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하나님

마태6:9

오늘은 아버지로서의 하나님에 대해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성경에 언급된 하나님의 호칭은 수십가지가 넘습니다. 하나님은 영어의 God를 우리 말로 번역한 단어인데, 천지 만물을 창조하신 유일신을 가리킵니다. 보통 이름은 다른 존재와 구별해주는 어떤 특성을 담고 있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호칭도 강조하는 바가 다른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구약성경에 나오는 대표적인 하나님의 호칭은 엘로힘과 여호와(야훼)입니다. 엘로힘은 강한 자라는 뜻을 가진 엘의 복수형으로 절대적인 경외의 대상인 전능하신 하나님으로 엘로힘 앞에 다른 신들은 무능한 거짓신에 불과하다는 뜻이 들어 있습니다.  여호와는 ‘스스로 있는 자’라는 뜻으로(출3:14) 이스라엘 백성과 언약을 맺은 주체로서의 하나님을 나타내며, 자존성, 거룩성, 불변성이 강조됩니다.

아버지는 엘로힘과 여호와처럼 고유한 이름은 아니고 관계를 보여주는 호칭입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르라고 하신 분은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어떻게 기도하면 되는 지 가르쳐주실 때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마6:9).

아버지라는 말은 근원, 기원, 시작이라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바흐를 ‘음악의 아버지’라고 부릅니다. 바흐는 그전의 음악을 집대성하고 오늘날 우리가 듣는 거의 모든 서양음악의 뼈대인 평균율을 본격적으로 보급하고 발전시켰기 대문에 음악의 아버지라고 부른답니다. 평균율이란 옥타브를 똑같은 비율로 나눈 음률을 말하는데, 서양음악은 대부분은 옥타브를 12개의 반음정으로 나눈 12평균율이 쓰입니다. 기타를 놓고 보면, 도에서 한 옥타브 위 도까지, 파에서 한 옥타브 위 파까지 거리가 모두 12fret입니다.

하나님은 인류의 창조주시라는 관점에서 처음부터 아버지셨습니다. 그런데 첫 사람 아담이 죄를 짓고 죄 때문에 거룩하신 하나님과 관계가 단절되어 아담의 후손인 인류는 아들로서 법적 지위를 잃어버리고 사단의 지배 아래 놓이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단의 지배아래 지옥가야 할 사람들을 불쌍하게 여겨 예수님의 대속을 통해 죄 용서받고 자녀의 자격을 회복할 수 있게 해주셨습니다. 모든 사람이 무조건 다 하나님 자녀로 회복되는 것은 아니고 예수님을 구주로 믿는 사람만 회복됩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하늘에 계신 아버지” 이렇게 부르며 기도하라고 하신 것은  제자들이 자녀의 자격을 회복했다는 뜻이기도합니다. 현대 자동차 정몽구 재산이 탐나서 상속받으려고 가서 아버지라고 부른다고 해서 무슨 효력이 있겠습니까? 미친놈 취급받겠죠. 죄를 짓고 사단의 종노릇하는 사람은 하나님을 아버지로 불러도 아무런 효력이 없습니다. 먼저 성령으로 거듭나 아들의 자격부터 회복해야 합니다.

하나님 아버지라는 말이 쉽게 나오는 건 아닙니다. 예수 믿고 거듭나서 성령이 내 안에 계셔야 양자의 영이신 성령께서 아바 아버지라고 부를 마음이 생기게 합니다. 로마서8장14절을 보면, 바울은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짓느니라”고 말했습니다. 여기서 부르짓는다는 것은 기도하는 걸 두고 하는 말 같습니다.

여러분 아버지라는 들을 때 어떤 이미지가 떠오릅니까? 세상의 아버지들의 모습이 하도 다양하고 그 중엔 아버지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해 뭔가 이그러진 모습이 떠오르는 사람도 있을 지 모르겠습니다. 일반적으로 아버지라는 말이 주는 이미지는 보호자, 공급자, 안전감, 이런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우리는 주로 기도할 때나  간구하는 찬양을 할 때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르곤합니다. 저도 기도할 때 습관처럼 먼저 ” 하나님 아버지!” 부르고 그 다음에 이어지는 기도말은 주로 “무엇 무엇을 해주세요, 아니면 이렇게 저렇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런 식입니다.

어린 자녀를 둔 아버지들은 생각해보세요. 자녀들이 언제 아빠~ 소리쳐 부릅니까? 지들이 뭔가 필요할 때 달라고 도움을 청할 때나 아니면 뭔가 기쁜 일이 있어 자랑하고 칭찬듣고 싶을 때 아빠를 부릅니다. 물론 같은 경우 엄마를 부르기도합니다. 아버지 없이 자란 아이들은 자기들도 아버지가 있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 마음으로 상처를 받기도 한답니다. 보통 아버지들은 물려주는 게 별로 없어서 고마운 줄 모를 수도 있겠지만, 부자고 영향력이 많은 빌 게이츠나 버핏 같은 분이 아버지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런데 우리 하나님 아버지는 이런 사람들도다 더 부자고 능력도 많습니다. 믿고 의지하는 자에겐 능치못할 일이 없게 도와주실줄로 믿습니다.

정상적인 아버지라면 아버지들은 능력이 되는 한 자녀가 원하는 것 다 주고 싶어합니다. 자신은 먹지 않고 쓰지도 않고 아껴서 모은 재물도 세상 떠날 때 자식들에게 선물로 주고 가잖습니까? 자식을 사랑해서 주는 것이라 줄 때 더 기뻐합니다. 아이들은 장난감을 사다주면 아버지보다 장난감을 더 좋아하고 장난감하고 노느라 정신없지만, 아버지는 그런 아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즐거워합니다. 이런 아버지 마음이 어디서 왔겠습니까? 하나님 아버지에게서 온 것입니다. 그래서 아버지가 되면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이 저절로 알아집니다. 저는 하나님도 저를 그렇게 사랑하고 기뻐하신다고 믿습니다.

요한복음20장 17절 보면, 부활하신 예수님은 무덤을 찾아온 막달라 마리아에게 “내가 내  아버지, 곧 너희의 아버지, 내 하나님 곧 너희의 하나님께 올라간다고 제자들에게 말하라고 합니다. 예수님이 변화산에 오르셨을 때 하늘에선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기뻐하는 자다”는 음성이 들렸다고 합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르셨을 뿐 아니라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내 아들이라고 불렀습니다. 이제 예수님은 예수 믿는 제자들에게 하나님을 너희 아버지로 불렀습니다.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은 이제 우리들의 아버지가 되셨습니다.

아버지와 자녀는 영속적인 관계는 없습니다. 사랑하는 부부도 이혼하면 남남이 되고 말지만, 아버지와 자녀의 관계는 어떤 것으로도 끊어낼 수 없는 천륜입니다. 하나님 아버지와 우리의 관계도 이젠 그 어떤 것으로도 끊어지지 않습니다. 죽음도 마귀의 공격도 세상의 어떤 권세도 자녀를 향한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을 막을 수 없습니다(롬8:38,39). 그러니 부족한 것 너무 염려하지 말고 하나님 아버지 품 안에서 평안을 누리기 바랍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로 믿는 사람은 아버지의 훈육과 징계를 달게 받는 마음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아버지는 자식을 위해서 때로 책망하고 매를 들기도 합니다.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죄를 범하고 불순종하자 오래 참다가 마침내는 바벨론에 사로잡혀가는 고난을 받게 해서 뉘우쳐 돌이키게 하신 적이 있습니다. 그 때 하나님은 예레미야를 통해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은 재앙이 아니라 평안이라고 말했습니다(렘29:11).

여러분이 어려움에 처할수록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과 도와주시는 능력을 굳게 믿고 믿음으로 이겨내기 바랍니다. 환란과 역경을 당했을 때 믿음의 역사가 필요합니다. 최근 여러나라에서 지진이 일어났습니다. 뉴스 영상을 보니 집들이 대부분 무너졌는데 어떤 건물은 멀쩡했습니다. 최근에 내진설계로 지은 건물이라고 합니다. 예수님은 신앙생활을 집을 짓는 것에 비유하신 적이 있습니다. 모래 위에 지은 집이 아닌 내진 설계로 반석위에 지은 집, 그런 믿음의 사람들이 되기 바랍니다.

사랑을 베푸는 수고는 아버지의 몫이지만, 아버지가 보람과 기쁨을 느끼게 해주는 자녀가 되려고 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말씀대로 순종하고 감사하며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사울왕에게 실망하신 것은 다름아닌 불순종이었습니다. 하나님의 규례와 법도를 따라 사는 것이 복받고 잘되는 길입니다. 지금은 예수믿고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곧 규례와 법도를 지키는 길입니다. 예수님이 우리보고 하라고 하신 것은 복음전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승천하시기 직전 제자들에게 남긴 유지는 만나는 사람이 누구든 그 사람에게 복음전해 예수 믿고 구원얻게 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아버지를 사랑하는 자녀라면 아버지가 기뻐하는 일에 힘써야 할 것입니다. 탕자의 비유에 등장하는 아버지가 곧 하나님 아버지입니다(눅15장). 집나간 아들이 잘못을 깨닫고 돌아오기를 매일 기다립니다. 아들이 돌아온다는 소식을 듣자마다 뛰어나가 맞이하고 온 마을 사람들과 함께 기뻐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보여주려고 이 비유를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전도하는 사람을 기뻐하시고, 잃어버린 자녀가 돌아올 때 제일 좋아하십니다. 전도해서 아버지를 기쁘게 해드립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