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벨탑의 교훈

창세기11:1-9

오늘은 창세기 11장 바벨탑 사건과 그 사건이 주는 교훈에 대해 말씀하겠습니다. 요즘 아시아권에서는 소위 마천루라고 하는 초고층 빌딩을 경쟁적으로 짓고 있다고 합니다. 100층을 넘는 이런 초고층 빌딩을 지으려면 50층 정도의 건물에 비해 기초를 배나 더 강하게 해야 하기 때문에 건축비가 훨씬 많이 들고 지진이나 화재가 발생했을 때 위험도 크기 때문에 효율성이 떨어지는데도 불구하고 이런 초고층빌딩을 지으려는 것은 건축가들의 이름을 드러내고 또 그런 건물을 지을 재력이 있다는 걸 드러내고 싶어서 그럴겁니다.

바벨탑 역시 그런 측면이 있었습니다. 인간들이 하나님을 상대로 자기들의 힘을 과시하려는 측면이 있었을 것입니다. 11장 4절에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여 우리 이름을 내고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고 거대한 탑 공사를 시작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바벨탑은 하나님께 불경스러운 것이었습니다.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겠다는 것은 하나님께 대한 도발이죠. 자기 이름을 드러내겠다는 것은 하나님 자리를 차지하겠다는 교만이고 흩어짐을 면하겠다는 것은 하나님과 싸워 이기겠다는 것입니다.

노아와 그의 후손들의 생존 연대를 참고할 때 바벨탑 사건은 홍수 후 100년쯤 지났을 때 일어난 것 같습니다. 창세기10장 25절에, 셈의 손자 에벨이 두 아들을 낳았을 때, 그 때 세상이 나뉘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세상이 나뉘었다는 건 바벨탑 사건으로 사람들이 온 세상으로 흩어지게 된 것을 가리키는 것 같습니다(keil, Lange).

창세기 11장 10절 이하에 나오는 셈의 후손들을 중심으로 볼 때, 셈은 홍수 후 2년에 아르박삿을 낳았고, 아르박삿은 35세에 아들 셀라를 낳았으며 셀라는 30세에 에벨을 낳았고 에벨은 34세에 벨렉을 낳았다고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벨렉이 태어난 때는 홍수직후부터 2+35+30+34 이렇게 101년이 흘렀을 때이며 이 때 바벨탑 사건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참고로 벨렉은 아브라함계의 조상이고 욕단은 아라비아계의 조상입니다.

홍수 직후엔 두려운 마음도 있었고 아직 사람 수도 많지 않아 숨죽이며 살던 사람들이 100여년이 흐르면서 두려운 마음도 무뎌지고 인구수도 급증하면서 인간의 교만이 머리를 들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인간의 교만이라고 하면 지금 우리 세대가 당연 최고죠. 지식과 과학기술의 발달로 도시 문화를 만들어 내고 자본이 축척되면서 하나님 의존하지 않고도 한 평생 먹고 사는데 지장 없는 사람들의 숫자가 급증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어려운 일이 생기더라도 하나님을 찾지 않고 자기들 힘으로 해쳐나갑니다. 바벨탑 역시 그런 시대정신이 반영된 게 아닌가 싶습니다.

성경을 보면 아담 이후 오늘날까지 범죄한 인간은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여 반역적인 태도를 보여왔습니다. 심지어는 교회안에도 반역적인 태도로 교회생활하는 사람들이 적잖은 걸 보면 어쩔 수 없는 인간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죠. 노아 홍수가 주는 교훈은 하나님의 뜻이든 말씀이든 거역하는 것은 곧 죽음이라는 메시지 아닙니까? 그런데도 100년 정도 흘렀다고 벌써 다 잊고서 하나님을 대적하고 자기들 힘으로 살아남을 궁리를 하고 있습니다.

다른 동물 사회에도 배신이라는 게 있는지 모르겠지만, 인간은 유독 배신하고 반역을 도모합니다. 이런 모습을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이 사사기죠. 죽겠다고 살려달라고 해서 하나님이 구원해주면 살만해졌을 때 하나님을 귀찮아하고 자기들 좋은 대로 우상을 섬기고 그래서 하나님의 화를 격발시키고 재앙을 만나고 죽게 생기면 또 잘못했다고 빌면서 살려달라고 아우성치는 과정을 반복합니다.

직장에서 동료로부터, 비즈니스 파트너로부터, 정치하는 동지들이 서로 배신합니다. 배신이 그런그런 것처럼 은혜를 입고 믿었던 사람들이 서로 등을 보이는 것이죠. 바벨탑 모의에 동참한 사람들은 모두 홍수에서 살아남은 셈과 함과 야벳의 후손들이었습니다. 노아가 하나님께 은혜를 입은 것처럼 그들은 모두 하나님의 은혜를 입어 세상에 태어날 수 있었던 사람입니다. 그들의 아버지와 할아버지가 어떻게 살아남았는지 듣고 알았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을 거역하고 대적합니다.

교우 여러분, 우리 안에도 배신하고 반역하는 기질이 있다는 걸 알아야 합니다. 성한 교회가 없을 정도로 교회가 분쟁하고 분열하고 배신하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듣자니까 밸뷰 어느 교회에서 분열해 나와 세운 교회가 또 일부 떨어져 나갔다고 합니다. 내부적으로는 다 자기들을 정당화하는 이유가 있겠지만, 결국은 은혜 베푼 사람에게 등을 돌리고 믿었던 사람들이 서로 비방하고 그러는 거잖습니까? 이게 다 인간이 반역적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사람이 되지 않게 조심합시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은 그냥 묵과하지 않습니다. 사무엘은 사울 왕께 교만과 거역은 사악한 우상을 섬기는 죄보다 더 나쁘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은 하나님의 이름과 영광을 욕되게 하는 것입니다. 인간 사회에서도 다른 잘못은 용서받기 쉬워도 권위에 대한 도전하며 거역하는 것은 용납되기 어렵습니다. 하나님은 바벨탑을 세우는 악행을 중단시키기 위해 말을 서로 알아듣지 못하게 만들어 혼란에 빠지게 했습니다. 말이 통하지 않으니 결국 공사는 중단되고 말이 통하는 사람들끼리 흩어져 살 수 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4절에 언급된 것처럼 흩어짐을 면하자고 한 일이 화근이 되어 강제로 이산 가족이 되고 말았습니다. 흩어짐을 면하자고 한 걸 봐서 아마도 100년 전의 홍수의 심판을 염두에 둔 것같습니다. 홍수의 심판을 기억하고 있었다면 두려운 마음으로 하나님을 잘 섬길 계획을 짜야하는데 교만한 인간은 반대로 나갔습니다. 하나님이 또 화를 내고 홍수로 심판하려고 한다면 탑 꼭대기로 피해 살아남겠다고 한 것입니다. 전에 뉴스를 보니 지구 멸망하면 화성인가 어디에다가 대피소를 만들어 피신하자고 그런 계획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합니다. 참 어리섞죠. 거기가서 도대체 몇 백년을 산답니까?

인간에겐 고대부터 현대까지 위대한 건축물을 만들어 이름을 남기고 싶어하는 욕망이 있습니다. 스페인 바로셀로나엔 100년 넘게 교회당 건물이 공사중이라고 합니다 하나님 영광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그러겠지만 속으로는 그런 위대한 건물을 남겨 이름을 내려는 사람들의 합작품이 아닌가 싶습니다. 주님은 오히려 그런 건물을 만드느라 들어가는 엄청난 돈으로 어려운 사람을 돕는 걸 더 기뻐하지 않으실까요? 아무튼 인간은 기회만 있으면 자기 이름 석자를 남기고 싶어하는 욕망이 있는데 이것도 잘 다스릴 필요가 있습니다.

바벨탑 사건이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이유는 역사적 기록으로 남기려는 게 아니고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교훈을 주기 위한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고린도전서 10장 11절에서 말하기를 성경에 지난 역사적 사건들을 기록해 놓은 이유는 “말세를 만난 우리의 경계로 기록된 것”이라고 했습니다. 거기 보면, 출애굽 때 홍해가 갈라진 사건, 반석에서 물이 나온 사건, 불평하다 불 뱀에 물려 죽은 사건, 우상숭배로 수 많은 사람이 죽음을 당한 사건 등이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것은 경계 곧 warnings이라는 것입니다.

바벨탑 사건에 대한 기록도 마찬가지로 경고의 성격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께 대항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고 순종하면 하나님 은혜 아래 안전하게 살 수 있는데 왜 또 다시 홍수로 심판하면 살아남아야지 이런 생각을 합니까?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은 바위를 걷어차는 것과 같습니다. 그래봐야 자기 발만 부러지고 인생 망치는 거죠. 북한이 미국 상대로 전쟁 벌이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하나님은 미국보다 훨씬 강하십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평생 조심할 게 있는 데, 그게 자기 이름을 높이고 싶어하는 교만입니다. 이 교만은 그리스도인이라고 다를 게 없습니다. 목사님들도 제일 약한 것이 바로 자기 이름을 높이고 싶어하는 교만입니다. 겸손을 그렇게 설교하면서 정작 자신은 겸손하지 못한 게 인간입니다. 한국의 대형교회 목사님들 중에 이 욕망을 잘 다스리지 못해서 말년에 낭패를 당하고 계신 분들이 있습니다. 대형교회 목사님만 그런건 아니죠 우리 모두 해당됩니다. 어떤 분야에서든 자기 이름을 내고 싶어하는 이 욕망을 잘 다스려야 하나님 앞에서 잘 살 수 있습니다.

남북으로 분열된 우리는 지금도 이산 가족들 비극을 보고 있습니다. 바벨탑으로 흩어진 사람들도 이산가족의 고통을 겪으며 살아야 했을 것입니다. 하나님 은혜 아래 살았으면 겪지 않아도 될 일을 자기 꾀에 빠진 겁니다. 바벨탑 사건으로 흩어진 후에도 노아는 250년, 셈은 400년 정도, 아르박삿은 340년 정도, 에벨은 360년 정도를 더 살았다고 합니다. 아마 이들 중에도 이산 가족으로 살았을 지 모릅니다. 공사현장에서 갑자기 언어가 달라져 말이 안통해 흩어졌으니 부모 형제 중에도 말이 안 통해 흩어졌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끝으로 적용차원에서 몇 가지 살펴보고 마치겠습니다. 흩어지는 것으로 끝난 것은 하나님이 많이 봐주신 겁니다. 거역한 행위에 대해 불벼락을 내리진 않았습니다. 어떤 이유든 함께 하나님을 잘 섬기지 못한다면 흩어지는 것도 차선책입니다. 그런 관점에서 연합하고 하나가 되는 것만이 최선은 아닙니다. 세계 단일 정부를 꾀하는 운동도 있고 또 모든 교회들이 하나의 교단 혹은 깃발아래 모여야 한다는 그런 주장도 있는데 꼭 그게 좋은 것만은 아닙니다.

예를 들어 히틀러처럼 하나로 통합된 힘을 손에 넣고 사단의 조종을 받아 하나님을 대적하면 오히려 위기를 맞이할 수 있습니다. 사랑과 평화가 넘치는 하나의 통합은 오직 하나님 나라에서만 가능할 것입니다. 세속적 기구나 정치 세력에 의해 국가든 교회든 통합되려고 하기 보다는 인간의 죄성과 거역하는 속성을 감안할 때 적당히 흩어져 힘이 분산되어 누구든 절대적 힘을 행사할 수 없게 서로 견제하면서 선한 일을 위해 협력해 나가는 게 안전합니다.

인간의 거역하는 속성 때문에 교회에서도 힘이 분산되어 있는 게 안전합니다. 목사님이든 장로님이든 어떤 위원회든 간에 힘이 집중되어 있으면 힘으로 자기 뜻을 관철하고 싶어합니다. 옳다고 생각할 때는 그 욕구가 더욱 강해지겠죠. 힘으로 하는 곳에는 사랑과 섬김과 오래 참음과 온유와 절재 같은 성령의 열매는 맺기 어렵습니다. 대형교회에서 문제가 생기는 것은 바로 큰 힘이 누군가에게 집중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교회는 개인에게 힘이 집중되지 않게 하는 게 좋습니다.

세상에서 힘은 사람 숫자와 돈에서 나옵니다. 사람관리 돈 관리를 잘 해야 합니다. 교회에서 일꾼을 세울 때는 권력의 의지가 가장 약한 사람을 세우는 게 지혜입니다. 뭔가 해보려고 하고 대장이 되려고 하는 그런 사람은 세상에 나가서 그런 포부를 실현하고 교회에선 가만 있든지 아니면 힘없는 자리에서 일하는 게 교회도 좋고 당사자에게도 좋습니다. 가령 주차요원을 하거나 청소일을 하거나 그러면 어떨까요?

교회에서 문제를 일으키는 분들은 리더십이 있거나 강성체질들입니다. 처음엔 교회에 충성하다가 자기 중심으로 힘이 생기면 권력의 의지를 드러냅니다. 교회일이 자기 뜻대로 되기를 바라고 그렇게 만들려고 합니다. 제 생각엔 장로님이 재정 담당하는 건 지혜롭지 못한 것 같습니다. 장로님은 교인들 대표성을 갖기 때문에 힘이 집중되는데 거기에 재정까지 관리하면 그야말로 힘이 집중됩니다. 재정은 집사님이든 교인중에서 신실한 분이 하고 장로님은 감사일을 하게 하면 좋을 겁니다. 저는 그렇게 교회행정을 할거니 미리 양해하기 바랍니다.

시편 127편 1-5절을 보면,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고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숫군의 경계도 허사라고 했습니다. 위기를 예상하고 대비하는 것도 지혜라고 할지 모르나 먼저 하나님을 경외하고 은혜 아래 사는 것이 더 안전할 길임을 알아야 합니다. 더구나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않는 인생의 행복이라는 게 어디 있겠습니까? 열심히 일해서 돈 많이 벌면 다 행복합니까? 자식이 하나님을 떠나 방황하고 병에 걸려 죽고 그러면 그게 행복입니까? 내 힘으로 잘 살아보겠다고 너무 애쓰지 말고 주 안에서 자족하면서 평안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자녀들을 먹고 입히지 않겠습니까? 오늘은 하나님 나라를 미리 맛보는 복된 주일입니다. 세상 근심 주님께 맡기고 영혼과 마음과 몸을 쉬게 하기 바랍니다.