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망의 사역

갈라디아2:11-21

교우 여러분, 한 주간 잘 지냈습니까? 지난 주일은 수양회 기간이어서 2주 만에 보게 되는 분들도 있는데, 반갑습니다. 여러분도 옆 사람과 서로 인사하기 바랍니다.  오늘은 베드로의 위선적 행동에 이에 대한 베드로의 책망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11-13절을 통해 어떤 상황이 벌어진 것인지 살펴보겠습니다.

베드로 사도가 안디옥을 방문해 잠시 머물고 있을 때 이방인들과 함께 식사하며 어울려 지낸 것 같습니다. 함께 식사한다는 것은 친구로 받아들인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베드로가 이방인과 식사하고 있는데 야고보가 보낸 어떤 유대인들이 찾아왔습니다. 베드로는그 유대인들을 의식해서 식사하다 말고 자리를 피했습니다. 그러자 함께 식사하던 바나바와 다른 유대인들도 베드로를 따라서 자리를 떠났습니다. 바울은 그런 일이 있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베드로를 만났을 때 면전에서 베드로에게 위선적인 행동을 했다고 책망했다는 것입니다.

베드로 당시에 유대인이 이방인과 교제하는 것과 가까이 하는 것이 금지되어 있었다고 합니다(행10:28). 이 금지법은 유대인들의 관습법 같은 것입니다.  구약의 율법에 이방인과 함께 식사하는 것을 금한다는 그런 규정은 없습니다.  베드로도 그런 금지 규정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베드로가 이방인과 가까이 한 것은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방인들을 받아주셨다고 믿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베드로는 고넬료에게 전도하는 과정에서 하나님께서 이방인에게도 성령을 내려주신다는 것을 체험했습니다(행10장). 그러니까 베드로는 당당하게 그 식사자리를 지키며 야고보에게서 온 유대인들이 비난할 때 예수 믿는 이방인들을 변호해줘야 할 사람이었습니다. 

바울은 이방인과 함께 식사하던 베드로가 유대인들을 의식하고 안 그런척 자리를 떠난 것을  위선적 행동(hypocrisy)이라고 판단했습니다. 이방인과 함께 식사한 것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거리낌이 없었다면 베드로는 야고보에게서 온 유대인들 앞에서도 당당하게 자리를 지켰어야 합니다. 유대인으로서 이방인과 식사하는 것이 잘못된 일이라고 생각했다면 처음부터 그 자리에 참석하지 말아야 했습니다. 식사하다 슬그머니 자리를 피한 베드로의 행동은 이방인을 거부하는 유대인들을 의식한 행동이었지만이방인을 부정하다고 선언하는 것처럼 보이는 위선적 행동이 되고 말았습니다.

베드로 같은 분이 그런 행동을 보였다것이 다소 의외라고 생각되지만, 이것은 인간의 연약함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베드로는 환상을 보고 성령의 인도를 받으며 이방인 백부장 고넬료에게 전도하는 과정에서 사도들 중에서도 유일하게 하나님께서 이방인을 용납하여 성령을 부어주시는 것을 직접 목격했습니다. 그래서 안디옥교회에 머물 때도 이방인들과 식사의 교제를 하며 어울릴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아직 동료 유대인들의 비난에서 자신을 보호하려는 마음이 복음의 정신을 지키는 것보다 컸던 것 같습니다.

베드로의 실수를 비난할 의도가 전혀 없습니다. 우리에게도 베드로처럼 위선적인 모습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종종 자신을 변호할 때 객관성을 잃고 억지주장을 펴기도 합니다. 복음을 위해 자신을 사람들의 비난이나 죽음의 자리에 내주는 것은 말처럼 쉽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자아를 십자가에 못박고 연단의 과정을 거쳐 이 세상에 대해 죽음을 경험한 후에야 나를 비난의 자리에도 세우고 죽음의 자리에도 내 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이 땅에서 천국으로 향하는 신앙의 여정에서 여러번 실패를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베드로 사도 역시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어쩌면 베드로는 수제자로서 다른 사람의 이목에 대해 더 많은 신경을 쓴 것 같습니다. 사람을 의식하는 것은 양면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긍정적인 면은 좀더 잘 하려고 노력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부정적인 면은 위선자가 될 위험이 있다는 것입니다. 사람을 의식해 잘 하려는 마음이 잘못한 것을 숨기고 안 그런척 하게 만듭니다. 사람을 의식하고 두려워하면 거짓말을 하게 됩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그런 경우였습니다.

베드로가 이방인과 식사의 교제를 하다가 유대인들의 시선을 의식하고 자리를 떠나자 바나바와 다른 유대인들도 유혹을 받아 자리에서 떠났다고 합니다. 베드로가 자리를 피하는데 그대로 앉아 있기도 난감했을 것입니다. 교회에서 리더의 위치에 있는 사람은 누군가에게 영향을 주고 있다는 것을 늘 유념할 필요가 있습니다. 수양회 캠프화이어 시간에 나와서 서로 나눈 이야기를 보면, 자기 목자의 신앙생활에 좋은 영향을 받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바울은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얻는다는 것을 강조하려는 목적에서 베드로의 실수를 거론했습니다. 16절 보면, 바울은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된다는 것을 강조면서 유대인인 바울 자신도 율법의 행위가 아니라 예수를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얻으려고 한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베드로가 이방인들과 식사하다 자리를 떠난 것도 율법의 행위로 의롭게 되려는 의도에서 비롯된 것으로 본 것같습니다.

베드로의 실수는 우리도 사실 종종 범하는 것입니다. 복음에 합당하게 살지 아니할 때가 그렇습니다.  우리는 교회에서 예수 믿는 믿음만 보고 판단하지 아니하고 뭔가 겉으로 드러나게 잘 하는 걸 가지고 그 사람의 믿음을 판단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열심히 교회 일을 한다거나 헌금을 잘 한다거나 아무든 뭔가 다른 사람보다 잘하는 것처럼 보이는 행동으로 신앙이 좋다 나쁘다고 판단합니다. 저도 교우들을 대할 때 이런 식으로 잘못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 행함으로 믿음을 판단하면 안되는 줄 잘 알면서도 믿음은 잘 안보이고 행동을 잘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보이는 것으로 판단해서도 안된다는 교훈을 얻게 됩니다.

바울이 베드로 사도라도 복음에 위반되게 행동한 잘못을 지적하고 바로 잡은 것은 잘 한 일로 보입니다. 바울의 책망으로 이방인 사회에서 복음이 왜곡되는 것을 방지하고 나쁜 영향을 받는 것을 예방할 수 있었습니다. 바울의 행동은  사람을 기쁘게 하기보다 하나님을 기쁘게 한 것이고  베드로에 대해 자기 의를 드러내려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책망은 지금도 교회 사역에서 필요한 양육 방법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베드로와 같은 위치에 있는 사람에겐 그에 합당한 예의를 갖추는 것이 덕을 세우는 일입니다. 바울은 베드로와 같은 동급의 사도라서 면전에서 책망해도 서로 이해가 되었겠지만, 교회 청년이 면전에서 목사님이나 장로님에게 복음에 합당하지 못하다고 지적하고 책망한다면 무례한 행동이 더 문제가 될 것입니다. 연약함으로 생기는 실수에 대해서 우리가 서로 너그럽게 용납하고 이해해주는 마음도 필요합니다. 우리가 행동을 바로 고친 후 예수님께 받아들여지는 게 아니고 예수님께 와야 예수님이 우리 행동을 고쳐주신다는 것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교우 여러분 모두 교회에서 목장에서 서로 바로 세워주는 사역에 동참하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