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법의 목적

갈3:19-22

한 주간 평안했습니까? 서로  인사합시다.  이런 저런 사정으로 힘든 한 주를 보낸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이번  한 주는 주 안에서 위로받고 평안을 누리기 바랍니다.

  오늘은  율법의 목적, 혹은 기능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지난 몇 번엔 걸쳐서 하나님께 의롭다함을 얻고 구원받는 것은 율법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믿는 것이라고 말씀했습니다. 그래서  “그러면 하나님이 율법을 왜 만들어 주셨는가?” 이런 의문이 생긴 교우들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이런 의문을 풀고 가기 위해 율법의 참 목적이 무엇이었는지 살펴보려고 합니다.

본문 19절 보면, 율법은  “범법하므로 더하여진 것”이라고 바울은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것을 율법의 첫번째 목적으로 볼 수 있습니다. 여러분도 공원같은 곳에서 “잔디를 밟지 마세요”이런 팻말을 본 적이 있을 것입니다. 이 팻말이 생긴 이유는 팻말을 세우기 전에 누군가 잔디밭에 자꾸 들어가서 망쳐놓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잔디를 보호하는 목적은 잔디를 위한 것이 아니라 사람을 위해 쾌적한 환경을 만들려고 그런 것입니다. 바울의 설명에 따르면 율법도 이와 같은 목적으로 더해진 것이랍니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성문법은 수메르인들이 남긴 우르의 남무(Ur-Nammu) 법전이라고 합니다. 이것은 BC2100년에서 BC2050사이에 수메르어(쐐기문자)로 기록되어있습니다. 이 시기는 바로 아브라함이 태어나 살았던 때였습니다(BC2166-BC1991). 그 다음  또 고대 성문법으로 유명한 함무라비법전은고대 바벨로니아 함무라비왕이 남긴 법전으로 알려져 있습니다(BC1792-BC1750). 모세의 율법은 출애굽(BC1446) 직후에 주어졌으니까 세상엔 율법이 주어지기 수백년 전부터 법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율법이 처음 더해진 시기는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탈출하고 시내산을 통과할 때였습니다. 아브라함의 후손인 이스라엘 백성은 애굽에 있을 때도 하나님의 언약의 백성이었습니다. 그러나 애굽에서 바로의 통치 아래 살면서 애굽의 문화와 환경에 동화되어 있었습니다. 애굽에서 탈출한 후에도 애굽에서 살 때의 습관을 다 버리지 못해 하나님 보시기에 악한 행동을 했습니다. 10계명을 기준으로 분석해보면, 그들중엔 아직도 우상을 섬기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고, 부모를 공경하지 않는 사람도 있었고, 남의 것을 몰래 가져가는 사람도 있었고, 남의 아내를 탐내는 사람도 있고, 살인도 일어났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그러지 말라고 금지 팻말을 세우신 것입니다.

  율법은 울타리 같은 것입니다. 제가 6월 중에 옐로우스톤을 여행했는데, 몬테나 주를 통과할 때 보니까 넓은 초원에 흑소나 말을 방목하는 울타리가 쳐진 목장들을 봤습니다. 목장주가 힘들게 울타리를 치는 목적은 가축떼가 자기 경계를 넘어가기 때문에 더 이상 못나가게 울타리를 세운 것입니다. 매일 신문 방송에 나오는 것처럼 사람들은 넘어선 안되는 경계를 막 넘습니다. 남의 것을 몰래 가져가고, 배우자가 있는 사람이 바람을 피고, 말로 다투다가 폭력을 쓰고 그러다 사람을 죽이기도 합니다. 이렇게 놔 두선 안되기 때문에 하나님이 울타리를 치고 넘어가지 말라고 하신 것입니다. 바울의 설명에 따르면, 이스라엘 백성 사이에 악행이 먼저 일어났고 그걸 막아보려고 하나님이 율법을 주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율법을 주실 때부터 그런 의도를 가지셨는지 모르지만, 율법은 범죄를 예방하려는 것 외에도 또 다른 기능을 했습니다. 율법의 두번째 목적이라고 볼 수 있는데, 사람들에게 죄를 깨닫게 해준다는 것입니다. 로마서 역시 바울이 쓴 서신인데, 로마서3장 20절에서 바울은 율법의 행위로는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고 인정받을 사람이 없다면서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고 말했습니다. 한 구절 더 봅시다. 로마서7장 13절에서는 “계명(율법)으로 말미암아 죄로 심히 죄 되게 하려 함이라”고 말했습니다. 가끔 뉴스에서 나쁜 짓을 해서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입혔는데도 처벌 조항이 없어서 어쩌지 못한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가 있습니다. 금지령과 어겼을 때 어떤 벌을 받게 된다는 법조항이 있으면 죄가 된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율법이 바로 그런 기능을 했다는 것입니다.

  요즘 한국에서 간통죄가 폐지되어 처벌할 수 없게 되자 불륜을 저지르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고 합니다. 처벌조항이 있을 때는 벌 받을 것이 두려워 조심하기도 하겠지만, 그것이 죄가 된다는 인식이 더 강했는데, 간통죄목이 폐지되자 죄를 짓는다는 생각은 약해지고 배우자만 모르게 하면 나쁠 게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얼마전 톱 여배우와 유부남 감독의 불륜 의혹이 불거졌습니다. 기자들이 물어도 당사자들이 노코멘트라 실상을 다 알 수는 없지만 말이 많습니다. 이에 대해 50대 남성들 중 55%를 넘는 사람들이 배우자만 모르면 활력을 찾아 나쁠 게 없다고 생각한다는 기사도 있었습니다.

  율법의 세번째 목적은, 기능이라고 보는 게 더 정확하겠지만, 하나님의 속성을 계시해준다는 것입니다. 율법은 하나님이 만드신 것으로 하나님의 뜻과 성품이 반영되어 있습니다. 예를 들어, 레위기 11장 44,45절에 하나님은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거룩하게 살 것을 명령하신 근거는 하나님께서 거룩하신 분이라서 그의 자녀와 백성들도 거룩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거룩하신 속성 때문에 하나님은 우리가 성적으로 방탕하게 사는 것을 싫어하십니다.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것을 행하면 하나님 앞에 죄를 짓는 것이 됩니다. 그래서 세상 사람들이 어떻게 살든 간에 하나님 자녀들은 성적으로 정결하게 살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창세기19장에 소돔성의 멸망이 나옵니다. 소돔성을 멸하기 전 하나님은 소돔 사람들의 죄악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사실 여부를 확인하려고 천사를 데리고 오는 중에 아브라함을 만납니다. 소돔성엔 두 천사만 보내는데, 소돔 사람들이 낯선 사람들이 와서 롯의 집에 머문다는 소식을 듣고 찾아와  우리가 그들과 상관할 수 있게 내 놓으라고 소동을 벌입니다. 상관하다는 말이  NIV영어 성경엔” so that we can have sex with them”으로 번역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소돔 사람들이 동성애를 행하고 있었다는 것을 암시합니다. 하나님이 보실 때 소돔의 죄악가운데 하나는 동성애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요즘 미국 사회에선 죄로 여기지 않고 성적 취향으로 보고 성적 자기결정권을 존중해야 줘야 한다는 주장이 대세가 되고 있습니다.  이런 사회 분위기에선 성경의 가르침을 따라 신앙을 지키려면 영적 전쟁을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지금까지 율법의 목적, 혹은 기능 3가지를 알아봤습니다. 말씀을 마치기 전에 율법과 관련해 한 가지 더 알고 있어야 할 것은 율법은 “약속하신 자손이 오시기까지 있을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여기서 약속하신 자손은 예수님입니다. 바울은 예수님이 오심으로 율법의 기능이 끝났다고 말하는 것 같습니다. 바울이 그렇게 생각한 것은 율법을 지켜 의롭다함을 얻으려는 것이 예수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얻는 것으로 대체되었다는 의미에서 율법은 끝났다고 한 것입니다. 죄를 깨닫게 해주고 하나님의 속성을 드러내주는 기능은 지금도 유효합니다.

  바울이 갈라디아 교우들에게 강조한 것은 생명을 얻게 해주는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율법과 씨름하지 말고 예수 믿음으로 구원얻는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 누리라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도 어떤 행동규칙을 만들어 잘잘못을 따지고 서로 논쟁하고 그러는 것은 아무런 유익이 없습니다. 그런 것을 다 지킨다고 해도 그것으로 하나님께 인정받고 상받지 못합니다.  그 시대의 어떤 사회의 윤리와 도덕을 지키는 것이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그리스도인의 표준이 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아는 마음으로 철저하게 믿음으로 사는 것이 최선의 길입니다. 사악한 마음에서 나오는 선행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참회하고 돌아오는 죄인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합니다.  겸손하고 너그럽고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가진 교우들이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