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쟁이 생겼을 때

고린도전서1:10-17 / 교회 분쟁

오늘 본문은 고린도전서1장 10절부터 17절까지입니다. 이 본문 안에는 고린도교회의 분쟁이 언급되어 있습니다. 오늘은 교회의 분쟁, 혹은 분열을 주제로 하나님 말씀을 증거하겠습니다. 바울은 글로에를 통해서 고린도교회에 분쟁이 있다는 말을 전해 듣고 화합을 당부했습니다.

요즘 한국에선 집권세력이 ‘적폐를 청산하고 나라를 바로 세우자’며 이전 정권들의 비리를 들추고 관련자들에게 책임을 물으려고 하니까 공격을 받는 측에선 정치보복이라고 저항하며 죽기로 싸우고 있습니다. 북의 김정은의 핵과 미사일 개발의 위협으로 안보가 위중해 여야 없이 힘을 합쳐 북에 대항해 나라를 지켜야 할 때인데, 서로 원수처럼 싸우고 있으니 참으로 실망스럽습니다.

교회든 국가든 사람들이 모인 곳엔 어디든 다툼이 벌어집니다. 제가 보기에 다툼의 원인은 첫째로 욕심 때문이고 둘째는 인간이 죄로 물들어 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싸우는 사람들은 서로 자기가 옳다는 명분분을 내세웁니다. 그런데 속셈을 보면 이권이나 권력을 차지하려는 것입니다. 정말 나라와 국민을 위하려면 정치보복이라는 말이 나오지 않게 정치적 관용을 베풀고 누가 봐도 적법하게 처리해야 합니다. 안 그러면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정치보복의 악순환이 계속되어 삼류국가로 전락하고 국민이 피해를 입게 됩니다.

제가 지난 시간에도 고린도교회는 세워진 지 5년 정도 밖에 안돼 교인들이 신앙경력이 짧고 지정학적으로 고린도라는 곳이 인구 이동이 많고 상거래가 활발하고 세속화된 곳이라 예수 믿고 교회 다니기 시작한 사람들 중에도 이방문화 속에서 방탕하게 살던 습관이 아직 남아 있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래서 고린도교인들은 예수 믿으면서도 이해 관계에 따라 편이 갈리고 서로 다투며 대립했을 것입니다.

고린도교회도 교인들이 어떤 이유에서 파벌이 생겼습니다. 바울은 글로에의 집안사람을 통해 이소식을 들었습니다. 오늘날 ‘집안 사람’이라는 표현은 가족이나 친척을 의미하지만, 그 당시엔 노예나 노예로 있다가 해방된 사람도 이렇게 표현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집안 사람이 누군지는 확실히 알 수 없습니다. 이름이 기록되어 있는 걸 보면 글로에는 바울과 고린도교회가 다 알고 있던 인물같습니다. 그녀는 교인들이 나뉘어 다투는 걸 보고 걱정이 돼서 바울에게 이런 사정을 알리고 해결책을 얻으려고 한 것 같습니다.

12절 보면, 그 당시 고린도교회는 크게 네 부류로 나뉘어져 있었습니다. 교인들은 각각 나는 바울에게, 나는 아볼로에게, 나는 게바에게, 나는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라고 주장하면서 다른 사람의 지도를 거부한 것 같습니다. 현대 사회에선 민주적으로 운영되는 것을 최선으로 생각하지만, 민주적 운영방식은 한 사람의 강력한 리더쉽을 거부하는 경향이 있어서 서로 파당을 짓고 다투기 쉽습니다. 교회도 강력한 카리스마를 발휘하는 목회자가 있으면 조용하다가 그렇지 못하면 몇몇 영향력 있는 사람들에 의해 분쟁이 생기기도 합니다.

고린도교인들이 자기들의 리더로 내세운 바울, 아볼로, 게바는 모두 고린도교회 설립과 운영에 영향을 준 훌륭한 지도자들이었습니다. 바울 사도는 2차 전도여행 중에 고린도에 1년 6개월을 머물며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가르쳤습니다. 이 때 예수 믿고 고린도교인이 된 사람들은 바울에게 속했다고 주장했을 것입니다. 그 다음 아볼로는 이집트 북부도시 알렉산드리아 출신 유대인인데 학문이 많고 성경에 능한자였다고 합니다(행18:24). 그는 일찍 주의 도를 배워 예수에 관한 것을 다른 사람에게 가르칠 정도가 되어 에베소 회당에서도 앞에 나가 말한 적이 있고, 바울이 떠난 후 고린도로 가서 복음을 전하며 사역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 때 아볼로의 지적 설교에 영향을 받은 교인들이 자신들은 아볼로의 리더쉽을 앞세웠을 것입니다. 게바, 즉 베드로 사도께서 어떤 방식으로 고린도교인들과 연관이 되었는지 분명한 기록은 없습니다. 추측하건데, 베드로에게 속했다고 주장한 교인들은 베드로에게 영향 받은 팔레스타인 출신 유대인들이거나, 자기들의 권위를 내세우기 위해 수제자인 베드로 사도의 지위를 이용하는 교인들이었을 것 같습니다.

이러한 분파에 대한 바울 사도의 관심은 오직 하나 교회가 주 안에서 하나로 화합되는 것 뿐이었습니다. 바울 사도는 어떤 이유로 나뉘었는지, 또 서로 어떻게 주장이 다른지, 누가 옳고 그른 것인지, 이런 것들에 대해선 별로 관심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서로 갈라져서 싸우는 사람의 입장에선 자신들의 명분과 논리가 중요하겠지만, 바울 사도께서 볼 때 교회가 갈라져서 싸우는 것은 주께서 하나되게 해주신 것을 해치는 것일 뿐입니다. 13절에서 바울 사도는 그리스도께서 어찌 나뉘었느냐 너희가 바울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았느냐고 책망했습니다.

바울은 자기를 따른다고 해서 그들을 좋아하거나 편들지 않았습니다. 바울은 지금까지 예수님만 드러나게 하려고 애써온 사람이었습니다. 바울은 주 앞에서 자신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하며 일했습니다. 그런데 바울의 속마음을 모르는 철없는 교인들이 자신을 그리스도와 동등한 위치에 올려놓고 다투고 있었으니 얼마나 참담한 마음이 들었겠습니까? 그래서 바울은 교권다툼에 자기 이름을 이용하지 못하게 그리스보와 가이오 외에 너희 중 아무에게도 내가 침례를 준 일도 없다고 말했습니다.

거의 모든 교회에서 성장통처럼 다툼과 분열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우리 교회도 의견 다툼이 없지 않았지만, 숫적으로 작은 교회라서 아직까진 파벌로 갈라져 싸운 적은 없습니다. 앞으로도 그런 다툼이 일어나지 않도록 집사와 목자 등 좀더 오래되어 영향력이 있는 형제 자매들이 더욱 주님께 순종하며 자기 주장을 가능한 삼가 하기 바랍니다. 목사인 저도 교회 일에서 의견이 다를 때 제 주장을 삼가하고 성령께서 우리 마음을 하나되게 해주시기를 기도하며 원하는 대로 일을 추진하기 위해 편을 모으는 일은 하지 않을 것입니다. 여러분도 그렇게 해주길 바랍니다..

교회가 나뉘어 싸우는 것을 보면, 싸우는 자들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고 교회를 위해서 그런다고 하는데, 속을 들여다 보면 교회 재산과 운영권을 놓고 싸우는 게 대부분입니다. 물론 먼저 잘못한 측이 문제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원수처럼 싸우고 법정 소송을 하면서 거액의 변호사비용으로 헌금을 사용하고 그래서는 누가 옳다고 할 수 없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렇게 싸워서 세상 사람들로부터 교회가 비난을 받고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는 것보다 주께 맡기고 손해보는 편을 택하는 게 낫습니다.

바울 사도는 다투는 사람들에게 같은 마음 같은 뜻으로 온전히 합하라고 말했습니다. 다투는 사람들은 한 마음 한 뜻이 아니죠. 한 마음 한 뜻이었으면 이렇게 갈라서서 다투겠습니까? 그런데 지금 분쟁으로 감정이 격해진 상태에서 어떻게 한 마음 한 뜻이 될 수 있겠습니까? 오직 한 길 철저하게 회개하고 주님께 굴복하는 길 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옳고 너희는 잘못이야” 이런 생각으로는 화합할 수 없습니다. 처음엔 옳았더라도 다투게 된 이상 둘 다 잘못인 줄 알아야 합니다. 혹시 제가 모르는 다툼이 여러분 가정이나 목장에 있다면 오늘 바울 사도의 권면을 따라서 같은 마음과 같은 뜻이 되기를 노력하며 화합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