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체의 욕망을 경계합시다

갈라디아서5:16-24 /육체의 욕망을 경계합시다. 

한 주간 잘 지냈습니까? 서로 인사합시다. 오늘은육체의 욕망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예수 믿은 후에도 우리가 육체의 욕망 때문에 영적 갈등을 겪고 사는데, 바울 당시의 교회도 그랬던 것 같습니다. 바울께서 여러가지 육체의 욕망들을 언급하면서 이런 욕망을 따라 살면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얻지 못할 수 있다고 경고하고 성령을 따라 살면서 육체의 욕망을 이겨내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육체라는 단어는 양면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육체는 단순히 몸을 가리킬 때도 있고, 죄에 물들어 하나님의 뜻을 거슬려 행하는 마음을 가리킬 때도 있습니다. 육체의 욕심, 육체의 소욕, 육체의 일, 이런 표현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오늘 본문에서는 후자의 의미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육체의 행동은 마음의 표현입니다. 죄악된 행동은 대부분 죄에 오염된 악한 마음의 산물입니다. 오늘 본문에는 육체의 일 15가지가 언급되었는데, 갈라디아교인들 중에도 육체의 욕망을 따라 사는 사람들이 있었거나 주변 사람들이 그렇게 살고 있으니까 경계하라고 강조하셨을 것입니다. 
바울이 언급한 15가지 죄악 중에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이 제일 먼저 언급되어 있습니다. 이것들은 모두 성(sex)과 관련된 죄입니다. 바울이 이것을 언급한 것으로 봐서 갈라디아 교인들 중에도 음행을 행하는 사람들이 있었다고 생각됩니다. 그 중에는 잘못인 줄 알면서도 육체의 욕망에 져서 회개하고 또 음행에 빠지는 그런 케이스도 있었을 것입니다. 

음행이란 하나님이 정한 질서를 벗어난 모든 성관계입니다.  미혼자 사이의 성관계, 배우자 외에 다른 사람과 성관계, 동성간의 성관계, 중혼의 성관계, 둘 이상의 파트너와의 성관계 등은 모두 음행의 범주에 해당합니다.하나님은 남자와 여자를 만드시고  생육하고 번성하는 복을 주셨습니다. 생육은 남녀의 성적 결합의 열매입니다. 따라서 결혼한 남녀의 성관계는 하나님이 의도하신 창조질서에 속한 아름다운 것입니다.  문제가 되는 것은 하나님이 정한 울타리를 벗어나 색욕을 즐기며 자신의 몸을 불결하게 만들고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미혼이든 기혼이든 하나님이 정한 질서를 벗어나지 않도록 몸과 마음을 정결하게 해야 합니다. 

잠언9장 17절에 훔쳐 먹는 물이 달고 몰래 먹는 떡이 맛이 있다고 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죄를 지을 때 느끼는 짜릿한 맛을 표현한 것 처럼 들립니다.  최근 유부남 감독과 미혼 여 배우의 부적절한 관계에 말이 많습니다. 이와 관련해서 한국 4,50대 남성들 중에 절반 이상이 배우자만 모르게 한다면 인생의 활력소가 되어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없는 사람에겐 하나님이 정한 질서나 울타리 같은 것도 없습니다. 세상 흐름이 어떠하든 우리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질서를 따라 살도록 조심해야 할 것입니다. 

그 다음 종교적 차원의 죄에 해당하는 우상숭배와 주술과 이단도 나옵니다. 우상숭배는 바울 당시 이방인 지역에 널리 퍼져있었습니다. 사도행전 보면, 에베소 지역은 아데미 여신 숭배가 성행했습니다.  마데미 여신은 소아시아 지역뿐 아니라 로마는 디아나,  이집트는 이시스로 불리며 광범위한 지역에서 숭배되었답니다. 소아시아 중북부 지역인 갈라디아 지역에서도 아데미여신숭배가 퍼져있었을 것입니다.  

우상숭배는 오늘날에는 각지역의 축제와 종교의 이름으로 널리퍼져있는 현상입니다. 지금도 터키에선 5월이면 아데미여신 축제를 벌인다고 합니다. 그걸 보려고 세계 여러 나라에서 많은 여행객이 몰려온답니다.  타 종교도 존중하자는 기독교 지도자들도 있지만, 성경의 가르침에 따르면 여호와 하나님  외엔 모두 우상입니다.  유사 기독교인 여호와 증인과 몰몬교와 신천지도 우상숭배와 다를 게 없습니다. 합격이나 당선을 알려고 점치는 것, 관상이나 사주를 보는 것, 명당이라고 조상의 묘를 옮기는 것, 오늘의 운세를 보는 것, 주술도 하나님이 다 금하신 것입니다. 

신명기 18장 9-14을 보면, 하나님은 가나안에 들어가서 그 민족들의 가증한 행위를 본받지 말라고 하시면서, 복술자나 길흉을 말하는 자나 요술을 하는 자나 무당이나 십접자나 초혼자를 너희 중에 용납하지 말라고 명하셨습니다. 이런 것들이 하나님 자녀들의 마음을 미혹해서 믿음에서 떠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한국에선 대학가 주위의 역술인들이 호황을 누리고 있다고 합니다. 어떤 역술가는 한 달에 3억 가까이 벌기도 했답니다. 우리의 생사화복을 주장하실 수 있는 분은 오직 창조주신 하나님 한 분이십니다. 그러니까 장래를 위해 하나님께 기도하며 믿음으로 살면 주께서 도와주실 것입니다. 

당당 뉴스라는 곳에 ‘점보러 다니는 기독교신자들’ 이런 칼럼이 있어서 읽어보니 1천명을 대상으로 조사했는데, 성인 50%가 점보러 다닌다고 했다는 것입니다. 전체 인구에서 기독교인의 비율이 25%라고 하니까 적잖은 그리스도인들도 점보러 다닐 거라고 추정했습니다. 강원도에 점집을 운영하는 어떤 도사의 말에 따르면 그 지역 교회 권사들도 와서 점을 보고 간다는 것입니다. 그게 누구든 예언기도해준다며 앞날이 어쩌고 하는 사람들은 상종하면 안됩니다. 아무나 가면 즉시 예언해주고 그런 것은 성경에 없는 짓입니다. 

끝으로 사람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죄인 원수 맺는 것, 분쟁, 시기, 분냄, 편가름과 분열, 투기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시기, 분냄, 편가름과 분열과 분쟁 이런 것은 사람들이 모인 곳에선 흔히 일어납니다. 한국 정치판을 보면 늘 상대당을 욕하고 같은 당끼리도 편을 갈라서 싸우고, 누가 좀 잘 나간다 싶으면 시기와 모함으로 끌어내리고 그게 그들이 하는 일같습니다. 그런데 이런 일이 교회에서도 일어납니다. 목사님 따르는 교인들과 장로님 따르는 교인들이 주일 예배 중에도 싸우다 소송을 하고 법정에 가서 다투기도 합니다. 지금 LA의 어떤 한인 교회도 교인들이 다투다 교단까지 개입해 문제라고 한인신문에 올라있습니다. 사단이 교회를 공격하는 것을 잘 막아내야 하지만, 교회운영이나 이권을 놓고 싸우는 것은 잘못입니다. 이런 경우는 목사든 장로든 어느 편에도 가담하지 말고 잠잠히 교회를 위해 기도하기 바랍니다. 

술취함과 방탕함도 피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에게 음주 문제는 기독교 역사만큼이나 오래된 것입니다. 잠언 23장 31절에는 “포도주를 보지도 말라”고 나옵니다. 그런데 가나 혼인잔치 기록을 보면, 혼인 잔칫날 사람들에게 포도주를 대접했고,포도주가 부족해졌을 때 어머니의 부탁으로 예수님은 항아리 물이 포도주가 되는 기적을 행하시기도 했습니다.  그 잔치에 참석한 예수님도 포도주 한 잔 정도는 마셨을 것 같습니다. 바리새인들이  “먹기를 탐하고 포도주를 즐기는 사람”(눅7:34)이라고 예수님을 비난한 것을 보면 예수님이 포도주라며 처다보지도 않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어떤 문제든 예수님의 본을 따르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합니다. 불신자들과 함께 한 자리라 해도 전도나 친교를 위해 포도주 한 잔을 받아 마시든지 그냥 놔두든지 그 정도는 신앙과 덕의 차원에서 용납될 수 있는 일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이 평소 술의 취흥을 즐기며 방탕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예수님이 술에 취해 떠들고 놀았다는 기록은 없습니다. 우리는  그 점도 본받아야 합니다. 함께 한 자리에 그리스도인이 술을 먹는다고 실족할 사람이 있을지 모르니 삼가하는 게 더 좋습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 문화는 죄로 오염되어 있습니다.  바울은 15가지를 언급한 후 이런 일을 하는 사람은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라고 경고했습니다. 갈라디아교인 중에는 이런 죄 가운데 살면서 예수 믿고 구원얻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께서는 이런 죄악에서 회개하고 돌이키지 않고 계속 죄악의 욕망을 즐기며 산다면 주님 믿는다고 말하더라도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라고 경계한 것 같습니다. 교우 여러분, 성령을 따라 살며 한 주간 승리하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