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법주의를 경계합시다

갈6:11-16

오늘은 율법주의를 주제로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율법주의를 살펴보는 목적은 그리스도인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자기도 모르게 율법주의에 빠져 은혜를 거부하기 쉽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인정을 받으려는 마음에서 더 잘 해보려고 하다가 율법주의에 빠지기도 하고, 교만과 위선적 성품 때문에 남을 판단하는 율법주의에 빠지기도 합니다. 사실 어느 교회든 얼마간 율법주의자들이 있는데, 기독교신앙생활의 특징이 한 순간이라도 방심하면  은혜와 믿음에서 벗어나 율법주의자가 되기 쉽기 때문입니다. 이해를 돕기 위해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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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초반의 은혜 자매는 마음 속에 폭탄을 가지고 살고 있습니다. 다른 사람이 볼 때 은혜는 테레사 수녀처럼 성결하게 보이고 그리스도께 헌신적입니다. 그녀의 부모는 딸이 언제나 올바르게 행동하리라고 믿고 있고, 친구들은 어려운 일이 생기면 베티를 찾아 상담하고, 목사님은 은혜 자매가 교회 일이라면 뭐든 참여하리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은혜는 아무리 여러 가지 봉사의 일을 해도 늘 부족하다고 느낍니다. 왜냐면 마음 한 구석에 늘 자신이 하나님을 온전히 기쁘시게 해드리지 못한다는 생각이 떠나질 않기 때문입니다. 은혜 자매는 하나님의 인정을 받지 못한다는 생각으로 괴로워하면서도 성경공부, 기도모임, 전도활동에 이르기까지 교회 행사란 행사는 다 참여하고, QT와 신앙서적 읽는 것도 빠짐없이 합니다. 다른 사람이 볼 때 그리스도인으로서 금메달 감인데 자신은 하나님 앞에서 실패자처럼 느낍니다.

하영이는 이와는 다른 문제를 가지고 있는 젊은이입니다. 그에게 가장 큰 문제는 정욕입니다. 실제로 간음한 적은 없지만, 끊임없이 떠오르는 불순한 생각과 욕망으로 괴로워합니다. 그는 교회 친구들에게 자신의 머리 속에 들어있는 이런 불결한 생각을 들킬까봐 늘 긴장하고 불안해합니다. 그는 몇 번이고 생각을 통제해서, 깨끗한 생각만 하고 예쁜 여자들이 지나가도 쳐다보지 않겠다고 마음 먹지만 결국 자신에게 실망하고 수치심만 증폭됩니다.

은혜와 하영이의 이야기는 그들만의 이야기가 아니고 우리들의 이야기일 겁니다. 내가 그런 사람일 수도 있고, 교회에서 내 옆자리에 앉아 있는 교우일 수 있고, 주일학교 학생이나 교사, 목사, 우리가 후원하는 선교사일 수도 있습니다. 당혹스러운 것은 거듭난 그리스도인이라고 고백한 우리 각자의 의식 속에 그들이 숨어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대개 율법주의에 빠지기 쉽습니다. 그들은 좀더 나은 도덕적 행동으로 자신을 다른 그리스도인들보다 낮다고 생각하다가 반대로 실망스런 행동을 하게 되면 하나님께 인정받을 수 없다는 생각에 빠지고 다른 어떤 그리스도인들보다 못한 자로 여깁니다.

우리는 서신서들을 통해 1세기 신약교회 그리스도인들도 은혜를 오해하거나 율법주의에 빠지는 문제가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구원받은 사람은 다시 죄를 지어도 멸망하지 않으니 괜찮다고 가르치는 거짓 교사들이 교회에 몰래 숨어 들어와 믿음이 약한자들을 유혹하는 일이 있었습니다(요1서2:4이하). 고린도교인 중에는 말씀대로 거룩하게 살지 않고 과거 자신들의 비도덕적인 육신의 욕망에 빠져 지내면서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게 하는 자들도 있었습니다(고전5:1). 그런데 이런 것보다 은혜와 복음을 더 위험하게 만든 것은 율법주의였습니다.

복음은 처음엔 주로 유대인들을 대상으로 먼저 전파되었습니다. 유대인들은 태어나면서부터 율법 아래 살았습니다. 태어난지 8일 만에 할례를 받고 안식일을 지키고 각종 절기를 지키며 살아왔습니다. 나사렛 예수를 메시야로 받아들인 후에도 유대인들은 할례와 안식일과 절기를 중시했습니다. 우리들이 예수 믿기 전의 습관을 한 순간에 버리기 어려운 것처럼 유대인들은 자기들의 정신과 생활방식을 지배해온 율법의 의식에서 즉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백성으로 인정받기 위해 지켜온 율법이라 예수 믿어도 계속 지켜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지금 우리는 이방인으로 살다가 예수 믿은 사람들이라 율법의 구속력은 그렇게 크지 않습니다. 우리는 예수 믿기 전에도 할례를 받거나 안식일을 지키거나 어떤 정결의식 같은 걸 해 본적이 없습니다. 그래서 이런 것들의 힘에 속박당하지 않지만, 태어나면서 지금까지 하나님의 백성에서 탈락되지 않기 위해 율법을 생명처럼 지켜온 사람들은 갑자기 안지키면 큰일 날 것 같은 느낌이 들 겁니다. 갈라디아서 2장을 보면,  베드로 사도 조차도 이방인들과 식사하다가 동료 유대인들이 온다는 말을 듣고 안 그런척 자리를 피했다가 바울로부터 책망을 들었다고 합니다. 자세한 내용은 다음에 살펴보겠습니다.

교회사를 보면, 복음으로 그리스도인들이 지금처럼 자유롭게 되기 전엔 율법적 방법으로 하나님께 인정받는 성도가 되려고 애쓴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수도원운동은 기독교가 공인된 후(ad313) 교회가 세속화되어 영적으로 해이해지자 일부 그리스도인들이 세속을 탈피하여 보다 순결한 형태의 기독교 신앙을 추구하려는 것이었는데, 베네딕트 수도승들은 자기 정욕을 다스리기 위해 눈오는 겨울날 가시나무 위를 굴렀다고 합니다. 오직 믿음으로만 의롭다함을 얻는다는 것을 깨닫기 전에 마틴 루터는 금식과 자해를 통해 하나님께 인정받으려고 누구보다 애쓴 수도승이었습니다. 적어도 이들은 정말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하나님께 인정받는 자녀가 되려고 그렇게 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율법주의는 어떤 의식이나 행위로 하나님께 인정받으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 자체로 나쁜 것은 아니지만, 하나님의 은혜와 믿음을 부정하는 것이기 때문에 위험합니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믿음과 윤리 사이에서 이 율법주의의 휴혹을 받습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고백만으로는 뭔가 부족하다고 느끼기 때문에 예수님을 믿지만, 뭔가 좀더 잘 하면 더 유익할 것 같은 생각에 빠집니다. 주일을 빠짐 없이 지킨다든가, 십일조를 철저하게 한다든가, 가난한 사람들을 돌보는 선행을 한다든가,  매일 QT나 새벽기도회를 더 열심으로 참여한다든가 아니면, 나쁜 행동을 고친다든가 그러면 더 하나님께 인정받을 것 같습니다. 이것들은 행위의 공로를 높이는 것으로 은혜와 믿음을 따라가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 예수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얻은 것으로 끝입니다. 예수 믿어 의롭다함을 얻은 것이 마치 부족해서 우리가 선행으로 더 보충해야 할 것처럼 생각하는 것은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부정하는 행동입니다. 이것은 성령으로부터 오는 생각이 아니고 육신의 생각이며 마귀의 거짓 속삭임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인정받고 사랑받기 위해 선하게 되려고 뭔가 더 노력할 필요는 전혀 없습니다. 그런 생각으로는 아무것도 하지 말고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는 믿음만 굳게 붙잡기 바랍니다. 옛 사람의 습관을 버리고 하나님 자녀답게 살려고 노력하는 것은 구원과는 전혀 상관이 없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자녀로 하나님의 뜻에 방해되지 않게 복음에 합당하게 살려는 마음에서 나오는 것이며 변화는 거듭난 열매지 내 노력의 산물이 아닙니다. 거듭나 성령의 인도를 받으면 시간이 좀 걸리지만 변합니다.
 
예수 믿고 거듭난 교우들은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음으로 율법의 구속으로부터 벗어난 자유를 맘껏 누리며 교회생활하기 바랍니다. 여러분 자신에 대해서도 잘했다 못했다 평가하지 말고 다른 교우들에 대해서도 잘하는지 못하는지 판단하지 맙시다. 우리가 할 일은 거듭나지 못한 교인들에게 복음을 잘 설명해주고 깨닫고 믿음에 이르도록 기도해주는 것입니다. 남자 친구가 실망스런 모습을 보인다고 해도 자매가 못고칩니다. 예수믿고 거듭나서 새 사람이 되면 그 때 변합니다. 그러니까 기도해주면서 주 안에서 즐겁게 사세요. 그리고 전에도 한번 말했는데,  더 잘해서 하나님께 인정받으려고 자신을 힘들게 하지 마세요. 은혜를 아는 마음으로 감사하며 천국 소망가지고 즐겁게 삽시다. 그렇게 신앙생활하다보면 주님을 닮아가게 될 것입니다. 한 주 동안 주 안에서 승리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