성령께서 전도할 자를 지시하시면 쉽겠지만, 그렇지 않으면 주변 사람들에게 부지런히 전도해야 하겠습니다. 바울 사도처럼 지혜의 권하는 말보다 성령의 나타남과 능력이 역사하도록 기도하면서 전도합시다. 믿음은 말 잘해서 생기는 게 아니고 하나님께서 믿어지게 해주시기 때문에 가능합니다. 미리 포기하지 말고 기도하며 전도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