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경건

야고보서1:19-27

오늘은 야고보서 1장 19절부터 27절까지 말씀을 중심으로 ‘경건’을 주제로 하나님 말씀을 전하겠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강조하고 있는 것처럼 말씀을 들을 때는 아멘 해 놓고 그대로 실천하지 않기 때문에 자신을 속이는 교인이 되지 말고 듣고 행하여 복받는 성도들이 되길 바랍니다.

오늘 설교 제목은 경건으로 정했지만, 본문 내용 속에는 서로 다른 주제들이 담겨 있습니다. 지난주 설명한 것처럼  야고보께서 생각 나는 데로 이 주제 저 주제로 옮겨다니며 설교 체로 권면의 말씀을 기록했기 때문입니다. 저는 오늘 본문 말씀에 근거하여 세 가지 교훈의 말씀을 전하려고 합니다. 첫째는 분노의 감정을 잘 다스리자는 것이고, 둘째는 설교말씀을 듣고 한 주 동안 반드시 실행하자는 것이고, 셋째는 하나님이 받으실 만큼 경건한 삶을 살자는 것입니다.

그러면 먼저 분노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19절을 보니, 야고보께서 화를 전혀 내지 말라고 하신 것은 아니네요. ‘성내기를 더디하라’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이 화를 전혀 내지 않는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어떤 상화에선 화가 나게 만드셨기 때문에 화를 내는 거죠. 문제는 화를 낼만한 상황이 아닌데도 화를 내고, 또 너무 자주 빨리 화를 내기 때문에 주변 사람을 힘들게 하고 또 상처 주고 그런 게 문제죠. 이 정도가 되면 화내는 것 때문에 하나님이 바라시는 의로운 삶을 살 수 없습니다.

다른 사람보다 화를 잘 내는 사람은 기질이나 피해의식 때문에 그런 것 같습니다. 히포크라테스가 기질을 다.담.우.점 4가지로 나눴는데 이 중에 다혈질은 쉽게 화내고 쉽게 풀리는 경향이 있다고 합니다. 한방에서는 간이 약하면 스트레스도 잘 받고 화를 잘 낸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화를 잘 내는 사람은 간이 아픈 환자인 셈이죠. 심장이 상해도 화와 불쾌한 감정이 증폭된다고 합니다. 화를 잘 내는 사람은 지금까지 사랑받지 못했거나 칭찬이나 주목을 받지 못하는 등 다른 사람에게 인정받지 못해 괜한 피해의식이 있고 그 때문에 자기존중감이 낮으며 사소한 것에도 쉽게 화가 난답니다. 이유야 어떻든 자주 화를 내면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한다고 하니 그리스도인으로서 화를 잘 다스리기 바랍니다.

기질적으로 화를 잘 내는 성향이 있는 줄 알면 늘 조심하는 게 최선입니다. 화가 날 때 증폭시키지 말고 다음과 같이 자제하도록 훈련하면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먼저 자기 중심적을 생각하는 습관을 고치면 도움이 됩니다. 화를 내는 사람은 항상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고 그래서 화를 내는 게 정당하다고 여긴답니다. 이럴 때는 다른 사람 입장에서 생각하는 여유를 가져보면 반드시 자기가 옳지 않다는 걸 알게 될 겁니다. 그러면 미안한 마음이 생겨 화가 가라 앉습니다.

그 다음 사소한 것에 대한 집착하지 말고 크게 생각하는 겁니다. 화를 자주 내는 사람들은 사실 별거 아닌 건데 기분이 상해 화를 냅니다. 내가 치사하게 왜 이런 데 얽매여 화를 내지? 이런 생각도 도움이 됩니다. 사소한 일에 스트레스가 쌓여 화를 자주 낼 수도 있습니다. 자주 화가 나면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있는 건 아닌지 살펴보고 운동, 여행, 휴식 등으로 스트레스를 풀기 바랍니다. 이럴 때는 비판적인 사람은 가급적 피해고 잘 들어주고 이해심 많은 사람과 시간을 보내는 게 좋습니다. 예를 들어 부부가 자주 말다툼을 하는 경우는 스트레스 풀려고 부부가 여행가면 서로 싸우고 돌아오기 쉬우니 그럴 때 친구들과 시간을 보내는 게 좋습니다. 피해의식 때문에 자꾸 화가 난다면 신뢰할 만한 분을 찾아가 속을 털어 놓고 상담하며 전문적 조언을 듣는 게 도움이 됩니다.

두번째 교훈인 말씀을 듣고 주중에 꼭 실행하자는 것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21절에서 야고보는 “너희 영혼을 구원할 바 마음에 심긴 말씀을 온유함으로 받으라”고 말합니다. 이 구절의 NIV 영어번역을 보면, 겸손하게 받으라고 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말씀은 물론 주님의 구원의 말씀이죠. 우리가 성경을 읽을 때 성령으로 깨닫는 말씀, 설교를 통해 듣는 말씀, 성경공부시간이나 셀모임에서 듣는 말씀 등 모두 다 우리 영혼을 구원할 말씀에 해당합니다. 어떤 자리에서 누구를 통해 듣든지 말씀을 겸손하게 받아들이기 바랍니다.

제가 금요일에 사무실에서 ‘바보의 벽’이라 책을 읽어봤습니다. 저자는 일본 사람 뇌과학자인데, 뇌는 그 사람이 관심이 있는 것만 가려 듣고 보도록 작용한답니다. 듣기 싫을 때는 들어도 기억에 남지 않고 흘러가게 하는 겁니다. 우리가 전방을 주시할 때 눈은 앞에 있는 걸 모두 보지만 주목하고 보는 것만 기억에 남습니다. 차를 타고 가면서 햄버거 가게를 찾을 때 좌우를 두리번거리며 지나가지만 햄버거 가게 외엔 기억에 남는 게 별로 없습니다. 카메라 랜즈처럼 우리 초점도 보려는 것만 선명하고 나머지는 있어도 없는 것이 되잖습니까? 이처럼 말씀을 들을 때도 이런 형상이 나타납니다. 주목하고 마음에 담으려고 듣지 않으면 그냥 흘러갑니다.  다른 생각하고 안 듣거나 속으로 비판하고 앉아서 설교자를 골탕먹이는 거죠.

말씀을 들을 때 크게 두 가지 반응이 나타납니다. 마음에 찔림이 있어 회개하는 사람과 마음에 찔림이 있어 설교자에게 돌을 던지는 사람입니다. 사도행전2장 37절 이하를 보면, 베드로의 책망하는 말씀을 듣고 마음에 찔린 사람들이 우리가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고 묻자 회개하고 예수 믿으라고 했습니다. 그 말을 듣고 3천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침례받았다고 되어 있습니다. 이들은 겸손하게 말씀을 받아 구원을 얻었습니다. 그 반면에 사도행전7장 54절 이하를 보면, 스데반의 책망하는 말씀을 듣고 앞에 사람들과 똑같이 마음에 찔림이 있었는데, 이들은 스데반에게 이를 갈며 돌을 던졌습니다. 회개하고 예수 믿으면 구원얻었을 터인데 반대로 마음이 강팍해져 살인자가 되어 다들 지옥 가지 않았겠습니까?

사실 대부분 목사님들이 설교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습니다. 설교를 준비하는 일도 고된 일이지만 설교를 듣는 교인들의 반응 때문입니다. 감사하게 겸손하게 듣고 순종해야 마땅한 교인들이 설교를 잘하느니 못하느니 평가하고, 목사님이 사적인 감정을 가지고 나 들으라고 그런 말씀을 한다고 불평하고 어떤 교인들은 목사님을 찾아와 따지고 그러기도 한답니다. 그러다가 관계가 불편해지면 아예 목사님 반대하는 선봉장이 되어 불평세력을 모아 결국 목사님을 몰아내기도 합니다.

얼마 전 한국에서 온 동기 목사님 말이 자기 지역에도 그런 교회가 있어 목사님이 자주 바뀌었는데, 최근에 새로온 목사님은 1년 동안 창세기만 붙잡고 설교하고 있답니다. 그 목사님을 만날 기회가 있어 들은 이야기인데, 교인들이 자기 들으라고 그러느냐고 그런 말들이 많아서 아예 창세기 1장부터 빼놓지 않고 모조리 한다는 겁니다. 그래서 1년이 다 되는데도 창세기 20장도 못나갔다고 그러더랍니다. 그렇게 하니까 교인들이 죽을 맛인데도 뭐라고 못한다는 거죠. 그렇다고 이렇게 설교하는 게 좋은 일은 아니죠. 하나님 말씀을 겸손하게 받아서 은혜 누리고 힘을 얻고 그래야지 책잡으려고 오늘은 뭐라 하는지 들어보겠다 그런 식으로 듣고, 그런 교인을 생각해서 책 잡히지 않으려고 설교하고 그래서는 하나님 말씀을 바로 전할 수 있겠습니까?

말씀을 대하는 태도에 대해서는 베뢰아 교인들을 본받아야 하겠습니다. 사도행전 17장 11절 이하를 보면, “베뢰아 사람들은 데살로니가에 있는 사람보다 더 신사적이어서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이것이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했다”고 합니다. NIV 영어 번역을 보면, 신사적이라는 말이 noble charcater로 번역되어 있습니다. 교회에서 거칠게 굴지 말고 고상한 성품을 가진 교인이 되길 바랍니다. 주일에 사모하는 마음으로 설교를 듣고 주중에 힘써 지키고 그래야 마음이 은혜로 풍성해지고 삶에 복이 옵니다.

셋째 교훈으로 경건에 대해 말씀하겠습니다. 경건이란 본질적으로 하나님을 향한 사랑과 경외심이 합해진 것입니다. 구약성경엔 두려운 하나님에 대한 개념이 더 강조되어 있고 신약성경엔 사랑의 하나님에 대한 개념이 더 친숙합니다. 하나님은 죄를 심판하시는 분이신 동시에 죄인이 용서받을 수 있는 길을 열어주시는 분입니다. 사랑과 경외심은 하나님과 동행하는 데 매우 중요한 요소들입니다.

야고보는 경건을 말할 때 “하나님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수식어를 붙이고 있습니다. 경건의 사전적 의미는 ‘공경하고 삼가하다’는 뜻입니다. 기독교신앙에서 경건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경외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공경하고 경외하는 일은 마음과 행동이 모두 담겨야 합니다. 마음과 말로는 사랑을 고백하고 공경한다고 말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는다면 참된 경건이 아닙니다.

야고보는 실행하는 영성의 거인답게 경건에 대해서도 실행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야고보는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 중에서 돌보는 것을 참된 경건이라고 했습니다. 야고보는 고와와 과부들에게 먹을 것을 제공하고 경제적 필요를 도와주는 것을 경건의 핵심으로 생각했습니다. 고아와 과부를 돕는 것은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십일조로 레위인들을 지원하는 것처럼 고아와 과부에게도 먹을 것을 제공해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신명기26장 12, 13절을 읽어봅시다. “ 제삼년 곧 십일조를 드리는 해에 네 모든 소산의 십일조 다 내기를 마친 후에 그것을 레위인과 객과 고아와 과부에게 주어서 네 성문 안에서 먹어 배부르게 하라 그리할 때에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 고하기를 내가 성물을 내 집에서 내어 레위인과 객과 고아와 고부에게 주기를 주께서 내게 명하신 명령대로 하였사오니 내가 주의 명령을 범치도 아니하였고 잊지도 아니하였나이다” 여기서 모세는 고아와 과부를 구제하는 것을 ‘주께서 내게 명하신 명령’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경건은 선행을 강조하는 도덕주의와는 구별됩니다. 도덕주의는 바른 행동으로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의롭게 보이고 인정받으려는 것입니다. 여기서 선행은 행위자 자신을 위한 것입니다. 반면에 경건은 하나님 앞에서 나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말씀에 순종하여 주를 기쁘게 해드리려는 것입니다. 여기서 선행은 하나님을 기쁘게 해드리기 위한 것이지 공로로 드러내려는 것은 아닙니다. 혹시 그런 마음이 있다면 버려야 할 것입니다.

야고보는 세속에 물들지 않도록 자신의 삶을 잘 지키는 것을 경건이라고 했습니다. 교회에선 매우 경건해보이는 사람이 학교나 직장이나 사교 클럽에선 불신자와 구별되지 않을 정도로 세속적인 삶을 살아서는 안될 것입니다. 특히 오늘날은 너무 세속적인 시대이기 때문에 세속에 물들지 않아야 한다는 이 말씀을 더욱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세속, 세상의 특징을 말할 때 어느 시대든 공통적으로 제기되는 것이 재물에 대한 탐욕과 성적 쾌락을 추구하는 방탕함과 권력에 대한 욕망입니다. 복음서를 보면 예수님께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기 원하는 사람에게 제일 많이 경계하신 것이 재물입니다. 이 세상을 사는 데는 무엇보다 돈이 필요하고 그래서 사람들이 돈을 사랑합니다. 수단에 불과한 재물은 속성상 곧 목적이 되기 쉽습니다. 돈을 위해 사는 게 곧 세속에 물드는 것입니다. 그 다음 지적되는 문제는 성적 방탕함입니다. 성경에선 고린도 교회에 이런 문제가 심했습니다. 흰 옷이 때에 물들면 세탁해도 본래처럼 되기 힘듭니다. 사람의 마음도 한 번 죄의 맛을 알면 돌아서는 데 힘듭니다. 물들지 않는 것이 최선입니다. 권력에 대한 욕망도 가볍게 볼 게 아닙니다. 정치인들만 권력을 탐하는 게 아니고 가정에서도 주도권싸움을 싸고 아이들도 서로 서열을 놓고 다투고 그러잖습니까? 교회도 파워게임 때문에 싸우다 분열하고 그럽니다. 예수님은 섬기는 자가 되라고 하셨는데 우리는 지배하는 자가 되고 꼬리보다 머리가 되게 해달라고 기도하고 그럽니다. 앞으로는 꼬리가 되어 섬기는 사람 되게 기도하기 바랍니다.

오늘 우리는 야고보서를 통해 세 가지 말씀을 들었습니다. 첫째는 화를 잘 다스리라는 것입니다. 특히 화를 잘 내는 사람들은 한 주 동안 화가 날 때 그 원인을 분석해보고 분노의 감정에 지지 말고 잘 다스리도록 노력하기 바랍니다. 둘째로 말씀을 들을 때 잡념에 빠지거나 듣지 않으려는 성향이 있는 분들은 먼저 회개하고 마음을 낮추고 경청하고 순종하기 바랍니다. 그래야 여러분 신앙생활에 복이 있습니다. 끝으로 하나님이 인정하는 경건한 그리스도인이 되길 바랍니다. 교회 안에서, 밖에서 고아와 고부들을 도와주며 삽시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예수님 이후 가장 세속화된 세상입니다. 그러니 세속에 물들지 않도록 여러분 마음과 생각과 삶을 지켜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돈과 성적 쾌락과 높은 자리를 탐해선 안됩니다. 이런 것들은 여러분은 세상에 충성하게 만들 것입니다. 그러면 세속에 물들고 하나님 곁에서 멀어질 수 있습니다. 오늘 세 가지 교훈을 유념하고 한 주 동안 주 안에서 성령의 인도를 받으며 말씀으로 승리하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