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교회

고린도전서1:1-3 / 고린도교회

오늘부터 고린도전서를 본문을 설교말씀을 나누겠습니다. 고린도교회는 이제 막 예수 믿고 돌아온 이방인들이 대부분이라서 첫 사랑의 은혜도 넘치는 반면 아직 옛 사람의 습관이 남아 있었기 때문에 문제도 많았습니다. 그 당시도 이방인들은 방탕한 문화 속에서 육신의 욕심을 따라 살았기 때문에 예수 믿고 돌아 온 후에도 버려야 할 게 아직 남아있었습니다. 그래서 고린도전후서를 통해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와 인간의 죄성과 예수 믿고 난 후 성화의 과정에 대해 살펴볼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 1절부터 3절은 편지형식에서 서두의 인사말입니다. 여기엔 바울 사도께서 고린도교회 모든 성도들에게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님께서 베풀어주시는 평강이 임하기를 기원하는 문안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당시 고린도는 아가야 지방의 수도였고 헬라 본토에서 페로폰네소스 반도로 나가는 길목이라 육상으로나 해상으로 상업상 교통이 빈번한 곳이었습니다. 그래서 고린도엔 여러 인종이 모여 살며 각지에서 온 우상도 많았고 부자들은 사치스럽게 살며 윤리적으로 방탕했다고 합니다. 예수 믿고 그리스도인이 되었다는 측면에서 볼 때는 거룩한 성도지만, 고린도 지역의 특성상 방탕하게 살던 과거를 가진 교인들이 적잖았습니다.

고린도교회를 놓고 보면, 교회는 죄인이 은혜 받고 변화되어 가는 곳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고린도전서를 살펴보는 동안 이 점을 늘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고린도교회의 모습은 사실 우리의 자화상이기도 할 겁니다. 그렇게 생각하면 여러분이 서로 부족한 점에 대해 좀더 아량이 생기고, 예수님을 믿기 전에 몸에 벤 나쁜 습관을 인정하고 말씀과 성령으로 거룩해지는데 도움이 될 겁니다. 죄는 부정할수록 마음 속 깊게 숨어 자리잡습니다.

고린도교회는 바울의 선교로 세워진 교회였습니다. 바울은 2차 전도여행 중에 고린도를 방문했습니다. 고린도에서 바울은 처음에 유대인들을 대상으로 복음을 전했는데, 유대인들이 바울을 대적하며 훼방하자 하나님을 공경하는 이방인 디도 유스도의 집으로 거처를 옮기고 이방인을 대상으로 전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때 밤에 주께서 환상 가운데 바울에게 나타나 “이 성중에 내 백성이 많다”며 두려워하지 말고 복음을 전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행18:9-11). 바울은 고린도에 1년 6개월 동안 머물며 전도활동을 했습니다.

1절에서 바울은 “하나님의 뜻을 따라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로 부르심을 입은 바울”이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나는 누구인가? 이것을 우리는 정체성이라고 합니다. 바울은 예수님의 사도라는 정체성이 분명한 사람이었습니다. 왜 사는지 모르겠다고 하거나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할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정체성이 분명치 않기 때문입니다. 예수 안 믿는 사람이 그런 말을 하는 것은 이해가 되지만, 예수 믿고 주님을 따르는 제자에겐 어울리지 않는 질문입니다. 아직 이런 의문이 드는 분들은 주님에게 나는 누구인가 자문해보는 게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부름받았다는 단어도 신앙생활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 말입니다. 예수 믿는 것도 우리가 구원으로 부름받았기 때문입니다. 본문에서 사도로 부름받았다는 말은 사역자로 부름받은 것을 의미합니다. 사역자로 부름받는 길은 크게 둘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첫째 직접적 소명은 하나님께 직접 부름을 받는 것입니다. 옛날 선지자들은 대부분 하나님으로부터 직접 부름을 받았습니다. 사도들과 바울도 예수님으로부터 직접 부름받았습니다.

참고로 사도직과 관련해서 오늘날에도 사도직이 존속한다고 믿고 자기들이 사도라고 주장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풀러신학교의 교수였던 와그너 박사가 그 대표적인 인물인데, 제 입장은 그러든 말든 상관이 없는데, 다만 예수님 당시 사도들이 어떤 일을 했고 그들이 어떤 삶을 살았는가 생각하면 자신들이 사도라고 쉽게 말하지 못할 것 같은데 대단한 분들입니다. 예수님 당시 사도들은 거의 모두 다 선교하다가 순교당했습니다.

그 다음 둘째 간접적 소명은 마음의 소원을 교회에 알려 회중의 인정과 추천을 받아 사역자로 세워지는 것입니다. 빌립보서2장 13절 보면, 너희 안에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로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신다”고 합니다. 사역자가 되어 주님을 섬기고 싶은 바람이 마음에 생기는 것입니다. 그럴 경우 그 바람을 교회에 알리고 교회의 동의와 지원을 받아 세워지는 것입니다. 예루살렘교회가 구제의 일을 위해 일꾼을 세울 때 회중이 추천한 사람들을 사도들이 기도하고 안수해서 일을 맡겼습니다(행6:5-6). 회중이 추천하는 과정에서 본인들의 자원하는 마음이 확인되고 사양하는 사람은 제외되었을 것입니다.

제가 늘푸른교회 집사직을 제안하거나 신학교에 가라거나 할 때, 그 자체로 절대적인 지명은 아닙니다. 저는 교회에 일꾼이 필요한 상황을 생각하고 디모데전서 3장의 감독의 자격, 집사의 자격들을 감안해 그래도 적합하다고 생각되는 교우에게 의향을 물어보는 것입니다. 제안을 받을 때 기도하면서 헌신할 마음이 있는지 살펴보고 결정하면 됩니다. 준비가 안 되었을 때는 사양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일단 헌신한 분들은 주님이 나를 부르셨다는 분명한 소명의식을 갖는 것이 좋습니다.

2절의  “하나님의 교회 곧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지고 성도라 부르심을 입은 자들” , 이  구절도 우리가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먼저 하나님의 교회라는 말에 주목하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교회라고 하면서 교회 운영을 보면, 목사의 교회, 장로의 교회, 집사들의 교회 같습니다. 목사, 장로, 집사 모두 주님을 섬기는 종들인데, 자기들의 생각과 원하는 대로 하면서 정작 주님이 원하시는 일을 말만 앞세우고 실행은 후 순위로 밀려나는 것을 종종 볼 수 있습니다. 늘푸른교회에선 그렇게 되지 않게 실무를 맡은 일꾼들이 협력과 견제를 잘 하기 바랍니다.

바울은 교회를 그리스도 안에서 거룩하여지는 성도라고 불렀습니다. 교회라는 단어 '에클레시아'는 '불려나온 사람들'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구약성경에서 거룩하다는 말은 '따로 구별해 놓다.는 뜻이 있습니다. 하나님께 드리기 위해 따로 구별해 놓은 예물은 거룩하다고 합니다. 사람이든 물건이든 거룩해지는 방법은 하나님께 드리기 위해 따로 떼놓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의 신부로 드리기 위해 따로 구별된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거룩하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자신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께 산 제물로 드리기 위해 구별되게 사는 것이 곧 거룩해지는 길입니다. 여러분이 주일마다 나와서 예배드리는 것이 바로 자신을 세상의 삶에서 따로 떼어내 하나님께 드리는 시간입니다. 이런 믿음을 가지고 예배드릴 때 여러분은 주 앞에서 거룩해지는 것입니다. 믿습니까?

바울 사도께서 고린도교회에 기원한 말씀으로 마무리하겠습니다. 교우 여러분 모두에게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임하여 한 주 동안 평안하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