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약을 계승한 셋

창4:25,26 ; 5:3,4

지난 주 설교에서 아담과 이브에게 가인과 아벨 외에 다른 아들이나 딸이 있었을 가능성이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지 단정하는 것은 아닙니다. 만일 있었더라도 그들은 하나님의 언약을 계승할 자격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구속사적 관점에서 기록되고 있는 성경에 이름이 빠진 듯 합니다.

먼저 5장의 아담의 족보부터 살펴보겠습니다. 창세기5장은 아담의 계보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계보는 족보를 말합니다. 아담의 족보의 특징은 언약을 이어갈 후손만 기록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가인과 아벨의 이름도 없고 각 세대에 여러 형제들이 있었지만 그 중에 언약의 후사가 될 사람의 이름만 올라 있고 그 외엔 다른 아들과 딸도 있었다고만 나옵니다.

2절에 하나님이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그들에게 복을 주셨다고 되어 있습니다. 복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바라크’는 ‘무릎꿇다’는 뜻입니다. 하나님 앞에 무릎 꿇어야 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여기 있는 우리 중에도 복 받기 싫은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께 무릎 꿇기 바랍니다. 그래야 인생이 공허하게 느껴지지 않고 감사하다는 마음이 생깁니다. 뿐만 아니라 믿음의 자녀도 선물로 얻을 수 있습니다.

3,4절을 보면, 아담은 130세에 셋을 낳고 그 후에도 800년을 더 살며 아들 딸을 낳았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아담과 이브에겐 셋 외에도 다른 자녀들이 있었지만 그들의 이름은 족보에서 빠졌습니다. 이것은 셋과 그 이후 후손에게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셋은 에노스를 낳고 807년을 더 살면서 다른 아들과 딸을 낳았다고 했는데 그들 이름은 없고 에노스만 언급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언약의 족보에 이름을 올리는 것은 영광스러운 일입니다. 이것은 원해서 되는 것도 아니고 무슨 노력의 대가로 취득하는 것도 아닙니다. 그러기에 은혜라고 말할 수 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살아 있는 동안에는 이 족보에 이름이 오르게 된다는 것을 모르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창세기는 아담의 후손들이 살다 간 후 오랜 후에 기록되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그렇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예수님 때문에 셋의 후예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셋은 아담을 계승하는 언약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하나님은 아담에게 피조물을 관리하는 일을 맡기며 생육하고 번성하는 복을 주셨습니다. 아들 셋은 아버지의 언약을 이어가는 자격이 주어집니다. 아벨은 먼저 죽었고 가인은 자격을 잃었습니다. 그들을 대신하여 셋이 태어났습니다. “하나님이 아벨 대신 다른 씨를 주셨다”는 믿음으로 아담은 아들 이름을 셋이라고 지었습니다.

‘셋’은 동사 ‘쉬트’에서 나온 말로 ‘대신 놓다’는 뜻이 있습니다. 셋은 아담에게 있어서 무고하게 죽은 아들 아벨 대신하는 자식이었습니다. 셋은 단지 한 명의 아들 이상으로 귀한 존재가 되었습니다. 셋의 후손에서 구세주가 나오기 때문입니다. 셋의 후손 중에는 믿음의 사람 에녹, 당대의 의인 노아 등 기라성 같은 사람들이 나옵니다. 여러분 자녀와 후손 중에도 하나님 나라에 크게 쓰이는 인물들이 나오길 바랍니다.

아담이 셋을 낳은 것은 130세 였다는 건 조금전 말씀드렸습니다. 130세에서 ‘세’(year)의 히브리어 ’솨네’는 ‘돌아오다, 반복하다’는 뜻 ‘솨나’에서 파생된 말로 '태양의 일 주기'를 가리킵니다. 그래서 아담의 나이 '일백 삼십 세'는 오늘날의 연령계산과 똑같이 130년이 흘렀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보면 아벨은 죽고 가인은 집을 떠난지 100년이 더 흘렀을 것으로 짐작됩니다.

셋을 낳기까지 100여년 동안 아담과 이브는 어떤 심정으로 살았을까요? 셋이 아들을 낳았을 때 비로소 사람들이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다고 한 것으로 봐서 아담과 이브도 하나님에게서 멀어진 것 같습니다. 모든 것이 자기 잘못임에도 불구하고 아담과 이브는 하나님을 야속하게 생각했을지 모릅니다. 셋이 아들을 낳았을 때 사람들이 비로소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다고 셋의 이름 다음에 이런 내용을 기록해 놓은 걸 보면 아마도 사람들이 하나님을 찾고 예배하게 된 것이 셋의 신앙의 영향 때문으로 보입니다.

아담과 이브는 지상의 최초의 사람이자 하나님으로부터 생육하고 번성하라는 복을 받은 사람으로서 하나님을 섬기는 본을 보이며 후손들이 하나님을 섬기도록 가르쳐야 했습니다. 그러나 아담과 이브는 자녀들에게 믿음을 심어주지도 못한 듯 보입니다. 아담과 이브는 그 세대 사람들이 하나님을 알지 못한데 책임이 있습니다. 늘푸른교회 교인들이 하나님을 잘 알지 못하고 하나님을 찾지 안는다면 목자인 저에게 책임이 있습니다. 여러분도 누군가의 신앙에 책임이 있다는 걸 유념하기 바랍니다.

셋의 신앙생활과 가정환경에 대해 한 가지 살펴볼 게 있습니다. 범죄하고 에덴 동산에서 쫓겨나힘들게 살아야 했던 아담과 이브는 하나님을 적극적으로 찾지 않았습니다. 셋은 아담과 이브에게서 신앙생활의 감동을 별로 받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 시대에 셋에게 신앙에 좋은 영향을 줄 만한 그런 믿음의 사람도 없었습니다. 그런 환경에서도 셋은 하나님을 경외하며 예배하는 자로 살았습니다. 어느 세대든 믿음의 사람들은 세상이나 환경을 탓하지 않습니다.

성경을 보면 모든 세대 마다 하나님 나라를 더 소중하게 생각하며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들과 세상의 행복을 얻기 위한 수단으로 종교생활하는 사람들이 나옵니다. 아담과 이브에 대해선 나두고라도 가인의 후손들과 셋의 후손들, 셋의 후손들 중에서도 또 노아와 그 시대 사람들, 바벨탑 사건으로 흩어진 노아의 후손들 중에 아브라함과 그 외의 사람들, 예수님을 믿고 따르던 그리스도인과 그 외의 사람들,

그리스도인에게 인생의 목적은 여러분도 50넘게 살아보면 깨닫게 되겠지만 하나님 잘 섬기다 천국 가는 것보다 더 중요하고 긴급한 것은 없습니다. 공부하고 직장을 얻고 결혼하고 사는 것 모두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며 교회를 섬기다가 천국 가기 위해 필요할 뿐입니다. 공부든 직장이든 결혼이든 자녀양육이든 지식이든 재산이든 그것들이 우리를 하나님나라로 인도해주지 않으면 그것 때문에 결국 인생 망하게 됩니다. 부부의 행복이 먼저니 가정이 우선이니 그런 말을 들을 때 참 딱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스도인이 하나님을 잘 믿고 교회를 섬기는 것 때문에 학업이든 직장이든 가정이든 안 될 이유가 어디 있습니까? 

우리가 예수 믿고 하나님 나라 생명책에 이름을 올린 것은 셋의 후손이 된 것이고 언약의 자녀가 된 것이니 얼마나 큰 복입니까? 우리가 세상 떠날 때까지 세상의 복을 더 얻지 못한다고 해도 이미 받은 은혜와 복만으로 만족할 줄 알아야 할 것입니다. 지금부터 뭘 더 얻겠다 이런 생각으로 교회 다니며 기도하고 그러면 괜히 불평이 나오고 힘들어 질 뿐입니다. 이젠 더 바랄 게 없다는 마음으로 교회다니기 바랍니다. 언약의 자녀가 된 것으로 예수 믿어서 얻을 수 있는 것은 이미 다 얻은 것입니다. 이젠 누리면서 감사할 것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