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고 받는 일

빌립보서4:10-20 / 주고 받는 일

오늘은 빌립보서4장 10절부터 20절의 말씀에 근거해서 선교후원, 혹은 복음전파를 위해 일하는 사역자들을 도와주는 것에 대해 언급한 바울 사도의 말씀을 살펴보겠습니다.

말씀을 듣기 전에 서로 먼저 인사합시다. 한 주 동안 잘 지냈습니까? 옆 사람과도 인사를 나누세요. 어려운 일을 겪어보니까 아무런 일 없이 한 주를 지내는 것이 대단히 감사한 일입니다. 보통 우리가 어려움에 처했다가 해결되면 감사하는데 그냥 잘 지내는 게 더 감사한 일입니다.

오늘 본문은 자신의 선교사역을 돕기 위해 선교헌금으로 후원해준 빌립보 교회에 바울 사도께서 감사의 마음을 전한 내용입니다. 10절의 “너희가 나를 생각하던 것”, 14절의 “내 괴로움에 함께 참예하였느니”, 15절의 “주고 받는 내 일에 참예한 교회”, 16절의 “너희가 한 두 번 나의 쓸 것을 보내었도다”, 18절의 “너희의 준 것을 받으므로” 이런 구절들은 모두 빌립보교회가 바울을 후원한 사실을 가리키는 말씀입니다.

10절에서 바울 사도는 너희가 나를 생각하던 것이 이제 다시 싹이 났다며 크게 기쁘다고 말했습니다. 이것은 18절에 언급된 것처럼 빌립보 교회가 에바브로디도 편으로 로마에 가택연금 되어 있던 바울에게 선교헌금을 모아 전달한 것을 두고 하는 말이었습니다. 15절 보면, 빌립보교회는 그곳에 복음이 전파되던 시초부터 바울의 선교활동을 후원한 최초의 교회였습니다. 바울이 빌립보지역을 떠나 데살로니가로 가서 사역할 때도 한 두 번 더 추가로 재정지원을 해줬습니다.

국경을 넘어 타 민족에게 복음을 증거하는 일은 현장에서 수고하는 선교사 뿐 아니라 모든 교회에게 주어진 사명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아버지께 가시기 직전에 제자들에게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고 가르치라”고 명령하셨고(마28:19,20), “성령이 임하시면 예루살렘과 유대와 사마리아는 물론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행1:8).

전도와 선교는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주어진 보편적인 사명입니다. 바울처럼 주님께서 특정해서 보내시지 않는다고 해서 예수님을 증거하는 일에 무관심해선 안됩니다. 우리는 먼저 우리가 살고 있는 곳에서 예수님 증거하는 일에 힘써야 합니다. 개인적으로나 목장 차원에서 한 달에 한 번 주말에는 전도를 위한 활동을 하기 바랍니다. 앞으로 매월 마지막 주 셀모임은 주중이든 주말이든 각 목장이 편할 때 모여 전도활동을 하면 좋겠습니다. 지금 전도용 휴지를 천 매 정도 주문했는데, 그걸 가지고 다니며 먼저 한국인 대학생, 청장년에게 나눠주며 복음을 전하고 교회도 소개하기 바랍니다.

그 다음 선교에 대해선 지금 당장은 우리가 독자적으로 선교사를 파송할 여건은 안됩니다. 그래서 우선 우리와 직간접으로 관련되어 있는 네팔 안지오선교사를 위해 기도하고 선교헌금도 하면 좋겠습니다. 지금으로서는 그것이 우리가 주님이 명하신 땅끝 선교에 동참하는 길입니다. 저를 포함해 우리 중에 누가 선교사로 해외로 나간다면 그 땐 우리가 힘을 다해서 후원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선교활동은 그 자체로도 적잖은 돈이 필요합니다. 선교사 가족의 생활비가 필요하고, 선교지에서 만나는 사람들의 필요를 도와줘야 전도의 기회를 얻을 수 있습니다. 선교를 돈에 의지하는 것은 좋지 않지만, 선교에 적잖은 비용이 들어가는 것은 사실입니다. 선교사가 어디서 그런 비용을 마련하겠습니까? 후방에 있는 교회와 후원자들이 기도와 선교헌금으로 동참해줘야죠. 형편이 나아지면 해야지 하고 미루면 못합니다. 그래서 내년엔 우리 교회도 매달 100불부터 시작해서 선교후원에 동참할 계획입니다. 여러분도 매달 10불, 20불 이렇게 동참하기 바랍니다.

어떤 경우든 도와달라고 말하는 건 좀 구차한 일입니다. 바울 사도께서도 그런 느낌이 들었던 것 같습니다. 빌립보교회가 후원해준 것에 대해 감사의 마음을 전하면서도 혹시 빌립보교회가 더 도와달라는 말로 오해할까 봐 변명의 말을 덧붙였습니다. 도와준 것에 대해 빌립보교회에 감사의 말을 전하는 것이 뭘 더 기대하고 하는 말이 아니라는 것을 밝혔습니다. 11절에 내가 궁핍해서 하는 말도 아니고, 17절에 내가 선물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고 말입니다.

저도 최근에 몇몇 교우들로부터 적잖은 도움을 받았습니다. 이 기회에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사실 전 갑작스럽게 적잖은 돈이 필요한 상황이 생겨서 집을 담보로 에쿼디를 쓰려고 했는데, 그것도 제 수입을 감안한 크레딧이 기대만큼 높지 않아 잘 안돼서 고민하던 차에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마침 홈스테이가 생긴 것도 부족함을 일부 보충할 수 있었습니다.

11, 12절에서 바울 사도는 어떠한 형편에 처하더라도 자족하기를 배웠다고 말합니다. 바울 사도 역시 돈이 부족하고 비천한 상황에 처한 때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오늘 본문에 언급된 것처럼 교회로부터 선교후원금을 받기도 했지만, 쓰다 보면 얼마 못 가니까 직접 텐트 만드는 일을 하며 돈을 벌기도 하고, 그 마쳐 여의치 않을 때는 먹는 비용까지 아끼며 궁핍한 상황 속에서도 자족하는 마음으로 살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배웠다는 단어가 주목을 끕니다. 병 걸려 죽게 생긴 게 아니면, 풍족할 때는 잘 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어려울 때입니다. 지금 세상에선 무엇보다 돈이 없어 궁핍한 것이 제일 힘들 겁니다. 목회자로 사는 게 힘들다고 하는데, 그 사역이 힘들어서 그런 것보다 적은 수입으로 살아야 하기 때문일 겁니다. 그래서 풀타임으로 주의 일을 하며 살기로 헌신하려면 무엇보다 바울이 고백한 것처럼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배고품과 궁핍에도 불평하지 않고 살아낼 검소한 삶의 훈련이 필요합니다.

제 자녀도 그런 생각을 한다는 걸 최근에 알았습니다. 제가 교회를 위해 기도할 때마다 이젠 풀타임 사역자가 준비되어야 하는데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지금 목자들을 하나씩 놓고 누가 3,4년 후에 풀타임 사역자로 헌신할 수 있을까 생각해본 적이 있습니다. 믿음과 충성하는 마음으로는 누가 해도 좋겠다 싶은데, 문제는 생계문제였습니다. 지금 직장을 가지고 일하는 형제들은 적어도 매달 5천불 이상을 받는데, 지금 형편으로 늘푸른교회 전도사가 되면 아마 2천불 주기도 힘겨울 겁니다. 그래서 고민하다가 제 딸보고 신학교 가면 어떻겠냐고 해본 적이 있습니다. 아무튼 주께서 적합한 사람을 준비시켜 주시기를 바랍니다.

바울 사도의 말씀에 따르면, 개인적으로나 교회 차원에서나 복음을 위해 일하는 사람을 후원하는 돈은 주께서 받으실 만한 향기로운 재물이며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입니다. 지난번 안지오 선교사님이 방문했을 때도 몇몇 형제들이 선교헌금을 하고 식사를 대접해주었습니다. 지난번 바자회수입금까지 합쳐서 2천불 정도 후원해드렸는데, 고마운 마음을 교회에 전해달라고 부탁하셨습니다. 평소에 십일조를 비롯해 교회를 위해 헌금하는 교우들에게도 고마운 마음을 전합니다. 모두다 주께 향기로운 재물입니다. 주께서 여러분의 모든 쓸 것을 채워주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